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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23.

도둑님에 대한 원망과 감사는 털어버리고 논문에 집중해야 했다. 아주 처음부터 시작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자료가 증발한 상황이라 이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다행인 점은 잃어버린 자료들 대부분은 인쇄물이라는 것이다. 무거운 책들을 여행하는 동안 통으로 들고 다니며 읽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필요한 부분을 미리 인쇄해 두었고 그 인쇄물을 모두 도둑맞았다. 인쇄물을 다시 구하기 위해 일주일 내내 학교 도서관에서 자료만 찾아야 했다. 자료를 대부분 준비해 두어 이제 진득하게 쉬엄쉬엄 본문 작성만 하면 되었던 내 계획은 보기 좋게 리셋되었다. 대부분의 책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어떤 책들은 이미 대여가 되어서 며칠을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그렇게 찾은 자료 중에서 내가 마크해 두었던 곳을 정리하는 데에 또 수일이 걸렸다. 혹시나 또 잃어버리는 일이 있을까 봐 별도로 페이지를 메모해 가면서 말이다.     

지금 이렇게 짧은 글로는 그때의 내 감정을 다 표현할 수 없이 힘든 과정이었다. 짜증과 내려놓음을 수없이 반복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가면서 적응하는 나를 발견하니 헛웃음도 나왔다. 우여곡절 끝에 아무튼 대충 자료 복구를 끝냈다. 사실 아주 새로운 내용으로 기존의 자료를 대신하기도 했다. 이제 다시 본궤도로 올라와 글을 써야 했다. 대학원 과정을 통해서 에세이를 써본 경험으로 글을 쓰는 것이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일단 2만 단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에서부터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통 3천~5천 자 사이의 에세이를 적었으니 이를 4개~6개가량 써야 하는 것이다. 논문의 단어 수는 일반적으로 주어진 단어 수의 90%~110%까지 범위를 허용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18,000 단어 ~ 22,000 단어 사이에 논문을 마치면 된다. 하지만 평가에 있어서는 분량보다 내용에 우선순위를 주기 때문에 22,000자를 모두 채웠다고 하더라도 더 높은 점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구도는 어느 정도 잡혀 있고 자료도 대충 모았으니 쭉쭉 글을 써 내려갔다. 글을 쓴다는 것을 창작활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나는 글 쓰는 일을 중노동으로 분류한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일은 단순하지도 않아서 시시때때로 생각에 고민까지 겸해야 하니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진득한 엉덩이가 가장 중요한 스펙이고 농업적 근면성이 가장 필요한 미덕이다. 지금도 내가 좋아서 매일 아침 글을 쓰고는 있지만, 엉덩이가 아프고 손목이 저려온다. 논문을 쓰는 건 이보다 수십 배 수백 배는 더했다. 마감의 기한이 정해져 있으니 그 압박감이 심할 수밖에 없었고, 적는 내용이 학문적 접근이다 보니 생각의 깊이도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도난 사건 덕분에 기한이 연기되긴 했지만, 여전히 시간에 쫓기고 있었고, 여전히 나에게는 2만 단어라는 분량이 숙제로 남아있었다.     

며칠간의 밤샘 작업이 이어졌다. 정리한 자료를 구도에 맞게 분류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새로운 자료를 찾아 넣기를 무한 반복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초보가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나에게 맞는 자료를 찾으려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흐름으로 글을 쓰는데 뒷받침이 되어줄 만한 자료가 있으리라 생각해 여기저기 많은 책자와 저널을 뒤지지만 실제로 내가 원하는 자료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시간이 무한대로 있다고 하면 못 찾을 것도 아니지만 우리에겐 한정된 시간이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리 찾아놓은 자료에 맞게 글의 흐름을 만들고 논리를 정리해야 하고, 정말 필요할 경우에는 슈퍼바이저에게 요청해 관련 서적을 추천받는 것이 도움이 된다. 물론 슈퍼바이저가 정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우리보다는 더 많은 글을 읽지 않았겠는가? 운이 좋으면 추천 서적에서 내가 원하는 자료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 시기에 내가 처해있던 또 하나의 고민 탓에 논문 작업은 더욱 더뎌졌다. 바로 취업이었다. 이제 대학원 졸업이 코앞에 다가왔으니 고민이 안될 수 없었다. 런던에서 열리는 한국 기업들의 취업설명회에도 참석하며 향후 진로에 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사실상 논문보다도 중요한 건 그다음이니 말이다. 유학생 대부분이 하는 고민은 거의 똑같다. '현지 업체에 취업해서 현지에 눌러살 것인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 한국 기업에 취업할 것인가?’ 물론 현지 한국 업체에 취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의 하나긴 하지만, 영주권이 없는 유학생이라면 아무래도 확률이 낮다. 현지에는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가진 한국인 2세들이 생각보다 많은데, 그들과 경쟁하기에는 비용적인 측면이나 언어적인 측면에서 유학생이 전혀 유리하지 않다. 수 천만 원짜리 비자도 가지고 있고 또 수 천만 원으로도 해결하지 못한 어학실력도 가진 그들을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인맥을 포함해, 실력이 월등히 좋은 사람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서 유학생들은 앞서 말한 두 가지를 고민하게 되는데 두 가지 옵션은 명확한 차이를 가진다.     

현지 업체에 취업하는 것은 모든 유학생이 꿈꾸는 일이다. 한국의 기업들보다 페이도 좋을뿐더러 근무 조건이나 환경이 월등히 좋기 때문이다. 외국계 기업에 취업하려는 학생들이 꿈꾸는 바와 같다. 다만 한 가지 문제점은 역시나 비자다. 지금은 유럽 연합의 많은 나라에서 넘쳐나는 이민자들 때문에 관련 법이 상당 부분 수정되었지만, 당시 대학원을 졸업하면 2년간 영국에 머물며 취업할 수 있는 비자가 주어졌다. 그런데 이 비자가 끝날 때 문제가 생긴다. 현지 업체가 비자 연장에 동의하지 않을 때는 어차피 한국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 함정이다. 업체가 비자 연장에 동의하려면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다른 경쟁자와 비교해 엄청나게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하는데, 취업 후 비자가 끝나는 2년 이내에 월등한 퍼포먼스를 내기란 사실상 불가능이다. 국적을 불문하고 신입은 어리숙해야 마땅하다. 마지막 순간에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한국에 들어오게 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았다. 하지만 도전해 볼 만은 하다. 만약 전공이 전문직이나 기능직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한국인 특유의 근면 성실함으로 도전하면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고 능력이 인정되면 비자는 자동으로 따라온다.     

한국에서 취업하는 것은 일단 확률이 높다. 유학을 통해 흔히 말하는 스펙이 쌓였으니 당연하다. 더구나 한국에는 내 말을 알아듣는 기업이 넘쳐나지 않는가? 비자 걱정도 없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낼 필요도 없다. 해외에서 영영 살아볼 요량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한국에서 정착하는 것도 좋다. 게다가 일단 취업을 하고 난 후 해외 영업이나 주재원으로 해외 경력을 계속 쌓을 수도 있다. 아무래도 유학 경험이 있으면 회사에서 적임자를 찾을 때 우선적 고려 대상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수없이 좌절하고 실망할지도 모르고, 그동안 영어를 완전히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성공한 경험이 있으면 금세 따라잡을 수 있다. 나는 적어도 그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 역시 이 두 가지 옵션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논문 작업이 진행되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러한 고민은 더욱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런던이었지만, 이미 5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소위 말하는 못 볼 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기는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열정적으로 달려온 런던 생활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주 5일, 그것도 오후 5시 이전이면 모두 퇴근하여 집으로 향하는 런더너들을 보며 한없이 부러워했던 것을 생각하면 런던 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도 아쉽기만 했다. 당시 한국은 주 5일제도 겨우 정착이 되어가고 있던 시기다.     

하지만 어떠한 결정도 두 가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나의 결정은 한국행이었다. 한국행을 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족들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에 마음이 지친 것도 있었고, 영국에 정착한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약간의 실망을 한 것도 있었다. 세계 어느 곳보다도 높은 연봉 수준을 자랑하는 영국이었지만 살인적인 물가 덕분에 항상 생활이 넉넉하지는 않아 보였다. 대부분은 하우스 쉐어를 통해서 비용을 절감해야만 했고, 영국의 집은 적게는 50년에서 많게는 100년이 넘은 것이 많아 생활환경이 열악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쉐어하며 겪어야 했던 속 시끄러운 잡무도 이젠 지쳤다.     

또 한 가지 크게 영향을 미친 것은 바로 직업이었다.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면서 NGO와 같은 국제기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에 있으면서 영국 암 연구소(Cancer Research UK)의 한국어 통역과 번역을 도와준 경험이 있었다. 자원봉사는 아니었고, 일정의 페이를 받기는 했지만, 그 수준은 상당히 낮았다. 그들과 함께 일하는 동안 나에게는 그들만큼의 순수한 열정이 있지 않음을 확인했다. 국제사회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일은 아주 의미 있는 일이기에, 그 기본에는 순수한 열정과 박애 정신이 필요했다. 솔직하게 나 자신을 판단하건대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나에게 우선순위는 지금 당장 내 삶의 행복이었고, 이는 곧 물질적 안정으로 이어져야 했다. 맞다. 난 속물이다. 난 나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안정적 취업이라는 목표를 두고 생각해 보았을 때, 나에게 더 매력적이었던 것은 한국 기업이었다. 우선은 언어적인 면에서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있을 수 있었다. 영국 기업에서 근무하게 되면 나에게 언어는 플러스 요소가 아니라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마이너스 요소 정도가 아니다. 그 이하다. 그들 입장에서 아무 연관성 없는 한국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어떠한 플러스 요인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쟁을 생각하면 영어 실력은 상당한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모국어로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다면, 영어로는 그 능력의 80%밖에 자신이 없었다. 80%의 능력으로 네이티브들과 경쟁한다면 언젠가 한계에 부딪힐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모국어를 100% 발휘하면서도 종종 한계에 부딪히곤 하지만...     

한국행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선택한 VISION이었다. '취업을 한 후에는? 다음은 뭐지?'라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나에게 세워진 목표는 지역 전문가였다. 특정 지역의 주재원으로 오랜 시간 해당 지역에 대한 이해를 쌓게 되면 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대학 시절 아프리카 지역 전문가의 강의를 들은 경험이 있었는데, 한국 정부가 해당 지역과의 교류를 위해 기업인으로 오랫동안 주재원 생활을 한 그에게 많은 조언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 신분으로 국가적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경제적 안정과 개인의 목표를 모두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나는 주재원이 되는 것을 목표로 정했고, 그 후로 회사 내에서 나의 목표는 항상 '유럽 법인장'이었다. 물론 지금은 많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아무튼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일단은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고민의 끝에 한국행이라는 결정이 나오자 한국 기업들의 채용 시기를 확인해야 했다. 대부분의 대기업 하반기 공개채용이 9월경 시작된다는 것을 확인하고 한국에 들어갈 시기를 고민하게 되었다. 논문의 기존 제출기한은 9월이었지만, 도난 사건으로 두 달의 유예기간을 받았기 때문에 11월까지만 논문을 제출하면 된다. 11월까지 런던에 머물면서 논문을 쓰는 것이 집중하기에도, 주변의 도움을 받기에도 좋았지만, 공개채용 시기를 놓치게 되면 또다시 6개월 이상의 시간을 허비해야 할 수도 있기에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실 논문은 어디서든 쓸 수 있으니 한국으로 돌아가 좋아하던 음식도 맘껏 먹고 좋아하는 친구들도 실컷 만나고 싶었다. 열심히 공부만 했으니까 이제 보상 좀 받아도 된다.     

한국에 들어오기 직전, 친하게 지내던 남자 셋이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여행이어서인지 그 감회가 남달랐다. 그 와중에도 논문 자료를 계속 읽어야 했고 저질 체력 덕분에 걷는 것이 힘들었지만 스페인 그라나다부터 해변이 아름다운 말라가, 스페인의 중심 마드리드까지. 남자 셋이 아름다운 스페인 미녀들에게 수차례 추파를 날려보기도 했지만 소득은 전혀 없었다. 동양인 남자에 관심이 없는 걸까? 우리에게 관심이 없는 걸까? 둘 다인가? 아무튼 나름대로 의미 있는 여행을 소화하고 한국행에 오를 수 있었다. 햇수로 5년 가까이 머물던 런던을 떠나는 일이라 여러모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영영 떠난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정리했다. 짧은 정리를 마치고는 곧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처음 런던을 떠날 때와 비슷하게 아쉬움의 눈물이 흘렀지만 몰려오는 피곤함 덕분에 이내 눈이 감겼다.     

눈을 뜨니 한국이었다. 영국 시각으로 저녁에 출발한 비행기 안에서 내내 잠만 잤다. 머릿속에 온통 논문에 대한 고민으로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몸도 마음도 피곤했나 보다. 한국으로 돌아와 시차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다시 곧장 논문 작업에 착수했고 이와 동시에 순차적으로 공지가 올라오는 대기업 공채 소식을 자주 확인해가며 시간이 날 때마다 지원서와 자기소개서도 작성했다. 우선 논문을 마칠 때까지는 취업에 온전히 신경을 쓸 수가 없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논문을 완성키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나의 생활 패턴은 런던에 있을 때와 다름이 없었다. 시차 적응 때문에 좀비처럼 남들이 모두 잠든 시간에 움직인다는 사실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같은 시기에 뉴욕에서 귀국한 누나가 구로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당분간 누나 집에서 얹혀 지내기로 했다. 덕분에 생활비도 숙식비도 해결되었다. 누나는 타지 생활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뉴욕의 유명 의류업체에서 일하던 사람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니 의아했다. 누나의 설명에 따르면, 해외에서 근무한 경력이 총 3년 가까이 되는데, 그중 학생 비자로 근무한 기간이 1년 이상이었다. 당연히 그 경력은 인정받지 못한다. 문제는 그 이후의 경력인데, 한국 의류 업계에서는 대부분 해외 근무 자체를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고, 때문에 누나가 받던 급여 수준을 맞춰주기가 어려웠다. 몇몇 대기업 의류회사를 제외하고는 미국의 의류 업계보다 급여 수준이 낮은 것이 현실이었다. 근래에 이슈가 된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의 문제는 사실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누나의 일은 누나의 일이다. 나는 얼른 논문을 마쳐야 했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글쓰기 작업을 절반 이상 해두었기 때문에, 나머지 절반만 한국에서 진행하면 되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약 8천 단어 이상을 더 적어야 했고, 중간중간 필요한 자료를 검색하고, 읽은 것을 발췌하여 본문에 삽입해야 했기에 작업은 꼬박 한 달 이상이 걸렸다. 사실 실제로 글을 쓰는 시간만을 고려한다면 약 1~2주 정도면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글의 논리적 전개와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채워 넣다 보면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더구나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를 도둑맞은 상황이었고, 그것들을 100% 복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생각해 두었던 자료를 넣고 싶어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어딘가에 분명히 내용이 있는 것 같은데 찾을 수 없으니 답답할 일이다. 그럴 때면 과감하게 내용 전체를 포기해야 했다. 전개에 있어 꼭 필요한 내용이라 생각되어 자료를 찾는데 한참의 시간을 소비한다면, 자료를 찾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부분은 시간만 허비하고 의욕까지 상실된다. 대체할 수 있는 자료가 있다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문에 대해 스스로 확신이 떨어졌다. 런던에서는 무언가 전개가 막힐 때마다 나를 도와줄 친구들이 있었고, 슈퍼바이저를 찾아가 물어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 온 후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영국과 한국의 시차 덕분에 슈퍼바이저에게 메일을 보내도 답변을 받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고, 한국에서 내 논문을 함께 검토해 줄 친구를 찾을 수도 없었다. 시간은 자꾸만 재촉해 오고, 진도는 나가지 않자 스트레스가 쌓였다. 머리가 빠지고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면 모든 것이 느려진다. 밥을 먹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일단 체력이 있어야 하는 일이다. 런던에 있으면서는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운동을 자주 했었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축구나 농구를 하러 다녔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향인 한국에 들어온 후로 운동할 시간도, 운동하러 갈 장소도, 심지어는 운동을 함께 할 친구도 없었다. 런던에서 나름대로 인싸였던 내가 한국에 온 순간 찐따 오타쿠가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덕분에 몸은 계속 아팠고 논문의 진도는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엉덩이 통증이 심해졌다. 한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 본 사람은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일인지 알 것이다. 엉덩이도 근육이기 때문에 자주 움직여줘야 하는데,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글을 쓰니 엉덩이가 아프지 않으면 그게 비정상이다. 논문을 쓰는 내내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글을 써야 했고, 그런데도 통증이 나아지지 않으면 글쓰기를 그만두고 일어나 걸어야 했다.  함께 사는 누나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내색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글쓰기의 답은 진득한 엉덩이이다. 시간을 들이고 자리에 앉아 있으면 한자라도 써진다. 주변에 방해할 만한 것이 없으면 더더욱 그럴 수 있다. 한국에 오자마자 왕따가 된 덕분에 논문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었다. 한 달 가까이 밤낮없이 써 내려간 논문이 완성되고 런던에 있는 친구에게 피드백을 부탁했다. 영국인이었고 대학원을 진학한 친구였기에 그가 어느 정도 문법적, 논리적 오류를 봐줄 수 있으리라 판단해서였다. 공짜로 부탁을 하면 제대로 봐주지 않을 것 같아 50파운드(우리 돈 8만 원이 이상)라는 거금을 주고 부탁을 한 터였다. 이틀이 지난 후 친구에게서 메일에 대한 답장이 왔다. 몇 가지 문법적 오류는 수정하였고, 이 정도 논문이면 통과할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수정한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생각보다 수정한 곳이 적었다. 조금 불안했지만 어쨌든 검토까지 받았으니 바인딩(제본)을 한 후 우편으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끝났다. 이제 취업만 하면 된다.     

적지 않은 시간을 논문에 투자했고 드디어 그 끝을 보게 되었다. 대학원을 진학하는 친구들이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이 논문이다. 논문 그 자체가 가진 엄청난 중압감과 무게감을 부담스러워한다. 절대적, 물리적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고,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결국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그럴 만도 하다. 실제로 주변에서 논문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한 사람을 많이 봐 왔고, 그들에게 적절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내가 그들에게 하는 조언은 다름 아닌 한국적 성실함이다.     

한국인의 근면 성실함에 대해서는 누구든 많이 들어봐서 알고 있다. 파독 간호사들의 성실한 성공담이 많은 생명을 구한 이야기나 하와이로 이주한 이민자들이 성실함만으로 성공을 이뤄낸 이야기 등은 마치 전설과도 같아서 내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이는 모두 당신의 이야기이며, 나의 이야기이다. 신기하게도 대한민국 사람들의 근본에는 성실함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이는 아마 우리의 부모님이나 조상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미덕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성실함을 당신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고, 이를 부정하지 않는 것에서 도전은 시작된다.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 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한국적 성실함을 부정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인내와 경험이 필요한 모든 일은 해낼 수 있다. 논문이라는 결과물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지 타고난 머리나 재능의 싸움은 아니다. 논문에 필요한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으로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사실 논문뿐 아니라 노력이라는 것이 포괄하는 모든 결과물이 마찬가지이다. 물론 이것이 모두에게 아주 간단할 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할 만한 지적 능력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결국은 절대적 시간과의 싸움이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당신이 한국이라면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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