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변화하는 생각과 습관

99를 가진자와 1을 가진자

by 여름해변

그가 암 진단을 받았던 그주 일요일, 저는 평생 가지도 않던 산에 이상하게 이끌렸습니다.

그에겐 하늘이 무너지는 현실이었을테지만, 저에겐 회사생활의 전환점이 될 계기였기에 뭔가모를 홀가분함 까지 느껴졌습니다.

남의불행을 자신의 행복으로 여긴다는 비난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나를 힘들게 하던 사람이 큰일을 당했다? 만일 내가 도와서 그가 살수 있다면? 단 댓가는 없음.

솔직히 말하지만, 저는 단연코 No 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조차도 그 상황에서 자비를 배풀수 있을지 의심되네요.


무엇보다, 바로 옆에서 반년동안 그의 생활습관을 지켜봤던 저로선 경각심이 들었습니다.

1. 하루 담배 두갑

2. 자기전 술마시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을 못잠.

3. 식사인지 술안주인지 모를 애매한 식습관.

4. 완벽에 대한 집착, 그래서 저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그토록 시달렸지요.

5. 출세에 대한 야망으로 워크홀릭, 신혼여행 조차 노트북을 들고 가고, 로밍폰으로 고객응대.


젊은 사람치고 당장의 생명과 결부지어 건강걱정하는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하지만, 바로옆에서 그것도 나보다 네살밖에 많지 않던 사람이 그렇게 되니 그동안 잊고 있던 가장 소중한것을 벼락 맞은듯 각성 됬습니다.

당시에는 막연히, 운동하면 암에 안걸리겠지라는 생각으로 첫 등산을 시작했었습니다.

턱끝까지 숨이 차오르는 와중에도 느껴지는 기분좋음, 덤으로 눈으로 느껴지는 풍경.

그때 느꼈던 희열이 작심1주가 아닌 16년동안 유지되서 지금까지 확고한 취미로 자리잡아 시간날때마다 등산을 합니다.

등산에 대해선 별도의 글을 엮고 싶을정도로 하고 싶은말이 많네요. 그리고 산에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그는 한달에 두번, 항암치료를 받기위해 연차를 썼습니다.

만일 위장 이외 전이된곳이 없으면 수술로 암부위를 도려낼수 있다지만, 3기는 다른곳으로 전이 된 상태라 수술이 의미 없다고 하더군요.

다행히 림프절에 아주 조금 전이 된 상태라, 항암치료로 잡을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는 참 강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수성이 무딘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감수성이 무뎌 자신의 가시돋힌 말들이 다른 동료의 마음을 긁을거라 느끼지 못한만큼, 자신의 현실도 무덤덤하게 감내하고 유난떨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항암치료가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며 병원에서도 업무전화 다 받으며, 고객들에겐 전혀 알리지 않았죠.


그와 내가 같이 외근을 하던 어느날 차안에서 그가 말을 걸었습니다.

그 : 내땜에 많이 힘들었제?

나 : (그냥 말없이 씁슬한 웃음만 지음)

그 : 솔지히 내 죽었으면 좋겠제? 내라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거다.

나 : 요즘같으면 그냥 둘다 살만하네요.

그 : 그냥 내 성격이 그렇다. 니가 미워서 그런건 아니고 내 성에 안차다보니 좀 피곤하게 굴었다.

나 : (철들면 죽는다던데, 죽을고비 넘고 있으니 철드네)


그러면서 최근 그가 성당에 다니기 시작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암진단 받은후의 느끼는 감정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 신부님이 내려놓으세요, 용서하세요, 사랑하세요 라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

내가 뭔 명예를 얻을거라고 일하다가 이래됐는지, 니도 내보면서 느끼겠지만 니를 아껴라

회사는 니말맞다나 그냥 돈버는 수단이지 그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더라


그에겐 항암치료 외에도 두가지 큰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암으로 인한 부인과의 이혼 고민이었습니다.

한창 달콤해야 할 신혼에, 병수발과 근심이란 짐을 부인에게 지우게 된 미안함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는 혼자 충분히 치료 받을수 있고, 만일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슬퍼하는 가족이 한명이라도 덜 있는게 떠나가는 입장에선 맘이 더 편할거 같았다고 했습니다. 차라리 정이 더들기전에 정을 때고 좋은 사람 만나 재가하길 바라는게 그의 더 깊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현실적인 문제로는 그가 빚이 조금 있는데, 죽으면 빚이 배우자에게 상속될것이 우려됐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이혼사유가 성격차이, 금전문제, 이성관계 때문에 서로 원수가 되어 갈라서는 경우가 익숙한데, 사랑해서 헤어지고 싶다는말이 참 낯설면서도 애절하게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에겐 너무 일찍 찾아왔을뿐, 세상의 모든 금슬 좋은 부부가 언젠간 꼭 한번은 겪어야 할 가장 큰 상실감...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후 장례식장에서 접하는 미망인이 애닯게 슬퍼할수록, 생전 행복하게 평생을 동반했구나 라는 것이 짐작되면 부럽기 까지 합니다. 적어도 저의 부모는 이혼해서 그러지 않을거니깐요.


다른 하나의 고민거리는 그의 부친이 중증치매였습니다.

치매하면 흔히 떠오로는 이미지가 거동못하며 가족들 못알아보는 치매인데, 젊으나이인 예순몇살에 중증 치매가 와서 몇날몇일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그런 치매였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외동아들이었기에 그런일이 생길때 마다 만사 재껴두고 구미에서 대구까지 아버지를 찾으러 다녔습니다.

씁슬한 깨달음이었지만, 슬픔은 나누면 반이된다는 말이 가족간에는 반이아니라 배가 된다는것이었습니다.

그역시 아버지 치매때문에 고생하는 어머니가 더 걱정할까봐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듯, 그는 더 위로 받고 치유받아야 할 사람이라는걸 느끼고 나니, 지난날 그가 나에게 휘둘렀던 채찍이 그리 혹독하게 느껴지질 않았습니다.

마치, 99를 가진자가 1을 가진자에 의해 조금 긁혔다는 여유로움이랄까요.

내가 부러워 했던 나보다 높은 그의 직급, 권한, 지위등 건강앞에선 1정도의 한낱 종이장에 불과하단것이 와닿았습니다.


이렇듯 그와나는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면서 같이 변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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