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후 건축 사무소와 만남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 가면 좋을까 생각해 보았다. 첫 설계는 건축가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둘수록 좋다고 생각했기에 평면도 그리는 일이나 공간의 크기와 개수를 정하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에 대한 나의 생각과 바람을 적어보는 일이었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집을 지어야 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1. 아이가 창의적인 공간에서 자유롭게 상상하고 뛰어놀았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아이에게 집에 대한 추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2. 자연을 통해 많은 위안을 얻습니다. 집에서도 사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싶습니다.
3. 층간소음에 대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싶습니다.
4. 행복한 삶이란 가족이 둘러앉아 따뜻한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정원을 가꾸는 그런 소소한 일상의 행복들이 쌓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삶의 순간들을 곱씹으며 살고 싶습니다.
5. 때로는 각자의 공간에서, 때로는 함께 모여, 서로의 꿈에 대해 이야기하고 응원하며 함께 성장하고 싶습니다.
6. 주말에는 지인들과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캠핑을 하고 밤늦도록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7.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집, 좋아하는 것들로만 단출하게 채워진 아늑한 집을 꿈꿉니다.
적어 내려가다 보니 집이란 건축물을 넘어 우리의 삶의 자세와도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집 짓기는 아파트 매매에 실패해서 마지못해, 그러다 땅을 사서 엉겁결에 시작하는 일이 아닌, 우리 삶의 제2막을 여는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