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휴식하며 잡다한 생각을 창자의 똥처럼 차곡차곡 쌓았다. 휴식하는 날이었지만 휴식할 수 없게 하는 창자의 똥들. 하지만 아무리 똥이라 해도 내 몸에서 만들어진 것이고 지나간 일에 대한 성찰로부터 나온 찌꺼기들이므로 무가치하지가 않다. 가치 있는 똥이다.
소가 여물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천천히 소화시키듯, 나도 그렇게 했다. 잡다한 생각을 소의 여물처럼 질겅질겅 씹어서 위장에서 소화시켰다. 소화된 생각들은 알맹이만 남기고 찌꺼기가 되어 동그래졌다. 올 해가 토끼의 해라는데 나는 토끼처럼 깡충거리며 뛰기보다는 토끼 똥을 최대한 많이 싸는 한 해를 보내리라.
세상일은 내 계획대로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는 무계획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김없이 계획을 세우고 그중의 반 이상은 실천한다. 누가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난 자주 계획을 짜는 습관을 갖고 있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하고 나 스스로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에 쓰지 못했던 일기를 오늘에서야 쓰면서 마음속 계획을 다시금 정리했다. 계획을 하고 12월에 있었던 여러 일들과 복잡했던 심경도 털어내고 나니 훨씬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이 복잡할 때는 일기 쓰기가 최고다.
12월의 마지막 주에는 결혼한 이후 처음으로 해외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나의 동반자, 남편이 모처럼 받은 휴가였기에 그의 휴가를 축하하고 큰아들의 고입 합격도 축하하는 의미로 작은아들과 나는 들러리처럼 비행기에 실려 태평양 에메랄드 빛이라는 보석 같은 바다를 구경하고 왔다.
여기는 괌 해변, 너무 짧은 시간을 담은 곳이다. 다음에 가면 어떤 빛깔일까.
노을을 좋아하게 된 나로선 에메랄드 빛 위에 수놓아진 보랏빛 하늘을 조금 더 바라보고 싶었다. 바다 가까이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썬글라스를 끼고 썬베드에 누워서 책을 보는 여유로운 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내 실현 가능한 소망은 그곳에 있는 시간 동안 허락되지 않았다. 해변을 앞에 두고도 해변을 갈 수 없다니. 이런 비극적인 상황이.. 그래, 다음 여행을 기약할 수밖에. 나에게 다음의 여행을 준비시키다니 참으로 행복하구만 그래.
(해변을 다시 가지 못한 이유는 짧은 일정 탓도 있었지만 작은아들이 해변의 모래가 아쿠아슈즈 속으로 껴들어가는 걸 너무 성가셔해서 수영장에서만 같이 놀아주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바다에 발만 담그고 들어가 보지도 못했다.ㅜㅜ)
여행은 하였되 내가 소원했던 여행이 되지 않은 것처럼, 인생지사도 계획했던 대로만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계획짜기는 나에게 중요하다.) 너무나 평범하고 행복해서 이대로만 살고 싶다고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작스러운 일이 터지고 그 갑작스런 일 때문에 머릿속이 엉망이 되고 기분이 삽시간에 뭉개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일이 꼬이고 사건이 생기고 예상 못한 결론이 나오는 건지. 인생이란 불확실성의 연속이란 것이 실감이 난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뭘까. 나는 오늘 이 점에 대해 생각했다.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
그건 바로 비움이다. 생각을 비우는 것이다. 어떤 일이 복잡해지거나 이상한 곡선을 그을 때 우리는 지나간 과거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내 속에 어떤 생각들이 중구난방으로 쌓여 왔는지, 아직 소화되지 못한 생각엔 어떤 것이 있는지, 아직 똥으로 만들어지지 못한 생각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지 이것을 곰곰 되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품었던 과도한 생각들이 몸속에서 딱딱한 똥으로 굳어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한 채 눈에 잘 띄지 않는 어느 구석탱이에 자리 잡고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몸은 활화산이다. 몸속에서 불덩이가 이글이글 타오른다. 이글거리는 불덩이는 꺼지지 않고 언젠가는 표출된다. 이글거리던 불덩이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 거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 나올지 전혀 알 수 없게 그렇게 폭발한다.
폭발하는 활화산은 과도하게 부풀어진 우리의 감정이다. 감정이 이글거리다가 참지 못할 때면 화산으로 폭발한다. 이걸 꾹꾹 누르고만 있으면 그건 더 큰 폭발을 일으킬 뿐이다. 그러므로 자주자주 마그마를 흘려보내 주어야 한다. 그게 바로 비움이다. 감정을 비우는 것이다.너무 크게 폭발하지 않게 평소에 조금씩 비워내야 한다. 조금씩 비워낼 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말이다.
인생은 비워냄의 연속이어야 한다.
인생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이다. 일부러 우리가 채우려고 하지 않아도 우리 인생은 무언가로 계속 채워지기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잡다한 것을 채워 나간다. 왜냐하면 인간은 욕망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우리에게 계속 무언가를 채워 내라고 요구한다. 나약한 인간은 그 욕망의 소리에 홀려서 자꾸만 무언가를 좇고 또 좇으며 욕망의 지시대로 행동한다. 지식을 채우고 야망을 채우고 물질을 채우고 욕심을 채우느라 바쁘다. 자기를 자랑할 거리도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욕망으로 채우다가 홀연히 세상을 떠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인생은 40대 중반부터 비우는 삶이다. 비워야 한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 의식과 무의식에 가득 차올라 있는 욕망 덩어리를 자꾸 비워내야 한다. 40대 중반이라면 지금부터 훈련을 시작하는 게 좋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소유,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려놓음의 개념이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많은 걸 가져본다 한들 결국은 한 줌의 흙으로 변할 우리 몸이지 않은가. 애써 많은 걸 소유하려 들지 말고 애써 더 높아지려 하지 말고 물 흐르는 대로 흘러가자. 끊임없이 비우면서 흘러가다 보면 종국엔 비움이 곧 채움이 될 것이다. 이때 채움은 세상적 부귀영화가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영적인 세계가 될 것이다. 평안이 온몸에 흐르고 얼굴에는 광채가 빛날 것이다.
지나친 욕망을 갖고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내 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내가 줄 사랑이 있음에 감사하며 사는 것, 그것이 참된 인생이 아닐까 한다. 여행이 우리에게 남기는 건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다. 여행을 함께 나눈 사람과의 추억이다. 우리 인생도 어찌 이와 다를까.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우리 인생도 이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소중한 것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되는 것
오늘은 작은아들의 생일이었다. 폰 액정이 깨져 있는데 폰을 바꿔줄까,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피자와 파스타를 사줄까, 무엇으로 마음을 채워줄까 여러 차례 물었지만 작은아들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다. 해탈의 경지였다.
해탈의 경지에 오른 아들을 위해 난 해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세 장의 편지를 썼다. 아들은 엄마의 진심을 느끼는 것으로 마음이 충만해진 것 같아 보였다. 우리에게 앞으로 남은 날은 얼마나 될까. 함께 사는 동안 많은 것을 주고 싶고 나누고 싶고 채우고 싶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채우려고 애쓰기보다는 비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채워도 채워짐엔 끝이 없다. 욕망은 더 큰 욕망을 부르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