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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윤 Jul 30. 2023

(52) 얼굴 인식의 신경과학

우리는 어떻게 얼굴을 알아보는가: 안면실인증에서의 교훈

"나는 친구와 가족들의 얼굴을 내 기억에 전달하기 위해 초상화를 그렸다"

-척 클로스


* 커버 사진: 척 클로스, <자화상>, 2000



이전의 글에서, 우리는 <얼굴> 에 대해 다루며 이 구조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리고 얼굴이라는 구조물이 어떻게 우리의 신분증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해 알아보았었다.

 시간이 꽤나 지났으니 간략하게 요약하면, 인간의 얼굴은 다른 동물들과 달리 다양해지도록 진화하였으며, 이것이 개개인의 인식을 가능케 함으로써 복잡한 사회 체계를 이루는 기반이 되어 왔음을 배웠다.


그렇다면, 오늘은 우리의 이 얼굴 인식에 깔린 신경과학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는 어떻게 얼굴을 알아보는가?



뇌의 모듈 알아내기


이전의 글에서 다룬 바와 같이, 우리의 뇌는 천문학적인 복잡성을 가지고 있다. 자연이 수십억 년에 걸쳐 설계해 낸 이 자연발생적인 복잡계를 우리가 이해하는 고전적인 방법은, 이전에도 내가


"이러한 연구를 병변 연구lesion study라고 부르는데, 뇌의 무한한 복잡성을 조금씩 파고 들어가게 만들어 준 초창기 기법이다. 특히나 뇌졸중이나 사고 등으로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의 증상을 관찰하는 것은 뇌 기능에 대한 놀라운 통찰의 근원이 되어 왔다"


고 언급한 바 있듯 파괴로부터 얻어졌다. 


그림 1. 끔찍하게 꼬인 전선들의 기능을 파악하는 제일 쉬운 방법은 뽑아 보는 것이다.


우리가 가공할 만한 복잡성을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은 무작위적인 파괴가 가져오는 결과를 통해 기능을 도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꼬인 전선들이 있다고 해 보자(그림 1). 우리가 도저히 그 배선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이와 같은 파괴적 방법을 통해 그 기능을 간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녹색 선을 자르면, 거실의 등이 꺼진다. 빨간색 선을 자르면, 더 이상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다. 즉 녹색 전선은 거실의 등을 켜는 기능을 하고, 빨간 선은 세탁기에 전원을 공급하는 기능을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컴퓨터를 처음 보는 원시 부족에게 주었을 때에 그들은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그 기능을 파악하고자 할 것이다. '이 네모난 장치를 뽑아버렸더니, 소리는 멀쩡한데 더 이상 화면이 나오지 않네(아마 그 장치는 그래픽 카드나 모니터 연결 장치가 되겠다)? 반면 이 선을 잘라내면 윙윙거리던 소리가 사라지고 기계가 뜨거워진다(쿨러에 전원을 공급하는 팬일 것이다)' 따위의 시행착오를 우리는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림 2. 뇌에 생긴 병변의 위치를 신경이미징 방법을 통해 특정한다(Monnerat, 2013). 병변은 정상 세포와는 다른 특성을 가지기에 MRI 를 통해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환자들에게는 끔찍한 일이지만 뇌 연구자들에게는 소중한 데이터를 주는 많은 '자연적 파괴' 를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신체 부위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도 연약한 세포들(심지어 다시 재생할 수 없는) 로 이루어져 있고, 피부나 근육이 상처를 받아 망가지듯이 뇌도 망가질 수 있다. 외상으로 인해 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다양한 감염이나 염증은 신경세포를 죽이며, 뇌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혈관이 혈전으로 인해 막히거나 터질 경우 특정한 지역에 국한된 손상이 일어날 수 있다(그림 2). 이처럼 자연은 다양한 '자연적 실험 사례' 를 의사와 학자들에게 제공해 왔으며, 자연이 끊어낸 전선들은 뇌의 다양한 부위들이 각기 다른 심리적 기능들을 맡는 분업화된 모듈임을 알려 주는 증거가 되어 왔다(미주 1).



안면실인증: 얼굴 지각의 모듈은?


이 중 흥미로운 현상은 안면실인증(prosopagnosia, 얼굴을 뜻하는 그리스어 prosopon 과 '알지 못하는' 이라는 뜻의 agnosia 의 합성어이다) 인데, 넓게는 약 2% 에 달하는 사람들이 생애 중에 안면실인증으로 진단된다. 이와 같은 병증을 가지는 환자들은 다른 물체, 공간 따위의 시각적 인지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들은 그 증세에 따라 다르지만, 심한 경우 얼굴이 '얼굴처럼 보이지 않고' 그저 물결이나 소용돌이처럼 일렁이게 보인다고 한다(그림 3). 따라서 사람의 이름이나 그들에게 연관된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고, 얼굴이 아닌 옷, 머리 형태, 목소리와 같은 것들에 의존하여 대인 관계를 이어 나간다(미주 2).


그림 3. 우리는 상상할 수 없지만, 심한 안면실인증 환자들은 이와 같은 인지적 문제를 겪을 것이리라 추측할 수 있다 .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자 안면실인증을 잘 묘사한 사례로 소개하고 싶은 것이 미국의 화가 척 클로스Chuck close인데, 클로스를 평생 동안 괴롭혀 온 안면실인증 때문에 그는 독특한 화법을 통해 초상화를 그렸다(그림 4). 마치 소용돌이처럼 보이는 <얼굴> 부분을 아주 작은 격자 조각으로 나누고 잘라내고, 이 조각 각각을(더 이상 얼굴이 아니므로 클로스는 그 특징을 인지해 그릴 수 있었다) 따로 그려 내어서 초상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초상화는 마치 왜곡 렌즈를 통해 본 얼굴처럼 생겼다.


그림 4. 자화상을 작업 중인 척 클로스. 일반적인 그림처럼 큰 밑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게 나눈 조각조각만을 작업한다.


이와 같은 얼굴 인식 기능에 대한 해리(미주 1 참조)는, 우리 뇌의 어딘가에는 얼굴 처리 모듈이 존재하리라는 합리적인 가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뇌과학자들은 그 모듈을 찾아냈다.



FFA 와 안면 인식


이전 글에서 살펴보았듯 우리 뇌의 뒷부분은 시각을 담당하고, 그 중에서도 아랫면에 위치한 영역(복측시각경로ventral visual pathway) 들은 뇌 뒤쪽의 시각 피질에서 받아들인 정보들을 종합하고 조합하여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를 파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정확히는 몰라도, 대강 설명해 보면 시각 피질에서 들어온 수많은 선, 면, 각도, 음영과 같은 일차적primary 정보들을 이 영역에서 조합하여 그 정보를 파악하는 것 같다(그림 5). 예를 들어, '원형, 위에 짧은 직선이 달림, 붉은색, 직선 오른쪽에는 짧은 호arc 가 있음, 이 호 안은 녹색임' 과 같은 일차적 정보들이 합성되어 '사과' 를 재인하게 하는 것이다(미주 3). 따라서 이 곳 중 어딘가에서 얼굴을 인식하는 기능을 가진 지역이 있으리라는 것은 합리적인 추론이 될 것이며, 실제로 이 영역이 뇌출혈로 인해 망가진 환자들은 안면실인증이 생기기도 한다.


그림 5. 아주 과도하게 단순화하면, 우리의 뇌는 뒤에서 앞으로 가며 정보를 종합화하고 정리한다. 시각계의 체계적 구조 도식화(Zhu, 2013).


그러나 인간에게서는 극히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뇌에 전극을 찔러 넣을 수는 없기에, 대신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에서 실험들이 진행되었다. 마카크라고 하는 구세계원숭이 모델 동물에서 진행된 전극 기록에 따르면, 이들의 시각영역에는 얼굴에만 특이적으로 반응하는 세포들이 존재한다! 이 세포들은 인간과 비슷하게 뇌 뒤쪽 그리고 아래쪽에 위치해 있으며, 6개의 작은 점과 같은 영역patch 에 나뉘어져 있다. 즉 좌반구에 6개, 우반구에 6개의 얼굴 특화적 세포군들이 존재하는 것이다(이것을 마카크 안면반 macaque face patch 라고 부른다).


이 세포군들은 어떻게 얼굴을 알아볼까? 존재하는 개별 세포들을 기록해 보며 서로 다른 얼굴을 보여주면, 여기에 있는 신경세포들은 얼굴에 드러나는 미묘한 특징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인다. 예를 들자면 어떤 세포는 눈의 크기에 따라 활성도가 달라지고, 어떤 세포는 이마의 길이에, 어떤 세포는 코의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셈이다(그림 6). 이러한 특징적인 활성은 6개의 밀접하게 연관되어 신호를 주고받는 세포 집단 사이에서 통합되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통합적 정보를 형성하는 듯 하다. 이 세포들에 담긴 정보는 아주 믿음직해서, 세포의 활성만 읽어들이더라도 마카크가 어떻게 생긴 얼굴을 보고 있는지 거의 정확하게 추론할 수 있을 정도이다!


그림 6. 마카크에서 관찰된 안면반 세포 기록. 얼굴의 특정 형태적 특징에 선별적 반응을 보임을 볼 수 있다(Hesse and Tsao, 2020).


이러한 원숭이에서 얻어진 정보는 인간에게서도(fMRI 와 같은 다른 비침습적 방법을 통해) 똑같이 발견되었으며, 인간에게서는 이곳이 FFA (방추상 안면 영역, Fusiform faca area) 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일부 환자들에게 전극을 삽입해 이곳을 아주 약한 전류로 자극하면, 이들은 이렇게 증언한다: "어..마치 당신의 얼굴이 다른 사람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코가 옆으로 이동하는 것 같고 (...) 내가 아는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네요"(미주 4). 이는 실제로 인간에서 FFA 영역이 안면 인식에 관여하는 중요한 영역임을 시사한다.



'뇌 모듈' 을 이용한 말 없는 대화


여담이지만, 이와 같은 영역 특이적인 시각 정보 처리는 다른 곳에도 널리 퍼져 있다. FFA 는 얼굴 정보에 특히 강하게 반응하는 반면, 그 옆의 PPA (해마옆 장소영역, Parahippocampal place area) 에서는 우리가 풍경이나 공간을 바라볼 때에 선별적으로 반응하는 세포의 집단들이, 그 뒤의 LOC(측후두엽 복합체, Lateral occipital complex) 에는 다양한 형태의 물체에 반응하는 세포들이 있다. 그래서 당신의 뇌 활성을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fMRI 와 같은 기계로 읽어들이면, 당신이 얼굴을 상상하는지, 공간을 상상하는지, 혹은 물체를 상상하는지에 대해 알아낼 수 있다(영역마다 다른 활성도를 통해).



이를 임상적으로 적용할 수도 있는데, 예컨대 코마에 빠진 무의식 환자와의 대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식물인간 상태가 되어 대화도 나눌 수 없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일 중 하나일지 모른다. 심지어, 어쩌면 그는 정신은 깨어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말을 하거나 움직일 수 없어 우리와 소통하지 못하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2006년, 캠브릿지의 신경과학자인 오웬은 교통 사고 이후 5개월째 식물인간 상태로 남아 있는 23살의 여성 환자를 fMRI 기계에 넣고, 이와 같이 물었다. "제 말이 들리신다면, 테니스를 치는 상상을 해 보세요." 놀랍게도, fMRI 는 테니스를 치는 상상을 할 때 활성화되는 운동 영역의 활성화를 감지해냈다. "그럼, 방 안을 걸어다니는 상상을 해 봅시다." 그녀의 뇌에서는 이제 공간 상상에 관여하는 PPA 가 활성화되었다(A Owen, 2006, Science). 이후 그는 이 기법을 더욱 발전시켜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들' 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이런 식이다(그림 7). "제 질문에 대한 답이 '맞다'면 집을 떠올리고, '아니다' 면 얼굴을 상상하세요. (...)" 그의 방법은 완벽한 무의식의, 어쩌면 안락사의 대상이 될 지도 몰랐던, 육체의 감옥에 갇힌 환자들 중 일부를 건져올렸다.



미주 Endnote


미주 1. 이와 같은, 'A 지역의 손상은 X 행동의 소실을 불러오므로, A는 X 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다' 는 추론은 일견 합리적이어 보인다. 이를 신경생리/심리의 용어로 단일 해리(single dissociation) 라고 부르는데, 이 경우에는 A 지역이 정말 X의 기능만을 수행하는 것인지 혹은 X의 기능이 작동하기 위해 필요한 다른 전반적 기능을 담당하는 것인지 파악할 수 없다(예를 들어 컴퓨터의 전선을 뽑아 버린다면 당연히 화면이 나오지 않겠지만, 전원선이 하는 기능은 엄밀히 따지면 화면을 켜는 것은 아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자들은 이중해리(double dissociation) 현상을 찾는데, 이는 A지역의 손상은 X 행동의 소실을 불러일으키나 Y는 유지시키며, B지역의 손상은 그 반대 결과를 가져오는 사례를 뜻한다. 이와 같은 실험 결과는 X와 Y 기능이 명백히 다른 두 모듈에 의해 작동함을 증명한다.

과학자들은 실험 동물에서 인위적인 병변을 만듦으로써 이와 같은 가설을 검정하는데, 다양한 독성 약물이나 독소의 주사, 유전자 도입술, 유전공학적 방법을 통해 수행해 왔으며 이는 우리의 뇌 기능 이해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미주 2. 그들의 사례를 보면, 내가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얼굴의 사회적 기능을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다. 직장 생활에서, 파티에서, 가족들을 볼 때, 오직 나만 그들을 구분할 수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이 현실이 된다면 악몽과도 같을 것이다.


미주 3. 우리의 문자 체계는 이러한 시각적 인지 체계에 편승해서 만들어 진 것 같다. 전 세계의 수많은 문자들이 우리의 시각 피질에서 사용하는 가장 원초적 모듈들, 그러니까 선과 교차점, 그리고 점으로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프랑스의 신경과학자이자, 교사이자 컴퓨터 전문가인 데하네는 우리의 뇌에서 일어나는 문자 처리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왔는데,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소개하겠다. 아마도 난독증 또한 이 체계의 망가짐으로 인해 나타날 것이다.


미주 4. 이곳에서 환자와의 인터뷰 영상을 살펴볼 수 있다: https://youtu.be/O7AQ8NjSnTo


* 참고 문헌으로 Face patch 의 발견자이자 최고 권위자인 Tsao의 최근 리뷰 페이퍼를 참고하였으며, 글의 많은 흐름 및 구조, 그리고 일부 figure 를 차용하였다. Hesse, J.K., Tsao, D.Y. The macaque face patch system: a turtle’s underbelly for the brain. Nat Rev Neurosci 21, 695–716 (2020). https://doi.org/10.1038/s41583-020-00393-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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