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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했더니 '나대지 말라'는 눈빛들, 그리고 묘수

피플스킬

by 마찌

혹시 여러분도 좋자고 낸 제안이,

회의실을 싸늘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이 있었나요?


“괜히 나섰다”는 싸늘한 공기 속에서,

나는 조용히 방법을 바꿨다


“근데, 그건 이렇게 바꾸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지훈이 조심스럽게 꺼낸 말이었다.
팀 주간 회의, 보고서 자동화 아이디어를 제안해본 순간이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싸늘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도가 3도쯤 떨어진 느낌이었다.

분위기는, 마치 낯선 사람이 가족 모임에 껴든 듯 어색해졌다.


팀장은 묵묵히 커피만 마셨고,
과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거 예전에 우리도 시도해봤었어.
실제 적용하면 변수도 많고, 오히려 일 더 꼬이더라.”

다른 대리도 거들었다.

“그렇게까지 바꾼다고 크게 달라지진 않죠.
익숙한 방식이 제일 빠르기도 하고.”

그때, 옆자리 윤대리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선배님들 말씀에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해요.
지훈 씨가 아직 프로세스를 완벽히 이해한 건 아니니까…
괜히 바꿨다가 혼선 생기면 책임도 지훈 씨가 져야 하잖아요.
일단은 기존 방식부터 충분히 익히고 나서,
제안해보는 게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말투는 따뜻했지만,
그 속엔 ‘선 긋기’와 ‘견제’가 조심스럽게 깔려 있었다.


윤대리의 속마음


‘저 방식, 진짜 팀장 맘에 들면…?
지훈이 이번 진급 경쟁에서 눈에 띌 수도 있어.’
‘몇 달 뒤면 나도 진급 심사인데, 지금은 조용히 눌러야지.’

윤대리는 지훈의 싹을,
배려라는 포장지에 감춰 조용히 누르고 있었다.

조언처럼 들렸지만, 실은 말랑한 칼끝이었다.

웃으며 건넨 말 한마디가, 조용히 덫을 놓았다.


말하지 말고, 숫자로 증명하자


그 회의 이후, 지훈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자신의 업무에서 혼자 실험을 시작했다.

보고 자동화, 수치 정리, 그래프 시각화, 피드백 반영 매크로.

업무시간 30분 단축.
보고 품질 개선.
오류 0건.

지훈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냥 ‘내 일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 하나로 움직였다.


말을 접고, 손부터 움직였다.

입 닫고 엑셀을 열었다.

시끄럽게 설득하느니,

조용히 깔끔하게 끝내기로 했다.


“이거, 네가 직접 만든 거야?”


몇 주 뒤, 팀장이 지훈의 보고서를 보며 말했다.

“요즘 너 보고서 빨라졌더라.
내가 수정할 일도 없고, 에러도 없고. 뭐가 달라졌지?”

지훈은 웃으며 노트북을 돌려 보여줬다.

“혹시 보실래요?
지난번 회의 때 말씀드렸던 방식,
제 업무에 적용해본 거예요.”

지훈은 VBA 매크로 구조를 시연하며 설명했다.
수치 입력 → 자동 정리 → 그래프 생성 → 보고 문구 생성까지
몇 초 만에 정리되는 화면에, 팀장이 감탄했다.

“이거… 전 팀에 공유해보자.
다음 주 회의 때 설명해봐.”


회의실, 미묘한 감정들로 흔들리다


지훈은 회의에서 자동화 프로세스를 설명했다.
명확한 효과, 시간 절감, 실수 감소 수치를 보여주자
분위기는 조용히 기울었다.

그때, 팀장이 말했다.

“이거, 전 팀에 적용하자.
지훈이한테 배우고, 다음 주까지 각자 보고서에 반영해보자.”

순간, 회의실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일었다.


공기엔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시선은 분명 요동쳤다.

눈빛들이 서로를 슬쩍 견제했다.

누구도 입은 안 열었지만, 표정이 말을 대신했다.


한 사람은 입을 살짝 삐죽이며 팔짱을 꼈다.
‘일 더 늘었네…’라는 미묘한 짜증이 눈빛에 비쳤다.

윤대리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팀장님, 코드 실행이 들어가면 혹시 회사 보안정책상
문제되지 않을까요? 외부 매크로 실행이 제한된 경우도 있고…”

지훈은 잠깐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말했다.

“네. 그 부분은 IT팀에 확인드리겠습니다.
적용 전에 정식 승인 받고 진행할게요.”

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회의를 마무리했다.


회의실 문 밖, 또 다른 반응


회의가 끝나고 지훈이 복도로 나서는데,
한 차장이 어깨를 치며 말했다.

“아휴~ 그거 바꾸는 게 더 오래 걸리고 복잡할 텐데…
지훈아, 너 괜히 우리 업무만 늘린 거 아냐?”

지훈은 잠시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게요… 저도 사실
그냥 제가 편하자고 만든 거였는데요.
팀장님이 우연히 보시고 좋다고 하셔서…
죄송스럽네요. 괜히 폐 끼친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지훈은 자신이 이끌었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그게 팀 안에서 살아남는 법이니까.


인정은 그렇게 조용히 찾아왔다


“지훈, 이것 좀 봐줄래?”

그날 이후, 팀원들이 하나둘 지훈을 찾기 시작했다.

“지훈, 나 엑셀 매크로 쪽 막혔는데 이것 좀 봐줄래?”
“내 보고서도 저 구조로 바꿔볼까 해. 템플릿 줄 수 있어?”
“이 방식 진짜 편하네… 덕분에 시간 줄었다, 고마워.”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자연스러워졌다.
지훈은 시킨 사람이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이 되었다.,


지시하는 리더보다,

조용히 손 걷어붙인 해결사가 더 강했다.

그는 ‘윗사람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동료의 도우미’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이름은 점점 더 자주 회의 안팎에서 들렸다.
"괜히 나섰다"는 낙인은
"생산성을 끌어올린 숨은 MVP"로 바뀌고 있었다.


영향력은, 말보다 행동에서 시작된다


지훈이 배운 건 단순했다.

효과가 미지수인 아이디어는
동료에겐 헛수고의 위험으로 보이고,
상급자에겐 위기감으로 느껴지고,
팀장은 쉽게 푸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전체 팀에 도움 될 만한 주제
내 일에 먼저 적용해 성과를 보여주는 것.

그걸 팀장이 먼저 좋다고 느끼게 만드는 것.
그래야 팀장이 자기 입으로 drive를 걸고,
나는 굳이 나서지 않아도 영향력을 얻게 된다.

물론, 덕분에 팀원들 일은 조금 늘었을 수도 있다.


불평은 있었지만, 결국 다들 입을 모았다.

“그래도 이게 편한건 인정.”

등은 뻣뻣해도,

손끝은 지훈 방식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혼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팀장도, 팀원도,
그를 찾고, 인정하고, 조용히 따라 하고 있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었나요?
좋자고 낸 제안이, 회의실을 싸늘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


그게 여러분 잘못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조용히 증명해보는 것도
여러 방법중 하나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차가웠던 그 회의실도,

언젠가는 우리를 중심으로

서서히 데워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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