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잘하는 직장인이. 일도 잘한다.

인생을 바꾸는 직장인 셰프

by 파란카피

결론적으로 나는 조리사 자격증이 없다. 두 번의 도전이 있었고, 두 번 모두 아까운 점수로 아쉽게 탈락했다. 한 번은 군대 가기 전 필기시험 후 3번의 응시가 가능했지만 첫 번째 탈락 직후 입대로 기회를 놓쳤다. 그리고 직장에서 대리 시절 두 번째 도전에서는 극혐 하는 치명적인 과제가 하필 나와 2점 차이로 또 탈락했다. 2번의 실기 응시 기회가 있었지만, 내가 굳이 왜? 요리를 배웠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하며 때려치웠다.




첫 번째는 한식조리사였다. 북어구이, 미나리강회의 두 가지 과제가 나왔다. 초긴장의 순간, 북어를 불려야 하는 걸 깜빡 잊었고, 미나리의 잎을 정리해야 하는 걸 또 깜빡 잊었다. 요리를 완성하고 아차! 싶었던 순간, 결국 불합격의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는 직장 생활 중의 양식 조리사였다. 토요일 반으로 석 달간 요리학원을 다녔고, 필기 후 실기를 치는 날, 치즈오믈렛이 나왔다. 이 과제만 피하면 된다 했던 치즈오믈렛이... 햄버거샌드위치야 연습을 많이 했던 과제였지만. 결국 치즈오믈렛에서 무너졌다. 2점 차로 탈락. 당시 함께 시험을 쳤던 카피라이터 후배는 1점 차로 탈락했다. 둘 다 함께 쿨! 하게 목숨 건 것도 아닌데 그만하자. 요리를 배웠다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어쩌면 돌아갈 직장이 있으니 그랬을 수도 있지만 직장의 스트레스만으로도 벅찬 그땐, 그렇게 하고 싶었다.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한 번은 더 해볼 걸 하는 마음이지만.




갑툭튀 요리는 무엇? 하겠지만 요리는 우리 인생과도 같다. 요리를 하는 과정을 보면 직장생활과 맞닿은 부분이 참 많다. 어떤 요리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 필요하고, 그 요리를 위해 어떤 재료를 어떤 방법을 통해 구매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레시피로 만들어 조리하고, 어떤 마케팅과 PR을 통해 고객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할 것인지. 고객의 피드백을 반영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낼 것인지. 기업의 모든 프로세스를 그대로 담고 있는 이 요리는 직장생활의 애환 역시 고스란히 담고 있다. 요리를 잘하는 직장인은 하나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 모든 뇌를 풀가동한다. 그리고 그 요리에 깃들 맛에 대해서도 스킬과 감각을 총동원한다. 직장에서의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기획에서 전략, 전술을 풀어내는 모든 과정 역시 요리의 프로세스와 닮아있다.


형수님과 함께 준비한 크리스마스 디너




요리에 무슨 이런 거창한 소리를 하냘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문득 돌아보라. 자신의 요리력에 대한 셀프 진단을 해보라. 요리를 대하는 자신의 진심에 대해서도, 깊이에 대해서도, 방식에 대해서도. 그러면 답이 나온다. 대충 해도 맛이 나온다는 사람도 결국 보면 대충은 없다.




양식조리를 배우던 그때 같이 수업을 듣던 아주머니 한 분은 식당을 오픈했다 쫄딱 망했다고 한다. 그가 오픈한 식당의 주방 조리사는 조리라고는 1도 모르는 사장을 무시하고 주방의 몹쓸 전횡을 저질렀고 급기야 두 손 두 발을 든 아주머니는 폐업을 하고 말았다고 한다. 조리를 배우고 요리를 마스터해서 다시 식당을 오픈하겠다며 찾아온 분이었다. 창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잘하지는 않더라도 기본적인 기술은 가지고 있어야 가능한 거구나. 배움을 줬던 순간이었다. 한식, 양식, 중식, 일식, 복어조리사, 그 어떤 산업기사 자격증을 준비해도 좋다. 아니, 자격증이 없어도 요리를 잘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조리사 자격증이란 게 결국은 미나리를 몇 cm로 자르고, 어떤 재료를 누락하지 않았고, 시간 내에 끝냈는지 같은 기준이다 보니 결국은 절대적인 맛에 대해서는 정작 놓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기준이 필요해서, 자격이 필요해서 존재하는 것이 결국은 ‘증’인 것이다. F&B(Food & Beverage) 업에 종사할게 아니라면 굳이 있을 필요는 없다. 혹여 노후를 생각한다면 자격을 위한 ‘증’ 하나쯤은 박제해 두는 걸 추천한다. 있고, 없고는 분명 차이가 난다. 나도 해내지 못했기에 꼭 추천드린다. 퇴근 후 요리학원으로 출근하는 석 달의 시간에 행복해 보기를. 평일이 힘들다면 주말반으로 남다른 보람의 시간을 가져보기를.

가족을 위한 나의 퇴근 후, 주말 요리
가족을 위한 나의 퇴근 후, 주말 요리


요리는 직장생활에도, 가족을 위해서도 여러모로 쓸모가 있다. 직장생활 노하우의 베이스가 되고, 가족을 위한 행복한 순간에 꼭 필요하다. 특히나 지금 같은 팬데믹에는 필수다. 언제까지 딜리버리에 의존할 순 없으니. 이제는 너무나 흔해져 버린, 그래서 변별력마저 잃어버린 맛집에 대해서도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그만의 히든 맛집 리스트가 있다. 사내 맛집러로 통한다. 이런 요리 정보력은 또한 요리, 맛 관련 인플루언서, 유튜버로 확장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깟 요리?라고 했던 직장인 셰프라는 부캐,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다. 하지만 반대로 요리를 못해도 전혀 문제 될 건 없다. 퇴근 후 힘들어 죽겠는데 요리는 무슨. 사 먹으면 되고, 해주는 요리를 먹기만 하면 된다. 다만 요리 DNA가 있는 분이라면 잠재된 그 능력을 꺼내보자는 거다. 그리고 그 능력을 자신만의 부캐로, 그리고 미래를 위한 히든카드로 리스트업 하자. 일석이조를 넘어선 일석다조의 요리, 지금 나의 요리력을 점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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