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참 유난떠는놈 인거 같습니다
그가 암에 걸리고 저는 31살의 나이에 100만원이나 들여 온몸을 스캔하듯한 정밀 종합검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항암에 좋다는 흑마늘을 쌓아두고 먹고 직접 만들어도 먹으면서 그에게 나눠주기도 했죠.
물론 순수한 마음은 아니였고 청탁성 조공, 동정, 쾌유기원의 감정을 각 1/3씩 블랜딩해서요.
이전보다 갈구지만 않을뿐 업무에 큰변화는 없었습니다.
술담배는 당연히 끊고 부인이 싸주는 항암 도시락을 먹으며 점심시간엔 운동도 했습니다.
나이가 젊어 암의 확산속도가 빠르다지만 다행히 치료의 유의미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3기라는 숫자에 절망했을뿐, 알고보니 항암치료로 충분히 다스릴수 있을 정도의 작은 전이였습니다.
오히려, 젊은날에 큰병에 걸려 건강에 대해 각성하게 됐던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렇게 항암치료 1년이 좀 지났을때 완치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땐 저도 어느정도 짬밥이차서 그의 업무 상당부분을 할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그와 크고작은 의견충돌은 피할수 없었고 그럴때마다 그는 찍어 누르는듯한 융단폭격같은 갈굼 버릇이 나왔습니다.
큰병에 걸려 사람이 바뀌는가 싶더만, 사람의 천성은 결코 바뀌지 않는듯 합니다. 아니 성격은 본능의 영역에 더 가까운거 같습니다.
여우가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토끼를 잡아먹는것이 아니듯, 개싸가지 말투로 나를 갈구는 그역시 악의없는 그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며 지치려 하는 내 감정을 추스렸습니다.
당시 무능하고 불만만 많았던 팀장이 갈려나가고, 엔지니어 부서 부장이 우리 영업 팀장으로 왔습니다.
무능해도 일하려는 사람이 나을까요, 사장 사위로서 회사지분있어 자리만 지키는 낙하산이 나을까요?
별명이 토스맨 이었습니다. 고객사로 부터 의뢰오면 검토도 안하고 아랫사람이나 다른부서로 넘기기 토스만 한다고 붙여진 별명이였죠.
그팀장 눈엔 의견충돌 자주하는 내가 일못하고 뺀질거리는놈으로 비춰졌던거 같습니다.
그렇다고 그와 그팀장 관계도 좋진 않았습니다.
그는 진퇴양난 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위로는 한심한 팀장, 아래로는 멍청한 나를 비꼬곤 했습니다.
참고로 그 낙하산 팀장은 반년후 회사 인수합병당할때 1순위로 갈려나갔습니다.
신입때야 그냥 시키면 시키는데로 일한다지만 짬밥차곤 일할수록 성취는 커녕 갈굼과 이상한 시선이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2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니 참 힘겹게 버텼던거 같습니다.
날 힘들게 하는놈이 암에걸려 약간의 버퍼가 있었을뿐 모든게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이었습다. 좋던 나쁘던 이런걸 사필귀정 이라고 할까요?
그렇게 퇴사라는 배수진을 치고, 내가 나가던가 그가 다시한번 개과천선할 기회가 오던가....
그래도 비속어는 안쓰던 그였는데 한번은 제게 "뒤질래?" 를 시전 했습니다.
이상황에서 내가 멱살잡으면, 하극상으로 해고되서 실업급여도 못받겠지? 그와중에도 본전생각 하는 내모습 ㅋㅋ
그날 빈 회의실에 끌려들어가 세시간동안 업무와 식음을 전폐하고 둘이 합의점 없는 언쟁만 이어나갔습니다.
그가 안뒤져서 내가 뒤질거 같아서 퇴사를 말했습니다.
그 : 닌 퇴사란말이 그렇게 쉽게 나오나?
나 : 이러다 내가 죽을거 같아요, 죽는거 보다 낫잖아요?
그 : 내는 죽을거 같아도 퇴사는 말못하겠던데
퇴사라는말에 너무 감정싸움으로 번진건 아닌가 각자 1보 후퇴하는 분위기였고 싸우느라 점심시간을 놓친지라 그는 근처에 짜장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완치 후에도 항암 도시락 말곤 다른 점심을 먹는걸 못봤는데, 비록 싸구려 짜장면이지만 나를 달래주려 같이 먹어주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조금 놓였습니다
그날 저녁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걸음을 딪지 못할 정도로 허리가 아팟습니다
욱신욱신 쥐났을때 그런 통증이 허리를 굳게 하며 움직일수가 없을정도였습니다.
다음날 아침, 겨우 일어나 택시타고 한의원가서 침맞았는데 담이 심하게 결렸다는 것입니다.
출근해보니 그역시 가슴이 땡긴다며 전날 정말 격하게 싸운걸 실감했습니다.
화해를 청하듯, 그는 내 허리에 파스를 발라주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업무에 있어서는 타협없는 꼴통인데 감정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였기에 저역시 진심으로 미워할순 없었습니다.
그날이후, 눈싸움은 눈싸움일뿐 그속에 딱딱한 돌맹이 넣어 던지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었습니다.
그렇게 심하게 결렸던 담은 사흘쯤 지나니 많이 괜찮아 졌습니다. 정말 전무후무한 심한 근육결림(담) 이었는데 스트레스가 신체에 주는 영향을 몸소 느꼈습니다.
같은날 가슴에 담이 결렸다던 그는 도무지 안풀린다며 파스를 더 붙였습니다.
한 일주일 지났을땐 허리도 아프다 하고, 또 한주가 더 지났을땐 다리가 저릴정도로 아프다고 했습니다.
어쩔땐 통증에 진통제를 먹기도 하고 책상에 엎드려 고통스런 통증을 달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이 있은후로 한달이 지났을쯤, 몸이 안아픈곳이 없다며 하루 연차를 내고 병원에 갔습니다.
하루면 진료 받고 다음날 출근할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아무 연락도 없이 일주일을 결근 했습니다.
회사 사람들 사이에선, 그가 다른회사 면접을 보러갔네, 인수합병 당할거라 조정될거라네 이런얘기가 떠돌았습니다.
2010년 화수목에 걸쳐 있던 추석연휴를 앞뒤 월금 연차를 내고 열흘을 쉬었습니다.
그를 못본지 3주가까이 됬습니다. 항암치료 할때도 사흘이상 안비우던 그였는데 참 이례적이었습니다.
추석연휴가 끝난 첫날, 본부장이 각 팀원들을 불러 무거운 표정으로 그와 작별인사 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한달을 신음하던 통증이 온몸에 퍼진 암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두달전 서로 스트레스 때문에 담걸린줄 알고 순진하게 파스 붙여 주던 사이였는데, 나는담 그는암...
공교로운 순간에, 자음 하나차이로 오진하게 해버린 내탓인가하는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때 내가 담걸리지만 않았다면 그는 좀더 일찍 병원에 갈수 있었을까.'
'뒤질레? 한마디에 내가 한발 물러섰다면 서로 아프지 않았을수도 있었을텐데'
사필귀정...
입사후 그때문에 힘들었던 내 회사 생활이 그가 암에 걸리고 좀 나아졌다가 완치판정 받고 다시 힘들어진게 正으로 돌아온걸까?
아니면, 그가 없어져 힘들지 않을것이 正으로 돌아온걸까?
세상은 영원한 正도 없고, 끊임없이 正反合 정반합 정반합으로 갈등을 만들어내고 화해하는거 같습니다.
다시 힘들어진 회사 생활로 돌아온게 正이라고 생각했지만, 그와 엄청난 갈등속에서 반목하다가 다시 합을 이루고...
그리고 그속에서 피어나는 애증 이란게 얼마나 끈끈한 정이었는지, 난생 처음느껴보는 감정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