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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ul 16. 2023

(51) 땅 속의 타임머신, 그리고 인류세

인류가 뒤바꿔 놓은 지구

지질학자들이 하는 말이 있죠. "돌은 기억한다".


-닐 암스트롱



시간 여행: 더 깊이 그리고 과거로!


50회 맞이 기념으로, 다시 1화에서 다루었던 땅으로 돌아가 새로운 초심으로 시작해 보자.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 시간 여행을 갈망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먼 과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해만 듣던, 상상만 할 수 있던 그 시간에 내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물리학 법칙은 우리의 시간 여행을 제약하지만(엄밀히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무색하고 덤덤히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시간을 역행해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림 1. 아마 거의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되었을 문자 기록들인 메소포타미아의 쐐기 문자 점토판. 문자를 통해, 고대인도 우리와 똑같은 생각을 하는 인간이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이야기와 문자를 통해서다. 비록 우리가 직접 과거로 갈 수 없더라도,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새겨 넣은 문자를 통해 우리는 간접적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그림 1). 수많은 역사서를 통해 우리가 과거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 상상해 보라. 심지어 직접적인 문자가 아니더라도, 고대의 사람들이 남긴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문화를 꽃피우고, 피리를 불었으며, 약자를 보살피고, 망자를 묻어주었으며, 내세를 꿈꾸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그림 2). 그러나 문자의 발명은 길어야 수천 년 전이고(그래서 문자의 출현을 기준으로 우리는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나눈다), 인류의 태동 전에는 그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 때부터는 우리는 땅에 남은 흔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고고학과 고인류학을 지나, 지질학의 문턱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림 2. 네안데르탈도 그들의 동료를 묻어주었다. 또한 초창기 호미니드의 유골에서는 부러졌다가 붙은 뼈가 발견되는데, 이는 공동체가 다친 약자를 보살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땅을 파고 들어갈수록 옛날의 것들을 마주할 수 있다. 공사를 위해 땅을 파헤치던 중 고대의 유물을 발견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것은 결국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위에 흙이 쌓이고 또 쌓여 새로운 지층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몇 년 사이에는 눈에 띌 만큼의 퇴적물이 쌓이지 않지만, 몇십만, 몇 억 년이 된다면 이렇게 차곡차곡 얇지만 꾸준히 쌓인 지층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 되어 준다. 비록 우리가 연구를 위해 수십억 년 전까지의 땅을 파고 들어가기는 어렵겠지만(인간이 지각을 파고 내려간 최대 깊이는 '고작' 콜라 반도 초심층 시추 프로젝트에서 달성한 12.26 킬로미터이다; 그림 3), 다행히도 지구는 끊임없이 지각 변동을 겪으며 과거의 돌과 암석, 그리고 지층을 지표로 밀어 올려낸다. 우리는 위로 드러난 적절한 지층을 찾아내기만 하면 된다(커버 사진; 캄브리아기의 시작 경계를 짓는 캐나다 뉴펀들랜드의 GSSP).


 우리가 기록도 없고, 인간도 없는 먼 과거에 대해 아는 지식들은 대부분 돌과 흙의 기억에서 왔다.


그림 3. 지구에서 가장 깊은 구멍, 콜라 시추공. 다행히 지질학 연구를 위해 이렇게 깊이 파고들 필요는 없다.



지구의 역사를 되짚어 나누기


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지구는 약 45억 7천만 년 전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납을 이용한 방사능 연대 측정법과 같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미주 4도 참고하라). 연속된 무언가를 특징에 따라 잘게 분할하기 좋아하는 인간은(미주 1),이러한 지구의 기나긴 역사를 나누고 또 쪼개어 왔다. 지구의 역사를 다루는 연대표인 지질시대Geological time scale 은 다양한 단위로 구성되는데(그림 4), 가장 큰 누대Eon 을 기준으로 나누면 현생누대(현재~5.4억 년 전), 원생누대(5.4억 년~25억 년), 시생누대(25억 년~40억 년) 와 명왕누대(40억 년~지구의 탄생)로 나눌 수 있다. 이 안은 다시 다양한 대Era 로 나누어지는데, 가장 유명한 현생누대는 다시 신생대(현재~6600만 년), 중생대(6600만 년~2.5억 년), 그리고 고생대(2.5억 년~5.4억 년) 으로 나뉘는 식이다. 대는 다시 기period 로(미주 2), 기는 세Epoch 로... 점차 나뉘어 들어간다. 이러한 시기를 당연히 아무런 기준 없이 나누지는 않았을 터인데, 어떤 기준으로 이러한 연대를 정한 것일까?


그림 4. 색색으로 나뉜 파이 차트가 누대를 나타낸다. 지구의 거의 모든 시기는 선캄브리아 시기에 속한다. 우리 인류는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얇은 12시 방향의 막대 안에 있다


그 답은 다양한데, 대개 뚜렷한 생물군계의 차이가 있거나, 혹은 그 시대의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이 드러나는 경우에 새로운 연대로의 구분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백악기는 백악(chalk, 분필을 만드는 그 암석이다) 이 잔뜩 출토되는 특성을 가져서 이름이 붙었으며, 석탄기는 이 시기 다량의 목재가 물에 잠겨 석탄이 대량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당연하지만) 이러한 연대의 새로운 구분은 단순히 몇몇 특징이 있다고 선정되는 것이 아니며 아주 엄격한 기준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간단히 설명했지만 화석 따위로 확인할 수 있는 새로운 생물학적 종의 출현, 화학적 성분비의 변화나 지자기장의 변화(미주 3), 방사능 연대 측정법 등을 통해 정해진다. 이러한 새로운 연대를 명확히 드러내는 '표준 지층' 을 표준층서구역(GSSP, Global Boundary Stratotype Section) 라고 부르는데, 현재 전 지구 곳곳에 79 개 정도의 지역이 선정되어 표준층서구역을 나타내는 '황금 쐐기' 가 박혀 있다(그림 5: 그러나 금으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쐐기도 아니다).


그림 5. 에디아카라 시기의 시작을 나타내는 GSSP 를 선정한 황금 쐐기가 지층에 박혀 있다.


특히나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과 번성은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따라서 독특한 생명체의 탄생은 가장 큰 분리 기준인 누대를 나누는 기준이 되어 왔다(현생누대는 '현대적 생명체' 가 나타나는 때, 원생누대는 '원시적 생명체' 가 나타나는 때이며 시생누대는 '생명의 시작' 이 관찰되는 때라는 뜻이다).



인간이 바꾼 지구; 인류세의 시작


여기서 몇몇 학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잠깐, 지난 몇십 년에서 몇백 년간 엄청나게 불어난 인류는 지구의 지층을 바꾸고 있지는 않을까? 마치 대량으로 자라나고 묻힌 나무들이 석탄기를 특징지었고, 공룡들이 중생대의 특징이 되었듯, 인간은 지구의 표면을 너무나 변화시켜 우리가 새로운 지질학적 시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먼 훗날 인류 문명이 스러지고 쇠퇴하여 우리의 모든 것이 두꺼운 흙과 암석 밑으로 묻힌다면, 나중에 지층을 파내던 먼 후손이나 외계 탐사단이 독특한 특징을 보고 별개의 지질 시대로 분류할 만큼 큰 변화를 우리가 불러일으키고 있지는 않을까?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이자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크뤼천(Paul Crutzen) 은 이러한 주장을 펴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기를 인류세anthropocene 라고 부르자고 제안하였다(그림 6). 이 주장은 지구 환경에 대한 경각심과 맞물려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많은 갑론을박이 있음에도 주류 이론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림 6.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파울 크뤼천 (1933-2021).  프레온에 의한 오존층 파괴에 대한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우리 인간은 이전 글에서도 보였듯 놀라운 적응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적응력을 바탕으로 놀라운 속도로 퍼지고 성장해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 바이오매스의 약 2.3% 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의 적응력은 환경을 변화함으로써 얻어지는데, 예를 들어 동물은 춥거나 더워지면 덜 추운 곳으로 이동하거나, 몸의 털을 조절하는 등 환경에 순응한다. 그러나 인간은 추운 곳에서는 불을 때워 난방을 하며, 더운 곳에서는 에어컨을 이용해 냉방을 한다. 마찬가지로, 주행성 동물들은 해가 지면 잠을 자지만, 우리 인간은 백열등과 모닥불을 이용해 인공적인 해를 띄웠다. 이러한 성은 우리를 아무리 척박한 곳이라도 적응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지만, 공짜는 아니었다. 우리는 환경이라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지불해야만 한다(그림 7).


그림 7. 인간은 환경을 변화시킨다. 대표적으로 도시가 그렇다. 그러나 이런 메트로폴리스는 거대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새로운 '생명체' 가 된다.


성인 남성의 하루 필요 열량은 2400킬로칼로리다. 그것이 우리가 먹고, 마시고, 걷고, 생각하고, 번식하고, 아이를 돌보고, 살아가는 데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이다. 우리 현대인들도 하루에 음식만으로는 대략 2400킬로칼로리를 섭취하지만, 문명의 이권을 누림으로써 그보다 훨씬 많은 부대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우리는 걷는 대신 휘발유를 태우는 내연 기관 위에 올라타고, 계단을 오르는 대신 석탄을 때워 만들어낸 전기가 끌어 올려주는 승강기를 이용하며, 쾌적한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난방에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한다. 또한 우리가 소비하고 소모하는 거의 모든 것들은 유통 체인을 거쳐, 멀게는 지구 건너편에서 우리에게 도달한 것이다(화석 연료를 때우는 거대한 선박을 타고). 우리 손에 들고 있는 최첨단 기기를 만들고, 운송하고, 조립하는 데 들어가는 산업적 에너지는 굳이 언급할 것도 없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문명인은 하루에 25만 킬로칼로리 가량을 소모하며,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살아가기" 위한 것의 120배에 달한다. 좀 더 와닿게 말하면, 50킬로그램짜리 인간은 30톤짜리 거대 괴수가 소모하는 만큼의 에너지를 소모한다(Weinberger et al., 2020, SocArxiv). 우리의 생태학적 발자국은 그만큼이나 크다.



인류세: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러한 거대한 에너지 소모량에 인해, 인간은 유래없는 수준의 영향을 자연에 미치고 있다(Waters et al., 2016, Science). 인간은 자연을 뒤엎고, 새로운 물건을 발명하며 자연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지구의 지층에 고스란이 쌓여 암석의 기억에 끼어들어, 학자들은 이제 인류세를 대표하는 지층을 연구하고 선정하기에 이르렀다(그림 8, 좌측). 대표적으로, 인류가 산업혁명 이후부터 불태워 온 수많은 화석 연료는 급격한 이산화탄소 농도의 증가를 불러일으켰고, 제련소나 발전소에서 고온으로 불태우는 연료는 자연적으로는 관찰되지 않는 독특한 형태의 다공성 잿가루를 만들었다.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잘게 나뉘어져 미세 플라스틱 퇴적층을 만들었다. 우리는 휘발유에 노킹을 막기 위해 납을 섞고는 그것을 엔진에 넣고 태워 전 지구적인 납 농도의 증가를 유도했으며(미주 4), 공기중의 질소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가해서 뽑아낸 질산염과 인산염 비료를 마구 뿌려 땅의 질산과 인산 함유량은 유래없이 높아졌다.


그림 8 . (좌) 인류세 표준 지층 제시안, (우) 핵폭발 실험(회색 막대) 와 플루토늄 퇴적량(파란 선). 이제 핵 기폭은 금지되었지만 지난 흔적은 영원히 흙에 남을 것이다.


화룡점정으로, 첨단 공학기술의 집합체인 원자 폭탄 실험으로 인해 지구 곳곳에는 방사성 플루토늄이 퍼져 지질 시대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명확한 방사선 띠를 만들어냈다(그림 8, 우측). 또한 인류는 동물을 가축화하여, 지구상에 있는 모든 야생 포유류와 조류를 합친 것의 10배에 달하는 무게의 가축을 키우고 있다(이 중 소는 반추 과정에서 온실가스인 메탄을 내뿜는데, 전체 온실 효과 중 무려 9%를 차지한다). 심지어, 가장 흔한 가축인 닭은 너무나도 많이 키워지고 소모되어서 지구 표면에 엄청난 양의 닭뼈가 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 닭뼈는 현대 인류세의 "표준 화석" 으로 지정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미주 5). 얼마 전에는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군계의 무게(바이오매스; 그림 9) 를 인간이 만든 인공물의 무게가 넘어서기도 했다(그 중 절반은 인간이 타설한 콘크리트이며, 인류의 문명이 만들어내는 인공물의 무게는 20년마다 두 배가 되고 있다; Elhacham et al., 2020, Nature. 슬프게도 그 중 6분의 1 가량은 쓰레기의 무게이다).


그림 9.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이오매스(생명체의 무게) 에 대한 인포그래픽. 거의 대부분은 식물과 박테리아가 차지하며, 인간은 고작 0.01% 를 차지한다.

나가는 글


인간은 지구상의 그 어떤 생명체와도 결을 달리한다. 혹은,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도 다른 모든 생명체와 똑같은 물질로 이루어졌고, 같은 방법으로 작동하는 생명체이다. 지놈 프로젝트가 밝혀낸 유전자 상동성은 우리가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밝혀주는데, 우리가 가진 2만 5천여 개의 유전자 중 99% 는 다른 동물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유전자들이다(미주 6). 그럼에도 우리는 행성의 표면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먼 미래, 지층의 얇디얇은 한 단면으로만 남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주 Endnote

미주 1.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나쁜 조각가와는 다르게, 자연에 존재하는 마디joint를 따라 나누어야 한다" 고 이야기했다. 분류학에 있어, 우리의 직관적인 민속분류학이 관찰하는 자연의 마디가 놀라울 정도로 실제 연관성과 잘 들어맞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자연의 마디를 잘 관찰해 왔다.

미주 2. 고생대의 첫 번째 기가 바로 캄브리아기이다. 따라서, 선(pre) 캄브리아 시대라고 하는 분류는 고생대의 시작 이전을 두 통칭하는 시간대로, 누대의 기준을 따르면 원생누대+시생누대+명왕누대를 합친 긴 시간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이러한 분류 체계를 사용하는 이유는, 캄브리아기 이후부터 폭발적으로 다양해지고 복잡한 생명체가 출현하며, 이전과는 질적으로 그리고 양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주 3. 지구의 자기장은 주기적으로(약 50만 년에 한 번 꼴로) 위아래가 뒤집힌다. 지금 우리가 설정한 자기적 '북극' 이 '남극' 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지구 자기장 역전은 돌에 흔적을 남기는데, 금속을 포함한 자성 암석들은 녹았다가 굳으면서 그 순간의 지자기 방향을 그대로 간직하여 굳는다. 따라서, 생성된 연도를 되짚어 올라가며 그 자성의 방향을 파악하면 자기장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아주 좋은 예시는 바다 한가운데의 해령 발산대인데, 여기선 아주 느린 속도로 끊임없이 새로운 암석층이 만들어져 밀려나고 있다. 따라서, 50만 년 간은 자기장이 북쪽을 향하는 암석층이, 50만 년 동안은 남쪽을, 다시 그 다음은 북쪽을 향하는 암석층이 마치 횡단보도 무늬마냥 배열되어 있다.

미주 4. 납 연 자를 사용하여 이러한 휘발유를 유연휘발유라고 부른다. 납 화합물이 첨가되면 휘발유의 갑작스러운 폭발을 제어할 수 있어 부드러운 엔진 연소가 가능했기 때문에 1950-6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납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신경독성을 띠는 독성 중금속이며 이것을 공기 중에 마구 뿌려대는 것은 당연히 끔찍한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다. 소신 있는 학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유연휘발유는 사라졌지만, 그 당시 고농도의 납에 노출된 어린이들은 유의미한 평균 IQ 의 감소를 보였다. 당시 미국인의 50% 가 안전 기준치를 넘는 농도의 납에 노출되었고, 1960-1970 년대에 태어난 아이들은 평균 IQ 가 5.9점 감소하였다고 하니 무분별적인 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비극이다(McFarland et al., 2022, PNAS). 참고로 이 납 오염 문제를 발견하고 평생을 맞서 싸운 사람이 클레어 페터슨이라는 과학자인데, 이 분은 앞선 문단에서 언급된 납을 이용해 지구의 나이를 측정하는 실험을 수행한 학자이다. 이 과정에서 대기와 해수의 납 농도가 유연휘발유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을 깨달은 페터슨은 자신의 일자리와 명예, 그리고 남은 일생을 걸고 정유 회사와 맞서 싸웠고 20세기의, 어쩌면 인류의 운명을 바꾸었다.

미주 5. 현대에 키워지는 닭들은 너무나 선택적으로 개량되어 더 이상 자연에서 살아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설령 자연에 풀어주더라도, 비대해진 고깃덩어리가 장기를 짓눌러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유전적 변이는 너무나도 커서, 더 이상 과거에 존재했던 닭과는 유전적, 해부학적, 그리고 골격화학적으로 달라져 버렸다(Bennett et al., 2018, Royal society open sciecne). 닭은 종교적인 이유로 배척받는 경우도 없고, 빠르게 성장해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되므로 전 세계에서 식용으로 애용된다. 2016년 기준 연간 660억 마리의 닭이 도살당하며, 이는 대략 초당 2100마리의 속도다. 닭뼈가 지구의 지층에 너무나 퍼져 있어, 아마 먼 훗날 지구의 지층을 조사하는 외계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릴 지 모른다: "행성 생성 후 약 45억 년, 조류형 생명체가 지구상에서 매우 번성하여 도시, 문자와 컴퓨터를 포함한 고도의 문명을 이룸."

미주 6. 그 중 약 20% 는 박테리아와 같은 원핵생물들과도 공유하며, 또한 30% 는 척추동물이 아닌 지렁이나 초파리, 선충과 같은 다른 동물들과 공유한다. 척추동물(어류뷰터 인간을 아우르는) 에게서만 특이적인 유전자는 우리의 유전체 중 고작 22% 밖에 안 된다. 이것은 우리가 제아무리 날고기는 독특한 생태적 지위를 가진 생명체여도, 결국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와 똑같이 분열하는 세포 덩이로 이루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박테리아든 인간이든, 우리의 세포는 물질을 수송하고, 유전자를 복제하고, 후손 세포를 만든다. 그런 아주 '기본적' 인 기능 조각들이 우리 유전체의 거의 전부를 차지하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 유전자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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