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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05. 2024

8. 계약을 맺다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 메일에 설레며 출판사 대표님과 수차례 메일을 주고받아 미팅 일정을 잡았다. 부족한 글임에도 관심을 보여주신 바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두 번째 책은 처음보다 더 잘 팔아줄 수 있는 출판사와 계약하고 싶다는 솔직하면서도 이기적인 욕심이 마음속 한편에 일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출판사와의 관계가 신경 쓰였다. 경험 없는 작가의 첫 책을 선뜻 출판해 준 의리를 지켜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책이 잘 자리 잡아 좋은 판매량을 기록했다면 서로가 좋았겠지만, 녹록지 않은 출판시장을 향한 나의 첫 도전은 절반의 성공만 인정될 뿐이었다.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을 품은 채 출판사 미팅 날이 돌아왔다. 미팅을 위해 연차를 내고 하루를 통으로 쉬기로 했다. 몸도 마음도 편안한 상태로 미팅에 임하고 싶었다. 게다가 지방살이 5년 차인지라 서울로의 상경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터였다. 지난겨울 새로 들인 취미인 오토바이를 타고 KTX 역으로 향했다. 집에서 약 20여 분의 거리를 가볍디 가벼운 오토바이로 달리다 보니 도로 위의 요철이 고스란히 엉덩이로 느껴졌다. 자동차와는 비교할 가치도 없는 승차감(?)이었다. 쭉 뻗은 순환도로를 달릴 때에는 사뭇 위험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승용차가 시속 90킬로 이상의 고속(?)으로 내 옆을 쌩하고 지나치면 그로 인해 만들어진 바람이 오토바이 핸들을 조금씩 끌어당기는 것만 같았다. 괜히 오토바이를 탔나? 하지만 이미 길을 나선 지 한참이나 지난 후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자 그제야 느껴지는 봄바람에 상쾌한 기분이 들며 차오르는 재미를 감추지 못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는 주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어딘가 수지맞은 느낌마저 들었다. 왠지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인지라 들뜬 나머지 진작부터 점심 약속을 잡아두었다. 지인과 점심을 간단히 먹은 후 출판사 대표님과의 미팅 장소로 향했다. 여유 있게 먼저 도착해 기다리려고 노력했지만, 서울 지하철의 환승시스템을 까먹었는지, 지도를 보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지 약속 장소에 거의 다 와서도 한참이나 길을 헤매느라 결국 대표님보다도 늦게 도착해 버렸다. 약속 장소인 카페에 허겁지겁 들어서니 대표님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며 나를 알아봐 주셨다. 이메일로만 소통을 했었기에 머릿속에 그리던 출판사 대표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중년의 신사분이 내 이름을 부르며 맞이해 주셨다. 대표님과 마주 앉아 책에 관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표님은 이미 내 첫 책을 찾아보신 후였지만, 나는 준비해 간 책을 참고하실 수 있도록 대표님께 선물로 드렸다. 그러면서 두 번째 책을 왜 쓰게 되었는지, 첫 번째 책과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드렸다. 대표님은 첫 번째 책의 수준이 매우 높다고 평하셨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책 자체의 품질도 매우 높다고 이야기하시며 다만 타깃 고객층을 정확히 설정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두 번째 책의 방향성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책이 다소 젊은 독자층을 겨냥했다고 하면, 두 번째 책은 오히려 실제 도서 구매에 더 적극적이고, 활자로 지식을 습득하는데 익숙한 중장년층을 겨냥하겠다고 대표님은 설명하셨다. 대표님이 내 원고를 보고 자신이 구상해 온 출간의 방향성을 나에게 설명하자 점점 그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서로 준비해 온 질문들을 주고받으며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 대표님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보낸 메일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대표님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 보내신 메일을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메일에 오타도 많고 초고에는 목차도 안 넣으셨던데 혹시 일부러 그러신 건가요?"

대표님의 질문에 아차 싶어진 나는 스스로 순간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멋쩍게 웃으며 서둘러 메일을 열어보니 대표님의 말씀대로 짧은 메일에 오타가 서너 군데나 보였다. 심지어 초고에 목차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하다니. 창피했다. 그런데 대표님은 의외의 말을 덧붙였다.

"의도하신 거면 정말 성공하신 겁니다. 처음에 초고를 받았을 때 파일을 열어보고 목차도 없는 초고에 답변을 드리지 않을까 했는데 오히려 직업병인지 제가 혼자 목차를 뽑아보고 있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글을 읽어봤는데 와닿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노이즈 마케팅 뭐 그런 건가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목차를 넣지 않은 게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한 듯 보였다. 내 메일에 답을 하지 않은 많은 출판사들이 아마 이런 이유로 답하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을 주신 대표님께 더욱 감사한 마음과 함께 믿음이 생겼다.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대표님께서 계약서를 꺼내시며 계약을 제안하셨다. 대표님 또한 나와의 미팅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신 후 계약서를 꺼내는 거라 말씀하시는 걸 보니 출간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부합하는 것처럼 느껴져 속으로 야호를 외쳤다. 그 자리에서 계약서 전문을 검토했다. 이미 경험이 있었서인지 첫 책의 계약서보다 더 술술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아마 비슷한 계약서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계약서를 쭉 읽어본 후 궁금한 몇 가지를 물어보고는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첫 계약에서도 그러했듯 선인세는 없었고 대표님의 배려 덕분에 기존 계약서와 유사한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존 출판사와의 관계에 대해 걱정하는 나에게 대표님은 먼저 연락을 취해서 알람을 드리라고 권하셨다. 역시나 경험이 많은 대표님 다웠다. 계약을 마친 후 대표님과 짧은 담소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던지. 돌아오는 길에는 오토바이로 느껴지는 불편한 요철도 거의 느끼지 못한 듯했다. 집사람과 맥주를 들이켜며 축하파티를 열었다. 이제 시작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차오르는 기쁨을 어찌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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