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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주연 Apr 14. 2021

#등산스타그램, 당장 시작합시다

나의 등산을 널리 알려라!


나는 아웃도어 인플루언서다. 4000여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작고 귀여운 여행&아웃도어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 중이다.


놀러오세요들-


귀차니즘도 심하고 남 눈치도 많이 보는 성격임에도

(가벼운 포스팅조차 먼저 비공개 계정에 올린 후 여~~러번의 수정 끝에 한 게시물을 올린다는 건 아무도 모를거다) 꾸준히 #등산스타그램을 하는 건 SNS로 인생에 새로운 문들이 열렸기 때문이다.


  ‘등밍아웃’을 하고 나니 의외의 사람들이 “사실 나도 등산 좋아해” 하고 고백해왔다. 안부 연락을 나누다가도 마무리 인사는 꼭 “우리 한번 산에 같이 가자” 혹은 “나도 산에 데려가 줘”로 끝났다. 정말 깜짝 놀랐다. 이렇게 주변에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다니! 그것도 숨차는 운동이라고는 질색할 줄 알았던 지인들이! 이제까지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등산을 멀리했던 세월이 억울할 정도였다.


정확히 말하면 산에 갈 때 데려가 달라는 연락이 많았다.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산에 가 보고 싶은데 혼자 갈 엄두가 안 난다는 것이었다. 딱 1년 전, 첫 등산을 하기 전의 내 상태였다. 산이 예뻐 보이면서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만 장비도 없고 왠지 너무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할 것만 같아 마음 속 벽만 두툼히 쌓아둔 상태.


 이들에게 필요한 건 두 가지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등산 코스 그리고 그 코스를 가이드할 사람. 내가 처음 등산에 빠지게 된 계기가 강도 높은 관악산 연주대 코스였어서인지, 개인적으로 첫 등산은 좀 어려워야 성취감이 크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같이 가자는 친구가 있으면, 초보코스로 유명한 인왕산이나 아차산보다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으로 데려간다. 북한산 족두리봉이 첫 등산이었던 친구는 두고두고 나를 욕했지만 지금은 아침 운동으로 매일같이 혼자 뒷산을 오를 정도니 틀린 영업 방식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등산의 재미에 눈을 뜨는 걸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기점은 코로나19였다. 강도높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행되었던  작년 3월, 주변 사람들이 등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게 느껴졌다. 봄바람은 불어오고 집에만 있자니 갑갑하고, 비교적 사람이 붐비지 않는 산이 안전해보였던 것 같다. 엄빠들의 형광색 등산복이 아닌 레깅스나 조거팬츠 등 힙해보이는 등산 패션도 ‘나도 한번쯤 가보고 싶다’ 생각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인스타 피드에 등산 인증샷이 유행처럼 번지니 호기심이 생겼을 수도 있고. 만나면 술만 마시던 친구들이 등산 가자고 말을 꺼냈을땐 ‘등산이 정말 트렌드구나’ 체감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취미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다니! 나로서는 더없이 쌍수 들고 환영할만한 변화였고 친구들과의 만남이 두근두근 기다려졌다.


등산이란 운동의 가장 좋은 점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닝이나 자전거, 수영 등과 달리 걸으면서 그간 밀렸던 대화도 나눌 수 있다. 함께 여행을 간 것처럼 사진도 찍을 수 있고 도시락을 싸와서 나눠먹거나 하산 후 근처 맛집을 간다면 좀 더 여행같은 특별한 일상이 된다.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카페나 식당, 한강 피크닉에 더해 건강한 선택지가 추가됐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취미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가 점점 좁아진다. 어릴 때 친했던, 학창시절 친구들과는 일상을 공유하기가 힘들다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자주 만나는 사람들은 비슷한 일을 하거나 취미가 같은 사람들이다.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공유하다보니 대화 주제도 잘 통하고 삶에 대한 태도도 닮아간다. 취미가 같다는건 어떤 의미에선 가치관이 비슷하다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SNS가 이어준 소중한 인연이 있다. 바로 언주 언니. 등산 가고 싶게 하는 사진을 너무 잘 찍어서 팔로우하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같은 학교 출신에, 같은 업계에서 일하고 있어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게 됐다. 자기 일과 삶에도 충실하고, 아웃도어를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국내외의 아름다운 길을 걸으러 다니는 멋진 분이었다. 성취감이 등산의 주된 이유인 나와 달리 언니는 걷는 행위 자체를 좋아했다. 그래서 등산보다는 트레킹을 좋아하고, 굳이 정상에 갈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나를 놀라게 했다. 언니를 만나고 등산에 있어서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또다른 방법을 알게 되었다.


독서모임 멤버들과 함께 갔던 북한산도 기억에 남는다. 5년 간 꾸준히 만나 두세시간씩 대화를 나누면서도 서로 운동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SNS를 통해서야(그놈의 인증샷) 알게되었다. 독서모임에 나갔다가 슬쩍 등산 가자는 얘기를 흘리니 좋다고 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물론 산은 오르는 것보다 보는게 좋다며 참석을 거부한 사람도 있었지만. 시원한 산바람 맞으며 산을 오르고 내려와서 근처 브런치 카페에서 진행했던 <일의 기쁨과 슬픔>은 책 내용보다 그날의 등산 얘기가 주를 이루었다.



모르던 친구의 친구들을 데려와 산행을 함께 했던 날들도 여행처럼 좋았다. 북한산 차마고도길을 갔을 땐 숙취가 심했던 내가 자꾸 뒤처지자 그날 처음 본 친구의 친구가 교관처럼 당근과 채찍을 주며 나를 끌고 16km 산행을 완주시켰다.

빡세기로 유명한 지리산 중산리 코스에서는 남들 챙기다가 정작 본인의 패딩이며 스마트폰이며 오는 대피소마다 놓아두고 와서 찾았던 기억 등 두고두고 얘기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그러니까 등산, 혼자만 간직하면 똥된다. 속는셈 치고 인스타그램 피드에 등산 사진을 두세장 올려보시라. 취미를 함께할, 어쩌면 평생을 만날 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무 연락이 없다면으음...적어도 나의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광고하는 셀프브랜딩의 효과는 얻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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