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대의 충동구매

by 꿈꾸는 달



어느새 10년도 더 된 추억이 되었다. 남편과 나는 고작 방 한 칸짜리 원룸에 신혼집을 차리고 3천만 원짜리 바이크를 사서 전국을 누볐었다. 그때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꿈꾸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몇 평 되지 않는 그 공간에서도 우리의 미래는 밝게 느껴졌고 마냥 행복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일까, 부모가 되어서일까?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조차 희미해져 가고 늘어가는 책임과 무게만큼 포기하는 것이 익숙해졌다. 시간의 흐름에 종속되지 않고 삶의 속도와 무게를 조절하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 깜박 하니 그때의 우리는 없고, 그저 뒤처질까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고 있는 병든 다람쥐 두 마리만 남아있었다.



2018년 여름, 우리 부부는 일주일 간격으로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은퇴를 앞둔 담당 진료 교수님께서도 평생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실 만큼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암 진단에도 우린 의연했다. 아이를 돌볼 사람이 필요하니 한 달 사이로 수술 날짜를 잡고 서로를 토닥이며 담담히 그 시기를 넘겼던 것 같다.


하지만 위기는 다른 곳에서 찾아왔다. 주 2일 파트타임으로 시작했던 나의 일이 주 5일이 되었고 퇴근 시간도 점점 늦어지게 되었다. 그 사이 아이는 수두나 장염 등에 걸려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고 결정적으로 2020년 1월 국내에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면서 무기한 쉬어가야 했다. 급할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종종거리는 일이 잦아지고 설상가상으로 정서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그동안 쌓여갔던 우리 부부의 갈등은 폭발했다. 급기야 결혼 후 처음으로 이혼 얘기가 오갔고 다시는 봉합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나의 사직 후 아이가 빠르게 안정되어 갔고 여전히 앙금이 남아있었지만 부부 사이도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그러던 중에 부동산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억 단위로 상승한 실거래가가 매주 경신되었고 하루아침에 벼락부자와 벼락 거지가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평생 살고 싶었던 이 동네에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밀려나 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점점 짙어졌다. 2020년 12월 21일 그날도 여지없이 나의 하루는 동네의 시세를 체크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 우연히 주택 용지 매매 글을 발견했고 매일 반복되는 이 불행의 패턴을 깨고 싶었던 우리는 무작정 땅을 보러 갔다. 그리고 이틀 후 다소 충동적인 계약을 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