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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othing May 19. 2023

밤의 호흡법

Feat. 다이어리 꾸미기


간혹 어떤 밤은 묵직하다. 검은 어둠이 거대한 젤라틴 덩어리가 되어 나를 옭아맨다. 과거의 상념, 오늘의 반성, 미래의 예단들이 머릿속을 휘저으며 어지럽히는 까닭이다.  

걱정을 빙자한 조언이 상처를 헤집는 비수가 되진 않았나? 무례한 그 사람에겐 왜 한마디도 하지 못했을까? 언제까지 나태하게 살건가? 이러다 건강을 잃고 자급의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면? 가족에게 짐이 되면 어떡하지? 홀로 고독사를 하게 되진 않을까? 그렇다면 불쌍한 강아지는?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 주체적으로 사는 걸까, 그냥 살아지고 있는 걸까? 나는 필요한 존재인가?

잡념의 가지는 무한대로 뻗어나가며 증식한다. 그렇게 길고 무거운 밤을 맞이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나의 낮도 유유히 흘러가지는 않는다. 일과 시간, 사람 속을 구르며 가뿐 숨을 쉰다. 하루종일 과호흡으로 숨을 쉰다면 언젠간 질식할지도 모른다. 생각의 가지를 정리하자. 숨을 올바르게 쉬자.

눈을 감고 깊은 들숨 후 멈춤. 그다음 얇고 긴 날숨. 잠시 멈추기. 천천히 하기. 

쉼의 방법은 많지만 도통 머릿속의 생각은 정지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끄집어낼 수도 없다. 이러다 밤이 불안이라는 입을 열어 날 삼키지는 않을지  두려웠다. 하지만 방법을 지 못했다.



다이어리 꾸미기를 시작한 계기는 단순했다. 애인이 다이소에서 마스킹 테이프와 스티커를 사다 주었다. 어떤 용도인지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을 거다. 보기에 귀엽고 예쁘니까, 사람들이 많이 사 가길래 사 왔다고 했다. SNS에서 스치듯 보았던 다이어리들을 생각하며 일기장 빈 곳에 대강 붙였다. 꽤 괜찮아 보였다. 날이 갈수록 여백이 불편해졌다. 이곳저곳을 채우고 덧대고 붙이고 쓰고 그렸다. 손이 바빠지고 잡념은 멈췄다. 오직 어떤 곳에 어떤 것을 적재적소에 배치할지 집념만이 남았다.




쓰고, 그리고, 붙이고, 자르고, 덧댄 손가락의 활동들





단순한 집념은 명상과 같다. 손가락이 낡은 잡지와 가위,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 그리고 볼펜, 물감을 묻힌 붓들을 오가며 스타카토처럼 경쾌한 선율을 그린다. 생각은 안단테다. 여기가 별로면 저기, 저기가 맘에 들지 않으면 거기. 손가락의 지휘를 따라가며 그저 결정한다.



다이어리 꾸미기를 하는 고요와 정적, 여유와 부산스러움 속에서 숨통이 트인다. 괜한 불안감에 커다란 환풍기의 프로펠러처럼 빠르고 무겁게 돌아가던 머리가, 천장의 실링팬이 돌아가듯 유유히 흘러간다. 뿌듯함은 덤이다. 프로 다꾸러*처럼 깔끔하고 멋스럽지는 않지만 기분이나 나름의 주제에 따라 꾸며진 기록들을 보면 무언가를 이룬 것만 같다. 무거운 밤을 방황하는 자들이 있다면 나와 함께 기록과 꾸미기로 느린 호흡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프로 다꾸러 : 다이어리 꾸미기에 능숙 사람




@benothing.be

막 시작한 인스타 다꾸 계정_함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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