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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충권 Oct 11. 2024

오늘은 뭘 먹을까?



‘무엇을 먹느냐가 바로 그다’라는 말이 있다. 경유차에는 경유를 넣고, 휘발유차에는 휘발유를 넣고, 가스차에는 가스를 넣는다. 기름을 뭘 넣느냐가 바로 그런 종류의 차가 되듯이, 사람도 그렇다. 뭘 먹고 사느냐가 바로 그의 존재 자체가 된다. 그래서 아내는 집에서 음식을 먹는데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집에서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을 47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사서 볼 만큼 철저하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시설관리 일을 할 때는 아내가 자연식으로 만들어 준 음식을 도시락으로 싸서 다녔다. 사무실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모두 나가서 식당에서 사먹고 와도 나는 혼자 사무실에서 싸간 도시락을 까먹었다. 


  전기안전관리자는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는다. 아침에 차를 타고 나가면 일이 끝날 때까지 유목민이다. Nomadism 이다. 이때도 점심을 싸가지고 다니기는 좀 그렇다. 하루 종일 차에서 혼자 앉아 운전을 하는데, 점심도 차에서 혼자 앉아 먹기는 좀 그래서다. 어디 경치 좋은 곳이 있어서 맑은 공기를 쐬면서 여유 있게 즐기는 점심도 아니고, 차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변에 차를 대고 혼자 먹을 수도 없다. 오전 내내 나 혼자 살았으면 점심시간이라도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북적이는 식당을 찾게 된다. 식당에 가도 물 갖다 주고 카드 긁는 종업원과 말 몇 마디 나누지는 않지만, 그리고 어차피 혼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과 어울려 부대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사회적 동물 아닌가?  


  더욱이 회사에서 점심값으로 매일 1만원을 쓸 수 있단다. 차에 기름을 넣고 영수증을 경리에게 건네면 되듯이, 점심을 1만원어치를 먹고 영수증에 내 이름을 써서 주면 된단다. 그런데 굳이 점심을 싸가지고 다닐 필요가 있겠는가? 


  문제는 중간에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점심시간에 일정하게 머무는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하루는 하남에 있어야 하고, 다음날에는 양평에 있고, 그 다음날에는 이천에 있기도 한다. 하루 종일 여주 시내를 뺑뺑 돌기도 한다. 처음에는 어차피 유목민이니까 현지에서는 현지의 음식을 먹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을 했다. 일에 열중하다가 근처에서 먹으면 되지, 밥을 먹으러 일부러 또 2,30분을 이동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뭘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점심시간이 되면 주변에서 먹을 식당을 찾는 것이다.


  하루는 강천부근에서 점심시간을 맞았다. 여주쌀밥집이 길 가에 많았다. 그런 마음으로 멀리 갈 것도 없이 밥집을 찾아 들어갔다. 여주대왕쌀이라지 않은가? 그러나 식당을 나오기도 전에 후회를 했다. 아침에 출발하기 전에 민과장의 말이 곧바로 귀에서 울렸다.

  “먹는 게 중요해. 밥 먹으려고 30분을 차를 타고 가기도 해.”

  “나도 그럴 걸, 밥 같지도 않은 밥을 먹었네.”


  아침에는 일찍 나오느라고 아침을 가볍게 먹고 나온다. 거르고 나오지는 않는다. 뭐라고 먹어서 체력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그래서 점심이라도 제대로 먹으려고 신경을 쓴다. 제대로 먹어도 고기는 별로 좋아 하지 않고, 그냥 밥 한 끼니 제대로 먹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길만 나서면 어디든지 식당이 없는 곳이 없기는 하다. 그런데 정작 찾아가 먹을 만 한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우선 내가 먹는 음식이 유별나기는 하다. 걸쭉한 고기 국물은 좋아하지 않는다. 지글지글 굽는 것도 별로다. 오리니 닭이니 하는 것도 즐기지 않는다. 그냥 단순한 밥 한 끼. 야채 위주로 김치해서 밥 한 그릇 먹는 정도면 된다. 그래, 나물밥이 좋다. 잘 먹는 다면 그 흔한 정식정도다. 집에서 아내가 단순하게 차려주는 것처럼 자연식이 좋다. 상추쌈에 된장 넣어 오무린 밥말이다. 조미료 하나 들이지 않고, 설탕 하나 뿌리지 않은, 식물 그대로의 재료의 모습이 보이는 반찬이면 된다.


  그런 밥을 먹으려고 밥집을 찾으면 가장 먼저 묻는 말이 있다.

  “몇 분이세요?”

  “혼자인데요.”

그러면 나를 맞는 식당의 직원은 곤란한 듯 설명을 길게 하려고 한다. 결론은 혼자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찬이 여러 개가 나와서 하나는 차릴 수가 없습니다.

  “본래 2인분이 32,000원인데요, 한분의 밥만 빼고 28,000원이예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손님이 북적여서 바쁘면 짧게 이야기하기도 한다. 

  “혼자는 안 됩니다.”

지나는 길에 ‘강민주들밥’집을 찾았을 때는 차를 멀리 대 놓고 먼지 나는 길을 터벅이고 한참을 걸어갔다가, 이런 말을 듣고 화장실만 들렀다가 그냥 돌아 나와야 했다.


  고 아래 ‘나고야’라고 일식집에 들렀다. 여기도 자리는 좁지만 제법 차들이 많았다. 

  “혼자입니다. 뭘 먹을 수 있겠습니까?”

  “잠깐 기다리세요.”

하더니, 네 명이 앉을 수 있는 식탁 말고, 직원이 짬 날 때 쉬거나 휴지를 박스에 넣는 작업을 하는 일인용 탁자에 앉으라고 한다. 다른 사람은 일행과 함께 이야기하며 즐겁게 맛있는 식사를 하는데, 나는 혼자서 쪽식탁에 앉아서 천천히 초밥정식을 하나 먹었다. 


  이 집은 밥은 먹었는데, 영수증을 끊는데 문제가 됐다. 회사에서는 딱 10,000원까지만 먹을 수 있는데, 이 음식은 11,000원이다. 1만원은 회사의 법인카드로 계산하고, 1천원은 내 카드로 긁어야 한다. 1만원은 또 딱 떨어지는 음식이 없어서 비용만 맞게 하고, 내용은 아무 것이나 채워 넣었다. 영수증 내용을 보니까 우동 한 그릇에 6,000원, 소주 한 병에 4,000, 이렇게 해서 10,000을 계산했다. 어쨌든 금액만 맞으면 되니까, 회사에 그렇게 영수증을 제출했다. 


  며칠 후다. 가끔씩 직원들이 쓰는 카드 내역을 점검을 하는지, 사장님이 운행 중에 전화를 했다.

  “부장님, 뭐 다니다가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습니까? 점심에 소주를 한 병 드셨네요?”

  “아니요. 아, 그거요? 음식값이 1만원이 넘는데, 1만원이 넘는 것은 내 카드로 결제하고, 법인카드에 1만원으로 결제금액을 맞추다보니까 그렇게 됐어요. 나는 술을 안 먹어요. 먹는다고 해도 운전하면서 일해야 하는데, 점심식사에 술을 먹겠어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여내울에서는 5천원을 내 카드로 결제하고, 법인카드로는 공기밥 다섯 개를 먹은 걸로 계산했다. 


  한적한 시골길을 가다가 점심때가 되면 차 많은 집을 눈여겨 봐둔다. 언젠가 지나다가 밥 때가 되면 들를 참이다. 한번은 제트타우젠트, 362℃ 골프장을 갔다. 아직 점심으로는 이르지만, 지나다가 주차장에 관광차까지 주차된 집을 지났다. 아직 이르다고 해도 이집이다 싶었다. 차를 돌려 바로 들어갔다.

  “혼자 먹을 것도 있습니까?”

  “예, 앉으세요.”

혼자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가 될까봐 두렵다. 먼저 물어보는 말이 됐다. 음식도 깔끔한 순두부찌개다. 돌솥밥에 순두부찌개, 딱이다. 금액이야 둘째다. 내 것으로 얼마든지 더 보탤 수 있다. 일하면서 한 끼 든든하게 먹으면 된다.


  전임자와는 일주일을 함께 다녔다. 하도 급하게 가느라고 일주일밖에 인수인계를 할 시간이 없었다. 전임자 김부장은 집이 멀어서 기숙사에서 지냈다. 

  “기숙사에서 아침식사는 어떻게 하고 나와요.”

  “아침은 안 먹었어요.”

  “저녁은 그럼 뭘 드세요.”

  “저녁도 안 먹어요.”

  “그럼 점심 한 끼 먹고 살았어요? 그야말로 점심(點心)이네. 마음에 점 하나 찍는 밥상....”

  “그래서 한 끼를 잘 찾아 먹어야 해요.”

 제대로 된 밥상을 찾아 먹어야 한다고, 가는 곳마다 밥집을 정해 두었다. 곤지암에 가면 배연정소머리국밥, 전북지구에 가면 명가밥상, 양평에 가면 또 무슨 식당인데, 거기는 주소록에 기록하지 않아서 나 혼자는 찾아갈 수가 없다. 그가 떠난 후에는 다시 갈 수 없었다.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꺼리고, 아침을 부실하게 먹고 점심은 고되게 일하는 중이니까 잘 먹어야해서 면 종류는 아니고, 어차피 밥 한 끼 잘 먹어야 하는데 유명 쌀밥집은 혼자는 안 차려준다고 그러고, ‘천지 빼까리’가 식당인데 정작 내가 찾아갈 곳은 만만찮다. 요즘은 아침에 길을 나서면 일정을 더듬어서 어디쯤에서 점심을 먹을지 계산부터 한다.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가 하루 일정 정리를 한다. 한번은 내일 방문할 수용가를 기록하는데, 7년을 근무했다는 부장은 내가 적은 걸 컴퓨터에 옮기다가 글씨를 못 알아보면 내게 묻기었다.

  “이게 뭐예요? 홍박사 땡땡땡땡.”

  “아, ‘성박사인생고기’예요. 지금까지 ‘성박사생고기’라고 썼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가만 보니 ‘생고기’가 아니고 ‘인생고기’더라고요. ‘인’자 하나 들어가니까, 고기집의 이미지가 확 달라지는 거예요. ‘생고기’는 그냥 푸줏간이라는 말이지만, ‘인생고기’는 인생에 한번 맛볼까말까한 좋은 고깃집이라는 뜻이잖아요. 그래서 ‘성박사인생고기’로 고쳤어요.”

  “아, 거기 여태 하는구나. 점심때 거기 들리면 거기서 식사도 하세요. 우리 수용가를 우리가 팔아 줘야지, 기왕이면.”

  “아, 그래요? 먹을 만해요?”

  “괜찮아요. 먹어 보세요.”

 이튿날 마침 점심때를 맞춰서 ‘성박사인생고기’집에 갔다.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종업원이 묻는다.

  “몇 분이세요?”

  “혼자요.”

  “예, 앉으세요. 설렁탕 드시지요?”

  “.... 예.”

역시 혼자 온 사람은 다른 것은 먹을 수가 없다. 당일 도축한 한우로 상을 차린다는데, 역시 2인분이 기본이다. 혼자서 설렁탕을 먹을 수 있는 것도 다행이다. 여기저기서 지글지글 소고가가 익고 있는데, 나는 혼자서 말간 국물의 설렁탕을 받았다. 인생고기라더니 역시 고기가 깨끗하다. 탕에 담기 고기에는 기름기가 없다. 가격은 1만원으로, 법인카드 이상으로 내 카드를 더 긁을 것도 없이 맞다. 밥도 좋다. 한 끼 잘 먹었다. 


  이제 이 집에 점검을 해야 한다. 식대를 지불하면서 전기 점검을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점심시간에 식당에 손님이 많을 때 전기 점검을 하려면 눈치가 보이는데, 그래서 오늘 제가 식사를 먼저 했어요. 이제 전기 점검을 해도 되겠습니까? 영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할게요.”

  “아, 그래요? 전기 점검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데....”

  “지난달에도 제가 했어요.”

  “그래요? 전기 점검하는 분이세요? 그러면 하세요.”

종업원이 놀라는 눈치다. 식사 손님으로 맞을 때는 친절하지만 거리가 있었다면, 전기 점검하는 기사로 볼 때는 친절은 좀 뺀 대신 거리를 좀 좁힌 편이다. 


  영업집이라 전기는 어수선하다. 식당 주방 뒤편에 누전차단기에는 덮개가 없어서 먼지가 쌓여 있다. 계산대 옆 콘센트에는 플러그가 문어발식으로 한 선에서 코드 여덟 개가 꽂혀있다. 숯불을 피우는 화덕 옆에 판넬에는 검정 그름이 차 있다. 이걸 모두 점검기록표에 적었다. ‘고치세요’하고 쓰지 못하고, ‘권장’이다. 말은 건넸지만, 수용가의 눈치를 살펴야하기 때문이다. 밥 한 끼 먹고, 점검하고, 관계를 쌓고 나오니까 역시 사람 사는 맛이 났다.


  이 식당에 가기 전에는 먹을 곳을 찾다가 집에까지 온 적이 있다. 오가 생선구이집에 가니까 혼자 는 못 먹는다 그러지, 나랏님에 가니까 혼자 먹으려면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설명을 길게 하면서 헛걸음에 마음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진땀을 빼지, 맛있는 냉면집에 가니까 대기순번이 길어 사람이 출입구에 가득했다. 집에 가도 아내도 외출을 해서 아침에 먹든 것 밖에 없다. 하는 수 없이 앞 건물에 있는 떡집에 들렀다. 떡을 사서 집에 가서 미역국해서 먹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떡이 싸다. 한 팩에 3,000원이다. 만원이면 3팩을 살 수 있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떡 세 가지를 집어 들고 계산을 했다. 집에 오니까 예상대로 아내도 외출을 하고 아무도 없다. 혼자 아침에 끓여 놓은 미역국을 한 그릇 떠 놓고 떡을 먹었다. 약과 한 팩, 모시송편 한 팩. 백설기 하나는 먹지 못해서 뜯지도 않고 상하지 말라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이 백설기는 저녁에 퇴근해서 반을 덜어서 역시 미역국과 함께 저녁으로 먹었다. 이튿날 아침에도 남은 떡에 미역국을 퍼서 아침을 때웠다. 한 끼 먹을 돈으로 떡을 사서는 결국은 세끼를 먹은 셈이다. 하루 양식이 되었다. 떡이 밥보다 세배를 싸다는 말이다. 세상 참 많이 변했다. 옛날에는 떡이 비쌌는데, 지금은 떡이 밥보다 훨씬 싸다. 설탕을 많이 넣어 달콤한 떡이 훨씬 쌌다.


  떡을 먹을 때가 한 번 더 있었다. 점심에 밥을 먹는다면, 그것도 고기도 없는 밥 한상을 차려 먹는다면, 시내에서라도 먹을 게 없다. 그날은 떡집에 들러서 말했다.

  “달지 않은 떡이 어떤 거예요?”

  “왜, 떡이 많이 달아요?”

  “예, 간식으로 먹기에는 단 떡이 좋은데, 끼니로 먹으려니 달지 않은 것이 좋던데요.”

빵도 그랬다. 단 떡은 차와 함께 곁들이면 맛있는데, 한 끼 식사로 먹으려니 달지 않은 것이 좋았다. 터키를 여행할 때 점심에 먹던 빵에 참 멋있었다. 주식으로 먹는 빵에 간도 거의 되지 않았고, 달지는 않아서 담백했다. 거기다가 요구르트를 찍어서 쌀로된 반찬을 곁들이니까 빵으로도 주식을 삼을 수 있겠다 싶었었다. 떡도 그렇다. 이번에는 바지락 조개국을 끓여 놓았는데, 그 국에 떡을 베어 먹자면 달지 않는 것이 좋았다. 

  “달지 않은 떡이요? 여기 감자송편과 백설기가 달지 않은데요.”

이때 산 떡도 3팩에 9,000원이다. 지난번과 똑같았다. 점심에 두 팩을 먹고, 백설기는 저녁과 이튿날 아침까지 세 끼니는 먹었다. 참, 밥으로는 한 끼 먹고 말 걸, 떡으로 먹으니까 세 끼니를 먹다니....  


  여내울은 밥을 먹기도 좋고 밥을 먹고 나서 잠깐 휴식을 갖는데도 좋다. 밥은 좀 비싼 편이다. 법인카드를 쓰고도 내 돈으로 5천원을 더 내야 한다. 뭐 요즘 물가가 올라서 이만한 값은 치러야 제대로 먹을거리가 되기는 한다. 짜장만 한 그릇에도 만원은 된다. 혼자 가도 되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밥도 먹을 수 있고, 한상 받으면 배도 부르다. 밥을 먹고 나서 마당에 나서면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여기서 커피도 한잔 마시고,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옆에 화장실에서 양치도 할 수 있다. 


  Nomadism. 유목생활을 하니까 점심을 먹고도 양치할 곳이 마땅찮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는 양치를 바로 해야 하는데, 배연정소머리국밥 같은 곳에는 실내에 화장실에서 양치를 해야 하는데, 화장실에 좁아서 내가 들어가 양치를 하려면 다른 사람이 들어 올 수가 없다. 식당 밖에 화장실이 있는 집에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화장실을 이용하기는 고속도로 휴게실이 좋다. 여기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양치를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나 같은 유목민이 아니라도 먼 길을 가는 사람은 식사를 하고 양치까지 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이 더러 있다.


  여내울은 화장실이 식당 밖에 있고, 정자도 그 옆에 있어서, 차를 마시고는 바로 양치를 할 수 있다. 뭐 딱히 식사를 하지 않아도 차를 주차장에 대고 정자에서 쉬고 가기도 한다. 동네 사람이 드나드는지, 아니면 단골손님이 오래 쉬어 가는지, 장기판도 있고 바둑판과 알도 탁자에 비치되어 있다. 담배를 피는 장소인 모양이다. 담배꽁초가 수복이 쌓인 깡통이 있다. 회사에 들어가다가 시간이 좀 남는다 싶으면 여기 들러서 한 숨 쉬어간다. 식당 주인이야 지금은 밥을 먹지 않았지만, 여기서 한 두 번은 밥을 먹는 사람이려니 생각할 것이다. 한 번도 와보지 않고는 이렇게 정자에서 쉬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도 그렇다. 언젠가 점심시간에 여기를 지나거나, 좀 떨어져 있어도 먹을 데가 마땅치 않으면, 여기를 다시 찾아 올 셈이다. 그래서 지나다가도 마음 놓고 쉬어간다. 


  요즘 식당에 장사를 하기가 참 어렵다고 한다. 물가는 뛰지, 돈 쓸게 없으니까 사람들은 소비를 줄이지, 식당은 한집 건너 하나로 많지, 가게 세를 올려 달라고 하지, 전기세도 오른다고 하지, 정말 울상이란다. 그런데 점심을 사 먹을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유목민은 또 사 먹을 곳이 마땅찮다. 오죽하면 떡을 사다가 집에 가서 국을 떠서 먹겠는가? 약간 엇나간 점도 없지 않다. 나는 가정식으로 한상 받고 싶은데, 식당을 차린다면 집에서 먹는 것 보다는 특별한 한 상을 팔고 싶을 것이다. 그래야 돈 집에서 먹는 것보다 특별한 것을 돈 주고 사 먹으러 올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렇게 살짝 살짝 어긋나게 돌아가는 맛이 있다. 어디 딱딱 잘 맞아 떨어지면이야 그것이 기계지 세상이겠는가? 내 마음과 아내의 마음이 살짝 빗나가고 있어서 다툼이 일어나지만 다시 맞춰 살아가는 묘미가 있다. 현세대와 구세대가 딱 맞으면이야 발전이 있겠는가? 현세대가 조금 앞으로 기우니까 뒤늦은 구세대와 갈등 속에서 발전을 하고 있다. 땅이 기우니까 물이 흘러가고, 기압이 기우니까 바람이 불듯이 말이다. 나는 구세대지만 뒤늦게 전기자격증을 따서 젊은 세대가 일하는 전기안전관리를 하고 있다. 같은 또래의 늙은이들보다 세상을 살짝 엇나가고 있다. 엇나가는 것이 발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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