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실습 기간을 거쳐 처음 발령받은 부서는 전략기획팀이었다. 전략기획팀이 어떤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지도 알지 못한 채 발령을 받은지라 배울 것이 산더미 같았다. 사수였던 선배가 알려준 전략기획팀의 핵심 역량은 바로 진득한 엉덩이였다. 진득한 엉덩이라...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리는데 대략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기획팀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숫자를 다루는 관리기획이고, 다른 하나는 글을 쓰는 전략기획이다. 물론 이러한 부류가 공식적인 것은 아니고, 회사에 따라 사람에 따라 기능을 다르게 정의하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바로는 이러했다. 숫자를 다루는 기획자들은 로직에 따라 숫자를 뽑아내고 숫자를 통해 회사나 기업의 현 상황을 설명하려 한다. 반면 워드와 파워포인트를 무기로 의사결정에 필요한 워딩을 뽑아내는 전략기획팀에서의 핵심 역량은 글짓기 능력이었다. 숫자가 냉정한 결정을 돕는 역할이라면, 워딩은 뜨거운 희망을 심어주는 것과도 같다. 모두가 공감할 만한 워딩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진득한 엉덩이가 필요했다.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보고서를 쓰고, 보고서의 방향에 더 어울리는 단어들을 계속해서 수정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보고 또 봐도 마음에 드는 그런 요약 문장 한 줄이 완성되는 찰나를 경험할 수 있다. 내가 거쳐간 또 다른 선배는 전략기획의 미덕으로 농업적 근면성을 꼽았다. 그만큼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있다 보면 답이 보이는 게 글쟁이의 숙명이라는 의미였다.
전략기획팀을 떠나 영업을 시작한 지 약 3년이 지난 후에 나는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과제나 업무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온전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 시작하니 선배들이 말한 글쟁이의 숙명이란 말이 더욱 확실하게 와닿았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기가 막힌 글감, 혹은 완벽한 구도가 글을 써주지는 않는다.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자리에 앉아 농업적 근면성으로 손가락을 움직여야 글이 써진다. 글이야말로 한순간에 번쩍 생겨나지 않는다. 매일매일의 운동이 쌓여 근육을 만들고 멋진 몸매를 만들어내듯, 글쓰기 또한 시간 시간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하나의 멋진 글이 완성된다. 그러니 공부나 글쓰기나 왕도는 없다. 좀이 쑤시도록 자리에 앉아 지겹도록 써보는 수밖에. 하지만 그 결과는 항상 정직하다. 노력한 시간만큼 글은 모습을 드러내고 다듬은 횟수만큼 더 나은 글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 글감이 정해졌다면 진득하게 앉아 글을 써보도록 하자. 일단 한번 경험해 보고 나면 어떤 의미인지 두 번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하루에 한 가지 주제를 쓰기로 결심한 나는 각 주제에 맞는 사례를 정리해 보았다. 사례로 사용할 카페와 발생한 사건, 사건과 사례로 이끌어낼 수 있는 시사점을 대략적으로 정리해 각 주제별로 모아보았다. 주제를 정하고 구도를 잡고 각 주제에 맞는 사례들도 미리 찾아 놓은 뒤에는 시간을 들여 지겹도록 쓰는 일 말고는 다른 무엇도 없었다.
쓰는 데에는 별다른 기술이 필요치 않다.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단락마다 구도를 잡아 써도 되지만 내가 선호하는 바는 아니다. 처음부터 구도를 잡고 분량을 조절해 가며 질 높은 글을 쓰는 것도 좋지만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이어가며 글이 어떻게 자리를 잡아가는지를 보는 일 또한 흥미롭고 재미있다. 때로는 글이 전혀 의도치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버려서 단락 전체를 들어내버려야 하는 일도 있지만, 커다란 주제를 머릿속에 잘 새겨 두었다면, 아주 엉뚱한 주제로 글을 적는 일은 피할 수 있기에 적절히 조절해 가며 글을 써 내려가도 좋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주의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글을 쓰는 습관에 따라 조금씩은 다를 수 있지만, 나의 기준에서 소재를 글로 완성할 때 주의해야 했던 사항들 몇 가지를 적어보겠다.
1) 같은 표현을 너무 자주 반복하지 말자. 나의 경우에는 '~것'이란 표현을 나도 모르게 자주 사용하곤 한다. 첫 번째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편집자로부터 그러한 사실을 지적받은 후로 주의하고는 있지만, 의식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아직도 자주 등장하는 표현임이 분명하다. 스스로 글을 읽어보고 자주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면 다른 표현으로 변경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도 좋겠다. 글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같은 표현이 지나치게 반복되면 글 전체를 지루하게 만들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하자.
2)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처음부터 너무 완벽한 글을 적으려 노력하지 않기로 하자. 처음부터 지나치게 수준 높은 글을 써 내려가려 하면 중간중간 글의 흐름이 끊기기도 하고, 글자와 단어의 구성에만 너무 집중한 나머지 글의 주제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공들여 초고를 쓰기보다는 빠르게 초고를 끝내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글 전체가 주제를 품게 만들 것이다. 초고라면 전체적으로 주제를 아우르는 글이라면 충분하다. 어차피 고쳐 쓰겠다는 생각으로 가급적 가볍게 글을 써보자.
3) 초고라고 하더라도 각 단락의 핵심 주제는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글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는 간단 요약본을 먼저 작성한다면 초고를 써내는데 아주 유용하다. 분량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략 5~6 문장 가량의 요약 글을 써보자. 그리고 각 문장을 문단의 주제 글로 잡고 글 앞뒤로 살을 붙여보자. 분량을 만들어내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이 방법이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
4) 글쓰기는 루틴을 만들었을 때 효과가 배가된다. 매일 같은 시간, 매일 같은 장소, 매일 같은 자리에서 글을 쓸 수 있다면 집중력이 배가된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을 때는 새벽시간 카페를 이용했다. 커피 한 잔을 구매한 후 대략 한 시간을 방해받지 않고 쓸 수 있게 되니 글쓰기 연습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환경이었다. 지금은 글 쓰는 시간을 두 배로 늘려 하루 두 시간씩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두 시간 내내 글만 쓰는 일은 인간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글을 쓸 때는 쓰고자 하는 분량과 제한 시간을 미리 정해두는 편이 좋다.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30분이라면 대략 1천 자가량을 써보겠노라 마음먹을 수 있고, 익숙해짐에 따라 조금씩 분량을 늘려나가도 좋다. 학교에서도 50분 수업 후 10분은 쉬는 시간을 갖는다. 간중간 스스로 쉬는 시간을 준다면 지치지 않고 오랫동안 쓸 수 있는 습관을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