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의 형식을 빌린 사유시(思惟詩)
(사내는 고양이의 목을 천천히 쓰다듬는다. 고양이는 눈을 반쯤 감고, 갸르릉거린다.)
사내
(느릿하게)
자네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가?
고양이
(귀를 살짝 움직이며)
죽음이 뭔가? 생선인가?
사내
(웃다가 이내 진지해지며)
죽음을 모른단 말인가.
죽음은 시간의 끝, 내일의 부재라네.
고양이
(앞발을 쭉 뻗으며 하품)
저런, 내일은 낮잠을 자지 못한다는 말인가?
나는 마루에서 낮잠 자는 시간이 가장 좋은데 말이지.
이—렇게 몸을 늘이면서 말이야.
(고양이는 등을 구부렸다 늘이면서 기지개를 켠다.)
사내
(가만히)
아니, 죽음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라네.
영영 눈을 뜨지 않는 것,
기억도 이름도 사라지는 상태지.
고양이
(눈을 반쯤 감은 채)
그게 뭐 그리 대수란 말인가?
나는 하루 종일 잘 수도 있네.
…
하지만 자네가 내 이름을 잊는다면,
그건 좀 섭섭하겠어.
어디다 적어놔 주겠는가?
(고양이가 무심하게 앞발을 핥는다.)
사내
적어두는 것으로 죽음을 막을 수는 없네.
그런 태평한 낮잠과는 달라.
죽음은 우리가 여기 없다는 말일세.
나는 자네 이름을 부를 수 없고,
자네는 옆집 얼룩이와 숨바꼭질도 못 한다는 뜻이지.
고양이
(수염을 꿈틀거리며)
아하, 죽음은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는 게로군.
얼룩이가 바다에 다녀왔다고
수염이 늘어지도록 자랑하지 뭔가?
내가 좋아하는 푸른 생선들이 가득하다지 아마.
나는 거기로 가겠네. 오늘은 어떤가?
사내
바보 같은 소리!
죽음은 우리 존재의 소멸이네.
아주 사라진다는 뜻이야.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창 밖에 나뭇잎 뒹구는 소리.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난다.)
고양이
아… 이제 알겠네.
처음부터 없었던 것,
죽음이란 우리가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이로군.
뒷집 양순이가 나흘 전 새끼 여섯 마리를 낳았다지?
이름도 기억도 없는 것들을 말이야.
죽어있다가 또 죽으려고 태어나다니—
참, 많이 번거로운 일이군 그래.
사내
양순이 새끼들은 죽어있었던 게 아니야.
이제 갓 태어난 거라네.
곧 꺼지게 될 불빛처럼 말이야.
고양이
(고개를 기울이며)
꺼져 있는 불은 다 같은 꺼져 있는 불 아닌가?
(잠시 침묵. 바람에 흔들리는 창호지 소리만 들린다.)
사내
… (생각에 빠진다)
고양이
태어나기 전과 죽은 후,
그 둘이 무엇이 다른지 나는 모르겠군 그래.
사내
그래, 자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태어나지 않았다면 죽을 일도 없을 테니.
고양이
하지만 정어리 한 점 먹어보지 못한 채
내내 죽어 있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고양이는 사내의 무릎 위에서 천천히 몸을 둥글게 말며 잠든다.)
고양이
(작은 숨결처럼)
자네, 피곤해 보이는군.
낮잠이나… 자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