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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어요.

나이 쉰에 공인노무사를 준비하는 그에게

by 파란카피

길을 가다 우연히 그를 만났다. 그가 다니던 회사 사람을 통해 그가 뜬금없이 육아휴직을 냈다는 소리를 들은 지도 무려 6개월이 지난 터였다. 표정이 어둡고 다소 불안해 보였다. 자영업, 사업 구상 등 뭔가 생각한 바가 있어 육휴를 내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하고 있던 내게 그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쉰이라는 나이에 회사에 육아휴직을 낸다는 게 쉬운 일이었겠냐고. 복귀하게 되면 많은 불이익이 기다리겠지만 꼭 내야만 했던 이유가 있다고. 공인노무사에 꼭 도전하고 싶었다고.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결심했고, 20년을 꼬박 다닌 회사에 처음 긴 휴가를 내게 되었다고. 이걸 지금 하지 않으면 죽을 때 너무 후회가 되어 눈을 감지 못할 거 같았다고.


그래서 매일 10시간이 넘도록 공부를 하고 매달리고 있지만 녹록지 않은 시험 준비에 녹초가 되고 있다는 그. 처음의 그 패기와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매일 줄어드는 실력에 자존감만 바닥을 치고 있다는 그를 보며 난 왜 갑자기 부러운 생각이 드는 걸까. 나는 지금 어떤 도전을 하고 있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어떤 지점의 길을 지나고 있는 걸까.


용기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 정해진 루틴에 의해 직장 생활을 해왔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좋은 결과를 위해 돌진해온 시간들을 돌아보며 나를 위해 가치 있는 용기를 내었던 적은 있었던가, 과연 있기나 했던 걸까. 노후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지금의 나를 위해 가슴 뜨겁게 해 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그와 잠깐의 만남 후 문득 생각해보게 되었다.


시간이 없어 못했고, 비용이 비싸서 못했고, 어려워서 못했고, 직장에 최선을 다해야 해서 못했고, 여전히 지금도 그래서 할 수 없는 핑계뿐이다. 그에 앞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그 무언가가 바로 떠올려지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정체된 삶을 살고 있었구나, 스스로 너무 니즈를 방치하며 살아왔구나,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다.

KakaoTalk_20220406_082951928.jpg 클레이아크 뮤지엄에 전시된 작품, 소년 시절의 꿈을 돌아보며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언젠가, 아니 오늘 당장 지금, 진짜 하고 싶은 내 인생 버킷리스트 2개를 만들어야겠다. 또 많은 핑계로 점철되겠지만, 후회로 점철될 미래를 맞이하고 싶진 않으니까. 물론 긴 휴가를 낼 수도 없고, 거기에 올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지만 말이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이미 늦었어, 난 뭐했지, 인생이 다 그렇지, 따위의 푸념은 이제 그만 접어두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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