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빠르게 준공 검사 날짜가 잡혔고 그전에 준공 조경을 마쳐야 했다. 영하의 날씨에 땅은 돌처럼 얼었고 겨울에 심는 식물은 대부분 죽는 걸 알고 있지만, 법이 그렇다고 하니 일단 기준에 맞추어 최소의 비용으로 조경을 하기로 했다. 남편은 오늘밖에 시간이 없다며 당장 잔디와 나무를 사러 가자고 했다. 급하게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 집과 10분 거리에 나무 시장이 있었다.
우리 시의 준공 조경 기준은 상록교목 2주, 낙엽교목 2주, 관목 8주와 일정 면적 이상의 잔디를 깔아야 한다.
인상 좋은 젊은 사장님께선 이미 경험이 많으신 듯했다. “관목은 철쭉, 낙엽 교목은 단풍나무가 제일 싸요. 상록 교목은 울타리 나무 중에 제일 저렴한 거 두 개 가져가세요. 잔디는 겨울이라 다 얼어서 서로 떨어질지는 모르겠는데 최소 단위가 200장인데 특별히 100장만 드릴게요.” 곧바로 능숙하게 나무들을 준비해 주셨고 잔디는 배송받기로 했다.
그사이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고 오늘 안에 마무리하려니 마음이 급했다.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니 이제 더 이상 출근하지 않으셔도 되는 현장 소장님께서 나와 계셨다. 게다가 미리 챙겨 오신 농기구로 돌밭인 땅을 다 갈아놓으셨다. 얼마 전 공구를 사용하시다가 한쪽 손을 크게 다치셨는데 나머지 한쪽 손으로 그 일을 다 해놓으신 것이다. 그리고 언 땅을 파기가 쉽지 않을 거라며 아직 한 번도 쓰지 않고 보관 중이시던 공구까지 건네주셨다. 아마도 소장님께선 경험도 없는 부부가 한겨울에 잔디를 깔겠다며 덤볐을 때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 말 없이 미리 나와 밑 작업을 해두시고 작업이 다 끝날 때까지 함께 도와주셨다. 실제로 소장님의 코칭과 도움이 없었다면 절대 해낼 수 없는 난이도와 작업량이었다.
어느덧 뉘엿뉘엿 해는 저물어가는데 이제 겨우 반 정도 작업을 마쳤다. 꽁꽁 언 잔디를 떼고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땅을 평평하게 다지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다. 모두 말수가 줄어들고 지쳐가던 차에 누군가 와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여기 아랫집에 먼저 입주해서 살고 있어요. 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예비 이웃님의 손에는 따뜻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이사 오기도 전에 이런 따뜻함이라니. 종일 쌓인 피로가 한순간에 녹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당과 카페인을 충전해서 후반전을 시작했다.
어느덧 해는 지고 설상가상 빗방울까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늘 안에 마쳐야만 했고 남은 체력을 쥐어짜다시피 마무리를 했다. 어제 세 시간 자고 비까지 맞으며 종일 고된 노동을 한 남편은 저체온증을 호소하며 힘들어했고 나 역시 몸살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겨우 운전을 하고 집에 돌아와 허겁지겁 저녁을 먹으며 마셨던 소주 한 잔은 꿀 보다 더 달콤했다. 으슬으슬 몸은 떨려오고 알고는 두 번 다시 반복하지 못할 것 같은 하루였지만 잔디를 깔다 고갤 들면 보였던 불이 켜진 꿈꾸당도, 함께 했던 사람들의 마음도 너무 따뜻해서 자꾸만 미소를 짓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