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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22 전략> 실천 7일째

by 김혜정

교회를 다녀왔다.

일주일 간 내내 기도하고 아침마다 눈뜨자마자 기도하고 지난 하루를 감사하며 눈을 감을 때 감사기도를 꼬박꼬박 드리는 그런 열혈 크리스천은 아니다. 매일 성경을 봉독하고 수십 개의 성경 구절을 좔좔 외며 나라와 민족과 우리 교회와 공동체를 위해 방언을 구사하며 폭포수같이 기도하는 크리스천도 아니다. 나는 보통의,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크리스천이다.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말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나와 있다. 100%는 아니지만 70% 정도는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크리스천이라고 할 수 있겠나?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만약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100% 하나님만 믿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라면 나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나는 30% 정도는 나의 힘으로 살아간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쩌면 50:50 정도밖에 안 될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면 나는 헐렁거리는 마음으로 교회만 출석하는 수억 명 중의 하나일 뿐지도.


지금 이 현대 사회에 자기 신뢰 없이 자신의 인생을 신에게 100% 의탁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고대 이스라엘의 다윗이나 솔로몬, 예수 시대의 열두 제자와 바울이 아니고서는 말이다. 그럼에도 고대 신 중심이었던 시대와 달리 지금의 인본주의 시대를 살면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32%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믿으며 살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기독교를 포함하여 종교를 갖고 있는 전 세계인구는 2022년을 기준으로 약 79억 50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것도 참으로 놀랄 노자다.


라이프웨이리서치가 2022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특정 종교를 믿는 ‘종교인’의 인구가 2000~2022년 1.27%의 비율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무신론자의 수는 같은 기간 0.18% 증가에 그쳤다. 세계 무신론자의 수는 2000년 약 1억 4천 150만 명에서 현재 1억 4천 7백만 명으로 증가했지만, 종교인의 수는 2000년 약 53억 명에서 현재 약 70억 명으로 증가했다. 2050년에는 90억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 박애리 기자 / Daily GOOD NEWS, 2022. 2.7. / “전 세계적으로 무신론자보다 종교인의 수 빠르게 증가”


물론 이러한 연구 결과는 종교인이 더 많이 증가하길 원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취지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종교단체에 가입만 되어 있어도 신자라고 인정되었을 수도 있고 중간에 믿음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결과에 체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종교를 갖는 행위에 대해 독려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부조리가 판을 치는 정치판처럼 종교를 설파하는 곳에서도 부조리가 들끓고 사리사욕이 넘쳐나고 있더라도 말이다. 오래전 잘못된 믿음으로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 모는 데 중세 가톨릭의 부패가 한몫을 했고, 그보다 더 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시작한 교회 개혁을 진전시키고 교황청을 강화시키기 위해 200년 동안이나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던 우르바누스 2세의 탐욕과 파국이 있었더라도 말이다.


왜 나는 종교를 독려하는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론. 그것에 대해서는 100% 믿지는 못한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죄를 갖고 있었다는 건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태어난 이후 환경의 영향으로 나쁜 마음을 먹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리의 부모는 불완전하고 나약한 인간이며 부모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얼마든지 부정적이고 나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생각보다 나약하고 사회에 나가 활동할수록 그 나약함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부모의 영향력이 클수록, 자립심이 작을수록 인간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가게 된다.


나도 31세에 큰아들을 낳았을 때 완전한 무력감을 느꼈다. 20대에 장전했던 수많은 무기들이 출산 후에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그걸 감지했을 때 나는 종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임신했을 때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신앙생활에 아이를 낳은 후에는 전적으로 의지하게 되었다. 자존감이 추락하고 깊은 우울감에 빠졌을 때 나를 구원한 것은 절대적으로 神이었다. 엄마도 남편도 시어머니도 친구도 아무도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100% 책임지어야 할 50CM짜리의 고귀한 생명을 품어내기 위해서는 신의 거룩함이 필요했고 신의 용서와 신의 능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그에게 매달렸다. 나를 지탱해 줄 이는 그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나를 위해 헌신적으로 기도해 주었다고 여전히 믿고 있는 심은희 구역장님은 나에게 神 다음으로 가는 존재였다. 그분께 아이의 장난감만 얻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평안을 얻었고 위안을 얻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사막 같은 타지에서 홀로, 아니 아들과 살아남기 위해서 너무 필요했던 건 정신적 안정과 위로였다. 그때 그 시절을 잊지 못한다. 그 꼬마를 안고 업고 나는 대예배에 참석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크고 작은 예배를 쫓아다녔다. 일주일에 한 번 구역예배에서 기나긴 심은희 구역장님의 기도를 들으며 매번 꾸벅꾸벅 졸았지만 나의 영혼이 새로워지는 시간은 포도처럼 달콤했다.


큰아들을 임신했을 때는 엔젤 성가대에서 찬양을 했었는데 교회의 큰 무대 한가운데 서서 찬양을 할 때 얼마나 떨렸는지! 뱃속에 있던 아들이 발로 배를 뻥뻥 차는 걸 느끼며 나는 가득 찬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처럼 한껏 들뜨고 흥분했다. 무대에서 내려왔을 때 난 오열했다. 아무것도 보잘것없는 나를 주님이 보호하시고 바라봐 주시며 큰 무대를 펼쳐서 너의 인생을 가라고 길을 열어주시는 거라고, 어떻게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다고 수백 번 생각했다. 그냥 모든 게 은혜라고 생각했다. 나약한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의 신앙의 시작점이었다. 아들을 임신하고 난 그때가.


그리고 둘째를 낳은 후 김포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가장 큰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5살, 1살 아들을 위해 교회학교 유아유치부에 들어가 예배를 드렸다. 그렇게 얼굴도장을 찍다가 전도사님의 권유로 유아유치부 봉사를 시작했고 그렇게 9년 동안을 어린아이들을 위해 봉사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상황상 구역장을 맡게 되면서 봉사는 그만두었지만 코로나가 끝날 무렵인 올해부터 예배는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교회를 안 나가는 동안 신앙이 약해지는 것은 분명했다. 감사와 찬양이 일상에서 사라졌다. 식기도도 하지 않게 되었고 가끔 드리던 가정예배도 없어졌다. 뭐든 내 의지대로 하는 것이지만 종교 행위가 귀찮아지게 된 것이다. 다시 교회를 나가고 예배가 회복되고 틈틈이 기도를 시작하니 다시 17년 전의 첫사랑이 생각났다. 뜨겁게 퍼부어 주었던 주님의 사랑이 너무 그리웠다.


50대 이후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귀한 것

그것은 신앙이다. 신앙심이 깊은 것은 아니지만 나에겐 기도하고 찬양하는 시간이 나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다른 누구보다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보호하시며 나의 갈 길을 인도하심을 진심으로 믿기 때문이다. 성경 구절은 모르더라도 식기도는 안 하더라도 겉으로만 교회를 다니는 것 같아 보여도 나는 주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믿는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 작은아들이 닭이봉을 먹고 싶다고 하니 얼른 사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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