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지원서를 작성해 본 경험이 있는가? 대기업 그룹 공채에 당당하게 합격한 나로서는 분명 있다. 아니. 그냥 있는 게 아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입사 지원서를 작성했었다. 졸업과 동시에 귀국한 내 귀에 가장 많이 들려오는 소식은 단연코 청년실업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청년실업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느니, 기업들이 더 이상 공채 제도가 아닌 수시 채용을 하겠다느니 하는 그런 뉴스들을 매일같이 듣게 되자 취업에 큰 고민이 없던 나조차도 덩달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귀국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취업 관련 인터넷 카페인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에 회원으로 가입해 동향을 살폈다. 자료를 뒤지면 뒤질수록 현실은 더욱더 가혹한 듯 만 보였다. 결국 카페의 회원 대다수가 그러했던 것처럼 대략 50여 곳의 기업에 입사 지원서를 제출하고야 말았다.
50개나 되는 입사지원서를 넣으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불안감이었다. 공채시즌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기업들이 하나 둘 합격 여부를 알리는 메일을 보내기 시작했는데 불합격 메일이 쌓여감에 따라 자신감도 함께 조금씩 떨어지고 있었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누르고 눌러도 바늘처럼 튀어나오는 불안감이 온몸을 아프게 들쑤시고 있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읽은 어떤 이의 글로 나는 당분간 안심할 수 있었다.
"여러 회사에서 불합격했다고 너무 우울해하지 마세요. 어차피 당신이 갈 수 있는 회사는 하나입니다."
아무리 많은 회사에서 합격 통보를 받더라도 내가 갈 수 있는 회사는 하나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49개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더라도 하나의 회사가 나와 인연이 닿는다면 이전 49개의 불합격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스팸 메일일 뿐이다. 내 경험은 실제로 그러했다. 원서를 넣은 50여 개의 회사들 중 나에게 서류 전형 합격을 안내한 곳은 단 한 곳이었고, 나는 단번에 1차 2차 면접을 통과해 대기업 공채로 입사에 성공했다. 의미 없는 49통의 메일보다 나에게 인연의 손을 내미는 단 한 통의 메일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치 있지 않은가?
투고를 돌리는 상황도 이와 비슷했다. 아무리 많은 출판사에서 내 글의 가치를 알아봐 주고 출간 제안을 해온다 하더라도 정작 내가 출간할 수 있는 출판사는 단 한 곳이다. 그 한 곳을 찾기 위해서는 의미 없이 뼈아픈 거절의 메일을 감내해야만 한다. 많은 출판사에 메일을 보낼수록 내 글이 책으로 출간될 확률은 올라가겠지만, 그만큼 마음의 상처는 클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라면 이 또한 감내해야 할 숙명이다. 나와 인연이 닿지 않는 출판사의 거절 메일을 가볍게 삭제할 수 있는 내공이 쌓여야만 투고를 통한 꾸준한 구애 활동이 가능하다.
첫 번째 책 보다 더 많은 출판사에게 투고를 돌리니 그만큼 많은 출판사에서 거절 메일이 날아들었다. 형식은 조금씩 달랐을지라도 결국 내용은 이러했다.
"정성껏 보내주신 원고는 잘 검토하였습니다. 귀하의 원고는 훌륭하다고 판단되지만 저희 출판사의 출간 방향과 맞지 않는 관계로 이번 원고는 함께하지 못할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도 덧붙였다.
"검토 결과는 원고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아님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작가가 의기가 꺾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인지 정중한 표현을 사용하긴 했지만, 누가 읽어도 완곡한 거절이다. 아무리 좋은 표현을 섞을지언정 거절의 단어들은 읽을 때마다 가슴을 마구 찔러댔다.
회신의 대부분은 거절이었지만, 단순한 거절이 아닌 경우도 더러 있었다. 소위 말하는 기획출판 제의였다. 얼어붙은 출판 업계의 사정을 고려해 저자 스스로가 일정 수량 이상의 책을 매입하여 스스로 판매하는 형식이다. 쉽게 말해 책 제작에 저자가 일부 투자하는 셈이다. 출판시장이 어렵다는 사실을 첫 책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던지라 그들의 제안을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왠지 돈을 써서라도 내 책 한 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되는 것만 같아 반갑지만은 않았다.
거절 메일의 개수만큼 상처도 커져가던 어느 날이었다. 출판사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평소 받던 거절 메일인 줄로만 알았는데 막상 메일을 열어보니 글의 흐름이 전과는 조금 달랐다.
"저자님의 원고를 보고 실제 현장에서 느낀 생생한 공감 사례가 있어 많은 자영업자분들이 충분히 공감하고 배울 수 있는 책이라 판단됩니다."
이 한 줄의 공감을 얻기 위해 작가는 그리도 오랜 시간 글을 쓴다. 짜릿한 느낌과 함께 심장이 쿵쾅거렸다. 누군가 나의 글을 책으로 엮어준다니 감사한 마음이 앞섰다. 그동안 수 많았던 거절 메일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어졌다. 아직 출판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고 출간이 확정된 것도 아니지만 아무튼 출판사의 간택을 받았으니 절반 이상은 성공한 셈이다. 그러니 속으로 쾌재를 지르지 않을 수 있을까. 나를 선택해 준 출판사와 어떤 인연이 닿게 될지 우선은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