하느님을 향한 로마네스크의 상징성 Ⅱ

성 안티모 수도원 | 중세 수도원 이야기

by Roma Vianney


성 안티모 대수도원의 건축물


11세기 초에 만들어져 있었던 것은 종탑밖에 없었기 때문에 1118년도에 성당을 새롭게 건축할 때 기존에 있던 것들을 살리면서 종탑과 카를로 왕이 봉헌한 소성당 사이에 이 새로운 성당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종탑이 앞도 뒤도 아닌 성당 중간에 붙어 있는 그 당시에는 볼 수 없는 성당이 만들어졌습니다. 12세기 중반에는 새로운 수도원 공사가 거의 끝나게 되고 성당의 정면만 미완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아래 수도원 평면도에서 옅은 회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현재 남아있지 않은 장소를 표시한 것입니다.

05_안티모수도원(최종)_url.jpg 수도원 평면도

1. 종탑  2. 카를로 소성당 (제의방)

3. 보물실  4. 규칙의 방

5. 수도승 침실 올라가는 계단

6.필사실  7. 도서관

8. 대성당  9. 세례문

10. 성당 정문  11. 수도자의 문

12. 사각 정원  13. 식당

14. 부엌  15. 순례자 숙소 및 병원

16. 창고  17. 외부 화덕  18. 마당


앞으로 나올 개혁 수도회 편에서 수도원 건물 구조와 각 장소들의 용도를 자세히 설명할 것이지만, 안티모 수도원도 12세기 시토회 수도원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수도원 성당의 중앙 제대는 해가 떠오르는 동쪽을 향해 놓으면서 성당의 커다란 건물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막아주고 있고 그 반대편인 남쪽은 하루의 해를 가장 많이 받는 생활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장소들이 사각 정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사각 정원의 모습은 위의 사진처럼 중앙에 우물이 있고 사방으로 걸어 다니도록 지붕이 있는 회랑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풀이 자라고 나무가 심어져 있는 공터로 남아있습니다.


20200904_120753680_iOS.jpg 카를로 소성당 정면과 규칙의 방 일부
20200904_112907026_iOS.jpg 카를로 소성당 후면의 돌출된 압시대 (압시대 아래쪽 둥근 창문은 지하 크립타의 창문)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현재 제의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카를로 소성당과 규칙의 방 일부입니다. 카를로 소성당은 좌측으로는 수도원 성당과 우측으로는 보물실과 규칙의 방이 붙어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정면 일부와 돌출된 압시대가 있는 후면입니다. 카를로 소성당 정면의 문은 3분의 2가 벽으로 변하여 남은 반달 모양의 창문만 볼 수 있고 그 오른쪽 조그만 문은 지하에 있는 크립타로 내려가는 문입니다. 들어갈 수는 없지만 카를로 소성당 크립타는 좌우로 두 개의 압시대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크립타로 내려가는 문 오른쪽 조그만 사각 창문이 보물실이었습니다. 이 보물실세상의 기준인 돈의 가치가 아니라 교회적 가치인 성서, 전례서, 제구를 보관하던 곳입니다. 현재 이 장소는 규칙의 방 일부와 함께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약품, 초콜릿,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상점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원래 규칙의 방 좌측에 만들어진 세 개의 창문 중 하나였습니다.


규칙의 방 입구와 오른편 세 개의 창

규칙의 방은 수도자들이 매일 아침 모여 베네딕도의 규칙서를 듣는 장소라는 뜻에서 유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장소에서 수도원의 중요한 결정도 하게 됩니다. 내부에는 16세기 아쉬아노의 죠반니가 그린 베네딕도 성인의 생애 프레스코화 일부가 있고 중앙에는 돌로 된 단순한 제대와 벽에는 전례 중에 사용한 제의를 보관한 돌로 된 가구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규칙의 방 위층에는 건축물 일부분이 남아 있고 이곳은 수도자들이 거처했던 독방이 있던 곳입니다.


IMG_6447.jpg 종탑
종탑 장식의 성모자 부조

사각 정원을 중심으로 북쪽 편에 위치하고 있는 수도원 성당과 종탑은 현재 가장 잘 남아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탑은 성당과 연결되어 만들어졌고 27.5미터의 높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꼭대기에는 테라스를 가지고 있어 주변을 감시할 수 있는 역할도 하였습니다. 종탑 북쪽 면 윗부분에는 아기 예수님을 앉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와 그 주변으로 네 명의 복음사가, 그리고 대천사 미카엘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복음사가는 성모님 왼편 사람의 모습을 갖고 있는 마태오, 얼굴은 사라졌지만 독수리 날개와 몸이 보이는 요한 그리고 그 사이에 대천사 미카엘 모습입니다. 사자 마르코와 황소 루카 복음사가는 성모님 오른편 위아래로 훼손된 일부만 남아있습니다.


IMG_6446.jpg 마르코 복음사가의 부조
IMG_6445.jpg 사람의 얼굴

종탑의 북쪽 면에 아래쪽에는 날개 달린 소의 몸을 가지고 있는 성 루카를 상징한 부조가 있습니다. 이 종탑이 성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다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이 얼굴과 바로 옆에 성당 후진에 보이는 얼굴이 같은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성당 뒤에서 바라본 돌출된 세 개의 소성당 모습. 성당 왼편은 카를로 소성당, 오른쪽은 종탑

성당 외부의 뒤편에서 보면 2층으로 된 둥근 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내부에서 보면 제대를 중심으로 둥근 복도식 회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성당을 지을 때 프랑스의 클루니 수도원을 모델로 해서 프랑스 건축가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프랑스식 로마네스크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로 이렇게 만들었던 시기는 11세기와 12세기 때이고 만들어진 장소는 순례자들이 많이 지나다니던 프랑스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나, 프랑스에서 로마로 내려가는 프란치제나 길 가까이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대 뒤의 복도식 회랑은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제대를 중심으로 순례자들이 돌면서 좀 더 가까이 성인 유해 옆에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장점과 함께 뒷벽을 파서 벽감 형태로 만들어진 소성당에서 중앙 제대에서 이루어지는 전례를 방해하지 않고 순례자들만의 미사를 드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구조는 전례를 중요시 여겼던 클루니 수도원에서 선호했던 성당 건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IMG_6444.jpg 소와 솔로몬의 매듭
IMG_1218.jpg 두 마리의 도마뱀

소성당 지붕을 받치는 선반에는 동물들이 조각돼 있고 이 동물들수도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조각된 는 복음사가 루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척박한 땅에서 밭을 일구는 소처럼 그리스도를 모르는 세상에서 수도자들은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의미이고, 태양 앞에서 움직이지 않고 햇볕 쬐기를 좋아하는 도마뱀빛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묵상하는 수도자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동물로써 베네딕도의 규칙을 한 마디로 정의한 ‘일하고 기도하라’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소 옆에 있는 것은 변형된 솔로몬의 매듭입니다.


수도원 성당 정면

성당 정면은 로마네스크의 전형적인 상승형 지붕 모양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명에 나있는 창문은 태양과 연관된 그리스도의 상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의 창문은 한 분이신 하느님을 그리고 하나의 창문을 기둥으로 나누어 마치 두 개의 창이 합쳐지게 보여주는 것은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본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당 정면에 대한 첫인상은 미완성 혹은 부서진 후 수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입구 양옆 벽에 남아있는 돌과 아치 모습의 흔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성당 입구 쪽 전체를 지붕으로 덮는 현관을 만들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문도 양옆에 두 개를 더 만들어 클루니 수도원 성당처럼 순례자들의 출입을 더 원활하게 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성당 건축 시 중앙 제대의 자리를 먼저 잡고 제대 쪽에서부터 공사를 시작하기 때문에 성당 정면은 마지막으로 공사가 끝나는 부분입니다. 이 수도원이 성당 정면 공사는 주변 도시와 혼란을 겪던 13세기 초반이었기 때문에 결국 미완의 모습으로 남아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IMG_6511.jpg 하나의 얼굴에 몸이 둘인 사자

성당 정문의 왼쪽 기둥 주두를 보면 우리가 여태 보지 못했던 몸통은 둘인데 얼굴은 하나인 이상한 형상의 동물이 있습니다. 이 동물은 과연 무엇일까요? 일단 얼굴을 보면 언뜻 보기엔 고양이 같지만 사자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사가인 마르코를 가리키는 걸까요? 아닐 겁니다. 마르코라면 몸통을 두 개나 만들지 않을뿐더러 여기엔 날개도 없습니다. 여기 조각된 사자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동물입니다. 몸 통이 둘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두 가지 본성인 인성과 신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겠죠. 글을 몰라 언어의 개념으로 설명해 줄 수 없었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백 마디 말보다 상징성 있는 이런 조각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이덴티티를 설명해 주는 가장 좋은 방법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사족입니다.

한글로 된 신학과 철학 책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을 한자로 쓰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게는 철학과 신학 자체보다 그 개념을 담고 있는 짧은 말들을 이해하는 것이 더 힘들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이 결합한 완전한 분이라는 말들은 이성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어야 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죠. 그러다 이탈리아 말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을 보고 이런 개념들이 그냥 믿음으로 봉인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으로 이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제 머리로 이해한 하느님은 하느님 전체가 아니라 일 부분일 것입니다. 만약 제가 하느님을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면 제 머릿속에 있는 그분은 참 하느님이 아닐 것입니다. 인간의 머리로 하느님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일화처럼 작은 바가지로 모든 바닷물을 모래 구덩이에 담으려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으니깐요.

자동차를 가운데에 놓고 주변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자동차를 보고 그렸지만 다른 자동차의 모습이 도화지에 나옵니다. 그려진 것이 자동차는 맞지만 자동차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많이 쓰지만 저는 보는 만큼 앎이 늘어난다고 하고 싶습니다. 여러 방향에서 본다는 것은 편협한 마음을 버리는 것이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한 자세가 앎의 시작입니다. 겸손은 나 자신을 비우는 모습이고 비워진 자리에는 앎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알기 위해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더 큰 것을 깨닫기 위해 버려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이성의 앎은 삶의 지혜가 되고 신앙의 믿음이 될 것입니다.


제 위치에서 보이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나투라 디비나 (Natura divina, 신적 본성)와 나투라 우마나 (Natura umana, 인적 본성)가 합쳐서 하나의 페르소나 (Persona)가 되십니다. 이 페르소나의 어원은 그리스 말, 라틴말에서 오고 연극에서 사용한 '가면'을 뜻합니다. 삼위인 성부, 성자, 성령은 각각 이 페르소나 (Persona)입니다. 이 세 페르소나가 합쳐지면 하나의 신성 (Divinita')을 갖는 하나의 소스탄자 (Sostanza, 존재)가 되고. 이 존재를 우리는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신학적 용어인 페르소나를 유추적으로 사용하여 각각의 고유한 얼굴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란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도 두 가지 본성인 나투라 스피리투알레 (Natua spirituale (영적인 본성)와 나투라 코르포랄레 (육적인 본성)를 가지고 있는 하나의 가면을 쓴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성당 중앙문

성당 중앙문은 아치형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쐐기 돌로 마무리를 하는 돌 끼움식이 아니라 문의 두 기둥 위에 큰 사각의 돌을 얹어 넣어 무거워 보이지만 하느님 집으로써의 든든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강인한 바위 위에 부조된 포도나무는 십자가로 얻어진 새로운 생명의 나무를 가리키며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맺혀야 되는 열매는 우리 자신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요한 15장 5절


이 성당은 루카의 아 쪼라는 사람이 건축을 하였고 이 포도나무 문양 아래 이 사람에 대해 라틴어로 다음같이 적고 있습니다.

monacus puer huius [cenobii] postque decanus auctor previus


이 사람에 대해 정확한 신원은 알 수 없지만 모나쿠스 (monacus)라는 단어로 이곳의 수도자였고, 데카누스 (decanus)라는 단어로 수도원장은 아니지만 성당 건축의 총책임자였던 것은 짐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MG_6463.jpg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편에 있는 사자상

정문 양옆에 서있는 두 개의 기둥은 단순한 받침돌 위에 서 있지만 원래는 성당 안쪽에 있는 사자의 조각상을 받침으로 사용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자는 악한 무리를 막아내는 지상의 용맹스러운 동물이기도 하지만, 구약에 나오는 열두 지파 중 유다를 상징하고 이 지파에서 죽음으로부터 세상을 구원하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어린 사자, 내 아들아, 너는 네가 잡은 짐승을 먹고 컸다.
유다가 사자처럼, 암사자처럼 웅크려 엎드리니 누가 감히 그를 건드리랴?
창세기 49장 9절


그래서 중세 시절에 만들어진 성당 입구에서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사자 조각상을 많이 볼 수 있고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집이 아니라 세례를 받고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교인만이 들어갈 수 있는 하느님의 집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례의 문

성당 왼편에 있는 작은 문은 세례의 문입니다. 문 옆 오른쪽 기둥의 장식으로 보아 이것은 9세기경에 있었던 것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고 문 위의 돌 장식에는 ‘솔로몬의 매듭’이 있습니다. 솔로몬의 매듭은 기원전부터 나타난 것이고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하느님의 현존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중세 성당이나 수도원 건물에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두 여인이 한 아이를 두고 자기 자식이라고 서로 주장할 때, 반으로 잘라 아이를 나눠 가지라고 하며 어머니의 본성을 일깨운 솔로몬의 지혜는 사람의 배움에서 나오는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연결되어 있는 이 매듭 또한 하느님으로부터 내려오는 지혜 없이는 풀 수 없다는 생각에 솔로몬의 매듭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이 매듭은 상징적으로 하느님과 사람의 만남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계획 안에서 하느님과 관계를 맺기 때문에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인정 없이 자신의 존재성에 대한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꽉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솔로몬의 매듭처럼 그 하나하나가 자유롭습니다. 이 매듭은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의지와 인간의 자유 의지가 마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연상시켜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나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매듭은 얽혀버리고 끝나지 않는 미로에서 삶을 헤매게 됩니다. 이 매듭을 풀어줄 수 있는 분은 누구인가요?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매듭은 고통과 사랑인 예수님의 십자가를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가 새로운 솔로몬이십니다. 인간에게 풀리지 않는 고통과 죽음의 매듭은 예수님을 통해서 길과 생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을 ‘세례의 문’이라고 불렀습니다.


IMG_6487.jpg 세례반

어둠의 세상인 북쪽의 문을 통해 들어가면 세례반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과 올바른 매듭을 맺어 해가 뜨는 동쪽 중앙 제대를 돌아 서쪽 정문을 통해 나가게 됩니다. 서쪽은 해가 지는 방향으로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남과 삶과 죽음까지 성당의 여정은 하늘나라로 향하는 순례자의 축소판입니다. 문 위 움푹 파인 부분에는 세례의 물을 상징하는 둥근 타원 모양의 적색 반암 대리석이 박혀 있었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약탈로 그 자리만 남아있습니다.


수도자들의 문

반대쪽으로 가면 세례의 문과 비슷한 또 다른 문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문은 사각 정원과 연결된 성당 통로로써 수도자들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오른쪽 기둥에는 확장된 형태의 솔로몬의 매듭이 있고 왼쪽에는 동식물을 상징한 기둥이 세워져 있습니다. 들보에는 두 마리의 독수리와 두 마리의 그리핀이 있습니다. 그리핀은 반은 땅의 왕인 사자, 반은 하늘의 왕인 독수리의 모습을 가진 상상 속의 동물로써 교회 안에서 사용할 때는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이신 그리핀은 좌우에서 악으로 상징되는 용과 싸우며 교회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들보 위에는 1641년 몬탈치노의 주교였던 알렉산드로 세르가르디의 문장이 있습니다. 성당 북쪽 편 ‘세례의 문’과 함께 이문에 사용된 기둥과 들보는 비잔틴 식의 문양이 들어간 것으로 이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 이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당 내부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로마네스크 양식이지만 높은 천장을 통해 고딕처럼 충분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세 교회 건축은 상징적으로 교회의 숫자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중앙 제대 위 창문이 하나인 것은 한 분이신 하느님, 하나인 창문을 작은 기둥을 세워 두 개로 나눈 것은 예수님의 두 개의 본성과 함께 예수님께서 주신 가장 중요한 계명인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을 상징하는 제대 뒤에 있는 세 개의 소성당과 소성당 사이의 세 개의 창문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보여줍니다. 중앙 제대 주위의 일곱 개의 아치는 성령의 일곱 개의 은사, 교회의 일곱 가지 성사, 하느님의 칠일 동안의 창조를 뜻합니다. 그리고 여섯 개씩 2열로 중앙 복도와 양옆 작은 복도 나누고 있는 열두 개의 기둥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열두 사도를 가리킵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기둥으로 세 개의 복도로 나누어지는 것도 3을 보여주고 있네요. 얼마나 성서적이고 전례적인 성당입니까. 현대의 성당처럼 사람 중심적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적으로 세워진 하느님의 집이라는 것이 성당 곳곳에서 느껴지지 않으신가요?


이탈리아에서 순례자들과 함께 다니다 보면 우리가 꼭 들려야 하는 두 개의 성지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일정상에 있는 성지이고 또 하나는 화장실을 뜻하지요. 화장실이 나오면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조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들어가야 하니깐요. 그래서 성당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찾는 곳이 바로 이 제2의 성지를 찾게 되는데 그때마다 우스갯소리로 저는 이렇게 대답을 했었습니다. "하느님은 화장실이 필요 없으셔서 이태리 성당에는 화장실이 없습니다."


GPTempDownload_2.jpg 2층에 있는 마트로네이

나무로 만들어진 천장은 비오 2세 (재위 1458-1464) 때 다시 만들어지면서 교황의 문장을 볼 수 있고, 기둥 위에는 마트로네이 (Matronei)라고 하는 중세 시절 성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나 아이들이 미사 때 사용하는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당 1층 공간은 성인 남자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IMG_6480.jpg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

성당 기둥의 주두 중에는 이 성당의 장식이나 그림 중에 가장 아름답고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다니엘서 6장에 나오는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 입니다. 12세기 중반 'Maestro di Cabestany’ 라는 익명으로 활동한 프랑스의 조각가가 만든 것으로 기둥 주두의 역할을 헤치지 않으며 성서의 이야기를 생동감 있게 전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작은 회랑 2층 남쪽 편에 있는 마트로네이는 벽을 파서 만든 나선형 계단을 통해 오르거나 몬탈치노의 주교인 아고스티노 파트리치가 제의방에서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든 나무 계단을 통해서 오를 수 있습니다. 서쪽 편에 있는 마트로네이는 1500년대에 ‘주교의 아파트 (Appartamento del Vescovo)’라고 해서 여섯 개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은방들은 역시 파트리치 주교에 의해 만들어졌고 주교가 항시 거처하는 아파트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주교는 이 시기 수도원 근처 수도원장의 새 도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카스텔누오보 델 아바테 (Castelnuovo dell’Abate)라는 곳에 자신의 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도원과 마을을 가끔 방문하는 동안 휴식 장소 혹은 개인 알현을 받을 때 사용하였습니다.


IMG_6475.jpg 중앙 제대와 십자고상

중앙 제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골고다 언덕을 상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대는 성당에서 가장 높게 만들어지게 되고 그 아래에는 안티모 성인의 유해가 있는 크립타가 있습니다. 이 제대 위에서 미사가 봉헌될 때 예수님의 희생과 성인의 희생은 하나로 연결되어 성체성사 안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제대를 오르는 세 개의 계단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삼 일 후 예수님 부활, 그리고 세 가지 신덕인 믿음, 희망,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세 때는 성인의 유해를 훔쳐 가려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돌로 막아놓았고 세 번째 계단에 있는 구멍을 통해서만 제대 아래 크립타의 안티모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는 제대를 볼 수 있었습니다.


IMG_8658.jpg 아미아타 산의 구세주 수도원의 십자고상

제대 뒤에는 12세기 말에 만들어진 나무 십자가가 세워져 있습니다. 수 세기 동안 마트로네이에 버려져 있다시피 하였던 것을 1972년에 다시 원래 자리로 옮겨놓았다고 합니다. 십자고상은 하나의 통으로 된 나무를 이용하였고 부르고뉴 지방에서 유행한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작가는 알 수 없지만 아미아타 산의 구세주 수도원 (Abbazia San Salvatore sul monte Amiata)에 있는 십자고상을 만든 작가와 동일한 사람이 만들었습니다.


11세기와 12세기 때 만들어진 십자고상에서는 예수님의 고통을 많이 찾아볼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님의 몸에서 고통 속에 매달려있는 무거움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날아오르듯 부활하시려는 모습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십자고상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이 시기에 만드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다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겠죠. 예수님의 눈은 뜨고 있으며 고통의 상처는 옆구리에서만 볼 수 있습니다. 인성을 가지고 있는 예수님은 죽을 수밖에 없지만 신성을 가지고 계시는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 계심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발받침의 나무는 많이 손상됐지만 한 여인이 자기의 망토로 양팔을 벌려 도시를 보호하는 모습입니다. 바로 아들의 십자가 옆에서 고통을 함께 하시고 그 보속으로 모든 교회를 보호하고 계시는 성모 마리아입니다. 이 십자가 아래에서 1377년 이 지방의 평화를 바라며 예수님의 말씀으로 설교하기 위해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가 무릎 꿇고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20200904_125624216_iOS_(2).jpg
IMG_6465.jpg
부활 촛대와 성 안티모의 마돈나

제대 왼쪽에는 Maestro di Cabestany가 만든 12세기 때의 부활 촛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조품이고 진품은 시립 성 미술 박물관에 있습니다. 양면을 부조의 형태로 만들어진 이 부활 촛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왼편 좀 더 나와있는 부분에서 복음을 선포하거나 독서를 읽는 암보네가 있고 그 표면에는 역시 Maestro di Cabestany가 만든 ‘복음사가와 아기 예수님과 함께 있는 마돈나’가 부조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중요한 조각은 13세기 때 움브리아 학파에서 만든 ‘성 안티모의 마돈나’입니다.


IMG_6476.jpg 크립타로 내려가는 입구
크립타 내부
키로 (XP)

중앙 제대 아래에는 순교자의 유해를 모시는 반지하 무덤인 크립타가 있습니다. 입구는 제의방 앞에 있는 계단을 통해서 내려갈 수 있습니다. 이 장소는 8세기 때부터 있었던 수도원의 가장 오래된 공간으로써 현재 수도원 성당이 지어지기 전에 이미 기도할 수 있는 소성당 (오라토리오)으로 있었던 장소입니다.


작은 공간의 아치형 천장과 함께 하나의 제단이 놓여 있고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처럼 카타콤베에서 가져온 석관을 이용한 제대입니다. 제대 위에 덮은 판은 석관의 뚜껑이었을 것이고 이것을 증명하듯 카타콤베에서 많이 사용한 희랍어로 쓴 '키로 (XP)'라는 글자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자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에서 앞 두 글자만 가지고 와 합성한 모노그램 (monogramma)입니다. 무덤에서 죽음을 이기시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죽음은 끝이 아닌 영원한 세상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사용한 석관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가는 희망이 된 것입니다. 제단화는 1400년대 초반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로 무덤에 예수님을 안치하는 장면입니다.


상징은 모든 세상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입니다. 로마네스크 시절 엘리트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수도자들만이 이해하거나 그들의 설명이 필요한 것들도 있었지만 글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상징은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구체적인 통로가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책을 보거나 성서를 읽을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삶 안에서 매일 만나는 자연과 창조물들은 그들의 알파벳이 되었고, 이것은 상징으로 변화하여 하느님의 현존을 이해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상징은 영원하고 무한하고 절대적인 하느님의 현존을 우리의 시간으로 안으로 옮겨 놓았고 하느님이 누구신지 구체적으로 가리키고 있습니다.


황제의 권력에 기대어 로마네스크의 수도원들은 경제적 풍요와 수적인 성장을 얻는 대신 수도 생활의 고유한 독립성을 잃는 실수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알리고 싶어 했던 그들의 열정은 성당 곳곳에 새겨 넣은 상징과 함께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