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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정 Mar 06. 2024

4화


4화


           

정인의 시아버님은 날로 수척해지셨다. 눈도 푹 꺼지고 양 볼도 옴팡 패인 데다가 얼마 전에는 틀니까지 맞추셨다고 했다. 틀니가 몇 달 만에 어그러졌는지 어쨌는지 불편해서 자꾸 빼신다고 어머니는 아버님의 뒤통수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버님의 좁아진 어깨가 고함 소리에 움츠러들어 더 비좁아 보였다. 그리고 무엇 때문인지 자꾸 복수가 차서 배는 임산부처럼 자꾸 불러왔다. 전보다 가끔 들르다 보니 아버님의 몸 상태는 날로 달로 더 심각해져 가고 있었다. 아버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아직 새댁인 정인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아버님의 막내아들이고 이제 서른둘이 된 동욱도 어찌할 바 모르는 것은 피차일반이었다. 서른이 되면 어느 정도의 인생 경험이 있고 또 이러저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와 연륜이 있을 줄 알았건만, 서른이라는 이름값은 전당포에 저당 잡힐 만큼의 가치조차 없는 듯했다. 아버지가 아파도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고, 그 흔한 위로조차 하지 못한다는 걸 동욱은 그때 알기나 했을까.   



그러고 나서 몇 달 후,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 명절이었다. 동욱과 정인은 자식들 중 가장 먼저 도착했고 어머니가 미리 좀 먹고 있으라고 갖다 주신 떡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어머니만 계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안방에서 아버님이 나오셨다. 정인은 벌떡 일어나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어머, 집에 계셨어요? 아버님. 몰랐어요. 안녕하셨어요?” 정인의 시아버지는 쇳소리가 섞인 가냘픈 목소리로 “아녀. 뭣허러 일어나. 어서 먹어, 안거, 안거서 어서 어.” “아이쿠. 네. 아버님.” 하고 다리를 접으며 도로 앉는데 아버님의 실루엣이 대번에 정인의 눈에 걸렸다. 안방에서 거실 화장실까지 예닐곱 걸음 정도 되는 지척을 아버님이 다리 절뚝거리며 지나가시는 모습이... ((헉)). 티를 내지 않려는 듯 아버님은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내딛었지만, 작은 거실은 아주 작은 미동도 다 감지되는 곳이었다.



"어머!! 아버님! 다리 다치셨어요?!"

"아녀- 아녀- ."



어머니는 정인의 놀라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주방 씽크대에서 미나리를 씻다 말고, 거실 화장실로 절뚝이며 걸어가는 아버님의 뒷모습을 살쾡이 같은 눈으로 잡아챘다. 아버님이 화장실 문을 나와서 한두 걸음 디뎠을 때, 살쾡이의 눈을 하고 오다닥하고 다시 쫓아온 어머니는 아버님 앞에 서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두 손을 번갈아가며 다가 살쾡이 앞발 땅을 파는 모양을 하며 호통을 쳤다.      



“엔간하믄 나오지 말랬지! 애들 있는 디서 그러코럼 찔룩거리지 맘시롱! 이자 한 번 나왔싱께 나오지 마르!”      



정인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헉))))). 이제 전라도 사투리를 3년 차 듣다 보니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듣는 지경이 되었는데, 저 말은 무엇이다냐. 나오지 말라고라고라~~. 헐. 나오지 말라니. 남편을 자식들 앞에서 감금하려는 것인가. 명절이어서 찾아오는 자식들 앞에, 절뚝거리는 모습보여서는 된다고, 그러니나오지 말라고 정녕 어머니는 말씀하고 계시는 것인가! 이게 어찌 말이 되는가! 정인은 하늘에 부르짖고 싶었다. 이런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 어찌 있단 말인가!!



아버님은 당신보다 키가 큰 당신의 마누라, 즉 정인의 시어머니를 턱을 들어 올려다보는 동시에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나 부릅뜬 눈으로 소리 없는 호통을 세게 쳤을지는 모르나 아버님은 가던 길, 그 몇 걸음을 마저 걸어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는 것으로 종지부를 찍고야 말았다. 어머니는 주방 싱크대 앞으로 돌아가 서서 무어라무어라 궁시렁궁시렁거렸고, 그 차가운 몇십 초 사이에 정인의 심장은 쭈글탱이가 되고 말았다.



평소 정인이 혼자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아가, 그거 하지 말고 일루 와서 이거 머그라잉~”, “아가, 어서 와서 여그 앉아.” 하고 다정하게 말 걸어 주시던 아버님이었는데, 어머니 앞에서 기가 죽은 아버님이 여지없이 불쌍했다. 잡아먹을 듯이 쏘아대는 어머니의 말소리에 눈 한 번 부릅뜨고 그래, 나를 잡아 잡수쇼 하고 듣는 둥 마는 둥 그저 순한 양처럼 지나가는 아버님의 애처로운 모습이 그저 순한 양인 것이 아니라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순한 생각으로 변질되는 걸 느끼는 순간, 정인은 소오름이 끼쳤다.      



정인은 이해가 안 되는 것들 투성이였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말수가 적었던, 아니 애시당초 가갸거겨도 못할 사람처럼 보였고 여전히 의사표현조차 잘하지 않는 동욱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수가 없었다. 물어봐봤자 동욱은 시원하게 답해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으며, 말끝을 무수한 점처럼 뚝뚝 끊어뜨리기만 했으니까 말이다. ‘자기 아버지하고 무슨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일이 이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어째서 아버지하고 이토록 대화를 안 할까. 아버지하고 대화다운 대화는 해본 걸까. 부모님 사이는 저렇다 쳐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끈끈한 무언가가 있을 법한 것인데...’

그러고 보니 아버님과 동욱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정인은 속으로 궁금했지만 코치코치 캐면 혹여 부자지간의 남모를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까 봐 그냥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 후로, 정인의 아버님은 병원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다. 임산부처럼 배가 불룩 불거져 나오면 병원에 가서 복수를 빼고 오셨다고 했고, 당뇨 지병이 있으시니 혈당을 체크하기 위해서도 병원을 다니셔야 했다. 어느 날은 혈당을 집에서도 간단히 체크할 수 있는 작은 기계를 구입해 온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사용법을 설명해 주고 바로 손끝을 기계 끝에 달린 바늘로 찔러, 피를 시트지에 묻혀 혈당을 쟀는데, 그 수치는 무려 250이 넘었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하루에 한두 번은 공복에 혈당을 재야 한다고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설명을 해 주었다. 그러나 정인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고봉 흰밥을 매일 세 끼씩 드신다면 혈당 측정기가 있어봤자 소용이 을 거라고. 정인은 그런 생각만으로도  빠졌다. 참으로 아버님 건강을 과연 누가 책임질 수 있을지 눈앞이 깜깜했다.



책임의 소재는 이미 고봉 흰밥과 김치 한 사발로 하루 세 끼를 드시는 아버님 당신에게 는 것인가, 아버님 건강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지 못하고 방치한 가족들에게 있는 것인가. 시댁의 분위기는 고요하고 침울했다. 밖에서는 넘치는 에너지로 회식 분위기까지 몰아치 정인조차 시댁의 차가운 공기 더 가볍게 띄울 재간은 없었다.


   

그렇게 정인의 아버님은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날들이 길어졌고, 몇 달 후에는 보라매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차도가 좋아지게 하려고 집에서 멀리 있는 병원으로까지 이송하였지만, 아버님의 병세는 쉬이 호전되지 않았다. 정인은 아버님이 이뻐하시는 손주를 일부러 보여드리려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돌 지난 아들을 데리고 병문안을 갔다.  



“아버님, 저 왔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으세요?”

“이잉~, 아가 왔냐. 괜찮지 고럼. 으잉. 우리 이쁜 아그도 왔네. 바쁘구 힘든데 뭣허러 여그까징 왔.”     



아버님은 입으로 올라오는 가스를 뱉으며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다. 배는 남산만하게 불러 있었다. 정인이 아들을 임신했을 때처럼 아버님의 배는 그 안에 생명체라도 들어 있는 것마냥 자꾸만 딱딱하게 불러왔다. 복수 빼 또 차고 빼 또 차고 그러는 모양이었다. 아버님을 만난 건 이제 만 3년이 되어 가는데, 생각해 보면 시댁 식구 중에 가장 정감이 가는 사람은 아버님이었다. 고작 나눠봤자 10문장도 채 안 될 만큼의 형식적인 대화밖에 나눈 것이 없었는데도 아버님의 배가 딱딱해지는 것에 정인은 가슴이 아팠다. 사람의 마음이 참 묘한 것이 마음이라는 건 그냥 마음으로 전해지는 것이었다. 말로 형용하지 않아도 마음은 느낄 수 있는 거였다. 정인의 아버님은 정인을 이뻐했고, 정인의 아들을 이뻐했다. 정인의 아들이 똥을 뿌지직 싼 날, “른도 똥 한 번 싸믄 배고픈디, 요 쪼고만 것이 똥 싸믄 을매나 배고플꼬. 어서 묵으라. 꼭꼭 씹어 많이 묵어.” 하고 허허 웃으며 말씀하셨던 몇 달 전 얼마나 정다웠던가. 벌써 그날이 그리워졌다. 



그런데 모처럼 자식들이 모두 병원에 모인 어느 날, 병원 귀퉁이에서 삼남매가 오합지졸 모여 서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먼발치에서 보였다. 꽤 심각해 보였다. 이야기가 끝이 났는지 셋이 어색함을 흘리며 뿔뿔이 흩어졌다. 정인에게 다가오는 동욱. 정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동욱이 대답하길, 형제들이 의논해서 아버님한테 요양원에 가시는 게 어떠냐고 직접 여쭤봤다는 거였다. 그리고 아버님은 싫다고, 절대로 싫다고, 병원서 죽으면 죽었지 요양원에는 절대 안 들어가겠노라 굳은 입술로 당조짐을 하셨다고 했다. 정인은 며느리로서 이러한 중대한 문제 앞에서 존재 자체가 부정된 것이, 그러니까 논의하는 과정에서 배제된 것이 못내 섭섭했다. '며느리는 발언권도 없는 건가? 며느리는 자식도 아닌 건가?'



그러나 그보다도 이해가 안 되는 건 벌써 요양원 얘기를 꺼내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하는 거였다. 해가 안 됐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한 지는 석 달. 물론 길다면 길 수도 있는 기간이다. 돈이 없는 집안에서 불어나는 병원비를 감당하는 것벅찬 일일 수 있었다. 계산기가 몇 바퀴 돌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아니 아버지의 목숨 앞에서 계산기를 돌린 사람이 있다면 그게 자식인가? 아니면 자식들이 다들 맞벌이를 하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온전히 간병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어머니가 그 제안을 먼저 꺼낸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석 달 만에 그 흉흉하기로 소문난 요양원에 정신이 온전한 아버지를 보내자작당모의한 삼 남매를 정인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정인은 집에 오는 차 안에서 동욱에게 물었다.

“근데 누가 그런 생각을 낸 거야?”

“뭐?”

“아버님 요양원에 보내자고 누가 그런 거야.”

“글쎄.. 잘 모르겠는데.. 아버지한테 얘기한 건 형이긴 한데.”

“와, 자기는 자식들이 부모님 문제로 의논하는 자리에 있었는데도 상황을 몰라?"

"내가 늦게 도착해서 이미 얘기가 끝나 있는 거 같더라구."

"그럼 자기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나? 그러게. 난 생각을 안 해 봐서..”

“그럼 그냥 멀뚱히 옆에 서 있기만  거야? 아까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던 거고?”

“어...”

“참나, 아니 자기 형이랑 누나는 왜 그렇게 자기를 애기 취급해? 자기는 아직도 애기야? 의사 결정은 다 형이랑 누나가 하고 자기는 그냥 따르기만 하게? 진짜 아후.. 답답하다. 답답해. 어머니가 힘드셔서 그런 거야 뭐야. 아버님을 왜 요양원에 보내, 보내기를. 간병인을 써서라도 간호해 드려야지. 그리고 자식들이 그렇게 시간을 못 내?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와서 간병해 드리면 어머님도 덜 힘드시고 그럴 거 아냐. 자식들이 어쩌면 며느리인 나보다도 그렇게 성의가 없을까. 난 애 친정에 맡기고라도 가서 잠깐씩 교대해 드리잖아...... 난 솔직히 너무 이해 안 돼.”

“아휴. 나도 잘 모르겠다. 형이랑 누나랑 형수도 다 바쁘고 나도 시간 내기 어렵고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 참, 말이 너무 쉽다. 시간은 자식들한테만 없는 게 아니고 부모님한테는 더 없는 거예요. <수욕정이풍부지 자욕양이친부대>라는 말도 모르나. 그렇게들 마음속에 孝자 하나가 없는 걸까.'


정인은 무정하고 무심하고 무념하고 온갖 나쁜 無들로 무장한 것만 같은 시(媤) 남매들에게 알 수 없는 몰이해를 느끼고 있었다. 자식들한테 그런 말을 듣고 가슴에 비수가 꽂혔을 아버님이 걱정이 되었다. 아픈 것만으로도 서러울 아버님의 가슴속에 무정하고 무심한 자식들이 또로록 굴러와 돌팔매질을 해대었으니, 딱딱한 그 뱃속의 실핏줄이 얼마나 많이 터졌을까. 얼마나 심장이 찢어지듯 아프셨을까. 육십 셋밖에 안 되신 연세에 아픈 몸이 되어 마누라와 자식들에게 버림받는다고 느끼는 건 상상만 해도 얼마나 외로운 일일지, 생각만 해도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정인의 마음에는 어느덧 돌덩이가 하나 들어앉아 있었다. 아버님의 외로움과 비참한 마음이 전이된 듯, 병원에 찾아가는 정인의 두 발 위에도 돌덩이가 하나씩 올려져 있었다. 그해 가을, 햇볕이 따뜻한 토요일 오후 12시, 정인은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어머니와 교대를 해드리기로 했다. 마실 음료와 바나나를 사가지고 병원 가는 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뭐 사갈 것이 있는지 여쭈었다. 어머니는 기저귀가 떨어졌으니 대형 기저귀를 사 오라고 했다. 정인은 병원 편의점에 다시 들 대형 기저귀를 사들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어머니, 피곤하시죠~. 집에 가셔서 식사도 하시고 좀 쉬시고 오세요. 제가 있을게요.”

“그랴. 그람 니가 좀 있어라. 나도 너무 힘등께. 쫌 쉬고 와야 쓰겄다.”

“네, 어머니, 많이 쉬고 오세요. 오늘 날씨도 화창하고 너무 좋네요. 햇빛도 좀 쪼이시고 식사도 잘 드시구요.”

“알었다. (근디 바나나는 쫌씩 주어라).”

“네? 어머니, 뭐라구요?”     



어머니가 정인의 귀에 대고 조그맣게 속삭이는 바람에 정인은 알아듣지 못했다. 바나나를 어쩌라고?    


 

“아아니~~. 바나나를 하나 다 주지 말공 반만 주라고. 바나나 한나만 먹어도 똥을 많이 싸닝께.”     

어머니는 여전히 정인의 귀에다 바짝 입을 대고 소곤소곤하는 말로 바나나를 많이 주면 안 된다고 씨부리고 있었다. (((((헉))))) 정인은 소곤거리는 망치로 귀싸대기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귀가 얼얼했다. 솜방망이 망치였고 그저 목소리였을 뿐인데도 얼굴이 뺨이 화끈거렸다. ‘내가 지금 맞게 들은 건가?’ 정인은 귀를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귀는 들은 말을 도로 뱉을 능력이 없었다. 조선의 영조처럼 귀를 씻어낸다 해도 이미 들은 말을 씻어낼 도리가 없었다. 정인은 온몸에 힘이 빠지고 무력해짐을 느꼈다. 어머니는 그렇게 말을 해 놓고 보조 배드에 미리 꺼내 놓은 겉옷을 주워 입은 후, 쪼매 쉬다 오겠노라며 누군가에게 쫓기듯 병실을 빠져나갔다. 아버님에게는 아무런 인사 한 마디도 없이 그렇게 황급하게.



정인은 아버님이 가여웠다. 먹고 싶은 만큼도 잡수시지 못하고 계셨구나. 바나나도 하나를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정인아버님의 딱딱한 배 양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아버님의 투박한 두 손을 제 손으로 한 번 쓰다듬었다.



“아버님, 식사하셨어요?”

“아니, 배가 불러서 못 묵어.”

“배가 불러서 식사를 못 하신 거예요? 그러면 바나나 조금 드릴까요?”

“아니, 괜찮여. 배가 불러서 못 묵어. 오느라 힘든디 그기 좀 앉어서 쉬어라.”

“네, 아버님.”     



정인은 6인실 병실을 가만히 둘러보았다. 간호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듯했다. 어디를 갔다 오는 사람도 있었고 보조 배드에서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보조 배드에 누웠다 시중을 들었다 하는 간병인도 있었다. 자기만 혼자 며느리로서 앉아 있음을 인지하며, 그래도 자기가 아버님을 간호할 수 있는 날이 많아지면 요양원 얘기는 다시 안 나오겠지 했다. 그때 갑자기 구수한 냄새가 났다. 아버님이 똥을 싸셨다는 걸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깜짝 놀란 정인은 간호사를 부르러 달려갔다. 그러나 간호사는 알아서 하라며 시트를 한 장 주었다. 간호사는 간병인이 아니었다. 사실을 깜박했다. 아버님은 환자고 정인은 지금 간병을 하러 온 거였다. 아버님이 기저귀를 차고 누워 계신다는 사실조차 1시간 전에 알았던 걸 정인은 다시 깨달았다. 아버님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은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이었다. 그런데도 정인은 고민이 됐다. ‘기저귀를 어떻게 갈지? 갈다가 아버님의 성기를 보게 되면? 아버님이 수치스러워하시면 어쩌지? 어떡해야 하나. 누구한테 부탁을 해야 하나, 내가 그냥 해야 하나. 아버님한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물어볼까? 아니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해 드릴까?’ 병실로 들어가는 1분 동안 정인의 전전두엽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대신 불안과 공포에 민감한 편도체만이 활성화되고 있었다. 그러나 병실에 도착하자마자 정인은 심플하게 않게 말했다.



“아버님, 제가 기저귀 갈아 드릴게요.”

“잉.”

아버님은 정인의 걱정처럼 수치스러움을 느끼지는 않은 듯 부드럽게 대답하셨다.      



정인은 이제 역할극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버님은 환자고, 나는 간병인이다. 간병인은 제가 맡은 일을 할 뿐이다. 친절하고 상냥하게.' 정인은 디귿 자로 커튼을 치고 환자의 몸을 모로 돌리게 도와드린 뒤, 흰 시트를 환자의 몸 밑에 깔고 환자의 바지를 내리고 기저귀를 풀었다. 방귀에 딸려서 나온 변은 바나나처럼 노랗고 무른 황금색 변이었다. 구수한 냄새가 더욱 진동했다. 정인은 물티슈로 환자의 엉덩이와 엉덩이 사이를 먼저 깊숙이, 그리고 꼼꼼히 닦았다. 정인은 처음 해 보는 일이었지만 간병인처럼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환자를 똑바로 눕힌 후 성기의 위아래도 시원하게 깨끗이 닦았다. 환자복 속 기저귀 안이 더웠는지 고환 두 개가 늘어져 있었다. 고환이나 성기가 자기 남편의 것보다도 큰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아버님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고 창피해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환자로서 침상에 누워 계실 뿐이었다.



능숙하지 못해 어설프게 하긴 했지만, 아들의 기저귀를 하루에 몇 개씩 갈아치우고 있는 상황에아버님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일은 그저 기저귀와 똥의 사이즈만 차이가 날 뿐 그다지 고된 일은 아니었다.

아버님의 증세가 어느새 이렇게 악화되었는지, 너무 들은 게 없었던 정인은 하늘이 무심하다 느낄 뿐이었다. 아버님은 착하고 순한 아기인 동시에 작은 며느리를 마음으로 이뻐해 주는 시아버지였다. 다만 더 이상 먹을 힘이 없으셨고 누군가에게 힘을 실어 줄 여력이 없으셨다. 가여운 시아버지 앞에서 며느리로 돌아온 정인은 다시금 물었다.      



“아버님, 이제 바나나 하나 드릴까요?”

“바나나? 잉, 그럼 조금만 주어 봐.”     



정인은 아버님이 예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똥을 한 번 누면 얼마나 배가 고파지냐고. ‘그래요, 아버님, 아버님 지금 똥 한 번 누셨으니 배가 쑥 들어가셨잖아요. 이제 바나나 하나 드릴게요.’ 정인은 바나나 껍질을 예쁘게 까서 조금씩 잘라 아버님 입에 넣어 드렸다. 아버님은 맨 잇몸으로 바나나를 오물오물 드셨다. 반쯤 드셨을 때 트림이 올라왔다. 끄억. 그러더니 곧 다시 방귀가 나왔다. 부웅 방귀 소리와 함께 부지직 소리도 함께. 정인은 깜짝 놀랐다. 금방 기저귀를 갈았는데 잠시 앉을 새도 없이 다시 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놀라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당황하진 않았다. 그저 아버님이 무안해하실 것만 걱정이 되었다. 정인은 아버님이 무안해하시지 않도록 친절한 손놀림으로 다시 한번 기저귀를 갈아드렸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지만 정인은 아버님께 최선의 노력을 다 해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안했다. 그리고 아버님 옆에 그렇게 오래도록 앉아있는 것이 좋았다.      



어머니는 여섯 시간 후에 오셨고 정인에게 기저귀를 갈아드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정인은 오히려 그게 놀라웠다. “잘했다” 하고 한 마디 던지는 그 말씀이 정인을 며느리로 생각하지 않으시는 건가, 정인은 그저 간병인으로서의 역할만 수행한 것인가, 간병인으로 있었던 것이 맞는데도 이상하게 이해되지 않는 감정이 들었다.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어머니로부터 잘했다는 말을 듣는 것이 왜 그렇게 크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정인은 알 수 없었다.            



정인은 친정에 돌아가서도 친정엄마한테 말하지 않았고 집에 가서 남편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 이야기는 정인의 마음속에서 오래오래 묵혀져 아버님과의 마지막 추억으로 남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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