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추억>
꿈속에서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는 얘기를 한번쯤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꿈속에서 꿈과 현실을 구별할 수 있기 위해서는 '볼을 꼬집어보아라!'라는 말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통용되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꿈속에서 통증을 느껴본 적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높은 곳에서 떨어졌을 때도, 넘어졌을 때도, 상처가 났을 때도 공포와 두려움이라는 감정만 생생하게 전해질 뿐이지 통증이라는 감각이 느껴진 적은 없는 것 같네요.
여러분은 꿈속에서 통증을 느껴보신 경험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댓글을 기다리며, 저는 저의 꿈 노트 그 여섯 번째 장을 여러분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 글은 제가 꾼 꿈을 각색을 통해 짧은 소설 형태로 정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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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도시가 완공이 되었다. 티비 화면 속 앵커는 해상 도시가 지난 십여 년간 끊임없이 지구를 옥죄어왔던 해수면 상승을 향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 도시에는 거주 시설을 비롯한 편의 시설은 물론 여가를 즐기기 위한 문화 시설까지 갖춰져있었다. 주민이라면 누구나 그 모든 것들을 제한 없이 누릴 수 있었다.
해상 도시와 육지를 연결하는 해저터널도 마련되어 있었다. 주민들은 필요한 경우 해저터널을 이용하여 육지와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었으며, 도시의 매연도 소음 공해도 최소화되어 많은 이들에게 꿈의 도시가 될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해상 도시의 첫 거주자가 될 우선순위 대상자들의 발표가 이루어지던 현장에 있었다. 시끌벅적한 사람들. 몰려든 기자들. 강당 안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선순위 대상자들의 대부분은 거주지가 완전히 잠겨버려 임시 거주 시설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렇게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해상 도시로 떠나는 해저터널의 문이 열렸다. 문은 단단한 쇠문의 형태로 되어있었는데 문이 열리자 눈이 부실만큼 강한 빛이 그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취재진들과 이웃 주민들의 환호와 응원을 받으며 나는 다른 우선순위 대상자들과 함께 해저터널로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들 큰 캐리어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해저터널의 문이 서서히 닫히자 터져 나오던 플래시 세례가 잦아들며 터널은 군데군데 빛나는 형광등 빛에 의지하게 되었다.
그 길을 걸으며 나는 문득 내가 떠나온 낡은 도시를 떠올렸다. 우리마저 해상 도시로 떠나고 나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몇몇 도시들은 이제 지도에서조차 사라지게 된다. 나는 아직도 내가 살던 그곳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있는데 말이다.
몸이 기억하는 그때의 골목을 돌아 계단을 오르고 대문 몇 개를 지나면 모든 게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일 것 같지만, 이제는 완전하게 낡아버린 도시가 되는 것이다. 별 것 아닌 일에도 함께 웃고 떠들던 것이 자연스러웠던 나의 어린 날의 배경이 되었던 사실은 변하지는 않겠지만.
작은 일에 행복해하고 감사하던 그 시절도,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 미련하지 않았던 때도, 흙투성이가 될 때까지 뛰어놀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각자의 집으로 향하던 그때의 공기도, 모두. 이제는 술에 취한 틈을 빌려서만 추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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