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대표님께 연락을 취한 후에도 기다림의 시간은 계속됐다. 6월 중순부터 본격적인 제작 작업이 들어간다고 했지만 7월 중순이 지날 때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조급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7월 중순경 가족들과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에 집사람이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자기 책은 어떻게 되고 있어?"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난번 대표님과 나눈 대화를 이미 알고 있는 집사람이었기에 그때의 이야기를 반복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이렇다 할 업데이트 내용이 있지도 않았다.
"글쎄. 모르겠네."
"자기 혹시 사기당한 거 아냐?"
집사람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내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상상이 나래를 펼쳤다. 혹시 내 원고를 다른데 팔았나? 진짜 출판사가 아니었던 건 아닐까? 이러다 몇 달 지나 돈을 요구하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상상이 들자 등에서는 식은땀마저 흘렀다. 월요일에 연락을 한 번 드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월요일 오후 회사일을 처리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다. 출판사 대표님이었다. 연락을 드려볼까 하는 찰나였다. 원고는 잘 정리해서 본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주시자 십 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론 기다림을 참지 못하고 독촉을 했으면 얼마나 민망한 상황이 발생했을지 상상하자 창피함도 밀려왔다.
8월 초 출간을 목표로 본격적 제작 작업이 시작되면서 대표님과 유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책이 이미지로 디자인되는 사이에 제목과 부제목, 저자 프로필로 쓰일 부분까지 부수적으로 필요한 부분들을 대표님과 함께 채워나갔다. 책에 있어서는 대표님의 경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로 했다. 많은 책을 만들어보신 분이시고 책의 내용을 제외하고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나보다 더 선구안을 가지신 분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대표님은 제목과 부제목을 정할 때 나에게 최종 결정권을 주셨다. 내 책이니 당연히 내가 결정하는 게 옳은 일이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차올랐다.
7월 말경 대표님으로부터 1교가 도착했다. PDF 파일로 디자인된 책을 받아 들자 묘한 기분이었다. 신기하고도 흥미로운. 하지만 들뜬 기분을 만끽할 시간도 없이 1교를 시작했다. 넉넉하지 않은 시간 동안 책의 전체 내용을 검토하고 오탈자를 체크하는 일이 만만치는 않았다. 게다가 이미 수차례나 정독한 책을 또다시 읽어보는 게 지루하지 않을 리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자인 편집이 마무리된 글은 꼼꼼히 읽어보지 않으면 안 됐다. 의외로 오탈자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었고 칸 띄우기 등 디자인이 잘못 잡힌 곳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운동을 잠시 멈추고 근무 전후 시간을 할애해 교정에 몰두하자 대표님이 정해주신 시간 내에 교정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1교를 마친 후 대략 2주 정도의 시간이 지나 2교가 도착했다. 1교를 진행하면서도 느꼈지만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지속적으로 읽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내가 쓴 내 글을 반복해서 읽는다는 게 얼마나 지루하고 어려운 일인지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꼭 한번 경험해 보면 좋겠다.(좋은 결실을 맺어보라는 의미이다.) 1교에서처럼 꼼꼼하게 검토하기란 불가능했다. 1교에서 수정한 내용이 제대로 반영이 되어있는지, 대략적으로 훑으면서 어색한 부분은 없는지 검토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2교 검토 돈을 회신하자 대표님으로부터 디자인 시안이 도착했다. 6가지 디자인 시안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자신이 없는 분야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디자인이 그런 분야다. 선천적 재능의 문제인지 후천적 관심 부족의 문제인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디자인은 잘 모르겠다. 옷이나 신발 등 패션 디자인을 포함해 세상에 디자인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모든 부분에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다. 6가지 디자인 시안을 둘러본 나는 또다시 선택 장애에 휩싸였다. 결국 집사람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집사람 마음에 드는 시안을 골라 대표님에게 회신했다. 다행히 대표님의 안목과 집사람의 안목이 들어맞아 너무도 마음에 드는 예쁜 표지 디자인이 정해지게 되었다.
3교에는 표지 디자인이 포함되었다. 표지가 포함되자 책이 한결 더 책다워졌다. 당장이라도 인쇄소에 데이터를 보내 출력만 하면 될 정도로 완성도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한 번 더 교정을 보아야 했다. 마지막이 될 이번 교정으로 책의 완성도가 좌우될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에 지루함과 무료함을 이겨내고 검토에 검토를 반복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부분이 있으면 체크해서 의견을 달았다. 출간 일정상 대표님께서 넉넉히 시간을 주지 못하시기도 했고, 마침 3교의 기간에 회사 업무가 몰리는 바람에 여유를 부릴 시간이 전혀 없었다. 잠자는 시간과 근무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롯이 교정에만 매달렸다. 지루함에 피곤함이 더해지자 눈이 감기고 집중력이 흐려졌다. 대충대충 할 생각은 없었지만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부딪혀 놓친 부분이 많았을 거라 생각한다.
교정의 과정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 이미 수차례 읽어 본 같은 내용의 글을 또다시 읽어야 하니 집중력이 유지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완벽히 끝낼 수 있느냐? 그렇지만도 않다. 교정을 아무리 꼼꼼히 하더라도 오탈 자나 문맥에 맞지 않는 표현이 실제 책을 마주하면 하나둘 나타나기 마련이다. 긴 시간을 읽고 또 읽으면서 이렇게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일이고 분명 가치가 있는 일이다. 내가 낳은 내 책이 세상에 온전한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해 생명을 불어넣는다는 마음으로 마치 처음 글을 읽듯이 모든 교정에 책임감을 다해 임해야 한다. 교정에 신경을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완성도 높은 책이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임하자. 어느 부모도 아이를 허투루 키우지 못하는 것처럼, 어떤 작가도 허투루 교정에 임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너무 크게 걱정하지는 말자. 출판사의 편집자가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 보아줄 테니. 언젠가는 당신도 겪게 될(혹은 이미 겪었을지도 모를) 어렵고도 힘든 여정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