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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꼬 Sep 23. 2022

공채형이 들려주는 영국유학기

Chapter 25.

여느 때와 같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기분이 좋아서 긍정적이 된 건지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기분이 좋은 건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무언가 희망적인 생각들로 가득했다. 맹장 수술 후 마지막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가는 길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미 11월로 접어든 시점이었는데도 다시 봄이 온 것 마냥 기분이 좋았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 눈앞을 날아다니던 모기 한 마리가 마치 피터팬이 데리고 다니는 팅커벨처럼 보일 정도로 내 마음은 가벼웠고 실실 웃음이 났다. 드디어 정신이 나간 걸까?  

사실 이날은 C사의 인·적성검사 결과 발표가 있는 날이었는데, 전날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혼잣말로

'될 거야. 되겠지. 됐네! 붙었어! 축하해!'

라고 주문을 외우며 기분 좋게 잠이 들었더랬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취업이라는 문턱에서 좌절만을 맛보았기 때문인지, 나 특유의 유쾌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누군가와 신나게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어야 다시 좀 돌아올 텐데 그럴만한 친구도 없었으니 더욱 그랬다. 유쾌함이 사라지고 초조함만 가득한 나에게서 부정의 기운만 풍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이런 나 자신이 싫었던 터라, 이날 하루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긍정적인 생각만 하자고 다짐했다. 사실상 대기업 공채의 마지막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낙방하면 대기업 취업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왔지만, 그렇게 되더라도 더 나은 결과를 위해 일어나는 일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나는 기분 좋게 컴퓨터를 켜고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갈아입었다. 여전히 심장은 두근거리고 있었지만 애써 침착한 척

'붙었겠지~'

하며 이메일을 열었다. C사로부터 한 통의 메일이 와 있었다.

'뭐? 정말?'

결과는 합격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말도 안 돼. 내가 붙었다고? 악!!!'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포효한 나는 기분이 날아갈 듯 기뻤다. 그날의 긍정이 나에게 기적을 일으킨 것만 같아 더없이 신기하고 기뻤다. 당장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합격 사실을 알리고 전화를 붙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아직 최종 합격한 것도 아니었는데 최종 합격 통지를 받은 것처럼 기쁨이 형언할 수 없을 정도였다. 수십 차례 서류 전형에서 낙방했으니 이 한 걸음이 얼마나 대단한 한 걸음으로 느껴졌겠는가!     

어렵게 잡은 면접의 기회를 잃고 싶지 않았다. 이제부터가 진짜 싸움이라는 생각과 함께 준비에 들어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메일에 나와 있는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정독했다. 토시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아 같은 글을 수십 번도 더 읽은 듯하다. 누가 봤다면 수능시험 언어영역 문제라도 푸는 줄 알았겠다. 아니면 난독증이던가.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C사 면접 스터디를 찾아보았다. 나처럼 서류 전형에 합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있었다. 그중에 시간이 맞는 한 팀을 선택해 참석하기로 했다. 스터디 모임에 참석하기 전, 서점에 들러 면접과 관련된 책을 한 권 사서 읽은 후 모임에 참석했다. 총 6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는데 모두 나보다 적게는 두세 살, 많게는 대여섯 살은 어린 친구들이었다. 어린 나이에도 치열하게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스터디에 참석한 것은 적지 않게 도움이 됐다. 오랫동안 해외에서 지낸 탓에 최신 면접 경향이나 트렌드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면접의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중요해 보였다. 게다가 지원하는 기업의 인재상에 따라 면접 질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서로 공유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현재 대학에 다니고 있거나, 최근에 대학을 졸업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유학파 왕따인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이미 가지고 있었고 이미 C사에 취업한 선후배 혹은 동기들도 많아서 그들로부터 면접시험 족보를 포함한 유용한 정보를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었다. 과거 면접에 출제된 질문 유형과 그에 어울리는 대답을 미리 연습해 보는 것이 당연히 가장 큰 도움이 되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 또한 대한민국 시험의 일종인지라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인데, 시험이라는 제도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정작 입사 후 주변을 보니 시험을 잘 본다고 일을 잘하지는 않더라. 시험은 시험일뿐이다. 이렇게라도 나를 위로해야 자괴감이 덜 들 것 같다.     

스터디를 통해서 파악한 C사의 면접은 2차에 걸쳐 진행되는데, 1차는 토론 면접으로 지원자들 5~6명이 두 개의 조로 나뉘어 서로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고 토론을 펼치는 방식이었고, 2차 면접은 3명의 면접관들이 한 명의 지원자를 심도 있게 검증하는 방식이었다. 요즘 면접은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어려워져서 이 정도는 애교 수준이지만, 당시 이 면접에 임하는 지원자들의 노력과 열정만큼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시로 바뀌는 면접의 동향을 파악해서 그에 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과정은 비단 나를 포장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회사에서 나에 대해 궁금한 부분을 정확하게 전달해서 그들이 나를 선택하도록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열정 없이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정도의 열정도 없이 그저 합격 통보만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스터디에 참석하기 전 읽은 '면접의 기술'(2009, 정동수, 백승우)이라는 책에서 면접의 실질적 기술과 화법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나는 그 방식이 나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됐다. 책의 핵심 내용을 적어본다.     

1. 말하듯이 말하라: 면접자들이 긴장한 탓에 딱딱한 말투를 하게 되면 듣는 사람에게 그 경직됨은 그대로 전달된다. 면접관들에게 자신감 있는 인상을 주고자 한다면 평소 말하듯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2. 일상에서 면접을 보라: 면접실에 들어가 새로운 이야기를 지어낼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순발력이 좋아서 임기응변을 하는 것은 좋지만 전혀 있지 않은 일을 지어내는 것은 더 큰 모순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면접에서 나오게 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실제 면접에 대한 모의고사로 아주 훌륭하다.     

3.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 자신의 대답으로 유도하라: 면접관의 질문이 아주 난처하고 까다로울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질문의 의도를 파악한다면 질문의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예를 들어, 면접관이 해외여행이나 유학에 대해 질문을 했다고 하면, 그 의도는 분명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도전정신을 물어보는 것이다. 본인이 여행을 좋아하지 않고 도전을 즐기지 않는다고 해서

"저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렇게 전혀 자신과 상관없는 내용을 질문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으로 화재를 전환해내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 위와 같은 질문이라면,

"여행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전과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는데요, 저는 평소 꾸준한 독서와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많은 도전을 즐기는 편입니다.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도전은 아주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가장 큰 도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도로 대답할 수 있다. 지원한 직무나 기업 이념에 따라 당락이 엇갈릴 수는 있지만 이 정도의 대답이라면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들이 빠른 판단을 내리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4. 스펙 대신 경험을 이야기하라: 다양한 경험으로 다양한 당신이 만들어졌다. 자신의 출신이나 자신의 성장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보다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당신을 설명할 수 있다. 경험은 ‘사회’라는 연속적 위기 극복 과정의 가장 완벽한 모범 답안을 제시한다. 당신의 집안, 학벌, 출신 등은 이미 당신이 적어놓은 이력서를 통해 모두 알 수 있다. 수많은 비슷한 사람들 중에 당신을 부각하고자 한다면 당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라.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많은 경험을 저지르도록 하자.     

스터디에 참석해서 얻게 된 면접 족보를 참고하고 책에서 조언해 준 대로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고 구성원들과 모의 면접을 진행했다. 그들 중에 가장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은(말하자면 리더 같은) 한 학생은 나의 면접 방식이 다소 부자연스럽다고 지적했는데, 평상시 말투와 같은 화술이 면접관들에게 건방져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정형적으로 대답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자신감 있고 유창해 보이는 말투는 자칫하면 상대방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 말하기 방식을 바꿀 것은 아니고 대신 오버하지 않는 선에서 자연스러움을 강조하기로 했다. 주둥이 하나로 동서양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든 말발 있는 남자다!     

드디어 1차 면접 날이 밝았다. 긴장한 탓에 몸은 떨리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는 지난번 합격자 발표날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속한 조에 주어진 토론 주제는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과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주제를 듣는 순간 멍청이가 된 마냥 앞이 깜깜해졌다. 공무원 재취업이 왜?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닌가? 각자에게 생각의 시간이 주어지자 나와 같은 주제를 받은 사람에게 가서 슬쩍 말을 걸어보기로 했다. 뽑은 주제가 어떤 내용인지 알려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신 주제에 대해 찬반을 나누어 토론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찬성인지 반대인지 물어보았다. 자신은 찬성하는 입장에 선다고 이야기 한 그 사람에게 넌지시 이유를 물어보니 그제야 대략적인 내용이 파악되었다. 퇴직 공무원의 재취업이 허용되면 공무원 시절의 인맥이나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가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를 너무 제한하게 되면 역량 있는 고급인력을 활용하지 못하게 되어 사회 전체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내용을 다 듣고 나서야 며칠 전 신문에서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붕어 수준의 기억력을 우사인 볼트급 눈치로 커버했다.      

대충 내용이 파악이 되자 내 의견을 정했다. 면접에 들어가서는 모의 면접에서 연습했던 대로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의견에 공감한 후 내 의견을 이야기했다. 주제가 무엇이냐, 어느 편에 서는 것이 맞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내가 주장하는 바가 논리에 맞는지, 토론을 진행하며 얼마나 서로 융화되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는지가 면접의 핵심 포인트이다. 내용에 대해서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주장하는 내용에 힘이 실릴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상대방을 설득시키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면접관들은 주의 깊게 관찰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때로는 상대방의 논리에 설득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괜찮다. 자신이 돋보이기 위해 상대의 의견에 반박만 하는 것보다는 합리적인 논리에 수긍해가며 내 의견을 피력하려는 모습이 면접관들에게 더 어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중요한 팁을 취업 스터디에서 만난 학생들에게서 미리 알 수 있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1차 면접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메일로 합격 통보가 왔다. 서류 전형과 인적성에서는 그렇게 애를 먹었는데 면접은 단번에 합격한 것이다. 2차 면접은 심층 면접이었는데, 다른 지원자들보다 다양한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2차 면접이 더 수월하게 느껴졌다. 내가 가진 이력 자체만으로도 관심을 보이던 면접관들에게 어학연수부터 유학 기간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면접에서 아주 유리하게 작용한다. 시종일관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는데 면접이 끝나갈 때쯤에는 면접관이 나를 보며

"평소에 즐거운 일이 많으신가 봅니다."

라며 기분 좋게 웃어주셨다. 우습게 보여서 한 이야기는 확실히 아니었다.      

긴장한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히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면접에 임해야 한다. 면접관들은 수많은 면접자를 대하면서 그들 속에 숨겨진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긴장으로 나를 감추면 감출수록 그들은 나를 더 들추어 볼 것이고, 들추면 들출수록 내가 의도하지 않은 모습이 나오게 된다. 수많은 면접자를 경험한 그들은 말하자면 들추어내기 전문가다. 그들이 내 안의 깊지 않은 곳에 숨겨둔 험한 모습을 들추어내기 전에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최대한 긍정적이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면접을 준비하자.     

예상하겠지만, 단 한 번의 면접 기회가 곧 취업으로 연결되었다. 그렇다. 조금 재수 없겠지만 이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단번의 면접으로 합격했으면 조금은 으쓱해도 되지 않는가! 비결이 있을까? 운이 좋았던 것이 9할이다. 번번이 서류 전형에서 낙방하던 나에게 면접 기회가 주어졌으니 운이 좋았다. 게다가 단 한 번의 면접 기회를 살려서 취업까지 성공했으니 운이 좋아도 억수로 좋았다. 하지만 모두가 나처럼 운이  좋지는 못할 테니 뭐라도 좀 알려줘 보자. 내가 본 진짜 취업 성공의 비결은 세 가지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준비이다. 지난 5년 동안 나는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처음의 목표는 대기업도 아니었고 C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지역 전문가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이를 위해 이역만리 타지에서 어학연수와 유학도 불사하지 않았다. 혹독하게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도 있었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미래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아마 지금도 취업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이 이러한 준비과정에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조언하는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바로 경험이다. 무엇이 되었건 더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은행 잔고처럼 나에게 큰 자산으로 남게 된다. 나중에 하나씩 꺼내 볼 추억이라는 이자는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그런데, 나의 준비과정에는 남들과 조금은 다른 게 있다. 준비의 과정을 스스로 즐겼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긴 시간을 이 악물고 버티기만 한 것은 아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을 철저하게 따르는 나는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항상 재밋거리를 찾아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이나 취미를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어냈고,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자주 시간을 가지며 외로움을 극복했다. 때로는 새로운 도전 자체가 즐거울 때도 있었다. 이러한 소소한 재밋거리를 찾아내는 동안 나는 스스로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되어있었다. 외국에서의 준비과정으로 영어 실력이 느는 것은 어찌 보면 부수적인 결과물이었다.      

두 번째는 노력이다. 앞서 말한 준비에도 많은 노력이 들었다. 턱없이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혹은 전혀 다른 대학 수업 방식 때문에 남다른 노력 없이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노력은 나를 배신하는 일이 없었다. 노력의 양은 성취의 질과 항상 비례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가 그만큼은 노력하는 것 같지만 모두가 같은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왜 법조인이 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정치가가 되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의사가 되지 못했을까? 물론 타고난 재능이나 환경의 영향이 있을 수 있겠지만, 답은 바로 이 노력의 Capability(역량)에 있다. 사람마다 타고난 지적 능력이 다른 것처럼, 사람마다 타고난 노력의 역량도 다르다. 각자는 자신의 선천적 혹은 후천적 관심사에 따라 자신의 노력을 투자하게 되는데, 투자할 수 있는 노력의 양도 다를 뿐 아니라, 이를 분배하는 능력은 더더욱 다르다. 저마다 다른 노력을 저마다 다른 분야에 분배하기 때문에 모두가 같은 성공을 거두는 것은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관심이 있는 만큼 노력하게 되고, 노력하는 만큼 성취를 맛보게 된다. 모두가 똑같이 성취하지는 못하지만 모두가 실패하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종류의 성취가 남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노력하는 것에 비해 남들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된다면, 그에 걸맞은 노력의 분배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관심의 분야를 좁히고 분산되는 노력을 한곳에 집중해 보자. 그래도 안 되는 일이 있다면 내 노력의 역량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으니 목표를 수정해도 좋다. 하지만 그전에 자신에게 진정 내 노력의 100%를 다 쏟아부었는지 한번 확인해 보기를 권한다.     

세 번째로 생각하는 나의 취업 성공 비결은 인연이었다. 2000년도부터 나의 경력을 살펴보면, 한국 맥도날드 4년, 영국 맥도날드 1년, 코스타커피 1년 등 외식업계에서 내 20대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처음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부터 외식업을 평생의 업으로 생각하지는 않았고,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C사의 외식 계열사에 취업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여기저기 원서를 넣는 와중에 C사라는 대기업을 발견했고 그중에서도 외식 계열사에 지원하면 나의 아르바이트 경력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 같은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보면 지난 10년간 나의 경력이 아주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고 외식업을 평생의 업으로 삼게 되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나는 이것이 나와 C사의 인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나와 인연이 되는 회사는 단 하나이다. 여러 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아 고민할 일이 생길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회사는 하나이다. 그 하나의 회사를 찾기 위해서 다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한다. 특정 사업 분야나 업무 때문에 특정 회사에 반드시 입사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나와 인연이 있는 회사를 찾게 될 것이다. 입사 전형에 낙방해 좌절하고 우울해하기보다는 '이 회사는 나와 인연이 닿지 않았구나.' 하며 툴툴 털어버리는 것이 낫다. 나의 진면목을 알아봐 줄 수 있는 회사가 지구상 어딘가에 하나는 있다. 아니 사실 하나뿐이다.     

지금 시대에는 더욱더 취업으로 가는 길이 어렵다. 멀고도 험해 사실 그 끝이 보일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수없이 나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비관해서 좌절할 수도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적절히 준비를 마쳤는가?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만약 당신이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면 머지않아 당신과 인연이 닿는 그 하나의 회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취업이라는 것이 단순히 경제적 안정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아의 실현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나은 곳으로의 취업에 그렇게 열광하는지도 모른다. 더 나은 곳으로 취업하면 그만큼 내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를 하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절대 조건은 아니다. 연봉을 더 많이 주는 회사, 혹은 스펙이 더 좋은 회사라고 더 가치 있는 업무를 하는 것은 아니고, 이 말은 그러한 회사에 입사하는 것 자체만으로 자아가 실현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나의 비전은 내가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 스스로가 확실한 비전을 가지고 노력하면 회사는 이를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회사에서 자신에게 비전을 제시해 주기를 기다린다면 당신은 어느 순간 회사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락해 버릴지 모른다.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높은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스로의 비전 없이 높은 곳으로 오르기만 하는 것은 언젠가 당신을 지치게 만들지 모른다. 스스로의 비전이 명확하고 이를 위한 준비와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당신의 자아실현을 도와줄 하나의 회사를 분명히 만나게 될 것이다. 조급한 마음에 주객이 전도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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