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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Mar 26. 2023

(44) 그대는 참 아름다워요 -(2)

아름다운 얼굴의 비밀

"모든 것은 아름답지만, 모두가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공자



얼굴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는 이전의 글에서, 신경미학이란 무엇인지에 대하여 공부했다. 우리의 뇌가 어떻게 아름다운 것을 구분하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는지에 대해 말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아름다움이란 “우리의 생존에 유리한 자극을, 그리고 뇌가 처리하기 좋은 뚜렷하고 선명한 자극을 선호하도록 만들어져 왔고, 또한 복잡한 성선택을 통해 가장 강하고 건강하고 생식력을 가지는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끄는 힘에서 유래했다” 는 주장들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오늘은 이러한 배경에 입각해, 우리의 얼굴로 시선을 넘겨보자!



매력도에 대한 평가: 즐거움을 찾아서!


이미 공부한 바 있듯, 얼굴은 우리에게 강한 자극이며, 우리는 얼굴을 바라보고자 하는 강한 동기를 느낀다.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우리가 어디부터 쳐다보는지 생각해 보자. 얼굴, 그중에서도 대개 눈이다(그래서 눈이 마주치는 어색한 상황이 되면 우린 서둘러 눈을 피한다). 우리는 그 짧은 눈맞춤 사이에서도 재빠르게 타인을 ‘평가’한다. 심지어 우리가 의식적으로 의식하지 않는 순간에서도 그렇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은연중에 상대방의 얼굴에 드러난 아름다움을 파악한다(예를 들어,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각하기 어려울 만큼 아주 짧게 반짝이는 얼굴 사진을 볼 때도 아름다운 얼굴을 훨씬 쉽게 인식하고, 어디를 바라보는지도 더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평가하지 않아도 우리의 무의식이 마주치는 얼굴들의 아름다움을 평가한다는 증거가 된다: Hung, 2016, Sci. Rep). 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얼굴의 아름다움에 대해 정말 많이 이야기한다! 타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 TV 속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나 우리가 대화할 때 면밀하게 대화를 들어보라, 우리는 타인의 외모에 정말로 관심이 많다(그림 1).


그림 1. 매 년 TV 에서는 새롭게 등장한 배우들에게 선정하여 상을 수여한다. 이 거대한 산업과 우리의 심미안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왜 그러한 자극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그것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미주 1) 우리가 아름다운 얼굴을 보면, 쾌락적 자극에 관여하는 수많은 뇌 회로들이 실제로 활성화된다(전율을 주는 예술 작품을 볼 때와 같이). 좋은 풍경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듯, 우리는 아름다운 얼굴이 즐거움을 주기에 그것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것을 갈망하도록 만들어졌을까?(미주 2)



 양육인가 천성인가 (Nature vs Nurture)


냐하면, 얼굴의 아름다움은 우리의 성공적인 재번식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전 글서 다루었던 공작새의 밝은 꼬리처럼, 우리의 얼굴은 상대방의 건강과 생식력의 척도를 파악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 왔다(보수적으로 말하자면, 대개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 , 얼굴에는 수많은 정보들이 압축적으로 표시되기 때문에(그리고 몸과는 달리 많은 문화권에서 드러내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몸도 중요한 정보의 원천이 될 수 있겠지만, 인간은 오래전부터 의복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몸을 가려 왔음을 이전의 글에서 다루었다), 마치 어떤 타인에 대한 요약적 꼬리표로 기능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얼굴에서 드러나는 젊음과 건강, 생식력의 지표들은 해당 개체의 아름다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림 2. 과연 우리가 갖는 특징들은 자연적인 것인가, 문화적인 것인가? 인간은 복잡한 문화를 형성하기에 문화의 요소를 배제하려면 면밀한 비교 실험이 수행되어야 한다.


그것들에 대해 알아보기 전, 우리의 얼굴에 대한 선호적인 특징들은 과연 내재적인 것일까, 혹은 문화에 의하여 학습하는 것일까(그림 2)? 예를 들어, 우리가 큰 눈, 오똑한 코, 대칭적이고 동그스름하고 작은 얼굴형을 선호하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다고 배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떠한 배움 없이도 일어나는 인지일까? 이와 같은 양육 대 천성(Nature vs Nurture) 논쟁에 대한 몇 가지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들 중 일부는 그것이 1) 발달 과정의 초기부터 나타나는지, 2) 전 지구적으로 동등하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림 3. 갓난아기들도 얼굴의 매력도를 알아볼까? 그렇다! Langlois, 1991 및 Slater, 1998 등의 여러 논문들을 참고하라.


 만일 문화에 의한 학습이라면, 갓난아기들은 아직 배우지 못했을 것이므로 우리가 생각하는 미모의 기준을 따르지 않을 것이며, 지구의 문화권마다 그 문화권 안에서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다를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국가에서는 작은 눈, 길쭉한 얼굴, 찌그러진 코와 검버섯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연구 결과는 두 가지 모두 문화에 의한 학습이 아닐 가능성을 높인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도 어른들이 생각하는 ‘매력적인’ 얼굴에 훨씬 관심을 보이며, 전 세계의 수많은 문화권들은 모두 얼굴에 대한 아름다움의 조건으로 비슷한 형질들을 선호한다(그림 3). 이는 얼굴의 매력도는 문화적으로 정해지기보다는, 우리라는 생명체 종이 가지는 보편적/생물학적 특징임을 시사한다(미주 3).



첫 번째: 젊음과 건강함


냉혹한 자연 세계에서, 좋은 짝이 되기 위한 한 가지 요구 조건은 그 개체가 젊고 건강하다는 것이 될 테다. 그래야 출산과 육아를 하고, 자식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젊음과 건강의 징표를 찾으면, 그것을 아름다움, 즉 보상의 지표로 간주한다. 해당 개체에 대한 높은 평가를 내리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노화의 증거들은 아름다움을 깎아 먹는 요인이 된다. 주름살, 하얗게 센 머리카락, 흉이 지거나 점이 많은 피부, 탄력을 잃거나 처진 피부 따위가 그 예시가 된다(그림 4).


그림 4. 생명체라면 노화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우리 몸은 시간이 흐르며 닳고 낡아 가며, 그것은 우리의 얼굴에도 숨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반대로, 젊음과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는 생기가 도는 붉은빛의 피부와 입술, 하얗고 매끈한 피부, 큰 눈, 진하고 푸석푸석하지 않은 머리카락, 대칭적이고 갸름하며 자그마한 얼굴등이 있다(기서 어떤 공통점을 볼 수 있는가? 우리가 화장으로 수정하는 것들이다. 크림과 파운데이션으로 피부의 주름살과 잡티를 가려 희고 매끈하게 만들고, 아이라이너와 뷰러 따위를 이용해 눈을 커 보이게 부각하며, 립스틱과 색조 화장은 피부에 붉은 생기를 더한다.  등은 그림자를 진 효과를 주어 비추어지는 얼굴형을 수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 중에서 대칭은 특히나 중요한데, 자연에서 대칭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대칭으로 발달하지만(왜 대칭인지는 이전의 글에서 다룬 적 있었다), 유전적 결함이 있거나, 질병 또는 부상을 겪게 될 경우 우리의 대칭은 위협받게 된다. 그래서, 아름다운 대칭형 구조는 해당 개체가 유전적으로 건강하며, 질병과 부상을 겪지 않은 건강한 대상임을 증명하는 요소로 사용될 수 있다.



두 번째: 생식력


또한 다른 요구 조건은 해당 개체가 좋은 생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이전 글에서 언급한 성선택의 예시가 되겠다: 우리 인간은 좋든 싫든 자웅이체 생명체이고, 그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미주 4)). 이를 위해 우리는 해당 개체의 생식도를 평가하는 다른 메커니즘을 갖는다. 대표적으로, 생식도와 연관된 성 호르몬의 정도를 우리는 얼굴에서 읽을 수 있다(그림 5). 성 호르몬은 발달 과정뿐 아니라 2차 성징과 같은 성장 과정에서도 관여하는데, 남성 호르몬은 골격근을 발달시키고 체모를 만들어 낼 뿐 아니라 광대뼈와 턱을 발달시켜 네모난 얼굴형을 만드는 등 ‘남성다운’ 외모를 만든다.


그림 5. 인간은 뚜렷한 성적 이형성(성에 따라 다르게 생김)을 가지며, 큰 부분은 성 호르몬의 역할이다. Gilani et al., 2014, Plos one.


반면, 여성 호르몬은 여성 특이적인 얼굴형을 만들어 낸다(우리가 아직 2차 성징이 오지 않은 어린아이들의 성별을 간혹 헷갈리는 경우가 이 때문이며, 같은 원리로 성 전환 시에 맞는 호르몬 제제는 얼굴형도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남성성 또는 여성성을 나타내는 표지자들은 우리가 상대 성을 평가할 때 중요히 평가하는 요소가 된다(일부 논란이 있지만, 테스토스테론 농도는 남성의 얼굴 매력도와 상관성을 갖는다는 보고가 있다. 반면 더욱 확실하게, 테스토스테론 농도가 높은 남성은 ‘지배적으로dominant’ 보인다: Penton-Voak IS, 2004 외, 테스토스테론, 코르티졸과 면역계 그리고 얼굴의 매력을 보여준 흥미로운 논문으로 Rantala et al., 2012, Nat. Comm 을 참고하라).



세 번째: 평균성


또한 다른 요소는 우리의 얼굴이 평균에 가까울수록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 흥미로운 실험에 의해 밝혀졌는데,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이자 수학자인 프랜시스 골턴은 범죄자들을 얼굴을 보고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 고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리게 된다(미주 5). 당시 등장한 새로운 기술인 사진 합성술(이긴 하지만, 그저 사진 원판들을 겹친 후 감광판에 빛을 비추어 합성하는 방식이었다: 1800년대에 포토샵이 있었겠는가) 을 이용해 범죄자들의 얼굴을 중첩시키면, 그들만이 가지는 ‘악한 형질’ 이 두드러져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림 6. 골턴의 '범죄자 표준상' 과 '골턴 보드' (미주 5 참조). 그는 통계를 이용해 범죄자의 얼굴을 예측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웬걸, 얼굴을 평균내면 낼수록 그들은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그림 6)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극악무도한 변칙성은 사라지고, 공통의 인간성이 지배적이 되었다 (…) 이는 많은 사람에 대한 평균은 각 개인이 갖는 흠결성이 없기 때문이다” 고 기술했다(F. Galton, 1879, The Journal of the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이 당시의 논문을 보면 지금과는 정말 다른 문체를 볼 수 있다: 흥미가 동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이것을 아름다움의 평균성Averageness 라고 부르는데, 간단히 평균에 가까울수록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왜일까? 아마도 평균에서 극단적으로 벗어나게 만드는 특질들은 불안정한 돌연변이 특징들이 많았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평균적이고 지배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안정적인 중간 특징을 선호할 수 있다(그림 7; 코이노필리아, koinophilia).


그림 7. 평균의 얼굴(중앙) 과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형질들을 인위적으로 강화하거나(양수) 억제한(음수) 사진. 우리는 0-200 사이의 평균 얼굴을 가장 매력적으로 본다.


* 그림 7 출처; DeBruine et al., 2007, DeBruine, L. M., Jones, B. C., Unger, L., Little, A. C., & Feinberg, D. R. (2007). Dissociating averageness and attractiveness: Attractive faces are not always average.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Human Perception and Performance, 33(6), 1420–1430.


나가며


이번 글에서는 일종의 ‘심화 과정’ 또는 ‘응용 과정’ 으로, 우리가 다뤘던 아름다움의 과학을 이용해 얼굴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느껴지는지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았다. 사실 크게 다루지 못한 부분이 많고, 깊이 있게 다루지도 못하여서 아쉬움이 다소 남지만,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굴에 대한 아름다움 연구는 인간을 대상으로만 진행할 수 있는데, 인간에게는 동물에서와 같이 뇌에 전극을 넣어서 기록하거나, 신경세포를 없애버리는 등의 실험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많은 부분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앞으로 많은 추가적인 사실들이 밝혀지기를 기대해 보자.



미주 Endnote


미주 1. 우리는 이에 따른 아름다움 = 선함 의 공식을 맹목적으로 좇는다.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은 곧 좋은 것이라는 간단한 논리에 따라, 아름다운 것을 곧 선하고 올바른 것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수많은 액션 영화에서 지구를 지키는 슈퍼히어로들은 완벽한 미남미녀들임에 비해 그에 대치하는 빌런들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범죄를 저지른 사람인데도,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사람들은 대중의 연민을 받고 심지어 팬클럽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도 사례가 있는데, 2003년 초 강도를 저지른 이 모 씨의 전단이 공개되었는데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팬클럽이 생긴 사례가 있다. 실제로 외모가 출중하면 같은 범죄를 저질렀더라도 낮은 형량을 받는다는 통계도 있으며, 외모와 임금의 상관관계는 이미 여러 번 밝혀진 바 있다. 그만큼 우리는 아름다움에 사족을 쓰지 못한다.


미주 2. 이러한 접근을 진화심리학이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즉, 심리) 가 진화 과정에서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빚어졌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대표적인 학자로는 스티븐 핑커를 꼽을 수 있겠다. 그의 책 중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How mind works’ 는 좋은 진화심리학의 교과서로 꼽힐 수 있겠다(다만 천 페이지 가까이 되는 두께는 부담이 될 수 있다). 진화심리학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들 수 있겠으나, 나는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졌다고 하여 그것이 도덕적인 것은 아니다’는 자연주의의 오류를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자연이 만들어진 방식이 곧 선인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름다운 얼굴을 탐닉하도록 만들어졌다고 하여 이러한 자극만을 좇는 것이 선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는 달콤한 디저트를 추구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늘 그것이 올바른 것은 아니며, 우리는 자제력을 통해 스스로를 억제하곤 한다.


미주3. 이와 같이 여러 문화권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들은, 말하자면 우리의 유전자가 빚어낸 특징적인 생물학적 요소들일 테다. 이것들을 문화적 보편자라고 부르는데, 미국의 인류학자인 조지 머독은 관찰된 모든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67가지의 특징을 조사해 발표했다. 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나이에 따른 서열, 공동체의 조직, 요리, 협동적인 노동, 춤, 점술, 장례 의식, 근친상간에 대한 금기, 친족에 대한 명명법, 임신한 여성에 대한 대우, 성적인 규제, 사적 소유권 등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문화적으로 빚어졌다기보다는, 우리가 자연적으로 ‘알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물론, 아주 오래 전, 인간이 곳곳으로 갈라지기 이전부터 갖던 문화가 전승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미주 4. 아직까지는. 며칠 전 Nature 지에는 아빠만 둘을 둔 마우스가 태어났다는 논문이 실렸다(Murakami et al., 2023, Nature). 수컷의 몸에서 뽑아낸 세포를 역분화시킨 뒤, 이걸로 난자를 만들고 정자와 인공수정시킨 후 대리모의 몸에서 출산을 진행한 것. 당연히 인간에게 지금 적용될 일은 없겠지만, 기술적으로 이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놀라운 변화다.


미주 5. 프랜시스 골턴은 골턴 보드Golton board 로도 유명한데, 이것은 무작위적으로 떨어지는 구슬들을 충분히 많이 관찰하면 이들이 정규분포를 이룬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개별 구슬 하나가 어디로 갈지는 결코 예측할 수 없지만, 충분히 많은 수를 모은다면 그 안에 숨겨진 규칙성을 찾아낼 수 있다는 함의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통계가 이렇게 작동하며, 통계에 기반을 둔 범죄 수사, 경제학, 과학 따위가 모두 여기에 빚지고 있다. 여담인데 나는 빅토리아 시대의 과학자들, 엄밀히는 폴리매스polymath 들을 참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들은 컴퓨터도, 프로그래밍도, 딥 러닝이나 복잡한 염기 서열 분석 없이도 직관과 과학적 방법론, 면밀한 관찰로 너무나 놀라운 발견들을 했으며 그것이 바로 현대 과학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실험하는 과정에서 더 좋은 장비, 더 좋은 시약이 간절해질 때면 나는 빅토리아 시대를 떠올리며 마음을 정돈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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