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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혠나날 Mar 11. 2024

이 나이에 편입을 준비하는 이유

Happiness is tailored to each person.



실 나는 내가 나이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평소 나이에 대한 자각이 미약해서, 누가 내 나이를 물어보면 항상 짧은 딜레이가 발생한다.

어떤 때는 나보다 7살 정도 어린 부서 후배에게 마치 우리가 비슷한 또래인양 말을 했더니 단박에 선이 그어지기도 했다. 정말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내 나이에 대한 개념이 뭉개져있어서였다.


내가 살아온 그 모든 시간 동안 내 나름대로 고민하고, 배우고, 사랑하고, 깨닫고, 화내고, 울고, 웃고, 감동하며 남들과 비슷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눈 떠보니 어느새 33살이 된 느낌이다. 나이 체감은 25살 정도에서 멈춰서 여전히 나는 그냥 그 언저리 정도의 나이인 것만 같다.


그런 내가 ‘이 나이’라고 자조적으로 말하는 건,

편입 준비를 하면서부터 그리고 편입 학원을 다니면서이다. 이곳의 평균 나이는 보통 22~3살이다.

앞서 말했듯 내 나이가 편입을 도전하기에 늦은 나이라는 건 확실했던 것 같다.







나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토스/오픽/한국사/마케팅/봉사/어학연수/공모전 등 대학생이 해야 하는 길은 모조리 밟으며 회사에 입사해, 기획마케터 직무를 맡던 5년차 파트장이었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TFT로 발령이 나 사이트를 혼자 오픈하고 관리할 때도, 부서를 옮겨 직급을 달고도 나는 열심히 일했다. 그에 따른 보상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하면서. 목표는 오로지 '연봉'에만 초점이 맞춰져가고 있던 찰나, 다음 해 3월 연봉은 전사 동결이었다.

물론 연봉이 오른다고 해도 그 액수는 할아버지가 주시는 소소한 한달 용돈 정도였지만, 그래도 나는 힘이 쭉 빠졌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사실 3년 차일 때부터 조금 지쳐있었다.

마케터로 일하는 게 재밌지만, 내가 이 일을 40살이 넘어서까지 계속하는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실제로 이 업계에 40대가 넘은 직원은 찾아보기가 힘들었고, 마케팅이라는 영역 자체가 적은 돈으로 영한 감성을 끌어와 진행하고자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건 특출 나지 않은 이상 특별함을 갖긴 어려우니까. 적어도 나는 마케팅이 요하는 창의력과 그로 인한 위험부담을 40살이 지나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게는 전문성이 필요했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받는 압박에서도 자유로울 순 없었다. 어느 날은 ‘저 창문으로 뛰어내리고 싶어지는 날이 오면 회사를 그만두자.’라고 생각하는 날 보며 뭔가 잘못됐다란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냥 열심히 하던 걸 하는 게 익숙했던 나는 그냥 했다.

그러다가 이미 많이 눌러놓은 지뢰 찾기를 하듯, 연봉동결에서 우연히 터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어찌 됐든 나는 일을 그만두고 그냥 쉬었다. ‘조금만 쉬면서 포트폴리오 쓰고, 연봉 앞자리 바꿔서 다른 회사들어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게 6개월이 지났다.


쉬어도 쉬는 것 같지 않았지만 나는 여전히 이력서를 넣지 않았다. 단 한 군데에도.

어느 날은 내 포트폴리오를 보며 ‘나 참 열심히 살았네. 재밌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또 다른 회사에 들어가 똑같은 방향으로 비슷한 일을 할 나를 상상하면 그대로 컴퓨터 전원버튼을 누르게 됐다.

이력서를 넣었다가 덜컥 붙어버릴 것이 부담스러워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아낙네처럼.

내가 이 분야에 쓸 수 있는 모든 에너지는 다 쓰고 나온 것 같았다. 더 이상 "노력"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어깨에 절반의 책임감만을 지고 일할 수없는 사람이었다. 노력하지 않는 회사생활을 왜 해야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는 고지식한 인간.

그래서 더 노력하고 싶은 직업을 갈망했다.





'Vocation'

이라는 영어 단어는 ‘하늘이 내려주신 직업’이라는 천직, 소명(=calling)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도 그런 직업을 찾고 싶었기에 그때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20대 초반부터 특수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호주에서 Special child care 에 대해 알아보기도 하고, 특수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그 길로 갈 자신이 없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직 편입밖에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20대의 나는 익숙한 친구들을 떠나 학교를 옮길 용기도 그렇게까지할 의지도 딱히 없었다.

마땅히 그렇게 될 일은 언젠가 현현되는 것일까.

10년이 지나고 비로소야 이제서 나의 노력을 새로운 도전에 쏟아부을 준비가 됐다.



“왜 다시 인생을 리셋하려고 하는 거예요?” 하고

묻는다면,

“4년 대학 전공을 통해 7년의 회사생활을 해보고 나서야 다시 도전할 땅에 닿은 것”이라고 답한다.


그게 편입이든,

귀농이든, 사업이든 무엇이든지 상관없다.

Happiness is tailored to each person.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내가 행복한 길이라면 일단 걸어가 보자.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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