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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18.

토론 수업과는 별도로 영어 자체를 위한 수업도 진행되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어학원 최상급 클래스에 속하는 수준이었기에 단순 문법 수업이 아닌 다양한 배경지식을 알려주는 수업이 많았다.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돼지를 영어로 Pig라고 하고 소는 영어로 Cow라고 한다. 돼지는 프랑스어로 뭘까? Porc다. 그럼 소는? Boeuf다. Pork, Beef와 매우 닮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돼지고기 Pork가 프랑스에서는 그냥 돼지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알고 있는 소고기 Beef가 프랑스에서는 그냥 소다. 왜일까? 여기에는 영국과 프랑스 사이의 역사적 관계가 담겨 있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는 조선과 청의 관계와도 같았다. 청이 형님 나라 조선이 아우 나라였던 것과 같이 영국은 군사 강국이었던 프랑스의 정치, 문화적 지배 구조하에 있었다. 영국의 왕이 결혼이라도 하려면 프랑스에 항상 허락을 받을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지배적 구조 덕분에 국민 사이에도 차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은 영국인, 돼지를 먹는 사람은 프랑스인. 마찬가지로 소를 키우는 사람은 영국인, 소를 먹는 사람은 프랑스인이었다. 소를 먹는 사람들이 부르는 Boeuf가 Beef로 변해 소고기로 통용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어는 아주 오래전부터 라틴어와 게르만어 등 여러 가지 언어에서 파생되어 발달한 언어이기 때문에 각 단어가 가진 어근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어휘를 익힐 수 있다. 마치 한국어가 중국어에서 파생되어, 한자를 이해하면 다양한 한국어 어휘를 익힐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단어 앞에 붙는 Pre는 before(미리)의 의미를 지니고 있고, Pro는 forward(앞으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Previous(이전의), Prevent(미리 예방하다)와 Proposal(앞으로의 제안) 등이 그 예이다. 마찬가지로 Vacuum, Vacation 등에 사용된 Vac는 비어있는(empty)의 의미를 가지고 있고, promote, motive 등에 사용된 mot는 이동하다(move)의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단어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im-은 in이 변형된 것으로 '안으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ex-는 '밖으로'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import와 export가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어근들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어휘력을 넓히는데 상당히 도움이 된다.     

Pre-sessional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Lecture(강의)이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들에게 강의는 말 그대로 넘사벽이다. IELTS 등의 듣기 시험 문제에서도 최고 난이도는 항상 강의를 듣고 그 안의 내용을 유추하는 것이다. 그만큼 강의를 이해하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코스를 듣는 4주 동안 여러 번 강의를 미리 들어볼 수 있었다. 이 기간의 강의는 사실 실제 강의보다는 다양한 전공을 가진 학생에게 제공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한 세미나에 가까웠는데, 강의 시간 동안 내용을 주의 깊게 듣고 수업 시간에는 강의 내용에 대해 토의하거나 요약을 하는 등 숙제가 주어졌기 때문에 상당히 까다로웠다. 셰익스피어와 그에 대한 루머를 다루는 역사부터, 당시 큰 화제를 일으켰던 리먼 사태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경제 분야에 이르기까지 강의를 담당하는 교수에 따라 다양한 영역으로 준비되어 있었다     

강의 중 가장 인상적인 내용은 'How to Study' 즉, '공부하는 방법'이었다. 이 강의에서 교수는 우리들을 'Professional Student'(전업 학생)라고 표현하며 공부와 일하는 것을 연관시켰다. 취업하게 되면 몇 시간을 일할까? 기본적으로 Full-time이라고 하면 하루 8시간 주 5일 근무하는 게 통상적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Full-time Student라고 하면 하루 8시간 주 5일을 스스로 계획해서 공부해야 한다는 것을 연사였던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회사원들이 퇴근 후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어보며 퇴근 후에는 일에 대한 생각을 회사에 두고 친구들을 만나거나 펍에 가서 스포츠를 보거나 책을 읽는 등(회사원에게 책 읽기는 일이 아닌 휴식이다.) 개인적인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학생들 역시 자신이 정해 놓은 공부 시간을 모두 채웠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다음 공부를 위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어떤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휴식 시간을 보내야 할는지도 모르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 또한 공부를 위한 조력이 되어야 하며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머릿속에는 '공부해야 하는데'라는 생각만 자리하고 있었지 공부를 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동안 나는 공부를 타의에 의한, 혹은 시험을 위한 부담으로 여겼는지 모른다. 공부하는 것 역시 내 시간을 나에게 투자하는 즉, 스스로 나를 고용한 것이다. 나는 Full-time Student로서 하루 8시간, 주 5일을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의무를 나 스스로 지고 있다.     

과정 막바지에 제출하게 되는 3천 자 분량의 essay를 써 보는 것은 이후 마주하게 될 다양한 essay와 논문을 준비하기 위한 충분한 워밍업이 되었다. 과정 초기에 미리 essay 과제에 대해 알려주었고 자유롭게 주제를 정하도록 했다. 과정 내내 담당 선생님이 지속해서 중간점검을 해주었다. essay의 기본 형식과 작성 방법에 대한 스킬 위주로 코칭이 진행되었지만, 주제에 대한 논리와 자료의 적정성도 함께 고민해 주었다. 본과정의 essay는 기본 5천 자 이상이었기에 미리 맛보기를 해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비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Pre-sessional코스는 가능하면 경험하지 말아야 할 과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효과적 측면에서 본다면 만족도는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학교를 미리 다녀보는 것은 향후 수업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조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나처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학생들은 더더욱 그랬다. 사실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었기 때문이다. Pre-sessional과정 동안 학교에서 제공해준 여러 가지 도움으로 본과정의 수업 일정을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고 덕분에 주말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학교에 다닐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없이는 런던의 살인적 물가를 감당할 방법이 없었던 나로서는 잘한 결정이 분명했다.     

4주간의 Pre-sessional 과정은, 토론을 위해 글을 읽거나 과정 끝에 써야 할 에세이를 준비하는 등 꾸준히 해야 할 공부가 있었지만, 오전 9시에 시작하여 저녁 5시에 마치는 정규 수업을 포함한 모든 일정이 소화하기에 어려울 만큼 힘들게 짜여 있지는 않았다. 물론 2년 동안 영국에 살면서 편해진 영어가 과정의 난이도를 조금 낮춘 것도 사실이다. 반면 영국 생활이 처음이라 적응해야 했던 병훈이형이나 츄와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영국 생활 적응과 영어 실력 향상이라는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 했기에 조금은 더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4주간의 과정이 끝나갈 무렵 서서히 스케줄의 압박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선 마지막 과제인 essay를 몰입해서 써야 했고, 작년 7월에 받아놓은 1년의 비자가 끝나는 시점이 9월이었기 때문에 비자도 연장해야 했다. essay는 상당히 까다로웠다. 선생님과 함께 글의 구조를 잡아 이를 한글로 정리해보고 인용할 문구들과 내용을 모두 컴퓨터에 옮겼다. 3천 자의 분량은 다행히 MS Word에 단어를 카운팅 해주는 기능으로 알 수 있다. 적어도 단어를 세어가며 고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면서 선생님이 수없이 강조한 것은 Plagiarism 즉 표절이었다. 한국에서도 여러 유명인사의 사건으로 인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논문 표절의 문제를 영국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경험했고, 그래서 논문을 포함한 모든 학문적 글에 인용되는 문구는 그 출처를 밝히는 것이 의무화되었다. 심지어 표절 여부를 검열하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어 있다고 했는데, 문장 혹은 문단의 단어와 문장 구조 등을 분석하여 80% 이상 일치하면 표절로 판단한다고 한다. 이런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표절에 대한 의지는 꺾일 수밖에 없다. 대학 시절 출처도 밝히지 않고 마구잡이로 붙여 넣기 하여 만들던 리포트와는 차원이 달랐다.     

Pre-sessional의 essay가 끝나고 한숨 돌릴 겨를도 없이 본 과정이 바로 시작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했는데, 이번에도 조금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조용히 뒷문으로 들어가 이미 시작된 오리엔테이션 내용을 들어야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학과별로 따로 진행됐기 때문에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이 앞으로 1년 동안 내가 함께 공부할 사람들이다. 당연히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궁금해졌다. 몇몇 동양인들이 눈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모두 앞을 보고 앉아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이라고 확신이 드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진행자의 설명이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이 되자 내가 서 있던 쪽에 놓인 간식거리를 먹으러 사람들이 하나둘 뒤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 무리 가운데 100% 한국인이라고 확신이 드는 한 여성이 있었다.

"저...... 혹시 한국인이세요?"

과자를 먹고 있던 여자분은 깜짝 놀라며

"어머! 한국인이세요?"

하고 되물었다.

"네네. 되게 반갑네요."

"그러니까요! 한국인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거든요."

그 여자분은 대학원 시절 동안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영옥이누나였는데 누나는 한국에서 제약회사에 다니던 중 업무에 대한 회의감과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싶은 마음에 유학길에 올랐다고 했다. 영국 대학원을 알아보다 유학원으로부터 퀸메리대를 소개받아 지원했고, 국제관계학과에 한국인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최근 몇 년간 한국인은 없었다고 이야기 들었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국인끼리의 만남이니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퀸메리대의 한국인 학생은 대부분 학부생이었고 대학원생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물며 그중에서도 흔치 않은 국제관계학 과라니! 한국인을 같은 학교 같은 과에서 만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누나는 이야기했다. 높은 IELTS 성적으로 Pre-sessional을 거치지 않고 한국에서 바로 입학한 누나는 학교에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영국 생활도 익숙하지 않았다. 반면 영국 생활의 경험과 인맥이 풍부한 나와 만났으니 당연히 서로 도움을 주고받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대학원 과정을 포함한 학교생활 전반에 관해 설명해주었다. 도서관 사용법, 컴퓨터와 프린터기 사용법, 학기 중 과목(모듈이라 부른다.) 리스트, 과목별 평가 방법, 담당 교수 소개 등등. 물가가 높기로 소문난 영국인만큼 도서관, 컴퓨터, 프린터 등 모든 인프라를 사용하는 데 인증 절차가 필요했다. 한국에서의 인증 절차보다 더 까다롭고 인터페이스도 수월하지 않아 불편했다. 게다가 인터넷은 왜 이렇게 느린지. 역시 대한민국이 IT 강국이라는 이야기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것은 평가 방법과 수업 진행 방식이었다. 과목별로 시험과 essay 등 평가 방식이 상이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좋은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다. 오로지 목표는 졸업이었다.     

1학기는 Core Module 즉 전공필수 과목으로 4과목이 정해져 있었다.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이렇게 사흘만 학교에 나가면 되는 일정이었지만 화요일은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5시까지 빼곡하게 수업이 몰려있어 쉴 틈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국제 학생들을 위해 무료로 제공해주는 영어 수업을 점심시간에 듣기로 한 터라 더욱이 그랬다. 각 수업은 강의와 토론, 그리고 세미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세미나는 대부분 저녁 시간에 배치되어 있기도 했고 참석이 필수사항은 아니어서 자주 참석하지는 못했다. 대신 세미나에 참석하면 담당 교수님들 외에 다른 학교 (말하자면 조금 유명한 학교의) 교수님들의 강의도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네트워크도 형성할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세미나를 열심히 듣는 학생은 아니었다. 생계 때문이라고 핑계를 대본다.     

대다수 학과의 오리엔테이션이 같은 시기에 진행되다 보니 Pre-sessional 때의 캠퍼스와는 그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거리는 북적이는 학생들로 가득하고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드는 소리가 넘쳐났다. 이제야 비로소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로 가득한 대학 캠퍼스에 있으니 다시 대학 입학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누구나 탐내는 런던대의 학생이 된 것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에서 뿌듯함이 느껴졌다. 비록 나이는 많았지만, 다시 한번 열심히 공부해보겠다는 열정이 샘솟을 수밖에 없었다. 핑크빛 미래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에 설레는 시간이었다.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몇몇 수업에 참석하기 위해 캠퍼스를 바쁘게 걸어가는 나를 마주 오던 한 남성이 불러 세웠다.

"저..."

깜짝 놀란 나에게 그는

"한국인이세요?"

더 깜짝 놀란 나는 네라고 짧게 대답했고, 그는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사뭇 가수 성시경을 연상케 하는 외모를 가진 그는 퀸메리대 한인 학생회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학교 내 한국인들을 찾아다니며 한인회에 가입을 권유하고 있었다. 한인회라는 말에 순간적 거부감이 들었지만, 먼 타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는 나에게 한인 학생들만의 개강 파티에 관해 이야기했고 그 자리에 참석하기를 권했다.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공부만 하겠다고 다짐했던 나지만, 노는데 내가 빠지면 섭섭하지 않은가? 선뜻 그렇게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연락처를 교환했다.   

공부도 물론 중요하지만, 인맥이나 사람 관계도 그만큼 중요하다. 간혹 거기까지 가서 한국 사람들이랑 어울릴 필요가 있느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의 차이일 뿐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국인들과 담쌓고 사는 사람들도 숱하게 보았지만, 외국인은 말 그대로 외국인이다. 우리와 정서가 다른 친구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기란 사실상 쉽지 않다. 반면 영국에서 만나 인연을 맺게 된 한국인 친구들과 아직도 종종 연락하며 지내는 것을 보면 힘든 시절 같은 정서를 공유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보면 결국 남는 것은 추억이다. 열심히 공부한 추억은 혼자만의 것이지만 함께한 시간은 나눌 수 있는 기억이다. 최근 라디오에서 들은 문구가 이와 일맥상통하다.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추억이 많은 사람이다.'     

회장이 알려준 개강 파티는 금요일이었고 본격적인 학기 시작은 그다음 주부터였다. 나는 그가 알려준 대로 모임 장소에 나갔다. 약 20명 정도의 한인 학생들이 모여서 식사와 술을 함께 했다. 이미 2~3학년이던 몇몇 학생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지 반가운 회동을 즐기고 있었고, 나를 포함한 새내기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먹었다. 대부분이 영국에서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라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던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이 먹어 이런 자리에 나온 나 자신이 조금은 초라하고 한심해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 중에 내가 나이도 제일 많고 영어도 제일 못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어느 정도 자리가 정리되자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하는데 내 예상과는 달리 정말 다양한 나이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에는 나보다 두 살 위인 학부 2학년생 형과 나와 동갑인 친구들, 심지어 이제 막 20살이 된 어린 친구들까지 학년도 나이도 정말 다양했다. 게다가 한국에서 온 교환학생까지 다양한 과정의 친구들도 섞여 있었다. 부담감이 조금은 사라지는 듯했다.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특유의 친화력도 발휘됐다. 파티에서는 향후 학생회의 운영방안에 관한 안내가 있었다. 학생회의 주요 목적은 한인 학생들 사이의 네트워크 형성으로 좀 더 효율적인 학교생활에 있었지만, 주요 활동은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바로 체육대회와 파티였다. 앞서 설명했듯이 런던대는 여러 개의 개별 대학들이 연합하여 형성된 연합대학이고 어느 학교 학생이든 모두 런던대로 통합되어 졸업장을 받기 때문에 한인회 역시 연합활동을 하고 있었다. 1년에 한 번 연합 농구대회와 축구대회를 개최하고 학교별 파티에 서로 초대해 총 10회 이상의 클럽 파티를 진행한다고 했다. 노는 것과 운동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러한 활동들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기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이를 통해 형성된 한인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있었다.     

Pre-sessional과 오리엔테이션을 보내면서 1학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감이 생겼다. 게다가 1년 동안 함께 공부하는 데 도움이 될 영옥이누나도 만났고, 학교생활이 지루하지 않게 해 줄 한인회 친구들도 생겼다. 우여곡절이 있긴 했지만 비자 신청도 마쳤으니 모든 것이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 열심히 하는 일만 남았다. 순수한 학문에 대한 열정도 아니고 전공을 살려 NGO나 정치 활동을 할 것도 아니었다. 일차적인 목표는 fail 없이 졸업하는 것이었다. 입학보다 졸업이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 좋은 성적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Pre-sessional 과정으로 맛보기는 끝난 셈이니 공부하기가 한결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학교에서 이끌어주는 대로 잘 따라가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 없이 졸업에 성공할 것만 같았다. 물론 나의 이러한 안일한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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