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정 Feb 21. 2024

2화

2화          



어머니의 전화는 전에 없이 끊임없이 그렇게 울려대고 있었다. 며느리 정인이 받을 때까지 징징거리며 울고 있겠다는 듯이.

      



정인의 시어머니는 그렇게 긴 신호음을 들으면서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정인이 핸드폰을 수화기 버튼을 드래그하고서 “여보세-” 하는 순간이면 이미 사라지고 없는 사람이었다. 성질이 급해 그런 건지 아니면 대방이 바쁠까 봐 배려하려 그런 건지 정인은 처음엔 잘 알지 못했다. 이미지가 온화해 보이고 조곤조곤 하는 말투에 미루어 보면 후자 쪽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행동이 열 번, 스무 번 반복되니  저절로 알게 되었다. 전화를 걸고 뚝 끊어버리는 행위는 <니가 전화해>라는 말과 맞바꾼 거라는 걸.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 정도는 넉넉히 감지할 수 있었. 그건 결혼 후로부터 18년 동안 계속되었으니까.      



그런데도 정인은 단 한 번도 그 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 왜 그렇게 전화를 빨리 끊으세요~?” 라거나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제가 받았을 텐데요~.” 하는 말은 굳이 하지 않았다. 입 안 언저리에서만 뱅글뱅글 돌리다 목구멍 뒤로 꿀꺽 넘겼다. ‘아, 또 그러시네!’ 속으로 꿍시렁 대 봤자 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돈이 없었고 통화 시간에 비례해서 부과되는 핸드폰 요금을 낼 여유가 없었다. 결혼한 직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동욱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너무 빈약했으니... 자식들이 용돈을 주지 않으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정인은 보고도 못본 척, 알고도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 이해는 했다. 어머니의 입장이나 형편은 알겠다. 그런데 꼭 그런 방식으로 전화를 해야 하는 건가? 차라리 정인이 전화를 받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통화가 연결되면, 당신 휴대폰으로는 요금이 많이 나오니 니가 전화를 걸어 주겠냐고 말해 줄 수는 없는 건가? 어차피 정인은 “어머니, 제 전화는 통화가 완전 무료여서 오래 통화해도 추가 요금이 없어요.”라고 일전에 얘기를 했으니 말이다. 그렇게까지 어머니 입장을 먼저 배려한 며느리의 성의는 알아봐 줘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정인은 답답했고 속이 뒤틀렸다. 왜 자기는 바른 소리를 못하는지, 왜 어머니는 남의 불편을 모르시는지, 왜 동욱은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 않는지, 왜 다른 자식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건지, 다 다들 똑같이 뒷짐만 지고 불구덩이 근처만 왔다갔다 하고는 불을 끌 생각이 없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인은 이 사소한 문제 하나를 가지고도 한 시간을 얘기할 수 있었다. 왜 어머니는 남을 배려하지 않는 거냐고, 그렇게 하는 행동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는 걸 진짜 모르시는 거냐고, 배려 없는 행동이 비단 이 문제뿐이냐고, 정인은 터지는 봇물처럼 쏟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동욱은 쏟아지는 봇물을 차마 다 받쳐 낼 수 있는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아주 작은 종지조차도 없었다. 쏟아지는 것이 햇살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정인의 입에서 쏟아지는 것은 봇물이었으니 철철 넘치는 그 물은 미처 받아낼 겨를도 없이 흐르고 넘쳐 정인과 동욱 사이를 가르는 강이 되었다. 방안 가득 차오른 강 건너 어정쩡하게 서 있는 동욱은 말이 없었다.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보라고 정인이 닦달하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동욱은 입을 더 꿰매고 있었다. 입은 할 말을 잃고 무슨 말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동욱이 눈만 사정없이 끔뻑끔뻑거리는 걸 보면 정인은 더 화가 솟구쳤다. 목구멍에 얹혀 있는 고구마 백 개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위안도 해결도 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무력한 허수아비 같았다. 어머니의 문제는 하나나 둘 정도가 아니었고 이제는 걷잡을 수 없이 많고도 깊어져 화두에 오르는 날은 부부싸움의 소재가 되었고 그렇게 정인의 입에서 터져 나온 봇물은 칼로 벨 수 없는 강물이 되어 한동안 먹구름 아래로 깊어져만 갔다. 그러기를 벌써 20년 째다.           




두세 번의 신호 안에 끊겨야 했을 어머니의 전화 울음은 웬일인지 그칠 줄을 몰랐다.  그리 말하고 싶으셔서 그러는 건지. 정인은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차가운 얼굴에서 콧방귀만 나왔다. 전화를 다시 거는 행동을 이제는 하지 않을 거라고 손도장을 꾹꾹 누르며 다짐했다. 찜찜했지만 그걸 견뎌야 했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었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불편하다면 굳이 연락을 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진짜요?” 정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었다. “정말이에요? 연락을 진짜 안 해도 되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한테 허락받는 초등학생마냥 정인은 큰 소리로 외쳤었다. 상담 선생님은 놀라는 정인과 딴판으로 무덤덤하게 대답했었다. “그럼요. 그렇게 불편하게 생각되는 상대라면 꼭 지인이 아니고 가족이라도 연락을 끊을 수 있는 거지요. 그리고 전화를 받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에요.”      



정인은 흔들렸다. 전화를 하지 않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받는 것도 안 한다? 다시 걸지도 않고? 진짜 그래도 되는 건가? 마음에 돌덩이가 무겁게 깔렸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오히려 정인보다 단호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쩌면 그동안 단호하지 못하고 자신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본인이 문제를 키운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은 이런 얘기도 했다. 시어머니와 연락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남편이 수긍만 한다면 괜찮다고 말이다. 정인은 마음을 가다듬었었다. “선생님, 사실 남편은 이미 수긍했어요. 제가 어머니한테 전화로 솔직한 심정을 다 털어놓는 것보다는 차라리 아무 얘기를 안 하는 게 낫다구요. 그냥 연락을 하지도 말고, 받지도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구요.” 상담 선생님은 그러면 된 거라고 했다. 남편도 그런 상황을 다 이해하고 있고 수긍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거라고. 이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됐다. 그렇구나. 어머니 전화를 거부해도, 찾아가지 않아도 나쁜 며느리가 되는 건 아니구나.




불과 얼마 전 이런 얘기를 듣고 안심했는데 2년 만 시어머니 전화가 정인을 찾아왔다. 정인은 정말 세상일의 우연과 필연은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이미 다잡았었지만, 잠재웠던 불안 버튼이 눌리는 순간 속이 다시 울렁거리게 된 것은 우연이자 필연이었다.



어떤 것이 최선의 방법일지 정인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2년 전에 이미 어머니를 마음으로부터 밀어냈는데 밀려난 어머니가 저벅저벅 다시 걸어오고 있다. 결혼으로 맺어진 가족 관계지만 정인은 진심으로 그 걸음을 마중하고 싶지 않다.      



저녁 8시 40분쯤 시어머니한테 또 전화가 왔고 정인은 다시 한번 받지 않았다. 다시 걸지도 않았다. 이제는 속이 울렁이는 데 그치지 않고 편두통이 따라왔다. 정인은 핸드폰을 엎어 놓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남편 동욱이 푹 꺼진 두 눈을 하고 11시 5분 전 안방 문을 슬며시 열고 들어왔다. “나 왔어~~.” 어슴푸레 선잠이 들었던 정인이 무겁게 눈꺼풀을 열었다. “어. 왔어?” 센 약을 먹고 흐물거리며 정인은 어머니의 끈질긴 전화를 떠올렸다. 빼빼 마른 동욱은 밤늦게 먹는 음식은 속을 부대끼게 한다며, 뭐라도 먹으라는 정인의 말을 한사코 거절했다.      



“자기야, 오늘 어머니한테 전화 왔었어. 낮에는 한 번 받았는데 그다음에 온 전화는 안 받았어.”     

“어~. 엄마한테 전화 왔었어. 들었어. 얘기.”     

“내가 전화 안 받는다고 뭐라고는 안 하셔?”     

“어어~~. 안 받는다고 하시더라. 예전에는 다시 전화 걸더니 이제는 안 한다고.”     

“그래서 뭐라고 했어?”     

“바빠서 그렇다고, 자꾸 전화하지 마시라고 했어.”     

“아니 내가 바쁘다니~. 지금 내가 왜 바빠. 아파서 집에 있는데. 자기야, 지금 내가 전화를 안 받는 건 일부러 안 받는 거잖아. 바쁘다고 말하면 그건 핑계지. 난 핑계를 대고 싶은 게 아니야. 몰라? 그렇게 얘길 많이 했는데도 모르는 거야? 그럼 내가 안 바빠지면 전화를 해야 되는 거잖아. 자기가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하면 내가 어머니한테 그냥 다 솔직하게 말할 거야. ”     

“아, 내가 또 생각을 짧게 했네. 미안. 아니야, 엄마한테 내가 잘 얘기할게.”     

“뭐라고 할 건데? 정인이가 엄마 전화받는 게 힘들대요.라고 말할 수 있어?”     

“……. 뭐, 그렇게는 못 하지만 그냥 전화하지 마시라고 할게.”     

“그냥? 어떻게 그냥이라고 해. 그냥이 말이 돼?”     

동욱은 또 말이 없었다. 마무리는 흐지부지하고 기분은 텁텁했다. 방 공기도 같이 텁텁했다.



남편 동욱과는 대화가 잘 되지 않았다. 일상적인 대화는 이제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시댁 일이 불거질 때면 언제나 동욱은 제 편이 아니게 되었다. 내 편이냐 시어머니 편이냐를 두고 몇 년을 실랑이했던 신혼 초로 다시 돌아가는 형국이었다.

이전 02화 1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