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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그렇게 어렵니?

진정한 티키타카

by 김혜정


탁구가 재밌으려면


탁구를 친다. 내 탁구공이 콩콩 튕겨서 네트를 건너 상대편 앞으로 간다. 어라. 상대방이 공을 받을 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그래, 다시~!! 멋지게 서브를 날린다. 경쾌한 소리로 통통 상대방 코앞으로 돌진한다. 아... 이번에도 상대방은 받지 못했다. 공을 받을 준비 자세는 취했지만 공의 속도를 감지하지 못했나 보다. 그래, 그럴 수 있지. 괜찮아~ 괜찮아. 탁구는 혼자 치는 게 아니니까~ 인내심을 갖도록 하자!! 이번에는 멋진 포즈 빼고 상대방이 최대한 잘 받을 수 있는 위치로 서어브~. 앗싸. 상대방이 공을 받아 쳤다아아아. 아아.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니. 공아. 탁구대는 여긴데 저 멀리로 날아가는구나. 다시 주워다가 다시, 다시 주워다가 다시.


탁구는 핑퐁핑퐁, 주고 받아야 제맛인데 주워다가 혼자만 계속 서브하는 탁구는 어쩐지 나를 점점 지치게 한다.



대화라는 것도 그렇다. 탁구처럼 핑퐁핑퐁, 티키타카가 되어야 즐겁기 마련이다. 내가 던진 화두에 상대방이 반응해 주어야 대화가 시작된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상대방이 묵언수행을 한다면 어디 제대로 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대화법’을 화두로 해서 나는 우리 신랑과 꽤 오랜 시간을 이야기해 왔다.


28살에 결혼하고 2년 간은 아이 없이 단둘이 살았다. 나름 신혼이라는 기간을 만끽했다. 그때까지는 아무런 탈이 없었고 대화가 불편하지도 않았다. 신랑도 나도 일하느라 바쁘기만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임신을 하고 일을 그만두면서부터 시간이 남아돌던 나는 신랑과의 대화가 매끄럽지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핑’하면 ‘퐁’이 오는 것이 아니라 ‘ㅍ’정도만 왔다. 부족했다. 처음엔 바빠서 시간이 부족한 것이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생겨도 ‘ㅍ’에서 진전은 없었다. 원래 말수가 적었던 사람이었던 걸 알고 결혼했으니 이해했다. 그냥 나 혼자서라도 ‘핑’‘핑’ 열심히 치면 되지 하고.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그리 단순한가. 산 넘어 산, 작은 산 넘으면 큰 산, 큰 산 넘으면 태산(泰山)이 떡 기다리고 있으니 대화로 풀어나갈 일이 얼마나 많으냔 말이다. 일상의 사소한 일을 재잘거리는 것은 사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난 떠들기를 좋아하는 수다쟁이인 만큼 떠들다 보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신랑이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렸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대화는 길을 잃기 시작했다. 나는 문제를 해결할 때 두 가지 방법을 쓰는데 한 가지는 대화를 하다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종이에 선택지를 쓰고 비교 분석해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런데 신랑이 ‘퐁’을 잘 못해 주다 보니 후자의 방법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그렇게 결정을 하고 나면 신랑은 아무런 반응도, 반대도 없이 결과에 수긍하곤 했다. 내가 문제에 대해서 얘길 하면 우리 신랑은 “아~ 어렵네. 나는 잘 판단이 안 서네. 모르겠어.” 했으니 다른 방도도 없었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그렇게, 내가 편한 대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버렸었다.

아마 대화가 그렇게 일방향적으로 이루어진 기간은 결혼 후 10년 정도였던 것 같다. 남편은 밖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고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정도였다. 그러다 큰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쯤, 나는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고 집안에 있는 것 자체가 답답해서 하루라도 아니 일주일 정도는 멀리 떠나 있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그 때부터 나는 ‘대화법’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말이 없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한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나를 옥죄었던 시댁과의 갈등에 아무런 대답도 없고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하는 남편을 믿고 살아갈 의미가 없었다. 대화가 안 되니 상담을 가보자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남편도 그러자고 했다.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 놓고 상담센터를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앞에서도 자신의 속내를 표현하지 않는(못하는) 사람이 과연 센터 선생님 앞이라고 해서 술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었다. 센터에서 해 주는 역할은 우리가 서로의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주는 것이니 그냥 우리가 그 다리를 스스로 놓아보자. 상담비만 내고 모르는 사람 앞에서 집에서처럼 말 못 하고 멀뚱멀뚱 앉아 있으면 뭐하겠는가 하고 말이다. 내 말에 남편은 또 그러자고 했다.



우리들의 지옥 상담


그 이후로 우린 <지옥 상담>에 들어갔다. 아무런 자격이 없었지만 나는 스스로 상담사를 자처했다. 인간 관계와 대화법에 대해 남편보다는 훨씬 잘 알고 있고 직간접 경험 뿐 아니라 TV 프로그램과 서적을 통해서도 많은 노하우가 쌓여 있다고 자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열풍이었던 것이 ‘나 대화법’이었으므로 일단은 이 방법부터 이용하자고 했다.

“나는 자기가 이렇게 했을 때 이런 마음이 들었어. 그래서 속상했어. 자기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어?” 내가 이렇게 물으면 우리 남편은 한 5~10분을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간단한 말이라도 내뱉을 수 있을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남편은 말 한마디 꺼내는 걸 힘겨워했고 그 말에 또 내가 대화를 이어가면 또다시 답하는 데 5~10분이 걸렸다. 한 번의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우리는 3시간이 필요했다. 대화 내용을 압축하면 20~30분 정도 걸릴 것을 처음엔 그렇게 6~7배나 애를 쓰곤 했다. 내가 너무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남편에게 진정 이런 대화법이 필요한 것이 맞는지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렇게 변화하지 않고서는 난 결혼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나중에 3년 여 시간이 지나고 남편에게 이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혹시 내가 가혹하게 한 건 아니었는지. 남편은 조금 머뭇거리긴 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꼈었고 내 덕분에 그나마 말문이 트인 것 같다고.



남편을 이해하다


남편은 어려서부터 대화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부모님도 서로 대화하지 않았고 형과 누나와도 대화하지 않았다. 남편의 할머니가 어머니를 몹시 힘들게 했고 두 분의 틈바구니에서 (말) 표현이 억압된 채 살아야 했다고 했다. 철저히 고립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교 때에는 본가와 떨어져 서울에서 자취 생활을 해야 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가족과의 교류 없이 거의 혼자 지냈다. 가족과 자연스러운 대화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 되었다 해도 말을 잘할 수 없었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는 것도 사소한 일상을 나부랑거리는 것도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남에게는 쉬운 일일지 모르지만 남편에게는 너무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 본 경험도 없었기 때문에 가정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도 본인이 해결하기엔 벅차고 막막한 것이었다. 이런 일련의 이야기를 내가 주최하는 <지옥 상담> 과정에서 듣게 되었으니 남편의 입장이 이해되고 측은해지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극도의 상담 과정을 거치며 또 6~7년을 보냈고 한 2년 전쯤부터는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제 남편은 밖에 있었던 일들 중에 열받았던 일이나 억울한 일, 새롭게 느끼게 된 일을 묻지 않아도 먼저 얘기해 준다. 내가 하는 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고 해결책도 제시해 주려고 노력한다. 지난 18년의 결혼 생활 기간 동안 14년 정도는 진정한 대화를 위해 노력했고 지금은 정말 편해졌다고 느낀다.

이번에 우리 큰아들이 다친 일로 인해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중대한 문제 앞에서 오랜만에 남편의 입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아~ 어렵네. 모르겠네.”


'아, 아직 완전히 바뀐 건 아니구나.'

대화의 벽에 가로막혀 위기에 놓인 부부들이 알고 보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안다. 우리 친정 부모님도 그렇고 TV 프로그램 <결혼 지옥>만 봐도 그렇다. 이렇게 수면으로 드러날 정도라면 실상은 대화의 부재로 인한, 혹은 대화법 문제로 인한 갈등이 부부 문제의 70~80%는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완전히 바뀐 건 아니지만 우리는 현재 노력 중이다. 내 화법에도 문제가 있고 상대방에게도 문제가 있음을 알고 서로 인정했기에 앞으로 살아갈 시간 동안에도 꾸준히 노력하기로 했다. 정말 즐거운 티키타카가 될 때까지, 남부럽지 않은 티키타카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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