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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Sep 05. 2022

나는 진실한 남편과 결혼했다.

나는 살면서 부모님께 크게 두 번 반항했다. 첫 번째는 대학 진학할 때, 두 번째는 결혼할 때였다 어쩌면 그 두 가지의 선택은 내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평소답지 않게 내 고집대로 밀어붙였다. 그중 배우자를 선택할 때 나의 기준은 '진실성'이었다. 돈이나 외모 기타 등등의 것들은 세월이 지나며 다 변할 수 있지만 진실한 마음만은 바뀌기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덧,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전 남자 친구가 입만 열면 거짓을 늘어놓았던 탓도 있다.)


지금은 적당히 사회성이 버무려져 좀 나아졌지만 그렇게 선택한 나의 남편은 정말 목에 칼이 들어와도 진실만을 말할 것 같은 남자였다. 때는 남편이 내게 절절한 구애를 하던 20년 전. 어찌 보면 우리의 첫 데이트 날이었다. 그런데 야경이 멋진 곳에 데려다주겠다며 나타난 그는 핸들이 버벅거리고 창문도 닫히지 않는 오래된 경차를 끌고 나와 자신만만하게 "야, 타!"를 외쳤다. 그동안 날 꼬시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아직은 서로 어색할 때라 차마 묻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나서야 묻게 되었다.


“그때 나 별로 안 좋아했어?
보통은 있는 허세, 없는 허세 다 끌어다 멋지게 보이고 싶을 때인데 왜 그랬어?"

“물론 나도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지. 근데 그게 지금의 나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 널 아무리 좋아해도 있는 그대로 날 보여주고 그게 싫어서 네가 떠난다면 그건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곧 내 미래는 아니라는 자신감도 있었고."


그렇다. 그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허세 역시 0.1%도 없는 남자다.




하지만 때로는 (아니, 자주) 그 진실성이 독이 되는 순간도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순간이다.


"자기야, 내 헤어스타일 어때?"

"당신은 얼굴형이 어쩌고 목이 어쩌고 해서 어깨 길이 이상의 웨이브 스타일이 어울리고 색상은 피부톤이 어쩌니까 너무 어두우면 안 돼. 그러니까 다음부터는 귀 위로 올라가는 길이의 검은 단발머리는  절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띠로리~~ 아무래도 그의 머릿속엔 자동으로 인출되는 '모법 답안'이란 없는 듯하다.  



그 뒤로 20년 동안 나의 특훈을 받은 그는 거짓말 대신 '대답 회피하기' 기술을 사용하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해가고 있지만, 여전히 흔들리는 눈동자와 근질거리는 입의 모양만은 감출 수가 없어 대답을 듣지 않았지만 들은 것 같은 찝찝한 순간들이 남아있긴 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많이 발전했다고 안도하는 것도 잠시, 지난 세월의 노력을 비웃듯 새로운 다크호스가 등장했으니, 바로 진실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그와 나의 아들이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했던가. 말을 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대쪽 같은 그의 진실함에 뒷골이 땅겨온다. 최근엔 이런 일이 있었다. 평소처럼 잠자리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그날따라 유독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이마에 주름이 더 늘었어요."


“그래? 엄마 주름이 왜 자꾸 느는 것 같아?"


두 시간 넘게 자지 않겠다며 버티고 있는 아이에게 내심 자기반성이 담긴 대답을 기대했지만 대쪽 같은 우리의 다크호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 늙어서?”


'아, 내 팔자야.' 분명 엄마 피도 반이 섞였을 텐데 이게 어찌 된 영문인 걸까. 아무래도 대를 이어 특훈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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