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대표님과의 첫 만남을 가진 후 다시 글쓰기에 돌입했다. 미팅 시 대표님으로부터 받은 피드백을 반영하여 추가 집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베테랑 대표님은 전문가답게 책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도록 각 장의 순서 조정과 함께 각 장의 끝에 실용적 매뉴얼을 추가로 삽입하자고 의견을 주셨고, 추가 집필 부분으로 전체 원고의 분량을 30%가량 늘려달라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기존에 내가 작성한 분량이 대략 10만 자였으니 3만 자를 추가로 써야 하는 셈이었다. 2달에 걸쳐 10만 자 분량을 완성했는데 또다시 3만 자를 추가로 써야 한다니.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내 책을 위한 일이니 해야 할 수밖에.
중간중간 추가 집필 부분의 방향성을 대표님과 상의해 가며 작성을 시작했다. 전자메일로 글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화 통화로 더 명확한 의견을 들어야 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 대화로 느끼는 뉘앙스가 확실히 달랐기 때문이다. 한차례 추가 글쓰기의 방향을 바꾸기는 했지만, 대표님과 한번 방향을 맞추고 나니 적어야 할 내용을 명확하게 설정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추가 집필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새로 만든 루틴이었다. 작년 추석 무렵 무릎 수술을 하는 바람에 겨우내 찐 살을 빼기로 마음을 먹었었다. 초고를 완성한 후 바로 사무실 옆 헬스장 회원권을 끊고 새벽 운동을 시작했다. 10킬로나 불어버린 살을 빼려면 새벽 운동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작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시점에 뜻하지 않은 빠른 전개로 다시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이 오니 운동을 잠시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처음 몇 번은 아침에 글을 쓰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운동을 시도해 보기도 했지만, 외근이 많고 근무지에서 바로 집으로 퇴근하는 일이 잦은 업무의 특성상 꾸준히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글을 마칠 때까지는 식단 조절로 대신하고 운동은 미루기로 했다.(아침마다 귀찮아하던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얼마나 신이 났을까.)
또 다른 고민은 아픈 손가락과의 내용 중복이었다. 기존에 이미 유사한 분야의 책을 출간했었기에 새로 쓰는 책의 내용에 차별성이 필요했다. 그런데 각 장의 끝에 삽입되게 될 실용 매뉴얼은 기존 책과 내용적으로 상당히 겹칠 것만 같았다. 기존 책을 다시 꺼내어 내용과 표현이 겹치지 않도록 최대한 조절해 가며 추가 부분을 작성하다 보니 새로운 내용을 작성할 때보다 시간이 배는 더 걸리는 듯했다. 몇 번이고 기존 책을 열어서 비슷한 표현을 쓴 적이 있는지 확인했다. 자연스레 기존 책은 추가 집필 기간 내내 내 곁에 머물렀다.
마지막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바로 내가 쓴 글이 너무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추가 원고를 집필하면서 틈틈이 기존의 원고도 들여다보았다. 모든 작가들이 입을 모으듯 초고는 말 그대로 초고다. 초고가 수정 없이 바로 책이 되는 일이 있기는 할까? 불가능하지 않을까? 초고를 읽으며 튀어나오는 한숨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만 있다면 통째로 다시 쓰고 싶은 부분도 더러 보였다. 하지만 추가 집필에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었기에 많은 부분을 고쳐내지는 못했다. 초고에 매몰되었다간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진도 때문에 출판사와 약속한 기일 내에 원고를 넘길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속이 더 타들어가는 듯했지만 어쩔 수 없이 출판사 대표님을 믿어야 했다. 출판사에서 교정 교안을 하면서 이상한 부분을 바로잡아주시겠지 생각하며.
대표님과 약속한 기한 내에 추가 원고를 작성하기 위해서 아침 시간뿐만 아니라 저녁에도 집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글쓰기에 집중했다. 결국 글쓰기에 필요한 건 탄탄한 엉덩이 근육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글쓰기에 집중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한 내에 원하는 분량의 글이 완성되었다. 일부 다듬은 초고와 함께 완성본을 보내고 나니 마감 기한을 지킨 연재소설가처럼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물론 그들이 느끼는 압박이 몇 배나 더 심할 거라 믿는다.) 원고를 송부하고 나서는 수고한 나 자신에게 보상하느라 며칠을 늘어져 있었다. 수고했어 나 자신!
일주일 정도 기다리자 대표님에게서 검토 의견이 돌아왔다. 천만다행하게도 보완 원고에 대한 대표님의 평가는 후했다. 완성도가 거의 90%에 가깝다고 말씀해 주시는 대표님 덕분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할 수 있었다. 추가로 몇 가지 간단한 수정사항을 반영해서 원고를 보냄으로 최종 탈고가 완료되었다. 물론 경험상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며 추가 교정이 이루어질 것이고, 또다시 검토의 인고를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내 글은 그동안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번듯한 책의 모습일 것이다. 내가 쓴 글이 어떤 모습의 책으로 만들어질지 상상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고 흥분되는 즐거운 기다림이다. 그 즐거운 기다림의 시간이 드디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