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성지, 성스러운 장소는 하느님께서 당신 신비를 드러내신 곳입니다. 초기 교부들에 의해 처음 만들어진 단어인 신비 (Misterium)는 사람의 이성과 노력으로 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짙은 안개와 구름이 흩어져 우리 눈앞에 뜻밖의 세상이 펼쳐지듯 하느님께서 당신의 거룩하신 현존을 드러내시는 자비의 영역입니다. 탈출기 3장에서 주님께서는 불타는 떨기 한가운데에 당신 모습을 드러내시며 거룩한 땅이라고 말씀하셨고 모세는 하느님 뵙기가 두렵다고 합니다. 주님이 당신을 드러내시는 순간 사람에게는 기쁨과 두려움 등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결국에는 하느님의 자비하신 사랑만 남습니다. 모세의 불타는 떨기 속 하느님처럼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성 프란치스코에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셨고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의 삶을 통해서 당신 현존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교회를 고쳐 세워라.
시리아의 의사이며 순교자인 다미아노 성인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8세기에서 9세기 사이에 처음 지어졌고 1030년까지 베네딕도 수도원의 중요한 경당으로 사용되다가 점차적으로 부서져가기 시작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기도 중에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이 십자가는 성당의 이름을 붙여 다미아노 십자가라고 불렀고, 12세기 익명의 이콘 화가에 의해 비잔틴 양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십자가는 글라라 성녀의 선종 후 수도원이 다미아노 성당에서 글라라 대성당으로 이전한 1257년도에 함께 옮겨졌고 현재 다미아노 성당 이곳에 있는 것은 모조품입니다.
글라라 성녀는 1212년 말부터 선종하실 때까지 이곳에 머무셨습니다. 성녀는 봉쇄와 관상 수도 생활을 통하여 프란치스코의 가난의 정신을 하느님의 섭리에 온전히 의탁하는 절대 믿음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수도원은 유럽에 글라라회가 퍼져나갈 수 있도록 모원 역할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사람들에게 구걸하며 사랑이신 하느님의 현존을 증명하였다면, 글라라 성녀는 하느님께 구걸하여 이웃으로부터 받는 음식을 통해 하느님 현존의 증거인 섭리의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A 작은 경당 B 입구 C 성 예로니모 경당 D 십자가 경당 E 다미아노 성당 F 글라라회 수녀들의 기도소 G 글라라의 작은 정원 H 성녀 글라라 경당 I 글라라회 수녀들이 잠자던 곳 L 수도원 사각 정원 M 공동식당 1 다미아노 십자가 2 성당 가대 3 무덤 4 성녀 글라라 선종하신 곳 5 벽화
성당의 정면은 둥근 창을 중심으로 처음 지어졌던 다미아노 성당에 시간이 지나면서 확장된 모습을 다른 색의 벽돌로 나타나는 선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둥근 창 왼쪽 위에는 글라라 성녀가 살아계실 당시에 수도원 출입문입니다. 엄격한 봉쇄 수도원을 보여주듯이 이 문을 통해 들어 올릴 수 있는 나무 계단을 만들어 출입을 하였습니다.
1240년 9월 글라라 성녀는 힘없는 자신과 당신의 자매들을 보호해 주시길 성체 앞에서 간절히 청하였고 이 문을 통해 예수님의 성체가 모셔진 성광을 보여주십니다. 그러자 성체에서 신비로운 빛이 뻗어 나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프리드리히 2세가 보낸 사라센 군인들을 기적적으로 쫓아버렸습니다. 하지만 이 기적에서 중요한 것은 사라센 사람들을 쫓아버린 것이 아니라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신비를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인 사라센 사람들에게도 드러내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오복음 5장 45b, 48절
광장 오른편에는 성 프란치스코, 성녀 글라라, 성 다미아노와 성 루피노의 프레스코로 된 벽화가 있습니다.
가장 오른편 조그만 경당 안에는 옥좌에 아기 예수님을 끌어당기듯 앉고 있는 성모님과 양옆에 성 프란치스코와 성녀 글라라가 서계신 오타비아노 넬리 (Ottaviano Nelli, 1375-1444)의 프레스코화가 있습니다.
수도원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처음 만나는 장소는 예로니모 경당입니다.
이 경당은 프란치스코 성인의 명령으로 초기 작은 형제들이 글라라의 공동체를 도와주기 위해 머물렀던 장소입니다. 정면에는 아시시의 티베리오가 1517년에 그린 프레스코화가 있고 중앙에 아기 예수님을 무릎 위에 놓고 기도하시는 성모님과 성인들의 모습이 양옆에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부터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 성 예로니모, 성 프란치스코와 글라라 그리고 무릎 꿇고 기도하는 수녀의 모습입니다. 왼쪽 벽에는 1522년에 그린 흑사병의 수호자들인 성 세바스티아노와 성 로코입니다.
그다음에 장소는 십자가 경당입니다.
이곳에는 사실적으로 표현한 페트랄리아의 인노첸시오 (1592-1648) 수사가 만든 목각 십자가가 있습니다. 조각가이기도 했던 이 사람은 이탈리아 곳곳에 자신의 십자가를 만들었고 나자렛 성모님 집이 모셔져 있는 로레토 대성당에도 이 수사가 만든 십자가가 있습니다. 17세기에 만들어진 이 십자가는 다미아노 십자가와는 정반대의 예수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미아노 십자가에 있는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가 흐르고 있지만 얼굴에는 고통이 없고 눈은 선명하게 뜨고 계십니다. 몸도 비틀어져있지를 않고 벌리신 양팔은 우리 모두를 안으려고 기다리시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신성과 인성을 가지고 계신 예수님의 본성 중 영원히 살아계시는 신성으로서의 예수님이십니다. 인간이신 예수님은 돌아가셨지만 하느님이신 예수님은 영원하십니다. 반면에 인노첸시오의 십자가는 다미아노 십자가와는 철저하게 반대에 서있는 고통받는 인간으로서의 예수님 모습입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 희생하시고 고통받으셨다는 이미지의 바로크 시절의 모습입니다.
이 경당의 다른 입구를 통하면 다미아노 성당 내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미아노 성당 내부는 가로 세로 3 x 10미터의 긴 형태로 된 하나의 공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대 쪽 위에는 다미아노 십자가 모조품이 걸려 있고, 그 뒤로는 제대와 함께 수사들이 기도하는 1504년에 나무로 된 가대 (coro)가 있습니다. 이 가대에는 우리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표현하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NON VOX SED VOTUM, NON CLAMOR SED AMOR, NON CORDULA SED COR, PSALLAT IN AURE DEI, LINGUA CONSONET MENTI, ET MENS CONCORDET CUM DEO.
목소리가 아닌 서약을, 외침이 아닌 사랑을, 악기가 아닌 마음을 하느님의 면전에서 노래하십시오. 입술이 영혼에 반향 되고 마음이 하느님과 일치되도록 하십시오.
가대 뒤쪽 공간은 글라라 성녀 시절에는 쇠창살로 막혀 있었고 이곳에서 글라라 성녀와 수녀들이 미사 중 영성체를 하였습니다. 지금 이 쇠창살은 글라라 대성당 다미아노 십자가가 있는 경당 오른편에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