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아들 정국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 정인은 정국이 사춘기에 접어들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정국이는 엄마 말을 듣는 대신 따박따박 대들었고 바깥에서 오지게 받은 온갖 스트레스를 집안 곳곳에 내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래라, 저래라 말도 더 이상은 통하지 않았고 어렸을 적의 귀여운 토끼눈을 뾰족한 도끼눈으로 바꾸어 온 것은 물론 씻어도 씻어도 온몸 구석구석에서 풍기는 호르몬 냄새가 그것을 대변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정인이 정국의 올바른 인성 함양을 모토로 하여
"야, 어디서 엄마한테 또박또박 말대꾸에 바락바락 발악이야!! 니 물건 정리도 좀 하고, 어? 숙제도 알아서 제대로 좀 하고 말이야! 엄마 잔소리 없이도 뭐든 알아서 척척 자기 할 일 할 나이 이제 되지 않았냐!!" 하면,
아들은 애물단지처럼 꿍 하고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 아무런 신체적 반응도 정신적 반응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면 정인은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늦게 퇴근하고 들어온 동욱은 한껏 움츠러든 반려견 강아지에게 개껌을 물려주며 위로하듯 정국이를 안아주며 쓰다듬고 만져주곤 하였다. 2년 전부터 급격히 쌓아온 친분과 신뢰가 아니었다면 보나마나 내쳐질 아빠였지만 그나마도 사춘기를 대비할 태세를 갖추라는 정인의 지략을 잘 따른 덕에 모자 간의 균열을 알차게 메꿔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아빠로서의 어깨도 당당히 펼 수 있었다.
동욱은 아들과의 신뢰 쌓기경험을통해 인간관계의 그 '관계'라는 것이 이렇게,형성도 되고 조절도 되고 변화도 되고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지만, 모든 관계가 그런 건 아니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역시 정인과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동욱이 보기엔 정인은 감정기복이 심하고 예민하고 자기중심적인, 맞추기 힘든 여자였다. 최대한 맞춘다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신뢰라는 물은 채우면 빠지고 채우면 빠져 버렸다. 정인은 아들처럼 단순하지 않았고 부지런을 떨며 비위를 맞춰 봤자 뭔가 마음에 어긋나는 일이 생기면 곧바로 배배 꼬이는 식이었다. 문제가 중하다 싶으면 배배 꼬인 것이 한 바퀴 더 꼬였고, 그것을 반대로 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큰 볼트리무버와 뺀치가 필요했다. 하지만 세상사가 아니 인간사가 그런 공구를 사용해서, 꽉 조인 걸 풀 수만 있다면 얼마나 살기가 쉬울 것이냐.
게다, 자기 본가 식구들을 일일이 열거하며 요목조목 따질 때는 더 이상 대꾸하기도 싫어지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지 않은가. 자기 가족을 이상하다 치부하고 자기 가족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누가 호응할 것이냐 말이다. 그런데 정인은 끝도 없이 몰아붙이곤 한다. 한 번에 끝나는 적도 없고 무슨 일이 한 번 있으면 지난 15년의 일을 모두 소환해 뒤범벅을 해서 비빔밥을 만들고야 만다. 자기라고 뭐 자기 가족을 두둔하고 싶기만 한가. 이상하다 여겨도 그렇다고 어떻게 자기 가족을 욕할 수가 있단 말인가. 동욱은 자기 가족의 어두운 면이나 이해할 수 없는 면면들을 스스로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그 부끄러움을 꺼내 난도질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건 가족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있는 건 묵언수행 뿐이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는 "그래 그건 우리 가족이, 아니 우리 엄마가 좀 문제가 있는 거야. 나도 힘들었어."라고 말하고 싶어도 감정의 끈이 자신의 목을 뒤에서 졸라매고 있었기에 함부로 입을 놀릴 수가 없었다.
정인은 정인 나름대로 남편을, 남편의 가족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남편의 무관심한 태도와 냉소적인 반응에기대할 것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그나마 어머니와의 연락을 끊어도 된다는 것을 보장받고 나서는 일종의 해방감이 느껴졌지만, 그냥 이대로 지내도 될지에 대해선 높은 곳에 확신을 둘 수 없었다. 높은 도덕심에 무게를 두고 살아왔던 정인으로서 시어머니를 관심 밖에 두고 살아간다는 게 정말 괜찮은 것인지, 일말의 자유를 누려도 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누군가의 인정이 필요했다.
그렇게 코로나가 지나가고, 동욱의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정인은 어머니와 연락을 끊었고, 불편했던 인간관계도 끊었다. 결단이 필요했고 결단의 크기 만큼의 용기도 필요했다. 더 이상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어느 날, 큰 깨달음이 깊이 들어왔다. 예전에 TV에 자주 나왔던 아주대학교 정신과 의사이자 부교수인 조선미 교수의 영상을 유튜브로 보고서 말이다.
"부모라고 해서, 엄마라고 해서, 가족이라고 해서 그분들의 삶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어요. 만약 자기 인생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아무리 가족이라고 해도 끊어내셔야 합니다.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거예요.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는 겁니다."
정인의 머리가 띵하고 울렸다.
'그렇지!! 가족이라고 해서 못 끊을 건 아니지. 올가미도 아니고 말이야. 예전에 봤던 영화가 떠올라. 진짜 섬뜩했어. 올가미. 아들한테 집착했던 그 엄마가 올가미였잖아. 그럼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도 올가민가? 누구를 옭아매는 거지? 아주버님? 남편? 나? 돌아가면서 옭아매는 거겠지. 난 친가족도 아니잖아. 근데 내가 왜 올가미에 얽매인 느낌으로 살아야 돼? 차라리 올가미 벗어던지고 우리 부모님한테 더 잘하고 살아야지. 왜, 친자식들도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내가 자꾸 책임져야 돼! 이젠 나도 날 더 보살필 거야. 다른 사람이 먼저가 아닌, 나 자신을.'
정인은 조선미 교수가 너무 고마웠다. 상담을 받고 온 기분이었다. 조선미 교수한테 허락을 받고 어깨를 짓눌렀던 죄의식을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정인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고 사색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삶이 편안했다. 마음이 자유로웠다. 이런 편안함과 자유로움은 처음 느껴보는 거였다. 관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서 어떻게든 이해하고 해결하려 했지만, 끊어내는 것이 명약이 될 줄은 몰랐다.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혼자 있는 시간은 힐링의 시간이었고 즐거운 고독의 시간이었다. 정인은 그 여유로움으로 북카페를 다녔고 마포에 있는 <채그로>에 갔을 때, 한 권의 책을 만났다.
그 책의 제목은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였다.40년 넘게 혼자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사투를 벌여 왔는데 이제서야 '혼자'라는 단어가 '외로움'과 동일한 의미는 아니라는 걸 깨닫던 차에 말이다. 정인은 삽시간에 책 한 권을 다 읽어 버렸다. 그런데 읽고 보니 이 책은 자기를 위한 책이 아니었다. 딱 동욱의 얘기였다.
정확한 책 제목을 확인코자 네이버에 검색하고 바로 클릭했더니 내가 작년에 쓴 브런치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