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Learning Agility & Adaptability
제가 어릴 적,
집에 첫 컴퓨터가 들어왔던 날을 기억합니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 네모난 상자에 불이 들어오는 걸 경이롭게 지켜봤죠.
몇 달 뒤, 컴퓨터가 갑자기 느려졌습니다.
아버지는 걱정스런 얼굴로
동네 수리점을 찾아가셨고,
가게 사장은 심각하게 말했습니다.
“바탕화면에 아이콘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지금 들으면 코미디입니다.
바이러스나 하드웨어 문제였겠죠.
하지만 그때 우리에겐
‘컴퓨터를 함부로 건드리면 망가진다’는
막연한 공포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 시절 어른들 중엔 끝내
컴퓨터를 거부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굳이 저걸 써야 하나? 저거 배울 시간에 손으로 다 끝내겠다.”
그 ‘손으로 다 끝내는’ 장인정신은
결국 그들을 직장에서 도태시켰습니다.
인터넷이 나왔을 때도,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됐죠.
“나는 없어도 일하는 데 문제없어.”
그렇게 말하던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을 버리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뒤늦게 땅을 쳤습니다.
이건 기술 이야기가 아닙니다.
‘태도’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팀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저와 연차가 비슷한 몽골 출신 동료가 있었죠.
어느 날 차량 시험 중
생전 처음 보는 파라미터를 측정해야 했습니다.
장비도, 방법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친구가 묻더군요.
“너 해볼래?”
저는 솔직하게,
그리고 조금은 방어적으로 답했습니다.
“나는 이 신호를 재는 법도,
장비 사용법도 몰라.”
그랬더니 그가 되묻더군요.
“대학교 때 이런 거 안 배웠어?”
순간 욱했습니다.
한국에선 오실로스코프 정도나 만져봤지,
이런 최신 장비를 어떻게 아냐고,
한국 교육의 한계를 탓하며 대화를 끊으려 했죠.
그런데 반전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친구도 할 줄 몰랐던 겁니다.
대신 그는 주저 없이 장비 업체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신호를 재고 싶은데,
당신네 장비로 되나요? 와서 설명 좀 해주세요.”
며칠 뒤 엔지니어가 왔고,
우리는 그에게 배워서 데이터를 뽑아냈습니다.
그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내가 아는가(Knowledge Base)’에 갇혀 있었고,
그는 ‘모르면 어떻게 알아낼까(Learning Process)’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대학에서 안 배웠어?”라고 한 건,
“이 기계 쓰는 법을 안 배웠냐”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모르는 상황을 돌파하는
프로세스를 안 배웠냐”는 힐난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박사급 동료들과 일하며
이 깨달음은 확신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전공이 아닌 분야의 문제도
누구보다 빨리 풀어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박사 과정이란 ‘지식을 쌓는 과정’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설계하는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정의하고,
어디서 정보를 찾을지 설계하고,
누구에게 물어볼지 결정하는 능력.
학위는 ‘많이 안다’는 증명서가 아니라,
‘모르는 것도 알아낼 수 있다’는 보증수표였던 겁니다.
거창한 AI 기술이나
4차 산업혁명 이야기만 하려는 게 아닙니다.
진짜 승부는 여러분의 책상 위,
매일 반복되는 업무(Everyday Work)에서 벌어집니다.
남들 1시간 걸릴 보고서를
10분 만에 끝내는 사람,
엑셀 노가다를 파이썬 스크립트 하나로 대체하는 사람.
이들은 무엇이 다를까요?
저는 이것을 ‘성장을 위한 6단계 루프’라 부릅니다.
"불편함은 짜증이 아니라 신호다."
유능한 영업사원은 고객의 눈빛뿐 아니라
발끝의 방향까지 읽습니다.
그 미세한 떨림에서 니즈를 포착하죠.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 이거 입력할 때마다 창을 두 번 띄워야 하네?"
누군가는 "원래 시스템이 이래" 하고 넘어가지만,
민첩한 사람은
그 미세한 비효율을 '배움의 신호'로 읽습니다.
섬세함은 예민한 성격이 아닙니다.
'상황이 달라졌다',
'뭔가 삐걱거린다'는 것을 감지하는 레이더입니다.
학습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거 좀 거슬리는데?"라는 작은 의구심에서 시작됩니다.
오늘의 점검:
오늘 업무 중 "조금 불편했지만 그냥 지나친 순간"이 있었나요?
거기가 당신의 성장 포인트입니다.
"모르는 건 죄가 아니다. 혼자 끙끙대는 게 죄다."
"이 표는 꼭 필요한가?",
"이 순서가 최선인가?"
이 질문 한 방이 관성의 벽을 깹니다.
호기심은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즐기는 배짱'입니다.
여기서 High Performer들의 진짜 비밀,
'사회적 학습 자본(Social Learning Capital)'이 나옵니다.
몽골 동료를 기억하십시오.
그는 모르는 걸 들키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가 답을 알고 있는가?(Who knows asking)"를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혼자 구글링하며
3시간을 허비하는 건 끈기가 아닙니다.
미련한 겁니다.
업체에 전화하든,
박사 동료에게 묻든,
커뮤니티에 질문하든,
'사람'을 레버리지하는 능력이 곧 학습 속도입니다.
"불평을 제안으로 바꾸는 순간, 당신은 리더가 된다."
식당에서 밥이 늦게 나올 때
"왜 이렇게 느려?"라고 하면 진상 손님이지만,
"주문 프로세스를 이렇게 바꾸면 빠르겠네"
라고 생각하면 컨설턴트입니다.
성장 의지는 막연한 열정이 아닙니다.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고 싶은 강박'에 가깝습니다.
완벽주의자가 되지 마십시오.
끊임없이 "이게 최선이야?"를 묻는 실험주의자가 되십시오.
불만족은 성장의 가장 좋은 연료입니다.
오늘의 점검: 하루에 한 번, "이걸 조금 더 낫게 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그 질문이 당신의 연봉을 결정합니다.
"당신의 경험이 당신의 발목을 잡는다."
가장 어려운 단계입니다. 잘하던 방식을 버려야 하니까요.
많은 경력직들이
"요즘 애들은...", "요즘 시장은..." 하며 탓을 합니다.
아니요, 시장이 이상한 게 아니라
당신의 방식이 낡은 겁니다.
소니와 노키아가 기술이 없어서 망했나요?
과거의 성공 공식에 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더 빠른 단축키가 나왔는데도
손에 익은 옛날 단축키를 고집하는 것,
개선된 포맷이 있는데도
옛날 보고포맷을 고집하는 것.
"나는 원래 이렇게 해왔어"라는 말은,
"나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같습니다.
버림(Unlearning)은 손실이 아닙니다.
새로운 무기를 쥐기 위해 손을 비우는 행위입니다.
"베끼지 말고 훔쳐라. 원리를."
대형 식당 주방은
공장의 생산 라인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재고 관리, 동선 설계,
병목 현상 해결... 공장 엔지니어가 주방을 보면
해결책이 보이고,
셰프가 공장을 보면 영감을 얻습니다.
뛰어난 사람은
"이건 다른 분야 이야기잖아"라고 선을 긋지 않습니다.
"이 구조, 내 일이랑 비슷한데?"라며 연결합니다.
지식의 깊이보다 무서운 것이
지식의 연결(Connect the dots)입니다.
오늘의 점검: 오늘 본 뉴스나 기사 중
"이 원리를 내 일에 적용하면?" 하고 떠올린 게 있나요?
"낙법을 배운 유도 선수는 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 툴이 나오면 "나중에 배워야지" 미루는 사람과,
설명서도 보기 전에 눌러보는 사람.
1년 뒤 이 둘의 역량 차이는 하늘과 땅입니다.
테크 감각은 지능이 아니라 **'시도력'**입니다.
그런데, 무작정 누르다 사고 치면 어떡하냐고요?
여기서
'심리적 안전감과 리스크 관리(Risk Management)'가 등장합니다.
High Performer는 무모한 게 아니라 계산이 빠른 겁니다.
"이 코드를 돌리기 전에 Save as로 백업본을 만들자."
"망쳐도 복구할 수 있는 샌드박스에서 테스트하자."
마치 자전거를 배우는 아이에게 헬멧을 씌우듯,
실패해도 안전한 환경(Safety Net)을 먼저 세팅합니다.
낙법을 먼저 배운 사람은 넘어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과감하게 버튼을 누르십시오.
Action: 이번 달 안에 새 기능 하나를 직접 시도해보십시오.
배우는 속도는 ‘아는 정도’가 아니라 ‘눌러본 횟수’에 비례합니다.
"완벽한 3일보다 엉성한 3시간이 낫다."
이 모든 루프를 관통하는 핵심은 속도(Velocity)입니다.
완벽한 초안을 만드느라 3일을 끙끙대지 마십시오.
30% 완성된 초안을 3시간 만에 공유하고 피드백을 받으십시오.
"욕먹으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을 버리세요.
빨리 욕먹고 빨리 고치는 사람이 결국엔 박수를 받습니다.
피드백 루프가 빠를수록,
당신의 레이더(Sensitiveness)는 더 정교해지고
성장의 바퀴는 더 가볍게 돌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