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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노운즈 Apr 03. 2024

자기(Self)의 역설적 실현

삶에 자기(Self)를 초대합니다.



p.7, 참자기, 제임스 F. 매스터슨. 한국심리치료연구소.



제임스 F. 매스터슨은 “인생에서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참 자기의 표현을 추구한다는 말과 같다.”라는 문장으로 책의 서문을 연다.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은 자기만의 운율을 깨닫고 실현하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고 입을 모은다. 인본주의 상담의 창시자인 칼 로저스는 모든 유기체엔 고유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려는 '성장의 흐름'이 내재되어 있다고 결론짓고, 이를 ‘자기실현성향’ 혹은 ‘실현성향’이라고 불렀다. 자기실현이 본성이라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물이 흐르듯 자연스러운 일일 텐데 나에겐 왜 이리 어려운 숙제 같을까!


"타고난 본성은 서로 비슷하지만, 습성에 따라 서로 멀어지게 된다."는 공자님의 말씀을 떠올리니 더욱 심란하다. 자기를 실현하는 것이 인간 모두가 가진 잠재력이라면, -엄마의 내적 시간의 흐름을 기준으로-주말 내내 거실 소파에 반쯤 드러누워 웹툰을 보고 키득거리는 큰 아들은 어떤 '자기'를 실현하고자 저러는 걸까? '심심한데 나 뭐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며 게임할 틈을 노리는 둘째는 어떤 '자기'의 잠재력을 드러내려고 이러는 걸까? 다이소에서 양손 가득 물건을 집어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막내는?! 도대체 우리 집 아들들의 '자기'는 어떻게 이해하고 존중해야 그 본색을 드러낼까?



카를 융: 기억 꿈 사상, 칼 구스타프 융. 김영사.



멀리 돌아갈 것도 없다. 나는 나의 세계에서 자기(Self)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가? 융은 볼링겐에 자신의 무의식을 위한 탑을 짓고,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의 주인공 싯다르타는 가족을 뒤로하고 벗 고빈다와 수행을 떠난다. 직업이 의사인 안톤 체호프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부업으로 글을 쓰다 세계적인 이야기꾼이 되고, 『양육가설』의 저자 해리스는 그녀만의 통찰력과 필력으로 훌륭한 저서를 엮어내 결국 자신의 박사과정 입학을 거부한 하버드대에서 상을 수여해 낸다. 정말 위대한 자기실현자들이다! 그렇다면 글 다운 글을 써보겠다는 각오로 진지하게 각 잡고 앉은 나의 '자기실현'은 과연 어느 즈음에 이르렀을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주인공 올리브는 심통 맞기 짝이 없는 중년 여성이다. 다정한 성품의 남편 헨리에게 툭툭 쏘아대는 말투는 그냥 그렇다 치더라도, 며느리에 대한 질투심에 신혼집 서랍장에 정리해 둔 속옷과 신발 한 켤레를 슬쩍하는 에피소드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하물며 그녀는 인성 쓰레기라고 욕먹어도 마땅한 자신의 행동에 당당하기까지 하다. 자기 보호를 위해 단단히 쳐둔 마음의 방호벽은 주인인 올리브조차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는다. 자기 행동을 객관화하긴 이미 물 건너갔고, 성숙한 척 겉포장하는 위선조차 떨지 못하는 올리브에게도 '자기실현'이 찾아와 줄까?



p.123, p.304,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음식, 안전, 애정, 자기 존중감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기본 욕구로, 매슬로우는 이 욕구들을 결핍 욕구라고 불렀다. '사람을 절대 믿지 마라.' 가르친 어머니.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아버지가 남긴 죄책감. 자급자족할 수 없는 기본 욕구의 지속된 결핍은 '결핍 센서'의 감지부를 과민하게 한다. 센서는 이제 감지가 아니라 탐지한다. 결핍의 실마리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센서는 곧바로 경계경보를 울리며 생존모드를 발동한다. 온 신경계가 생존을 모토로 작동한다. 생존모드에서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은 당위성을 갖는다. 결혼한 아들의 독립(올리브에겐 결핍)으로 허전함(올리브에겐 위협감)을 느낀 올리브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은 여인의 슬픔보다 자신이 더 불행하다고 확신한다. 생존모드의 왜곡된 시선은 자연스러운 (가짜 불행)과 비극적인 진짜 불행을 구분하지 못한다.


하물며 결핍에 익숙해진 사람에겐 행복의 방문이 낯설고 두렵다. 오랜 기간 서먹했던 아들 크리스토퍼의 집에 초대받은 올리브는 아들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몹시 들뜬다. 아들 내외 및 손주들과 보낸 번잡하고도 평범한 시간에 충만감을 느낀 올리브는 점차 감정이 북돋어지며 '박애심'으로 확장됨을 느낀다. 하지만 이 고양감은 자신의 블라우스에 묻은 아이스크림 소스 자국을 발견한 순간 곤두박질쳐진다. '늙은 할망구'가 되어버린 자신의 모습에 올리브의 '결핍 센서'가 자극되고, 자기 비하와 조롱으로 쌓아 올려진 그녀의 긴장은 결국 아들에게 투사되어 갈등의 뇌관이 격발하고 만다.



p.406, p.418, 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문학동네



그녀는 상황을 거침없이 엉클어뜨린다. 결핍 욕구에 휩싸인 올리브에겐 모든 것들이 '방해자'이다. 그리고 올리브의 자기 충족적 예언-노망 난 할망구-은 적중한다. 공항에서 난동을 피워 보안직원에게 이끌려가는 올리브는 오히려 의연해진다. '이게 진짜 나지!' 불행한 그녀는 행복한 그녀보다 당당하다. 더 잃을 것이 없으므로.


융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의미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영혼의 고통”을 신경증이라고 불렀다. 언제쯤 올리브는 자신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소설 속 한두 문장에 의지하여 그녀의 삶을 그려본다. 아들이 살게 될 집이 아름답길 바라며 정원의 꽃을 가꾸던 올리브의 마음은 사랑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말조차 알아들을 수 없게 된 남편에게 마을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전하고, 아끼던 개가 그의 손을 핥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그녀의 마음은 사랑인가, 의무인가!


그녀의 자기(Self)가 무의식적인 행동에서 드러난다. 나는 그녀의 사랑을 슬쩍슬쩍 엿보고 있는데, 막상 그녀는 자신의 온정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올리브가 자신의 사랑을 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마음 한편이 아리다.   




  


헨리를 먼저 떠나보내고 혼자가 된 올리브는 산책하던 중에 웅크리고 있는 잭을 돕게 된다. "날 혼자 두지 말아요."라는 잭의 요청에 올리브는 다시 '사람 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세월에 단련된 올리브는 여전하지만 달라졌다.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타인에게 날을 세우던 그녀는 잘 재단된 옷과 세련됨으로 자신의 '결핍 센서'를 울리는 잭 앞에서도 쉽게 기죽지 않는다. “뭐 어때! 이래 봬도 잘 나간다고!”



p.334.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송길영. 교보문고.



송길영 작가는 그의 저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를 "스스로가 스스로의 권위를 자신 있게 인정하는 사회로의 변화를 꿈꿔 봅니다."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한다. 자기실현이 거창한 시대적 숙제로 느껴진다. 권위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개인 내적인 숙제와 비경쟁적인 사회적 분위기 형성을 위한 개인 외적인-사회적인- 숙제까지! 마음이 삐죽해진다. '내 숙제를 아무리 잘해봐야 무슨 소용이람! 서로 인정해 주는 사회가 되어야 나도 나를 인정하지!'


운동선수인 큰아들은 성실하고 최선을 다한다. 그렇다고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아쉬운 결과에 안타까운 부모의 마음을 표현한 어느 날 아들이 이렇게 대답했다. "열심히 노력했다면 그 자체로도 멋진 거 아니야? 왜 1등이 아니라고 속상해야 해?" 열심히 채우면 결핍이 메워질 거란 나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결핍을 채우면 자기가 실현될 거라는 믿음이 무너졌다. 자기는 채움의 원심력과 만족의 구심력이 이루는 균형을 통해 실현된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해내야 한다. 나를 채워 융이나 싯다르타, 체호프와 해리스가 되는 것이 자기실현인가?! 실수를 깨닫는다. 송길영 작가의 꿈이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도 있겠다.






p.105, 키르케고르, 나로 존재하는 용기, 고든 마리노. 김영사.



키르케고르의 말대로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은 별개이다. 감정이 부추긴 생각은 늘 충동적인 행동을 촉발한다. 우리는 감정에 숨겨진 자기(Self)를 만나야 한다. 감정을 빨리 해결해 치우려는 마음을 내려놓은 올리브는 두려운 마음을 담은 상태에서 동시에 사랑을 느낄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오지만 동시에 자신이 잘못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올리브는 사과하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거부당할까 불안한 마음을 품은 상태에서 사랑이 필요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녀의 인생이 불행으로 마무리될까 봐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책의 마지막 문장들로 편안해졌다.


"그녀는 눈을 감았다. 지친 그녀는 파도를 느꼈다. 감사의, 그리고 회한의 파도를. 그리고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햇살 좋은 이 방을, 햇살이 어루만진 벽을, 바깥의 베리베이를. 그것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세상이. 그러나 올리브는 아직 세상을 등지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았다면, 이젠 희망을 꿈꿀 수도 있잖아요.' 올리브에게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스트라우트가 십일 년 만에 펴낸 『다시, 올리브』를 집는다. 노년으로 접어든 그녀의 자기(Self)가 나의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여전히 성장하고 확장되었기를 기대해 본다. 그래서 그녀가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사랑받았기를 고대한다. 올리브는 자기(Self)를 초대하는 데 성공했을까? 다시 조마조마한 마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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