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출판 후의 변화

글쓰기는 글쟁이의 숙명

by 쪼꼬

학창 시절엔 스무 살만 되면 내 삶이 크게 변할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무엇이든 내 맘대로 하고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자유를 만끽하며 멋진 인생을 살게 될 거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막상 스무 살이 되어도 엄청난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정 부분 자유가 주어지기는 했지만 나는 여전히 나였고 반복되는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이는 취업을 이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직장에 들어가 돈을 벌게 되면 넉넉해진 주머니로 여유로운 삶을 누릴 것 같았지만 실상은 매월 돌아오는 카드빚과 대출금을 갚기에 급급한, 예전과 달라지지 않은 나였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쓴 글이 책으로 출간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 선배님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으는 것처럼 출간을 한다고 나에게 특이한 큰 변화가 바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첫 책을 내고도 느낀 바이지만, 출간 그 자체만으로 한 사람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변하는 일은 누구에게도 발생하지 않는다. 책을 낸다는 일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흔한 경험은 아니지만, 출간을 위해 들인 노력에 비하면 책을 출간하는 일반인 중 대다수는 엄청난 변화를 직접 경험할 확률이 매우 낮다. 나 역시도 그랬다. 현실의 벽은 냉정하게도 모두에게 공평한 건지 출간과 함께 대박을 치거나 베스트셀러에 선정되는 꿈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채 3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첫 책을 낸 이후에는 책을 한 보따리 싸 짊어지고 회사로 찾아가 높은 분들을 찾아뵙고 일일이 사인도 해드렸다. 그중 몇몇이 대단하다며 치켜세워주셨지만 그들의 역할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마 지금 그들은 내 책을 어디다 처박아 두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두 번째 책을 출간하고는 가족들과 아주 친한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에게도 책을 선물하지 않았다. 심지어 출간 소식을 알리지도 않았다. 몇 가지 이유를 대보자면 이렇다. 출간 소식을 여기저기 알려서 그들에게 품앗이를 요구하고 싶지 않았다. 한 권에 18,000원이 넘는 책을 구매해 달라 부탁하는 일은 곧 머지않은 미래에 내가 갚아야 할 빚이나 진배없었다. 두 번째 이유는 책을 선물하는 일이 나에게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선물 받은 사람들이 내 책을 더 널리 알려주거나 홍보해 주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체감하기엔 그랬다. 내가 선물한 내 책을 읽어는 보았는지 의문까지 들 정도다. 만약 읽어보았다면 긍정이건 부정이건 최소한의 간단한 피드백이라도 있었을 텐데 그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내 책은 그냥 지인 중 한 명이 자기 자랑을 위해 선물한 명함과도 같았다. 세 번째 이유는 더 마음이 아프다. 나는 스스로 책 출간에 대해 엄청난 뿌듯함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고, 이러한 나의 노력을 회사에서도 인정해 주리라 생각했다. 카페 창업이라는 업무 분야와 연관된 책이니까. 하지만 외려 회사에서는 내 출간 활동을 거북해하는 듯했다. 업무 외 시간을 쪼개어 글을 썼지만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으로 보여 그럴 수도 있겠다. 인사팀에서는 추가 수익이 발생할 경우 절대적으로 내용을 공유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책 쓰는데 무엇 하나 도와준 적도 없는 회사에서 이런 자세를 취하니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두 번째 책을 내고는 최소한의 지인들에게만 출간 소식을 전했다. 그래서인지 두 번째 책을 출간한 후에도 처음과 같이 내 신상에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내 책이 어떠한 모습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지 알 길이 없어 어떠한 체감도 하지 못하는 중이다.


그렇다고 전혀 변화가 없었던 것만은 아니다. 우선 첫 번째 책 보다도 훨씬 더 알차고 좋은 내용의 책이 만들어지자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 두 번째 책을 실물로 받아보니 어쩔 수 없이 첫 책과 비교를 하게 되었고, 두 번째 책이 가독성과 내용면에서 첫 번째 책 보다 훨씬 좋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첫 책보다 두 배 가까이 두껍기까지 했다. 그래서인지 첫 달의 판매량은 전보다 두 배를 넘어섰다.(이는 첫 인세를 받은 금액으로도 확인이 가능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의 퀄리티가 높아져서일까? 아니면 브런치 홍보와 지인 찬스를 활용한 희망도서 신청을 늘린 결과였을까?

또 다른 변화로 책 한 권을 출간한 초보 작가와 두 권을 출간한 기성작가(?) 사이의 차이를 실감하게 되었음을 들 수 있겠다. 쓸감을 찾는 데는 여전히 어려움을 느끼고 있지만, 일단 쓸감을 찾게 되면 글을 써 내려가는 일은 처음보다 몇십 배는 더 쉬워진 느낌이다. 두 권의 책을 내고 나니 좋은 글감이 나타나면 또 한 권의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차올랐다. 이번에는 전문 분야에 관한 책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책이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 어떤 글로 또 내 책을 쓰게 될지는 모르지만 글 쓰는 행위에 대한 두려움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지 않을까?

두 번째 책을 출간한 후 대학 동창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대략 10여 년 만에 뭉친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화재는 내 출간 소식이었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지 않은 시간 동안 내가 한 권도 아닌 두 권이나 책을 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친구들은 나에게 연신 대단하다며 인정을 쏟아냈다. 나를 잘 아는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으니 기분이 하늘을 나는 듯했다. 선뜻 나서서 오늘 밥값은 내가 내겠노라 했지만 친구들은 한사코 거절해 인정에 대한 보답은 이루지 못했다. 모르는 사람 수백 명의 인정보다 내 친한 친구 열 명의 인정이 더 큰 보상이었다.


들인 노력과 시간의 양에 비하면 책 쓰기의 성과는 한없이 미천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글쓰기를 전업이 아닌 부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는 더더욱 책 자체가 빛을 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오늘도 수십수백 권의 새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그중 대다수는 독자에게 선택받지 못하고 서점 한편에 남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점점 더 늘어나는 디지털 소비 행태가 종이책 시장을 더욱 경색시키고 있으니 책을 쓰는 일로 무언가를 일궈내기란 정말 하늘의 별 따기가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소위 글쟁이이기를 자처하는 수많은 작가들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돈도 되지 않는 일에 왜 그리 목숨 거느냐 묻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등산가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와 마라토너들이 달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건강의 증진보다는 그 행위 자체의 즐거움이 아닌가? 글쓰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지적 건강함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글쓰기에는 그 행위 자체의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못한다. 글을 쓰고 책을 내서 사회적으로 물질적으로 큰 변화를 겪지 못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글쓰기는 글쟁이의 숙명이니까 말이다. 오늘도 한 편의 글을 썼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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