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신혼살림을 차리기 전, 정인과 동욱은 둘이 살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동욱의 어머니도 함께였다. 정인과 동욱의 본가는 1km밖에 안 되는 지척이어서 신혼집으로 점찍은 아파트도 그 동네 어귀였다.
18평, 복도식 아파트, 전세 4800만 원, 그중 동욱이 모은 돈 2000만 원을 뺀 나머지 2800만 원은 고스란히 대출금이었다. 동욱이 몰던 하얀 산타페는 할부도 20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스무 살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살았던 정인은 으레 같이 갚아주리라 했다. 남편감의 조건으로 바라본 건 '정직과 성실' 단 두 가지였으니, 돈이 없는 것 정도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뭐 돈이야 벌면 되는 거니까.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아르바이트로 돈 벌어 학비와 생활비, 고시원비를 충당했던 정인은 대학 4학년 때부터 학원 강사 파트타임으로 일하면서 점점 잔뼈가 굵어져 결혼자금까지 손수 다 장만하고도 남았으니 말이다.
아무튼 정인은 예비 시어머니를 대동하여 예비 신혼집을 둘러보고 있었다. 둘러본다 해 봤자 아주 작은 씽크대와 화장실, 작은 방, 그리고 큰 방 하나, 긴 베란다가 다였지만. 그런데 정인이 베란다 미닫이 문을 잡고 문지방에 서서 통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아~ 좋다!!” 하고 감탄사를 뱉고 있던 찰나, 순간적으로 베란다로 툭 떨어지고 말았다. 어느새 정인의 등뒤로 다가와 있던 동욱의 어머니가 “야아~ 그러지 말고, 좀 제대로 봐아~~.” 하면서 정인의 등을 밀었던 것이다. 등을 떠밀린 정인의 두 발바닥이 속수무책으로 베란다 바닥으로 떨어진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등을 떠밀린다는 건 이런 기분인 거구나. 정인은 얼떨떨하면서도 너무 당황스러워 놀람이나 분노보다 눈치 없는 웃음이 하하 하고 먼저 나왔다.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한 정인과 달리, 정인의 예비 시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일처럼, 아니 그냥 흔히 있을 수 있는 예삿일처럼 “야야, 찬찬히 잘 좀 봐~.” 하며 자꾸 뭘 보라고 씨부렸다. 진짜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는데 뭘 더 보라는 것인지, 속으로 짜증이 나고 불쾌해졌다. 집에서 공주처럼 자란 건 아니었어도 부모에게 그렇게 함부로 등을 떠밀린 적은 없었는데, 기분이 오묘하고 더러웠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정인은 동욱에게 잔소리를 바가지로 퍼부었다. “아니, 그냥 말로 하시지, 왜 몸을 막 미셔!!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장차 며느리가 될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대하실 수가 있는 건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머리는 빡돌기만 할 뿐 이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동욱은 그렇게 결혼을 하기 전부터도 꿀 먹은 벙어리였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두 눈만 끔벅끔벅. '너무 사소한 문제라서 문제라고도 할 수 없는 건가, 내가 이해심이 없는 건가.' 정인은 혼자만 속으로 불이 났다. 그래도 처음 인사를 갔던 날을 떠올리면 어머니는 매우 다소곳하신 분이었지 않나, 이건 일종의 실수인 거겠지.
결혼을 하고 정인은 동욱과 함께 지척의 시댁을 주말마다 갔고 가끔씩 어머니의 청에 잠도 잤다. 어머니는 음식 솜씨 좋다는 전라도 분답게 만드는 반찬마다 간이 딱딱 맞았고 음식은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할 정도로 입맛을 돋구었다. 낯선 집이었지만 밥도 해주시고 설거지도 하지 말라 하시니 편히 머물 수 있었다. 친정집보다 대우를 받는 것 같은 느낌에, 정인은 시집가면 시댁 부모님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할 거라던 어르신 분들의 말이 맞긴 맞는구나 했다. 한동안 행복했다.
그러나 복병은 남몰래 숨죽이고 바짝 엎드려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어머니의 행동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자식들 입에 먹는 것을 하나라도 더 넣어주기를 바라셨는데 그것 자체를 놓고 보면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자식들이 이제 그만 먹고 싶다고 말해도 “아니이~~, 아니이~~, 먹어어어~~, 먹으라고옹~~, 왜, 맛이 없씨야? 아, 긍게, 맛이 없어서 안 먹는구나~~.”하고 토라지는 시늉을 하는 거였다. 아들들한테도 그랬고, 정인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형님이나 누나(형님), 시매부에게는 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려서 하는 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들들이나 갓 며느리가 된 정인은 “알았어요. 먹을게요.”하고 어쩔 수 없이 한 두 점은 받아먹었다. 그러나 해가 가도 특히, 명절만 되면 어깨를 흔들며 부추기는 “아니이~, 아니이~~”하는 아양 아닌 아양은 자식들과 며느리의 심기를 점점 불편하게 했다. 심지어 큰아들은 굵은 목소리로 “이제 쫌!! 그만 좀 해!!”하면서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그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쳐다보며 정인과 동욱은 가슴이 졸아들었지만, 정인은 속으로 통쾌했다. 굵직한 똥을 한 방에 눈 것마냥 시원했다. 어머니가 이제는 조심하겠지 했다. 그러나 그건 그때뿐이었다. 좀처럼 자식들 입에 떡 하나라도 집어넣으려는 집념과 집착은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정인은 얼마나 지난날 못 드시고 살았으면 그렇게 음식에 집착을 하실까 싶은 마음에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주는데 산 사람 소원 못 들어주겠나 하고 어머니에게 맞춰주기 일쑤였지만, 이상했던 건 “어머니도 좀 드세요.”하면 “아니! 난 안 묵어. 다 먹었씨야.”하고 딱 잘라 말하면서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똥구멍처럼 만드는 모습에 있었다. 자식들이 싫다 싫다 해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는 것도, 본인이 싫으면 절대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것도 정인이 보기엔 정도가 지나친 집착과 냉정의 극단적 행태라고나 할까.
정인이 결혼한 지 3년이 지나고 첫째 아들이 태어났을 때, 아니 그 전부터 정인의 시아버지는 점점 앓기 시작했다. 정인은 시아버지에게 당뇨가 있다는 걸 결혼 2년 만에 처음 알게 된 것도 이상했지만 더 이상한 건 자식들과 시어머니가 당뇨인 시아버지를 위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시댁에 갔던 어느 날, 정인은 엄청 놀라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아버님의 밥상을 따로 들고 안방에 들어가셨는데 (사실 밥상이 아니라 큰 쟁반이었다.) 그 밥상 위에는 가장 큰 라면기에 고봉으로 쌓아 올린 흰 밥과 그 옆에 수북하게 쌓인 김치 한 사발만이 올려져 있었다. 헉! 정인은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아니, 아버님 당뇨 있으시다며... 당뇨병 환자한테 저렇게 많은 흰밥을 준다고? 그것도 흰밥이랑 김치만?’ 경악했다. 등이 구겨지는 느낌이었다. 눈에 보인 이 사태도 믿을 수 없었고 그 가족들 전체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씌었는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떤 물컹거리는 실체가 손에 잡히지 않고 미끄덩거리며 빠져나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느낌이었다. 정인의 머릿속, 자식들의 밥상 위, 구석진 주방, 아버님이 드시고 계실 그 고봉밥 위, 어머님의 두 눈초리 안, 같은 공간에 앉아있는 시댁 가족들 사이사이.
집으로 돌아와 정인은 동욱에게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떻게 당뇨 있으신 아버님한테 흰밥을 그렇게 많이 드릴 수 있어? 자기는 알고 있었어?”
“어? 어... 그러게.”
“아니,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게 왜 어머니가 그렇게 하시는 걸 자식들이 가만 둬? 당뇨병 환자한테 흰밥은 안 된다는 거, 탄수화물 그렇게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거, 합병증 위험한 거, 다들 몰라? 그리고 왜 아버님은 그렇게 밥을 따로 드려? 여태까지 그렇게 계속 드려왔던 거야? 나한테 안 보이게 숨기고?”
“…….”
“내가 얘기할까? 어머니한테? 그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셋이나 있는 자식들이 그렇게 말 못 하는 거면 내가 얘기해 줘?”
“아니야, 하지 마.”
“왜 하지 말라고만 하는데~. 그럼 자기가 하든가~. 잘못된 걸 눈앞에 보면서도 가만히 냅두는 게 더 나쁜 거 아닌가? 난 이해가 안 돼. 이 문제.”
“…….”
동욱과의 대화는 또 그렇게 말줄임표로 끊어졌다. ‘도대체 무슨 대책이 없어. 가족들이. 그러고 아버님 점점 편찮아지시면 누가 책임질 건데! 슬퍼하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이 돼? 나중에 슬퍼지기 전에 미리 잘해야 할 거 아니야.’ 정인은 속상했다.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아니 어쩌면 이 집안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 그걸 다 모르는 척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이했다. 그러나 기이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