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정인은 그날 그렇게 자기가 순전한 마음으로 간병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버님의 느릿느릿한 행동과 맑고도 멍한 눈동자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버님이 밥 잘 드시고 힘이 나서 어서 일어나 두 다리로 걸으실 날이 빨리 왔으면 했다. 구슬픈 눈동자가 더 슬퍼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 정인의 편이 아니었다. 정인의 아버님은 갑자기 중환자실로 올라가셨고 면회 시간을 기다려 한 명씩 들어가 아버님 얼굴을 뵈었지만, 아버님은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천정만 바라보고 계셨다.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고 그렇게 보름이 지나고 나서야 다시 일반 병실로 돌아오셨다. 정인은 일반 병실로 돌아왔다는 건 몸과 정신의 회복을 의미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아버님의 얼굴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고 가족들은 원래 없던 말이 더 없어졌다. 정인의 시어머니와 아주버님은 번갈아가며 간호사를 찾아가 병원비를 자꾸 물었다. 정인은 아무것도 도울 것이 없는 자신의 처지가 들판 위의 허수아비인 것만 같아 씁쓸했다.
아버님은 말이 없었고 움직임도 없어졌다. 그리고 투박한 두 손과 발은 색이 점점 짙어져 갔다. 당뇨병은 합병증 때문에 심하면 손이나 발을 자를 수도 있다던데, 아버님한테도 설마 그런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정인은 마음이 불안했다. 아버님의 시선이 자꾸 천정만을 향해 있는 것이,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것도 찾지 않는 것이 걱정스러웠다. 사람이 살려면 살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야 사는 법일 텐데, 아버님 몸을 흔들고 억지로 의욕을 불러 일으켜서라도 살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조급한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오는 걸 정인은 꾹꾹 짓누르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형제들도 아무 할 일을 찾지 못해 먼 산만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갔고 무거운 공기는 병실 커튼 안의 적막을 잠재우고 있었다. 무어라 울부짖을 수도 없고, 누굴 붙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그랬다. 아무도 얘기해 주지 않았지만 더 이상은 아무것도 손 쓸 수가 없다는 걸 이제는 정인도 인지할 수 있었다.
집에 와서 어린 아들과 놀아주면서도 정인은 침울했다. 동욱도 말이 없었고 그들의 침묵은 몇 날 며칠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초승달이 떴던 어느 날 새벽 전화가 울렸다. 예민한 동욱은 벨소리에 놀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였다. "아버님 가셨다." 단 한 마디 뒤로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고 몇 초 후 전화가 끊겼다. 동욱은 목이 막혔다. 참았던 눈물이 벌컥 났다. 끊긴 전화기를 식탁에 올려놓고 두 손으로 두 눈두덩이를 지그시 눌렀다. "왜! 무슨 일이야!" 비몽사몽 일어난 정인은 뒤늦게 사태를 파악했다.
"어머니한테 전화 왔어?"
"어."
눈물을 꿀꺽 삼키며 동욱이 간신히 대답했다.
"어떡해~~~~ 어어엉어엉~~~~ㅠㅠ 아버님 불쌍해서 어떡해에에~~~~엉어으으윽윽윽"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리는 동욱을 끌어안으며 정인은 대성통곡을 했다. 지금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지금 당장 오지는 말고 애기도 잘 테니 아침에 오라고 하셨다고 했다. 며칠 전에 어머니가 다니시는 교회 목사님이 오셔서 안수기도 해 주시고 예수님을 영접하겠느냐고 물으셨을 때, 아버님이 그러겠다고,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드리겠다고 대답하시는 모습을 옆에서 봤었는데, 아버님이 진짜 천국엘 가시려고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겠다고 하신 것 같아 정인은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렀다. 왜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아버님이 이렇게 빨리 천국에 가셔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예수님은 너무 가혹한 분이시구나 속으로 울부짖었다. 임신을 하고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던 정인에게 이것은 시험에 드는 일이었다. 예수님이든 하나님이든 천사의 마음을 갖고 있다면 아버님을 이렇게 빨리 데려가지는 말아야 했다. 너무 성급한 일이었다.
아침 일찍 아들을 친정에 맡기고 정인과 동욱은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그들이 어리바리 한 사이에 아주버님은 장례의 절차를 밟으며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었다. 임종을 지키지도 못하고 장례 의식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고 상복만 주는 대로 덜렁 입고 나올 수밖에 없는 자기들이 죄스럽다 느꼈다. 눈이 퉁퉁 부어올라 있는 아주버님과 형님의 모습은 엄숙했다. 행동이 어른스러웠다. 어머님은 아무런 감정이 없어 보였다. 그저 이래라저래라 할 뿐이었다. 살아생전 아무리 구박을 했어도 남편의 임종을 지킨 분은 오로지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겉으로는 저렇게 메말라 있어도 속으로는 많이 슬프시겠지, 많이 우셨겠지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어머니의 무표정은 마음에 걸렸다.
입관을 할 거라며, 모두들 지하로 내려오라고 했다. 그 사이 도착한 시누이와 시매부를 포함해 가족들은 모두 계단을 내려가 어느 공간으로 들어갔다. 아버님은 그곳 침대 위에 누워 계셨다. 그곳을 담당하시는 분이 가족들에게 아버님 얼굴을 한 번씩 들여다 보고 손도 잡아주라고 했다. 아주버님은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하면서도 두 눈에 눈물이 벌컥 솟았다. 시누이는 "아빠~~ 갑자기 이렇게 가시는 줄 알았으면... 손톱이라도 잘라줄 걸... 손톱도 이렇게 길고 이게 뭐야... 아빠... 미안해요. 죄송해요." 하면서 울었다. 코끝이 찡해 왔지만, 정인은 '그러게, 손톱 좀 진작 깎아드리지 그러셨어요.' 했다. 정인도 아버님을 가까이에서 바라보았다. 아버님은 두 눈을 감고 볼을 홀쭉하게 하고 계셨다. "아버님, 천국에 가셔서 편안하게 사세요. 그리울 거예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걸 이렇게 한 순간에 마감할 수 있는 건가. 영겁의 세월을 살 수는 없다 해도 이렇게 갑자기 두 눈을 감을 수 있는 건가. 아버님의 인생이 불쌍했다. 아버님은 어떤 인생을 사신 걸까. 들은 게 너무 없어서, 정인은 아버님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도 없는 이 시점에 불현듯 아버님의 인생이 궁금해졌다.
장례 의식의 시간도 순식간이었다. 모든 것이 절차에 의해 빠르게만 흘러갔다. 슬픔도 회한도 그리움도 어느새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이렇게 빨리 아버님을 보내 드릴 수 있는 건가.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지금 어떨까.
아버님의 시신은 화장을 하기로 결정되었다. 화장터에서 아버님의 시신이 뼛가루로 나오는 동안 밖에서 무료한 시간이 흘렀다. 그곳을 담당하는 분이 아버님의 뼛가루를 친절하게도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아버님의 얼굴과 살이 불에 태워졌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그것도 현실이었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흙이 되어 돌아간다는 말의 뜻을 알 것 같았다. 아버님은 납골당에 모셔졌고 가족들은 그곳에서 한참을 있다가 돌아왔다. 그러고 싶지 않았는데 어느새 눈물은 말라 있었다.
어머니댁으로 갔다. 어머니는 아버님의 물건을 다 태워야 한다면서 목소리를 쾅쾅 내며 소리를 질렀다. 깊은 한을 쏟아내듯, 살아 있던 아버님이 한 줌의 뼛가루가 되어 납골당에 모셔진 지가 몇 시간 지나지 않았건만, 어머니는 아버님의 모든 흔적과 자취를 한 시라도 빨리 치워야 한다고 모두에게 말하고 있었다. 정인은 어머니의 행동이 희한하고 무서웠다.
설거지 통에 설거지가 쌓여 있었다. 정인은 눈치껏 조용히 설거지를 시작했다. 왔다 갔다 하시던 어머니는 정인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야, 근디 너 왜 안 웃니?"
"네?"
정인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너는 잘 웃는 앤디, 왜 안 웃냐고."
"....................................."
정인은 경악하고야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