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동욱에게 이혼이라는 단어가 청천벽력처럼 떨어졌다. 갑자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니! 추호도,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이혼이라니! 동욱은 그저 어리둥절했고, 무엇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전혀 감지해 낼 수도 없었다.
아래 귀퉁이가 물에 다 해져서 흉측해진 화장실 문이 반쯤 열린 채로, 동욱이 네모난 거울을 들여다 보며 양치질을 하고 서있는데, 정인이 화장실 밖에서 고함을 치듯 말했다.
"우리 상담 받으러 가는 거 어때?!"
"어?"
"자기랑 나랑 둘이 아무리 얘기해 봐야 대책이 안 나오고 맨날 챗바퀴만 돌고 앉아 있으니까, 상담 선생님한테 해답을 듣는 게 어떠냐고! 아무래도 그런 전문가들은 시원하게 잘못된 게 뭔지 알려줄 거 아니야!"
"어~. 어, 그래. 그렇게 하자."
동욱은 그 무엇도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었다. 정인이 하자고 하면 하는 거고, 하지 말라면 안 하는 게 여태까지 살아온 경험으로 보면 상책이었다. 말대꾸해 봤자 소용없고, 혹여 생각해 보겠다고 답했다가는 금방 물과 기름처럼 동떨어진 존재들이 되고 말 터였다. 그렇게 하자고 동욱이 답하자마자, 정인은 탁상 달력을 들여다 보며 바로 날짜를 잡았다. 6월 30일 어때! 어, 알았어. 순식간에 처리가 되었다.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동사무소 직원들의 일처리 속도보다 한 3배는 빠른 것 같았다.
그러나 정인은 결정하는 속도만큼이나 계획을 변경하는 속도도 빨랐으니.
"아니, 근데, 근데 말이야. 상담이 효과가 있을까?"
"어?"
"자기가 나하고 있을 때도 속마음을 말 안 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 앞에 간다고 한들 거기서 속마음이 술술 나오겠냐고."
"……."
양치질을 토네이도처럼 여러 바퀴 돌린 후에 엉거주춤하며 나오는 동욱을 향해 정인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의심을 섞어 한숨을 뿜어대고 있었다. 어쩌라는 거지? 동욱은 어질어질했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움찔.
"말해 봐. 거기 가면 나한테 못했던 말 할 수 있어? 속마음, 자기 생각 이런 거, 나랑 소통이 잘 안 되는 그런 문제, 아니면 다른 것들, 암튼 어떤 것들이라도 상담사가 묻는 말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겠느냐고."
"글쎄……."
"그치. 거 봐. 또 글쎄지. 맨날 글쎄, 맨날 몰라, 모르겠어. 모르겠네. 아는 말이 글쎄랑 몰라밖에 없지. 휴. 휴우우우. 아휴……!!"
"……."
정인은 안 되겠다고 했다. 상담하러 가봤자 꿰맨 입이 갑자기 터질 리 없고, 결국은 더 답답해지거나 돈만 버리고 오거나 오히려 사이가 더 틀어질 지도 모르니 그냥 정인이 상담사가 되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정인이 '나 대화법'으로 상담을 진행하면서 감정이나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겠다고 했다. 동욱은 알았다고 했다. 동욱이 생각해도 상담센터에 간다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머리 속에서 뱅뱅 돌다가 결국 사라져버리거나 그냥 찰리 브라운 머릿속 뭉태기처럼 자기 머릿속 생각도 뭉쳐 버리고 마는 건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냥 정인이 하라는 대로 따라해 보기로 했다.
그 이후부터 정인은 일 주일에 한 번 날을 잡고 대화를 시도했다. 먼저 제 1탄은 자기 마음 터놓기였다.
"나 이런 것 때문에 오늘 속상했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 내가 먼저 해 볼게. 들어 봐. 오늘 낮에 정국이랑 놀이터에 갔는데, 정국이가 그네를 타고 싶어서 그네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어. 나는 벤치에 앉아서 지켜보고 있었지. 근데 그네를 타는 애가 너무 오래 타는 거야. 보통은 누가 기다리고 있으면 조금 타고 양보하잖아. 걔 엄마는 옆에 있으면서도 양보하라고 말도 안 하고 그냥 계속 타게 하고 있고. 내가 가서 좀 양보 좀 하는 게 어떠냐고 말할까 하다가 참고 있었거든. 근데 그렇게 10분 정도 타고서 그 애가 내렸어. 그래서 우리 정국이가 타려고 하는데 옆자리 그네에 타고 있던 애가 후다닥 내리더니, 지가 이쪽 걸 타겠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저쪽 그네 옆에서 기다리던 애는 그 옆 그네를 집어 탔어. 후아참. 그니까 우리 정국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옆으로 비껴났어. 진짜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하던지. 우리 정국이는 그런 상황에서 자기 주장을 못 해. 내가 여태까지 이 그네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내 차례라고 딱 부러지게 말을 못하고, 자꾸 그런 식으로 당한다고. 그게 나는 너무 속상해."
이렇게 말하라고 했다. 그리고 바통은 동욱에게 전달되었다. 동욱은 바통은 받았지만, 달릴 수 없었다. 그저 받는 것까지만 가능했다. 정인은 일단 이런 식으로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하고 감정도 섞어서 표현하는 걸 꼭 해야 한다고 했다. 동욱은 일단은 알았다고, 앞으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으로, 동욱은 대답을 잘 하지 않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다. 이런 걸 버릇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말하고 있는 당사자인 정인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은 아주 고역이었다. 정인은 자기가 너무 말이 많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 얘기가 너무 재미없어서 아니면 지루해서 그런 건지, 동욱이 아무 대답을 안 하고 있으면 답답해서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정인은 다그쳤다.
"자기, 지금 내 말 들었어?"
"어, 들었는데?"
"근데 왜 대답 안 해?"
"……."
"내가 뭐라고 했는데?"
"정국이가 앵그리버드 게임을 무서워한다고 했잖아."
"들었으면서 왜 아무 말도 안 해?"
"어... 알았어."
"알긴 뭘 알아. 알았으면 중간중간 대답을 하면서 맞장구를 쳐 주거나 아니면 궁금한 걸 물어보거나 대화를 이어가야지. 대화라는 건 혼자서 하는 말하기가 아니잖아. 대화는 화자랑 청자가 어떤 이야기를 주고 받는 거라고. 맥락이 있는 거고. 그 맥락을 자기 가끔 놓치기도 하잖아. 잘 안 듣고 흘려 들었을 때. 맞지?"
"아니야. 내가 언제. 다 듣고 있어."
"그니까 듣고 있으면 나 듣고 있다는 제스처를 해 줘야지. 중간중간에 어, 어, 어~ 그랬구나. 아~ 그랬겠다. 이런 식으로 반응을 해 줘야 한다고. 알았어?"
"어어~ 알았다구."
이리하여 제 2탄으로 대답 혹은 적절하게 반응하는 법 특강이 진행되었다. 정인이 이야기를 하면 중간중간에 동욱이 끼어 들어서 대답하거나 질문을 하는 식이었다. 동욱은 정인이 무척 까다롭고 예민한 여자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이런 난관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보다 훨씬 더 큰 난관이, 아니 자기로서는 헤어나올 수 없는 아수라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있었으므로 군말하지 않고 모든 과정을 참아내기로 했다.
그러나 문제는 일상 대화에서 벗어나 시댁의 문제로 그 난이도가 올라갔다는 데 있었다. 정인의 큰 그림이었던 것인지, 동욱으로서는 그다지 다루고 싶지 않은 주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미 예정된 수순이었던 듯이. 정인은 어머니의 말과 행동을 주제로 삼아 토킹 어바웃을 진행했다. 그러자, 그동안 진전이 되고 있었던 토킹 어바웃에 그만 과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동욱의 두뇌가 작동되지 않고, 말문이 턱턱 막혔다. 동욱은 자기도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고,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정인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결국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거라는 걸 감지했다. 하지만 자기 마음대로 마음껏 파고들어갈 수는 없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여러 종류의 문이 달려 있는 것인데, 자기 본가를 담은 동욱이 마음의 문에는 철문이 철커덩하고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인이 작은 손으로 쿵쿵 두드리고 발로 뻥뻥 차 봤자 일순간에 열릴 문이 아니었다. 이 철문을 어떤 방법으로 열어야 하는지는 당장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후퇴해야 했다.
정인은 동욱의 태도에 벽을 느꼈고 그 이후 4~5년 간은 서로 데면데면하면서 지냈다. 아이들도 방치할 때 더 자유롭게 잘 자라듯, 벽을 방치하니 벽도 점점 자라났다. 벽이 점점 두꺼워지고 키도 훌쩍 커졌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가로막혀, 서로가 앞에 있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는 듯 행동했다. 정인의 가슴에는 멍울이 한 개씩 한 개씩 쌓여가고 있었다. 가정은 잘 돌아가고 아이도 잘 크고 바깥일도 잘 되고 있었지만 동욱에 대한 마음만은 빠르게 식고 있었다.
하지만 정국이가 커서 4학년이 되었을 때, 정인은 남편 동욱의 협조를 구해야 했다. 이제 곧 다가올 사춘기 아들을 엄마로서 혼자 다 감당하는 것보다는 아빠가 동성으로서 대화해 주고 또 친밀하게 지내는 것이 필요했다. 아들이 열한 살이 되었지만, 그때까지도 아빠로서의 역할이 무엇인지조차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동욱이었다. 정인은 잘 알고 있었다. 부모에게 받은 게 없는 사람은 자식에게도 해줄 게 없다는 것을. 정인은 동욱에게 아들 정국이가 아마 5학년 내지 6학년 정도 되면 사춘기가 올 거고 감정이 폭발해서 엄마랑 부딪히는 일이 아주 많아질 거라고 얘기해 주었다. 그때 정국이에게 필요한 건 자기 얘길 들어줄 아빠고, 힘들 때마다 아빠를 의지할 수 있으려면 미리 신뢰 관계와 정을 쌓아놔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물론 정국이가 아빠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 쌓은 건 너무 빈약한 정도여서 더 밀착된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정국이의 극심한 사춘기를 지날 때, 정인과의 사이는 거울이 깨지듯 조각조각 나는 일들이 많았지만, 정인의 말처럼 정국이는 동욱의 세심한 배려와 댸화로 짜증과 분노를 풀어낼 수 있었다. 정인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정국이를 품어내 주는 동욱이 있어 감사했다. 비록 자기와의 사이에 있는 큰 벽을 허물 능력은 없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