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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Oct 11. 2024

내비게이션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았나 몰라.


                                                                


나는 전기안전관리자다. 1,000kw 이하를 수전하는 곳에 가서 전기가 안전한 지를 점검하는 일을 한다. 전기를 1,000kw 이상을 받는 곳에는 전기안전관리자가 상주해서 근무해야한다. 그 이하에는 나 같은 안전관리자가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방문하여 전기가 안전한지 관리한다. 


  “또 바뀌어요?”

이제 이 일을 그만두고 이전 직장으로 돌아간다는 전임자를 따라 들어선 첫 집에서 하는 말이다. 항상 혼자서 점검을 했는데, 둘이 들어서니, 낯익은 사람이 떠나고 이제 처음 보는 사람이 맡을 모양이라는 것을 척 보고 알아보았다. 김부장은 곤란한 듯이 대답한다.

  “예, 그렇게 됐습니다. 이분도 경력이 있어서 잘 할 겁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잘 봐 드리겠습니다.”

드리기는 잘 봐 드려야 한다. 하지만 나는 전기자격증을 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시설관리에서만 근무를 했지, 이런 안전관리에 직접 뛰어 든 것은 처음이다. 그래서 이제 떠나는 김부장이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다.


  “여기, 이거 봐요. 저기가 CH예요. 지중전선으로 들어와서 납작한 부스바(Bus Bar)로 받지요? 캐이블 헤드(Cable Head)라는 말이에요. 그러면 저기 칼날 같은 거 보이지요? 저게 ASS에요. Auto Select Switch.”

  “오!, 자동 선택 스위치를 말하는 구나. LBS나 DS 같은 역할을 하는 거 말이지요?”

  “맞아요. 그 밑에 바로 PF, 그 아래 MOF, 다음 판넬에 TR....”

  “야, 실물을 보니까 시험 봤던 것이 생각이 나네....”

김부장은 판넬을 열어가며 설명을 해 준다. 시설관리를 할 때는 물론 이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수전설비이지만, 그 것만 안다. 내가 근무하는 현장만 안다. 다양한 수전설비는 경험할 수가 없다. 


  김부장이 나를 데리고 방문하는 곳마다 일일이 설명을 해 주었다. 

  “수배전 설비는 현장마다 다 달라요. 똑같은 곳은 거의 없어요. 지중전선으로 건물 내로 들어오면 건물의 사정에 따라 ASS가 서기도하고 눕기도 하고, 파워 퓨즈가 세로로 설치되기도 하고 가로로 눕기도 해요. MOF가 바로 그 아래에 함으로 설치되기도 하고 옆 판넬에 설치되기도 해요. 여기는 옆 칸으로 넘어 왔지요.”

  “그러네요. 아까는 바로 발밑에 있었는데....”

  “전신주에 달린 것을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어요. 다음 농장에 가서 H 전주를 보면서 설명해 드릴게요.”

  “아니, 시험을 본다고 해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모르겠는데요. 이거 정답을 쓸 때만 외웠지, 실물을 보니까 외웠다 하는 것만 생각이 나지, 뭐가 뭔지를 모르겠네요.”

  “공부 하셔야 해요. 그리고 이제는 머리로만 알아서는 안 돼요. 위험해요. 몸으로 익혀야 해요.”


  그래, 공부는 한다. 하루에 동영상을 하나씩 보면서 공부를 하기로 했다. 하루 이틀에는 되지 않을 줄 안다. 하루에 하나씩만 익히고 가도, 몇 날 며칠을 하면 차차 알게 될 것이다. 문제는 김부장이 일주일만 인수인계를 하고 다음 주에는 오로지 내가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처음인데다가 수배전반 설명을 몇 번 듣는 사이에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젠 나 혼자다. 수용가에 가서 전기 점검을 하는 것도 큰 부담이지만, 그보다 먼저 발등에 바로 떨어진 불이 수배전반을 보러 건물을 찾아가는 것이다. 문제다. 뭐, 먼저 집을 찾아야 전기를 보지. 굿판을 가야 떡을 구경하지. 찾아 가는 것이 우선이다. 


  수용가 주소와 만나야할 사람의 전화번호와 김부장이 넉달 전에 인수인계를 할 때 전임자를 따라 다니면서 적은 수첩 두 개를 남겨 두고 갔다. 일주일이 지나 4월이 되면서 방문 일정도 내가 짜야 했다. 날마다 들러야할 집이 6곳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한 달이 가기 전에 빠짐  없이 전기시설을 다 보고 관리할 수 있다. 


  전화기를 놓을 사이가 없다. 무선 리시버를 아주 귀에 꼽고 살았다.

  “김부장님, 여기를 모르겠어요. 이원화빌딩인데, 내비게이션은 근처에 왔다고 안내를 종료한다고 그러고, 건물을 다 둘러 봐도 명패가 붙어 있지도 않고, 차를 둘 데는 없어서 불법주정차 딱지는 끊을 것 같고, 혼자 섰는데 사방에서 날 공격하는 것 같아요. 이거 어떡하지요?”

지금 고려거란전쟁이 한창이다. 양규가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화살을 맞고 우뚝 서서 죽었다. 내가 지금 그 꼴이다. 사방에서 조여 온다. 

  “아, 거기요? 우선 차를 여주시청에 두세요. 거기서 걸어서 5분이면 되요. 그리고 다시 전화 하세요.”

  “알았어요. 시청에 주차를 하고 다시 전화 할게요.”

아니, 전기 시설을 보기 전에 장소를 찾는 일이 어렵다. 다시 근처에까지 걸어 와서 전화를 했다.

  “약국과 통닭집 간판이 나란히 붙은 건물이 보일 거예요. 그 건물이 이원화빌딩이에요.”

  “아, 저기 있네. 건물은 찾았어요. 수배전반은 어디에 있어요?”

  “주 출입구에 들어가서 왼편에 메인판넬이 있어요. 점검을 하고 약국에서 싸인을 받고 결과지를 건네주면 돼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또 전화할게요.”


  처음 들어선 건물에서 머리를 이리저리 복잡하게 굴려 가면서 판넬을 찾아 점검을 했다. 전압을 찍고, 전류를 보고, 혹시 열화가 있는지 탄화의 흔적이 있는지, 전선을 눌러 보았다. 점검지를 작성하고 약국에 들러서 약사인지 하얀 가운을 입은 중년 남자에게 싸인해 달라고 결과지가 찝힌 보드를 내밀었다. 

  “전기를 점검했는데,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로지스벨리를 찾을 때다. 차가 쌩쌩 다니는 삼거리에서 내비게이션 안내가 끊겼다. 처음에 ‘안전운전을 시작합니다’하고 친절하게 안내하던 전화기가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하고는 안내가 뚝 끊겼다. 전화기에 대고 ‘잠깐만, 지금 끊으면 어떡해. 잠간 기다려....’라고 할 수도 없다. 매정하기는 역시 기계다. 차를 길 가에 세우고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는 건물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또 김부장에게 전화를 할 수 밖에 없다.

  “부장님, 또 전화 했어요. 오늘이 벌써 네 번째네.”

  “괜찮아요. 어디에요.”

  “로지스벨리를 찾는데, 엊그제 지나다가 큰 물류창고에 Logis Valley라고 붙은 건물을 봤는데, 거긴가? 여기는 아무리 둘러 봐도 로지스벨리가 안 보여요. 큰 건물은 정관장 물류센타가 있고.”

  “로지스벨리는 많아요. 정관장 물류센타 옆이기는 해요. 그 주변으로 초등학교도 있지요? 정관장을 가운데 두고 그 반대편이에요. 큰 건물을 한번 찾아보세요.”

  “알았어요. 다시 가 볼게요.”

이제는 내비게이션을 켜도 소용없다. 켜자마다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종료합니다’한다. 바닥이 심하게 파여 물이 고여 있는 좁을 도로를 지나 허름한 건물이 하나 보였다. 경사가 심한 도로를 따라 내려갔다. 맞은편에는 영동고속도로로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다. 건물이 상당히 긴데 어디를 봐도 로지스벨리라고 붙은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부장님, 사진을 하나 보냈는데, 이 건물이 맞아요? 사진을 보시고 얘기해 주세요.”

  “예, 잠깐 기다리세요. 내가 볼게요.”

전화를 끊지 않은 채로 잠깐 기다렸다.

  “이 사진을 봐서는 잘 모르겠네. 비슷하기도 하고.... 아까 담당자한테 전화를 했다고 그랬지요? 그 담당자는 자리에 많이 없어요. 외근이 많더라고요.... 아무튼 거기 변전실은 지하에 있어요.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해 보세요. 그게 빠를 것 같아요....”

  “예 알았어요. 하다가 안 되면 다시 전화 할게요.”


다시 아까 받지 않은 로지스벨리 박과장에게 전화를 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받는다. 

  “지에스전기입니다. 과장님, 4월 점검을 나왔습니다.”

  “아, 예. 담당자가 바뀌셨습니까? 전화번호가 다른데요?”

  “예,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점검을 하고, 이메일로 결과를 보내 드리면 되지요?”

  “예, 그렇게 하세요. 변전실을 건물 서쪽 끝 지하에 있는 거, 아시지요?”

  “예, 알고 있습니다. 그럼, 점검을 하고 메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예, 수고 하십시오.”

알고 있기는 뭘 알고 있었는가? 전화기로라도 인수인계를 철저히 받은 티를 내려면 아는 척 하는 수밖에 없다. 오른 쪽 끝을 바라보니, 4층 높이의 건물에 계단실이 내려온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보기에는 1층이지만, 경사로를 내려온 만큼 반대편에서 보기에는 여기를 틀림없이 지하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다.      


  건물로 들어갔다. 긴 건물이 삼면이 지하고, 이 앞이 트럭을 대고 물건을 실을 수 있는 데크가 있는 지상의 구조다. 건물을 들어서자마자 지하의 냄새가 났다. 더 깊이 들어가 ‘전기 위험’ 경고장이 붙은 변전실을 찾았다. 웬만하면 이런 변전실은 쉽게 찾을 수 있다. 가장 구석에, 사람의 접근이 적은 곳에, 철문에 경고장을 붙인 곳을 찾으면 된다. 수변전실은 대게 철문으로 되어 있다. 철이 전기를 차폐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담당자에게 들르지 않아도 수변전실에 드나들 수 있도록 문은 잠기지 않았다. 경고장이 나같이 처음 오는 안전관리자에게 문패인 셈이다. 


  먼저 계량기를 살펴서 최대전력과 현재전력을 체크해서 전기를 잘 쓰고 있는지 점검하고, 역률을 살폈다. 수배전 전력설비가 이상이 없는지 육안으로 살피고, 콘덴서와 써지보호기가 이상이 없는지를 살폈다. 뭐, 열화나 탄화 흔적도 없다. 여기는 발전기가 없다. 물류창고 벽에 붙은 배전반도 살폈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각 층에 배전반을 열어 보았다. 


  꼭대기 층에 올라가니까 거기가 반대편에서 보면 1층이 되는 곳이다. 아까 들어간 곳이 지하 3층이 되고, 여기가 지상 1층이 셈이다. 출입구로 나가 보았다. 내 키만 한 간판이 마당 귀퉁이에 섰는데, 거기에 ‘로지스벨리’라고 쓰여 있다.

  “아, 여기로 왔어야 했구나. 여기에 사무실이 있고, 여기에서 지하로 내려갔어야 했네. 거꾸로 왔구먼.”

혼자 하는 말이다. 전임자는 그의 전임자를 따라 인수인계를 할 때 여기로 바로 찾아 왔으니 아래층에서 전체 건물을 볼 기회가 없어서 내가 보낸 사진을 보고도 긴가민가했던 모양이다. 그는 한 달 반을 따라다니면서 인수했다고 하니까 말이다. 나는 겨우 일주일을 몇 군데 가보고는 생으로 익혀야 한다.  


  컴퓨터를 해도 C 드라이브에서, 문서에서, 사용자에서, 제목을 찾아가면 된다. 컴퓨터 길도 똑같다. 한번 가 봤으면 두 번째는 간 길을 다시 되짚어 가면 된다. 관리할 건물에 수변전실을 찾아가도 한번 갔던 길이라면 눈에 익어서 쉽게 찾을 수가 있다. 그러나 길을 처음 찾아갈 때는 컴퓨터나 현실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차라리 컴퓨터라면 잘못된 길을 갔다가도 빠져 나와서 다시 찾아가기가 쉬울 것이다. 금방 갔다가도 마우스만 조작하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실재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차로 움직여야할 곳은, 더 힘들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하기도 하다. 하늘만 쳐다보고 한탄할 때도 있다. 

  “여기서 벌써 길을 찾느라고 허비한 시간이 얼마란 말인가? 내가 살던 동네도 아니고 생판 처음 와보는 곳인데 말이다.”

그래서 한 군데 점검을 무사히 마쳤으니 다행이다.


  늦었어도 길을 찾아 근처에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전화기 내비게이션 덕분이다. 생각할수록 이 전화기가 없었으면 어쩔 뻔 했느냐고 고마워한다. 운전대를 잡고 앞 유리와 기어 앞에 놓은 내비게이션을 바라보느라고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바깥 풍경은 둘러 볼 여지가 없다. 오로지 길 찾는 데만 열중이다. 


  저 하늘 위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곳에 인공위성이 있어서, 내 전화기에 대고 길을 알려주고 있으니, 참 신기하기도 하다. 주소만 치면 가야할 거리가 몇 키로미터인지, 몇 분이 걸리는지, 도착 시간은 언제인지, 길이 막히면 막히는 대로 늘어나는 시간까지 계산해서 알려 주니, 이것 참 신기하고 고마운 물건이다. 60이 훌쩍 넘어 살지만 이런 세상은 처음이다. 옛날 같으면 약도를 그리고 지도를 찾고 물어물어 가야할 길을, 창문 꽉 닫고 전화기 하나만 처다 봐도 길을 찾을 수 있다니, 신기한 노릇이다. 그 이하 디테일한 곳은, 한번 가본 길이라면 말 할 것도 없이 눈썰미로 찾아 가면 되고, 모르는 길은 또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된다. 김부장이 몇 번 간 길이라고 ‘아, 거기요.’하고는, 몸은 떠났어도 기억은 남아서 잘 알려 주고 있다. 


  ‘저 하늘에 인공위성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직 한 달이 되지 않아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건물에는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내 길을 알려 줄 내비게에션이 작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새삼 생각해 보았다. 끈 떨어진 연일 것이다. 끈이 팽팽하게 잡혀있을 때는 연을 내가 조작할 수 있다. 바람이 없어 떨어지면 획획 당겨서 올릴 수 있고, 왼쪽으로 돌면 조금 늦추면 돌기를 멈춘다. 하지만 끈이 떨어지면, 꼬리를 몽글몽글 주저 안고, 몸체는 방향 없이 뒤틀리며 내려 안는다. 전화기가 ‘안내를 종료합니다.’했는데도, 목적지를 찾을 수 없었을 때, 내가 그랬다. 구름 위에 주저앉은 것처럼 황당했다. 

  “이거 뭐야.”


  그러잖아도 태양에 폭풍이 발생했단다. 그 폭발로 지구에서는 중위도에서도 오로라를 구경할 수 있단다. 우리나라 강원도 양양에서도 오로라가 발견되었단다. 그 여파로 지구 궤도 밖으로 띄운 인공위성에 영향을 미쳐서 인공위성에서 지구 표면으로 보내는 통신에 이상을 줄 수도 있단다. 그러면 내비게이션을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데, 이를 어쩌면 좋은가? 4월 한달이 지나서 이제는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이 한 번씩은 다 가보았지만, 여전히 내비게이션이 없이는 찾아갈 수가 없다. 근처에 가서 ‘안내를 종료합니다.’하고 끊어 져도 거기까지 갔으면 한번은 봤던 길이니까 찾아 갈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먼 길은 아니다. 이걸 익히려면 반년은 족히 걸려야 한단다. 지금은 지도에 표시를 하고, 내비게이션으로도 찾아가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무엇일까? 나를 움직여 앞으로 가게 하는 목적지를 알려 주는 내비게이션은 무엇일까? 누구일까? 난 어디를 목적지로 삼고 내 인생의 자동차를 달리고 있을까? 그냥 흘러가는 대로 가고 있을까? 목적지 없이? 그렇다면 내 인생 한 군데도 점검을 할 수 없을 텐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뭘 할지는 고사하고, 목적지에 도달조차 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수배전반을 찾아야 뭐라도 하겠지만, 목적지조차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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