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여행러 직장인, 생활여행자가 되다.

직장인의 여행력 증강 프로젝트

by 파란카피

스물아홉, 처음 떠난 해외여행, 그동안 대체 뭐하고 살았니.

야근, 철야에 주말 출근까지 누나가 집에 오지 못하는 나를 위해 갈아입을 속옷을 회사에 가져올 만큼 정신없이 바빴던 20대 첫 직장,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시절. 언감생심 여행은 무슨, 그건 오직 여유로운 자들의 사치라고만 여겼다. 그 흔한 어학연수도 가지 않았던 내게 해외여행은 꿈조차 꿀 수 없었던 사치였다. 그러던 중 아홉수, 스물아홉에 모범사원으로 태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이 태국 방콕, 파타야가 되었고, 첫 해외 비행길에 올랐다. 패키지여행이라 아쉬웠지만 초행엔 좋고, 나쁨의 기준조차 없을 때였기에 그저 모든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인생 첫 해외여행의 포문이 열렸다.




극한의 순간 찾아온 서른 살 기념 여행, 생활여행자를 꿈꾸다.

여전히 철야, 야근, 주말출근으로 약속은커녕, 휴식이라는 단어 자체가 낯설던 그때, 고등학교 베프들과 몇 달 전부터 계획했던 서른 살 기념 남도여행을 가기로 한 당일이었다. 그날 역시 산더미 같은 카피라이팅이 엄습했고 저녁까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금요일이었던 그날, 친구들은 회사 앞에서 일이 끝나길 기다렸고 늦은 시간, 겨우 마친 후 합류해 떠날 수 있었다. 어렵게 떠난 여행이 더 값지고 소중한 걸까. 사진 한 장 남기지 않고 오직 가슴에만 담아왔던 그날이 여태, 아직도 뜨겁게 남아있다.




다시 떠난, 태국, 캄보디아, 그렇게 프로 여행러의 길이 시작되다.

기업 홍보실로 이직하기 직전의 일이다. 당시 서울의 광고회사, 언론사 선배와 나와 같은 광고회사 AE 베프와 함께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그나마 1년 중 유일한 여름휴가 때. 광고를 하던 친구가 불현듯 캄보디아로 아예 떠나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었고 그 친구의 가이드 아래 계획된 일정이 아닌 그날그날의 기분에 맞는 갬성 여행을 이어갔다. 그때 느꼈다. 한 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사는 거다. 그토록 하고 싶고, 되고 싶었던 카피라이터, 이제 놓아도 되지 않을까. 떠나고 싶을 때 이렇게 떠날 수 있는 삶을 살자. 사람답게, 사람처럼 살자. 갑갑한 반복적 키보드 라이프를 던지자.




매년 나를 위한 해외여행을 떠나자.

하지만 이직한 기업 홍보실에서도 여유롭지는 못했다. 여유로운 직장생활이 대한민국에 과연 존재할까? 어디든 전쟁터고, 시장통이다. 다만 어떻게 스스로 컨트롤하는가의 문제라고 늘 생각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틈을 발견하고, 그 틈을 쉼으로 채우는 지혜, 그걸 하고, 못하고의 1%의 차이가 100% 삶의 격차로 다가온다. 서른 살 중반이 되기 전 스스로에게 약속 하나를 했다. 당시엔 결혼 생각도 없던 터라 매년 나에게 주는 선물로 여름휴가엔 나를 찾는 해외여행을 떠나자. 그래서 갔던 첫 여행이 바로 영국 런던이었다.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던 친구와는 이틀만 지내고 오직 혼자서 런던을 곳곳이 훑었다. 런던에서 분식가게를 오픈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차이나타운을 하루 종일 탐색하고, 소규모 마켓을 돌며 그들의 문화를 살폈다. 돌아와선 늘 그랬던 창업 노트를 썼다. 다음 해엔 서유럽으로 떠났다. 그다음 해엔 동유럽으로 떠났다.




'매년 가족과 해외여행을 떠나자'로 바뀐 삶의 모토.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만나지 석. 달. 만에.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지구과학 교사였던 와이프가 화산섬을 꼭 가보고 싶다는 이유로. 폭풍 쇼핑으로 너무나 행복했던 여행으로 기억된다. 결혼하기 전 와이프에게 약속한 한 가지. 매년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 아이가 생기면 아이와 함께 가족 해외여행을 떠나 돌아오면 그 여행을 담은 앨범을 책자로 내자. 그렇게 미국으로, 일본으로, 필리핀으로, 태국으로, 스페인으로 떠났던 매년 여행이 2020년 팬데믹으로 잠정 중단되었다. 팬데믹 이후로는 단 한 차례도 가지 못했고 부산 인근의 호캉스만 가끔 떠나는 일상을 함께하고 있다.


스페인 가족 여행에서 담아온 풍경
여행을 다녀온 후 늘 정리하는 사진앨범


지옥 훈련 같았던 해외출장, 그것마저도 극한 여행이라는 마음으로

2004년 서른 살, 지금 회사인 기업 홍보실에 면접을 보고 곧바로 출근 연락을 받았다. 다음 주 월요일, 김해 국제공항으로 오라는. 기업 PR 홍보영상 촬영을 위해 중국 4개 도시로 떠난다는... 당시 동행자는 차장님이었고, 나는 한 여름이라 촬영을 떠나는 복장으로 빨간 꽃무늬 남방에 반바지 차림으로 공항에서 마주했다. 해외 광고 촬영을 가는 차림은 늘 그랬던 터였는데... 공항에서 마주친 차장님의 흑화 된 낯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법인 대표와 인사하는데 어떻게 이런 복장으로 올 수가 있냐며... 겨우 캐리어 속 청바지로 갈아입고 떠날 수 있었고, 출장 내내 안절부절의 연속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추억이지만 당시엔 공포였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직종마다 다르겠지만 홍보 업무라 해외출장이 잦았다. 미국, 멕시코, 중국, 인도, 베트남 등 해외법인 PR 제작 촬영을 위한 출장은 진심 분 단위로 일정을 짜다 보니 클로징 시간이 밤 10시가 되기 일쑤였다. 새벽 일찍 일어나 여행자의 마음으로 그 지역을 산책하고 일정이 마치면 또 산책을 했다. 출장 중 모든 극한 상황을 여행이라는 마음으로 즐기게 되면서 그 출장은 비로소 여행이 되었다. 그런 마음으로 극한의 해외출장이라면 여행 모드로 마인드셋 했으면 한다. 또 언제 해외로 출장을 갈 수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몇 해 전 베트남 신발공장인 화승비나의 출근 현장, 촬영을 위한 출장에서 폰으로 찍은 사진


여행의 기록이 차별화된 여행력, 경쟁력이 된다.

가끔은 사진을 찍지 않아도 좋다. 사진을 찍느라 감동 게이지가 줄어들 수 있으니. 하지만 이왕 찍은 사진이라면 모두 차곡차곡 정리해 언젠가 꺼내볼 수 있도록 아카이빙하자. SNS에 올려두어도 좋다. 쌓인 사진들은 후에 여행기를 쓰게 되거나 자료 사진으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그냥 가는 여행과 생각하고 가는 여행은 다르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계획 없이 무작정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이왕이면 뭐라고 남겨지는 여행이면 더 좋지 않을까. 여행도 결국 가본 사람이 또 간다. 일상에 쉼을 불어넣는 직장인의 여행력, 그 힘을 색다른 경쟁력으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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