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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22.

대학원 수업의 모든 과정을 마쳤다. 한국과의 차이가 있다면 종강이라고 술을 진탕 마시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학과마다 다를 수 있긴 하겠지만, 대학원은 수업이 모두 끝나고 시험을 치르고 나면 자연스럽게 논문을 준비하는 시간으로 넘어간다. 논문을 시작하기 전 논문을 도와줄 슈퍼바이저가 지정된다. 논문 준비를 시작하게 되면 주임 교수가 기존에 제출되었던 논문을 소개해 주는데, 이미 제출된 논문들을 토대로 목차를 정하고 구도를 잡으면 한결 수월하게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구도를 모른 채 논문을 준비한다면 상당히 고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의 석사 논문의 단계는

1) 주제 정하기

2) 논문 제안서 작성

3) 구도 잡기

4) 자료 모으기

5) 본문 작성

6) 요약본 작성

7) 제출

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 중에서 가장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부분을 본문 작성하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자료 모으기에 더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 주제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는 있지만 내가 선정한 주제의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는 것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나와 정확하게 동일한 아이디어로 연구를 진행한 학자는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고 한다면 표절을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연구석사가 아니고서는 자료를 먼저 수집하고 그에 맞는 주제를 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연구석사는 새로운 주제와 가설에 대해 직접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가설의 설정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에 따른 데이터를 직접 만들어간다. 때문에 과정의 기간도 일반석사에 비해 길다. 일반석사의 경우에도 새로운 가설을 수립하고 그를 증명하는 것이 확실히 높은 점수를 받는데 유리할지 모르지만, 대개는 기존 가설에 대한 검증을 위주로 진행한다. 아무래도 논문의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입학 초기부터 논문 제안서를 제출하고 꾸준히 준비를 이어가기는 하지만 언제라도 논문 주제는 바꿀 수 있으니 초기에 정한 주제 때문에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2학기가 마칠 때쯤 슈퍼바이저로부터 논문제안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내가 정한 주제는 현시대의 첩보와 전략에 관한 내용이었다. 국제관계학이 주로 국제 정치와 사상에 대해 논의하는 과목이고, 전쟁이 이 학문의 기초가 된 만큼 전략과 정보에 관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사실 처음 대학원을 진학하면서 논문 제안서(Proposal)를 낼 때는 북한과 관련된 정보전략의 내용을 다루고자 했지만, 슈퍼바이저는 한 국가의 사례에 깊이 몰입하게 되면 자료를 찾는 것에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구하지 못할 자료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영국이라지만, 북한과 관련한 연구가 그리 활발한 편도 아니거니와 많은 자료 중에서 북한과 관련된 이야기만 추려내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제안서의 가설을 입증하는 데 있어서 굳이 한 국가에 집중하기보다는 전반적인 사례 분석이 용이하다는 뜻이다. 슈퍼바이저의 조언에 따라 북한과 관련된 내용은 사례 중 한 가지로 사용하기로 하고 전체 주제는 정보와 전략에 관한 내용으로 결정했다.     

주제가 정해졌으니 본격적으로 논문 작업에 들어갔다. 새로운 주제가 주어진 만큼 논문의 Proposal(제안서)을 다시 작성해야 했다. 이를 슈퍼바이저에게 보내 검토받았고, 몇 번의 구성적 수정을 거친 후 승인을 받아 본격적 논문 작성이 시작되었다. 구도를 잡고 Chapter를 나눈 후 각 단락별 꼭지(주요 문장)를 잡았다. 이렇게 논문 작성의 준비 기간에만 무려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진짜 논문을 쓰는 일 보다 지금의 기초단계(Ground work)를 깔끔하게 마무리해놓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사실을 한참 후 논문을 제출할 때쯤 알 수 있었다.     

준비단계가 길어지다 보니 집중도가 떨어졌다. 의욕적으로 주제를 지지해 주던 슈퍼바이저와의 대화도 점점 줄어들었다. 학교와 집의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기가 힘들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일정이 바쁜 슈퍼바이저를 계속 괴롭히는 것이 너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기숙사가 공부하기에는 유리한 듯하다.)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여하튼 논문의 구성이 완료되고 본격적 작업이 시작됐다. 일단 논문의 초안을 완성한 후 주변의 원어민 친구들에게 논문 검토를 부탁하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본문 작성을 서둘렀다. 하지만 후에 나의 이러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는데, 원어민 친구들(이미 대학원을 졸업한 친구들)이라 할지라도 전공이 다른 석사 논문의 논리와 구조를 검증해 주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미리 이실직고하자면 1차 논문에 대해서 재 작성(Retake) 결과가 떨어졌다. 노력이 부족한 탓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가이드 일에 흠뻑 빠져있었다. 런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도 좋았지만, 더 좋았던 건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Stratford-Upon-Avon이나 처칠 생가가 있는 Blenheim Palace와 같은 곳을 돈을 받아 가며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그동안 내가 영국에서 살면서 알게 된 잡다한 지식들을 알려주며 나 자신의 여행도 즐길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매번 같은 곳을 방문하면 지겹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지만, 갈 때마다 새롭고 볼 때마다 마음이 치유됐다. 함께하는 사람이 다르고, 보이는 풍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논문 준비가 소홀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름대로의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 무렵 누나가 사촌 동생 둘을 데리고 유럽 여행을 위해 런던에 방문했다. 오랜만에 만난 누나도, 철없는 사촌 동생들도 마냥 반갑기만 했다. 사실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한 번쯤은 초대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던 차에 이렇게 누나가 방문해주니 마음적으로 반가움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누나는 4일간 런던에 머물면서 나의 공짜 가이드 투어를 받았다. 두 번이나 유럽 여행을 다녀왔지만 가이드를 받으며 여행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누나에게도 런던은 새롭게 다가왔을 것이다. 동생들을 데리고 먼저 파리로 떠난 누나와 보름 후 스위스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가까이 있으면서도 스위스에는 가보지 못했기에 이번 여행이 무척이나 기대가 되었다.     

갑작스레 여행을 준비하게 되어 설레기도 했지만 논문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마감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 과정을 거치면서 대충의 구도는 잡아두었지만 실제로 본문을 작성하는데 물리적인 시간이 상당히 필요함을 예상하고 있었고, 논문에 인용할 자료를 완벽하게 모으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추가로 읽어야 할 자료가 아직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가이드를 하면서도 늘 자료를 가지고 다니며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읽고는 있었지만 집중해서 읽기는 어려웠고 중요한 부분에 체크를 하며 자료를 모으기도 어려웠으니 주로 저널이나 에세이 위주로만 읽는 양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이드 일도 스위스 여행도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사실 논문은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 아마 중요한 시험 전날에도 친구들과 술을 마셔본 사람이라면 내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보름의 시간이 지나고 누나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로밍 서비스로 누나와의 전화 연락은 가능했지만 비싼 통화요금 덕분에 자주 통화하기는 어려웠고, 통화를 하더라도 위치나 일정만 확인하고 금세 끊어야 했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도입되기 전이니 SNS를 사용할 여건도 아니었다. 스위스로 가는 비행기는 Easy Jet을 통해 저렴하게 구입해 두었다. 진작부터 저가 항공이 활발하게 이용되는 유럽이어서 미리 일정만 정하면 비행기 값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한 달 전에 예약하면 1파운드(우리 돈 1,700원)의 특가로도 좌석 예약이 가능했다. 물론 세금과 이것저것 합치면 3~4만 원 정도는 훌쩍 넘어가지만 그마저도 아주 훌륭한 가격이다. 단점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히스로 국제공항이 아닌 스텐스테드나 루튼 등 런던 외곽지역의 공항을 이용해야 하고 새벽 비행이 많았기 때문에 공항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불편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저렴한 가격이었기에 많은 유럽인들이 저가 항공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이번 여행 역시 새벽 2시 비행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고 런던 시내 투어 일정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시내에서 저녁을 먹은 후 나이트 버스(24시간 운영하는 심야버스)를 이용해 루튼 공항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다.     

가이드 일을 알려주었던 선배를 만나 소호 근처에서 저녁을 먹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저녁 한 끼였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고 차를 한잔 마시기 위해 근처 카페로 이동해 디저트를 먹었다. 누나가 런던에 올 때 내가 부탁한 것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닌텐도라는 소형 게임기였다. 전자사전 대신 사용하겠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던 그 게임기가 갖고 싶었다. 한국이었다면 이런 부탁 따위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기각됐겠지만, 먼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을 동생을 위해 누나는 기꺼이 나에게 게임기를 선물해 주었다. 선배와 나는 카페에 앉아 닌텐도 삼매경에 빠졌다. 이미 유행이 조금 지난 후였지만 새로 접한 신문물이 마냥 신기할 따름이었다. 한참을 둘이서 퍼즐게임에 열중하다가 이제 그만 일어나려 자리를 뜨는데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 가방이 없어진 것이다. 앉은 의자에 걸어둔 가방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한 번도 의자에 가방을 걸어둔 적이 없었다.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유럽에서 하루 이틀 산 것도 아니었기에 항상 가방은 품에 안고 있었다. 헌데 이날은 왜 그랬는지 모른다. 가방을 의자에 걸어두다니...

“What the...”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유럽의 치안으로 말하자면 말 그대로 엉망이다. 집시들이 많은 곳은 특히나 더 그렇다. 그리스나 이탈리아, 스페인이 대표적이다. 집시들은 사유재산에 대한 개념이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은 다 내 거다. 실제 친구가 겪은 예를 들면, 사진을 찍은 후 짐을 정리하기 위해 벤치 위에 살짝 놓아둔 사진기를 한 집시 여성이 아무렇지 않게 들고 간다. 이를 발견하고 그녀를 불러 세우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했다면 그냥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면 된다. 도둑질을 하는 것 같지 않게 태연히 물건을 들고 가는 여성을 불러 세워 '그거 내 거야.'라고 이야기하면 그녀는 '아 그래?' 하며 사진기를 놓고 유유히 사라진다. 훔치는 일에 대한 죄책감도 미안한 마음도 전혀 없다. 그냥 가져가면 그만이다. 런던은 그나마 상황이 양호하긴 하지만 역시나 많은 유럽인들이 유입되어 있는 곳이기에 항상 긴장을 늦추면 안 되었다. 그걸 잘 아는 내가 이런 실수를 저지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라?' 하는 순간 아찔해졌다. 다음날 스위스로 출국할 예정이었기에 가방 안에는 내 귀중품들이 전부 들어있었다. 가방에 뭐가 있는지 찬찬히 생각해 봤다.

'여권에 지갑...... 지갑? 지갑에는 학생증, 운전면허증, 주민등록증, 돈? 이런......'

찰나의 순간에 한 가지가 더 떠올랐다.

'논문자료!'

그렇다. 스위스에서도 논문자료를 읽으려고 자료를 몽땅 가방에 챙겨두었었다. 단순히 읽을거리의 자료들만이 아니라 평소에 차곡차곡 준비해둔 인용할 자료들이 모두 들어있었던 것이다. 순간 짜증이 끓어올라왔다. 정말 하늘이 원망스럽고 화가 치밀었다.     

여권이 없으니 비행기를 탈 수도 없었고, 내가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는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좌절하는 나를 위로라도 하듯 교통카드(Oyster Card)만 뒷 주머니에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래도 그 순간에는 그게 뭐라고 또 감사하더라. 서둘러 누나에게 문자를 보내자 로밍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나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결국 나는 스위스에 가지 못했다. 약 3주 전부터 준비해둔 스위스행 저가항공사 비행기 표는 금액이 싼 만큼 환불도 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스위스의 장엄한 자연경관을 보지 못하는 것이 너무 속상했지만 그보다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누나와 사촌 동생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내가 가지 못해서 아쉬워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했다. 지금 나에게 닥친 최대의 과제는 논문이었다.     

선배와 함께 런던 시내를 뒤지고 다녔지만 가방을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혹시나 가방과 지갑만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았을까 싶어 온갖 쓰레기통을 다 뒤지고 돌아다녔다.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도 없는 가방 속 논문 자료만은 어떻게든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돈이나 신분증은 다시 만들면 된다고 생각했다. 가방에 들어있는 내 논문의 모든 자료. 그 자료들만이라도 되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훔쳐간 놈들이 그런 내 심정을 이해할 리 없었다. 그걸 이해했으면 가져가지도 않았겠지. 하는 수 없이 인근 경찰서로 향해 도난신고를 했다. 경찰관의 지시대로 Police Report(범죄 신고서)를 작성했다. 나의 개인 신상과 함께 도난당한 장소, 도난당한 시간, 도난품 등을 적어 접수했다. 그런다고 경찰이 바로 출동해 도난품을 찾아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경찰관은 물건을 찾게 되면 연락을 주겠으니 돌아가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간단하고 차갑게 응대하는 것은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경찰서를 나왔다. 경찰서를 나와서도 한참 동안 카페 주변을 뒤지고 다녔다. 제발 가방만 쓰레기통에 버려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끝내 가방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어제의 일이 꿈이었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것은 냉혹한 현실. 아무도 내게 어제의 일이 꿈이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이제 뒤처리를 해야 할 때이다. 인터넷으로 비슷한 경험이 있는지 검색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찾아봤다.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을 줄이야. 검색을 통해 알게 된 대로 우선 신분증부터 새로 발급받고 난 후 학교로 가서 논문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논문이 가장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모아두었던 자료를 모두 잃어버린 지금 상황에서는 논문을 이어나가기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대사관에 가서 여권을 재발급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했다. 접수에서부터 막혔다.

"학생증이나 한국 신분증 있으세요?"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나임을 증명할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한 순간 신원 미확인자가 된 것이다. 여권을 포함해 사진이 들어간 모든 신분증을 도난당한 지금, 내가 제시하는 어떠한 서류도 그게 나라는 것을 증명할 수가 없었다. 다소 과할 수 있지만 다시 한번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잘 생각해보자. 한국에서는 나를 나라고 입증할만한 것들이 다소 존재한다. 나를 아는 부모님도 있고, 주민등록증을 만들면서 찍은 사진과 지문이 데이터로 남아 있다. 하다못해 학교 졸업앨범으로도 나라는 사람이 증명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러한 자료 중 어느 것 하나도 구할 수가 없다. 유일하게 나를 나로 인정하는 문서는 여권이었고, 그 여권으로 학생증과 운전면허증 등 사진이 있는 신분증을 만들었다. 그런데 사진이 들어간 모든 신분증이 없어졌으니, 무얼 보고 나를 나라고 인정한단 말인가? 심지어 이곳은 공인인증서도 없고 주민번호 뒷자리도 사용하지 않으니 말이다.     

신분증이 없다고 하자 대사관 직원은 Police Report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어제 작성한 그것이다. 어제 그 서류를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서류라고 생각해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넣어 두었는데, 이후에도 이 보고서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대사관에서는 이 리포트와 함께 사진 두 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은행 카드도 도난당했으니 돈을 뽑을 수도 없었고 결제를 할 수도 없어 사진관을 앞에 두고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신분증이 없으니 은행카드를 재발급받을 수 없을 테고, 돈이 없으면 신분증을 만들 수 없으니 말이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대사관을 나와야 했다.

다행히 다음 날의 런던 시내 투어를 의뢰받았다. 가방을 잃어버릴 때 함께 있던 선배가 미안한 마음에 나에게 자신의 의뢰를 양보한 것이다.  투어가 있는 날이면 투어 당일 현금으로 페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장 급한 돈은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현금이 생기면 사진을 찍고 여권을 재발급받을 계획이었다. 아직 여권도 비자도 논문도 해결된 것은 없었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그저 웃으며 그들을 인도해야 했다. 평소만큼 즐거운 에너지가 나오지 못한 건 당연했다. 그날따라 관광객들의 질문은 왜 또 그리도 많던지. 책이나 하나 던져주고 자습을 시키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프로니까 그럴 수는 없지! 그런데 그리니치 투어를 마치고 타워브리지로 향하는 길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대사관 직원이었다.

"조차행씨이신가요?"

"네, 그런데요."

"우편이 왔는데 여권이네요. 언제 찾으러 오시겠어요?"

그렇다. 내 가방을 훔쳐간 분(?)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여권이 필요한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사실 한국인 여권으로 많은 나라를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보니 한국 여권은 위조나 변조에 활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여권이 돌아왔고 나에게 닥친 문제 중 많은 부분은 해결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일 안에 말이다. 도둑놈에게 감사할 일이 있을 줄이야. 신분증이 다시 생겼으니, 이제야 내가 나를 찾은 기분이었다. 학생증이나 신용카드를 포함해 나머지 것들은 모두 다시 발급받으면 그만이다.     

여권을 찾았으니 이제 논문을 해결할 차례이다. 학교에 가서 슈퍼바이저를 만나 상황을 설명했다. 슈퍼바이저는 나에게 행정실을 찾아가 볼 것을 권하며 아마도 논문 제출 기한이 연장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가 말한 대로 행정실로 찾아가 직원에게 다시 상황을 설명하자 Police Report를 요구했다. 경찰에 신고를 해놓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다. 여전히 꼬깃꼬깃 구겨져 있는 Police Report를 꺼내어 보여주자 Report Number를 확인하고는 e-mail로 문서의 스캔본과 이 번호를 적어서 논문 제출기한 연기 신청을 하도록 안내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 그녀가 안내해준 대로 메일을 보냈고 일주일 정도가 지나자 연기 신청에 대한 확인 메일이 도착했다. 범죄와 관련된 정황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논문 제출 기한을 2달 연기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가방을 도난당한 덕에 다시 찾아야 할 자료도 많아졌지만 논문을 작성할 시간도 늘어났으니 그나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가방에 노트북이 들어있지 않았던 천만다행이라며 나 스스로를 위로했다. 

"아주 감~~~ 사합니다! 도둑님!"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아주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별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여권을 다시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다시 만들 수는 있다. 돈과 시간, 그리고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긴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이다. 물론 분노와 원망이라는 감정으로 세상이 아주 짜증스럽게 보이는 시간을 잠시 거치긴 하겠지만. 이 사건을 생각하면 이 문구가 떠오른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일은 나를 강하게 할 뿐이다.'

그렇다. 이러한 일로 내가 죽는 건 아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일은 겪으면 겪을수록 나를 강하게 한다. 경험을 통해 사람은 강해진다는 뜻이다. 덕분에 웬만한 일들은 스스로 방법을 찾고 처리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해결이 되기 마련이고, 어려운 문제라고 하더라도 풀 수 있다. 처한 상황을 걱정하고 비탄해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물론 당황하고 두려워서 화가 날 수는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니 너무 오래 주저앉아 있을 필요는 없다. 어느 정도 추스르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일단 지나간 일이라면 뒤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역사에 가정이 없다는 말처럼 다시 돌이킬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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