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어른'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프로이트는 신경학 전문의이기도 했고, 그는 다윈이 지배하던 시절의 사람이다. 자연스럽게 프로이트는 인간의 본성을 생물학적으로 접근하였고, 인간이란 성, 섭식, 수면 등의 생물적 충동으로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보았다. 심리학을 처음 접했을 땐 그의 과감함이 좋았고, 시간이 흐르자 정신분석학의 시대적 한계-여성에 대한 이해 부족-와 이론적 한계-리비에 대한 그의 맹목적 믿음-에 서서히 관심이 옅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현시대를 보면 인간의 본성은 공격적이고 파괴적이라는 프로이트의 통찰이 맞는 것 같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헤어와 우즈는 러멜이 쓴 논문의 한 부분을 이용하며 지난 200년간 대학살이 얼마나 많은 지역에서 발생했는지 보여준다-물론 이 책에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제목처럼 다정해야 살아남음을 역설한다. 오해하지 마시길!-. 이런 역사적 사실까지 모아보니 생존을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순간 다른 어떤 종보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이 되는 인간의 본성은 그저 프로이트의 가설로만 치부할 수 없다. 살아남지 못하면 끝인데 과연 그 이상 무엇이 중요겠는가!
그래서일까? 클레어 키컨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주인공 펄롱의 선택-사회의 암묵적 협의를 거스르고 수녀원의 세탁소에서 인권유린을 당하던 미혼모 소녀를 구함-은 당연한 듯하면서도 불편하다. 그가 옳음을 알면서도, '가족들 생각도 안 하고 이기적으로 왜 저러는 거야!'라며 강렬한 투사가 불쑥 튀어나온다. 그처럼 행동하지 못하는 나에 대한 부끄러움이 그에게 비난으로 던져진다. 그래서인 듯하다. 키건의 책을 읽은 후로 '어른 됨'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다.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가벼운 불행과 무거운 행복 사이에 어느 지점에 나를 두어야 할지 답을 정할 수 없었다.
불안한 사회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통제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여 경직된 질서를 유지한다. 예측할 수 없는 개인의 행동 하나에 사회가 닫아놓은 체계가 무너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경제 공황과 실업자가 늘고 있는 침체된 사회 분위기. 빈주먹으로 인생을 시작하여 지켜야 할 가족은 많고 가진 것은 풍족하지 않은 펄롱. 손에 쥔 그의 소중한 것들은 순식간에 사라질 듯 위태롭다. 분명히 사회는 펄롱의 작은 실수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펄롱은 왜 그랬을까?! 펄롱은 크리스마스의 분위기에 맞추어 차오르는 이타심과 용기가 충만해져서일까?
친절함과 잔인함은 한 끗 차이이다. '한 편인가, 아닌가.'이 간단한 선긋기로 우리는 타인에게 한 없는 포용과 헌신을, 때론 거침없는 공격과 매몰찬 무시를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한다. 한 편으로 여겼던 누군가의 변심은 남은 집단원에게 상처가 아닌 모욕이 된다. 자신과 달라진 '배신자'에 대한 원망과 '배신의 최후'를 경고해야 하므로 남은 집단원들의 파괴적 행동은 더욱 강렬해진다. 도대체 펄롱은 무슨 배짱으로 권력과 다수를 등질 생각을 했을까?
소녀와 걸으며 펄롱은 '최악의 상황은 이제 시작'이라고 확신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현실에 남은 그를 상상 한다. 그의 정의로운 행동으로 그의 사업에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그의 선한 행동으로 소녀는 구했지만, 막상 자신의 아이들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지 못하게 될 것이다. 아내인 아일린도 이런 상황을 더 이상 참긴 어려울지 모르겠다. 아내마저 그를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는 버틸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로 사회에서 함께 배척될 펄롱의 아내와 아이들을 떠올리자, 아내이자 엄마로서 살아가는 나의 한 부분이 화를 낸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얼마나 거룩한가! 동시에 좋은 어른을 꿈꾸는 나의 한 부분은 그의 용감함과 어른스러움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해하고, 자기실현을 향해 있는 나의 한 부분은 그의 용기에 기뻐한다. 그가 그랬듯 나도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며 벅차올라한다. 아! 이 짧은 책의 엔딩에 이렇게 다양한 마음을 동시에 느끼다니!
청년기엔 부모가 나를 만들었고, 부모가 나를 사랑한 방식과 사랑의 양이 나를 결정지었다고 생각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나 보다 좋은 지원을 받았다면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던 30대 중반의 어느 날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인생은 이미 망했어. 피-화투놀이에서 큰 점수를 내는 데 전혀 소용없는 껍데기-만 갖고 태어난 팔자 같아." 이야기를 듣고 친구-그 친구는 나보다 나이가 12살 많았다. 그리고 보다 지혜로웠다- 이렇게 말했다. "피로 점수를 내기도 해~. 그렇게 말하지 마!"
'충분히 채워주는 부모로부터 훌륭한 자녀가 나온다'는 부모교육서의 주장이 옳아야 나도 나의 보잘것없는 성공을 부모탓으로 돌리며 마음을 좀 가벼이 할 수 있지 않은가?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지!' 동생과 다투면 늘 듣던 이야기다. 나눔, 사랑, 부, 명예... 우리가 꿈꾸는 어른 됨은 어린 시절부터 배워온 가치 속에서 자란다. 물론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한다. 나는 어느 지점 즈음에 있을까?
나의 마음을 다독이듯 키건은 응답한다. 펄롱을 보라고. 결핍으로 태어난 그도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신중한 충동으로 인간은 위대해진다고. 좋은 어른 됨은 가득 받아 축적된 사랑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어른스럽게 행동하는 순간 속에 있는 것이라고! 키건은 사소함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나비효과. 나의 사소한 성공이 세상에 균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
『행복의 기원』에서 서은국 교수는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사소한 기쁨으로 인생이 충만해진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음에도 펄롱과 펄롱의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 머무르게 해 주었던 미시즈 윌슨은 펄롱이 글을 배울 나이가 되자 책을 선물하고 사전 보는 법을 알려준다. 펄롱을 대견해하는 그녀의 눈빛은 펄롱이 자신을 유능하고 소중한 존재로 느끼도록 하는데 충분하다. 미시즈 윌슨 집에서 일하는 네드는 펄롱에게 구두끈을 매는 법과 면도하는 법을 알려주며 남자다움을 가르친다. 펄롱은 이 순간들이 '나날의 은총'이었음을 확신한다.
해리스는 『양육가설』에서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자랄 것인가는 부모의 '잔소리'보다 지역 사회와 또래 집단 안에서 자녀가 자신을 어디에 '범주화'할 것인지 여부로 결정된다고 강조한다. 타고난 유전적 특징과 양육 환경-사회, 학교의 분위기-이 부모의 양육보다 성장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펄롱의 삶은 해리스의 주장을 지지한다. 펄롱은 자신을 미혼모의 아들이 아니라 미시즈 윌슨의 세계관에 등장하는 자랑스러운 어린이로 범주화한다. 가진 것 없는 하녀의 아들이 아니라 '맞춤법 대회'에서 1등 한 자랑스러운 어린이가 그에겐 진짜 '자기 자신'이다.
어린 시절 나는 어떤 어른 됨을 꿈꿨던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과감한 결단력이 있는 인물, 유능하면서도 포용할 줄 아는 인물, 최선을 다하되 만족할 줄 아는 인물... 책 속의 이런 인물들을 흠모했고, 지금도 내 안에 그러한 모습을 키우려고 애쓰며 산다. 왜 나는 그런 인물들에 끌렸을까? 누군가 그래야 한다고 특별히 강조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펄롱은 주변의 차가운 시선과 친구들의 업신여김에도 미시즈 윌슨과 네드를 통해 누군가를 도울 용기를 가진 어른의 원형, 즉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자랐다. 그런 그를 보며 나의 Self가 공명한다. 아! 어른 됨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되찾는 것이구나!
"아이를 가져 본 사람은 누구도 행동주의자가 될 수 없다." 매슬로우의 말이다. 하지만 매슬로우는 해리 할로우의 제자로 영장류 행동을 연구하였으며, 에드워드 손다이크-고양이 상자로 유명한 행동주의 심리학자-의 연구조교였다. 인간의 본성과 욕구에 관심을 가진 매슬로우는 생존과 안전, 소속감, 자아존중과 같은 결핍욕구가 충분히 채워져야 자아실현의 욕구가 발현된다는 욕구 5단계 이론을 제창한다. 그러나 말년의 매슬로우는 자신의 욕구 피라미드가 뒤집어져야 옳았다고 말한다. 자아실현의 욕구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임을 인정한 것이다.
나의 삶을 돌아본다. 주말 저녁 주방을 마감하고 불을 끄려는 찰나 아이들이 간식을 먹고 싶다고 한다. 정말 이젠 눕고 싶었는데... 다시 주방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매슬로우의 통찰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펄롱이 생존과 안전, 소속감의 결핍이 일으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이타심이라는 거룩함을 실천한 것처럼 나도 별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랑의 힘으로 피로한 몸을 일으킬 때 꽤 괜찮은 어른이 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든다. 물론 짜증과 신경질도 나있긴 하지만! 행동주의 심리학자로 출발한 매슬로우도 결국 인간의 본성이 선함을 확신했다. 펄롱은 크리스마스 시즌 내내 지속한 마음의 갈등 끝에 충동적으로 소녀를 구한다. 인간의 선한 본성은 인간의 계획 하에 있지 않다. 신의 계획 안에 있을지는 몰라도.
나른한 오후 다시 꺼내 읽기 시작한 키건의 책에 숨겨져 있던 '펄롱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보니 대가 없이 주변을 돕는 펄롱에게 면박을 주던 아일린이 크리스마스 저녁 식사에 홀로 있을 네드를 흔쾌히 초대한다. 이웃 가게 주인 미시즈 케호는 수녀원과 척지는 펄롱을 걱정하며 넌지시 조심하라고 애정 어린 충고를 한다. 석탄 대금을 받으러 간 집에선 사탕과 와인, 아이들 옷을 선물로 받고, 한 아이는 편지에 감사를 담아 건네기도 한다.
나의 삶과 무엇이 다른가? 꽃이 예쁘다고 찍어서 보내준 독서모임 친구와 살지 말지 고민하던 물건을 기억했다 할인행사 중이라며 얼른 마트에 가보라고 알려주는 지인. 어떤 컬러의 옷이 어울릴지 함께 고민해 주는 동생. 언제나 자식을 안쓰럽게 여기는 다정한 부모님들. 엄마가 핑크를 입으니 공주 같다고 말해주는 막내아들-둘째 아들은 종종 안마를 해준다고 쓰려다 너무 자랑 같고, 큰아들이 빠지면 섭섭할 수 있으니 이 정도로 갈무리한다-. 나의 삶도 '펄롱들'이 내린 '나날의 은총'으로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