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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크림 라떼, 봄을 알리는 첫 번째 달콤함

by 이해수 Mar 21. 2025

매년 이맘때쯤 봄 시즌 한정 음료인 슈크림 라떼의 판매가 시작된다. 어쩐지 겨울의 찬 기운을 녹이고 이제야 따뜻한 봄이 온 것만 같은 기분에 매년 봄마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꼭 한 잔씩은 마시게 된다. 개인적으로 슈크림 라떼의 맛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고 늘 그냥 넘어간 적은 없었다. 묘하게 자리 잡은 나만의 봄 개막식 루틴이자, 찾아온 봄을 알리는 비공식적인 연례행사인 셈이다.




개인적으로 음료 위에 휘핑크림이 올라가는 음료를 선호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크림의 형태가 무너지면서 음료와 섞이면, 결국 음료 본연의 맛과는 아예 동떨어진 새로운 음료의 맛이 나기 때문이다. 기존의 슈크림 라떼 또한 특유의 묽은 크림 탓에 음료와 빠르게 섞였고,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오묘한 느낌이 첨가된 달콤한 음료가 되었기에 내 취향과는 꽤나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올해의 슈크림 라떼는 이전과 비교해서 몇 가지가 바뀌었다. 요즘 트렌드에 맞게 칼로리와 당을 10% 줄였고, 자체 휘핑 머신 기계를 사용해서 단단해진 크림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기존의 맛에 말차 맛까지 추가해 선택의 폭을 넓힌 것까지. 출시 이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탓에 올해는 그냥 넘어갈까 싶었지만 봄 연례행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모두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는 없었지만 너무 큰 기대가 없었던 탓인가, 의외로 기존의 맛을 선호하지 않았던 내 입맛을 사로잡았다.



가장 취향이 많이 갈리는 건 슈크림 라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슈크림 맛의 휘핑크림이다. 올해부터 단단한 질감으로 변경된 휘핑크림과 음료의 조화가 부자연스럽고, 텁텁함이 입안 그대로 남아 이질적이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단단한 질감의 크림 덕분에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음료와 경계가 생긴 덕분에 음료 본연의 맛을 느끼면서, 추가로 슈크림 맛 크림을 따로 느낄 수 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달콤한 크림을 먼저 맛본 후에 바닐라 맛 음료까지 마셔 준다면, 오후 세 시의 나른함과 노곤함은 기억 속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어느 계절보다 봄은 조용하게 찾아온다. 추운 겨울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그저 있던 자리에 스며들듯 가볍게 자리를 차지한다. 어느 순간 코앞까지 다가온 것 같으면서도 꽃샘추위라는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시리게 만들기도 하면서. 그리고 봄이 오는 신호는 계절의 꽃이 아닌, 따뜻한 공기 속에 녹아있는 부드럽고 달콤한 향기로 시작한다.


겨우내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쌉싸름한 커피에서 벗어나,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지는 크림의 달콤함이 느껴지는 순간 깨닫는다. 비로소 봄이 시작되었음을.




거리는 여전히 겨울의 흔적을 품고 있다. 3월에도 눈이 내리고, 아직 겨우내 입던 패딩을 집어넣을 타이밍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거리에 흔히 보이던 검은색 롱패딩에서 밝고 화사한, 조금은 거벼워진 옷차림의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봄이 보내는 신호를 읽고 있는 것만 같다.


창가에 머문 햇살을 손끝에 담으며, 따뜻하게 불어와 귓가를 간지럽히는 바람을 느끼며, 총천연색의 새순이 연둣빛 고개를 내미는 모습을 보며. 그리고 나는 봄 시즌 슈크림 라떼 판매 일자를 확인하며.


취향이 아니었던 것들이 취향이 되어 마음속으로 미끄러지듯 풍덩 빠지게 되는 건 한순간이다. 조금 웃긴 말인지도 모르지만 그리 좋아하지 않는 슈크림 라떼를 생각하면 이질적이게도, 봄이 온 것만 같아 가슴이 뛴다. 취향의 심박수가 높아져 가는 와중에도 아직 겨우내 입던 패딩을 정리하지 못했고, 여전히 핫팩을 손에 쥐고 다닌다. 하지만 25년의 내 봄은 이미 슈크림 라떼와 함께 시작했다. 아마 내년에도 춥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슈크림 라떼와 26년의 봄을 맞이하겠지.




어쩐지 올해는 봄 시즌 한정 판매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먹어 봐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슈크림 라떼의 부드럽고 달콤한 신호를 놓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봄이 왔다는 걸 잔뜩 만끽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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