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가기가 군부대만큼 어려운 곳도 없다. 내비게이션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찾아가는 군부대 관련 시설은 4군데다. 이것도 한 달에 두 번을 가는 곳이 세군데다. 이제는 하도 여러 번 가 봐서 괜찮지만, 처음에 갈 때는 엄청 어려웠다. 이름만 적혀 있지, 지도에 나오지 않아서 내비게이션에는 뜨지도 않지, 가기는 가야겠지, 참 어려웠다.
거기다가 딸린 곳이 여러 군데다. 공병아트빌에는 충성 아파트가 네 동이 딸려 있고, 사자레스텔에는 모아빌이 딸려있다. 하나의 점검기록표를 작성하려면 네댓 군데를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사자레스텔에는 수변전실뿐만 아니라, 모아빌의 네 동을 다 들려야 한다.
모아빌을 찾을 때 한번은 아주 많이 헤맨 적이 있다.
“사자레스텔 관리관님, 여기 점검을 했는데, 어디에 가면 관리관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예, 모아빌로 오세요.”
“모아빌요? 알겠습니다.”
모아빌이라, 내비게이션에 찍었다. 14분 정도 걸린단다. 휴대폰 화면만 보고 찾아갔다. 아, 저기, 모아라는 간판이 하나 보이기는 한다. 가까이 가보니 ‘모아 커피’란다. 각종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커피숍이라고 모아커피라고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모아커피라 모아아파트 이름을 떠서 붙였는가 하고 생각은 했지만, 가까이 가서 건물을 살펴보니, 모아가 아파트나 빌라이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눈치다. 아파트 이름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 보았다.
“실례하겠습니다. 여기 모아라고 있어요?”
50대 후반의 남자는 대꾸는 하지 않고, 바로 앞에 커피숍을 가만히 가리켰다.
“아, 커피숍 말고요. 아파트 이름이 모아라고 하지는 않나요?”
“모아라고는 여기 커피숍뿐입니다.”
잘 못 온 것 같다.
그래도 왔으니, 수변전실이 있다면 찾아보아야 한다.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간단한 장비를 챙겨서 차에서 내렸다. 우선 전기를 만져야하니 절연 장갑을 먼저 껴야 한다. 파일에 점검기록지를 하나 뜯어서 끼우고, 핸드폰은 바지 오른쪽 뒷주머니에 놓고, 후크메타는 반대편 뒷주머니에 넣는다. 활선테스터기는 오른쪽 앞주머니에 넣고, 온도측정기는 왼쪽 앞주머니에 넣는다. 그래도 들게 있다. 볼펜을 하나 챙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열쇠를 빼서 문을 닫고는, 열쇠구멍에 다시 끼워 돌려서 문을 잠궜다. 이 차는 수동일 뿐 아니라,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야 시동이 걸린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열쇠는 꺼낼 일이 없으니까 청바지 아주 작은 쪽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예, 관리관님. 여기 모아라고 왔는데, 건물은 안 보이는데요?”
“예. 부장님, 잘 못 가셨어요. 사자에서 여기까지는 4분 거리인데, 오셔도 벌써 오셨어야 하는데, 오래 걸려서 가신 걸 보니, 잘 못 찾아가신 것 같아요.”
“그럼. 어디로 가야하지요?”
“군부대는 지도에도 안 나오고, 내비게이션에도 안 떠요. 제가 주소를 불러 드릴게요. 마유산로 000예요.”
“예 알았습니다. 치고 가 볼게요.”
차 문을 다시 열고, 운전석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서 잭을 연결하고 내비게이션을 찍었다.
“마이산로라.... 여기는 마이산로가 없는데, 마이산을 치니까 전북 진안이 나오는데....”
이걸로는 틀렸다. 군부대도 찍히지 않고, 주소로도 찾을 수 없는 모양이다. 다시 관리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관리관님, 주소로도 안 나오는데요?”
“아, 그러면 부대 앞에 농장을 찍고 와 보세요. 정화농원이예요.”
“정화농원이라. 예 알겠습니다. 다시 해 볼게요.”
정화농원은 있다. 이제 가기만 하면 된다. 다시 주머니 여기저기에 꽂아 넣었던 장비를 꺼내 조수석에 놓고, 출발하려고 했다.
어? 그런데 자동차 열쇠가 없다. 조수석에 꺼내 놓은 장비를 뒤적여 찾아보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여기저기 흩으며 찾아도 눈에 띄지도 않는다. 의자 아래로 떨어 졌나, 고개를 쑥 빼고 내려다 봐도 없다. 주머니 어디에 있나 보려고, 자동차 문을 열고 다시 나왔다. 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졌지만, 역시 없다.
단 두 가지 선택지뿐이다. ‘있다’와 ‘없다’다. 뭐, 여러 개 중에 하나를 어렵게 고르는 문제도 아니다. 간단하다. 열쇠가 ‘있다’와 ‘없다’다. 우선 자동차 열쇠 구멍에 열쇠가 ‘없다’다. 여기에 있으면 쉽게 갈 텐데, 여기에 없으니, 명백히 없으니, 찾아야 한다. 그것뿐이다. 어디를 보면 ‘있다’일까?
먼저 찾을 곳은 차 속이다. 자동차에 달린 문은 모두 열어 젖혔다. 의자 밑이나 뒷자석 아래까지 보려면 우선 환해야 하지 않겠는가? 차 문을 다 열어도 부족해서 장비가방에서 랜턴도 꺼냈다. 의자도 젖혔다 접었다, 발판을 들었다 놨다, 의자 위에 문서와 장비를 앞으로 옮겼다가 뒤로 쏠았다가, 고개를 쭉 빼서 좁은 차 바닥을 살펴도 없다. 그래도 ‘없다’다. 그 쉬운 두 개 중에 하나를 찍는 50%의 선택에 여지없이 ‘없다’뿐이다.
“아니, 내가 장비를 챙겨 들고 옮긴 거리를 불과 5m도 안 되는데, 떨어지면 어디로 떨어 졌단 말인가?”
차에서 내려서 걸은 길을 다시 짚어 걸어 보았다.
“여기 길가 그래이팅으로 덮인 배수로에 혹시 빠졌나? 아무리 정확하게 떨어져도 그렇지 소리는 ‘땡’하고 날 텐데, 소리도 없이 떨어졌나?”
단단하게 박힌 그래이팅은 들추지 못하고 후레쉬를 안으로 비춰 들여다보았다. 여기도 ‘없다’다.
“소리가 안 났다면 길가 회양목 나무숲으로 떨어졌나?”
지나갔을법한 곳에 나무숲을 이리저리 헤쳐 보았다. 그럴 리는 없다. 여기 나무 위로 떨어질 만큼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있다’가 나타날지 모른다고 나무 위에서 바닥까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역시 없다. 둘 중에 하나인 ‘없다’다.
갔던 길을 다시 돌아 자동차에까지 와서, 이번에는 자동차 밑을 살폈다. 아래로 떨어져, 옆으로 튀어, 혹시나 밑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있다’에 점이 찍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이쪽에서 보면 이쪽 바퀴 뒤는 볼 수 없으니, 네 군데 바퀴를 뺑뺑 돌아가며, 무릎을 꿇고, 대낮에 후레쉬를 비춰가며, 눈에 혹시라도 띄지 않을까 크게 뜨고 살폈다. 여기도 역시 ‘없다’다.
“이제 어떡하지? 이런 일이 내게 생기다니....”
참말로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다. 차 문도 확 열어 놓고 샅샅이 살폈겠다, 길을 조금 걸어갔다고 배수로까지 들여다봤겠다, 혹시 나무에 떨어졌나 하고 나무는 물론 잔디까지 뒤졌겠다, 찾아 볼 만큼 다 찾아 봤다. 그런데도 ‘없다’다. 어쩌면 좋은가?
회사 사장님이 생각이 났다. 거기밖에 돌파구가 없다. 정말 뭔 일이나 났을 때 전화를 하는 사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사장님, 나 사고 하나 쳤는데요, 자동차를 주차했다가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열쇠가 사라졌어요. 잃어버렸어요.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사무실에 스페어 열쇠 하나 있지요? 그걸 제게 가져다 줄 수 있어요?”
“스페어가 있는 차가 있고, 없는 차가 있어요. 얼마나 움직였는데요.”
“얼마 안 돼요. 한 5m밖에 안 돼요.”
“부장님, 흥분을 좀 가라앉히시고, 찬찬히 찾아보세요. 어디 가까이 있을 거예요.”
“예, 알았어요. 다시 찾아볼게요.”
운전석 옆에 있는 물병을 들어 물을 한 번 더 마신 다음에, 다시 찾아보는 수밖에. 애꿎은 차 문만 활짝 더 열어 젖혔다. 네 개를 다 열었다. 뒤 트렁크도 열었다. 단단히 마음먹었다는 듯이, 처음부터 다시 찾았다. 서류와 장비를 뒤지고, 의자 밑을 들여다보고, 가방을 주머니주머니 다 까발려보며 찾고, 배수구 구멍과 회양목 순도 제켜가며 뒤졌다. 그래도 ‘없다.’ 낙담이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회사에서도 떼를 쓰고 안 움직이면 오기야 올 테지만, 이게 또 무슨 망신인가? 늙은이에게 일 시켰더니 50km거리를 생으로 가야한다고 투덜거릴 것이 분명하다. 다른 직원들은 또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그래도 어쩌겠는가? 간단한 답, 아무리 몰라도 맞출 확률이 반반인 문제에, 여태까지 ‘없다’뿐이었는걸, 어쩌겠는가? 야속하다. 어떻게 전부 ‘없다’인가? 의자 위, 의자 밑, 차 아래, 하수구, 회양목, 가방,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곳에서, 반반인 문제에, 하나도 ‘있다’가 없단 말인가? 기가 막힌다.
존재란 그런 것이다. 확률이 50%라도, 내게 없으면 100% 없는 것이다.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내게 없으면 전부 없는 것이다. 내게 돈이 없는데, 없으면 책상에도 없고, 지갑에도 없고, 주머니에도 없는 것이다. 책상에 없다고 주머니에는 없는 돈이 생겨날 수는 없다. 아내가 없으면 없는 것이지, 없는 아내가 어디에서 생겨나겠는가?
행복은 존재가 아니라서 다르다. 행복이 지금 내게 없다가도 금방 예상치 않은 곳에서 생겨날 수 있다. 어디에도 없어서 절망하다가도, 산에 가면 생길 수 있고, 바다를 보면 솟아날 수 있고, 먼데 여행을 가면 나타날 수 있다. 사랑도 그렇다. 지금 없다가도 아지랑이 피듯 번지다가, 안개처럼 자욱해 질 수도 있다. 그러다가 벽돌처럼 단단해질 수도 있다. 정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히 생겼어도, 끊으려면 끊어지지 않다가도, 한순간에 오만정이 다 떨어지기도 한다. 이것처럼 어디에서 열쇠가 슬그머니 생겨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데 자동차열쇠는 존재라서 없다가도 생기는 물건이 아니다. 여기저기 찾아보면 슬그머니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있다’와 ‘없다’가 확실하고 분명해서, 지금은 어디에도 없다. 귀신이 곡을 할 노릇이고, 뱃속에서 환장할 노릇이다. 아파트로 둘러싸인 좁은 하늘이 노랗다.
“에라.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 봤다. 그래도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열쇠 찾기 포기다. 차 문을 다 닫고, 어찌 되었든 이참에 한 숨 돌려나 보자.”
하고 생각하고, 운전석 차문을 꽝하고 닫아 버렸다. 그런데 말이다. 순식간에 열쇠가 나타났다. 차 문에 꽂혀있다. 거짓말처럼 열쇠가 꽂혀 있다. 열쇠에 달린 장신구가 약을 올리듯 살랑살랑 흔들린다. 반갑고도 얄밉다.
이건 분명 안개처럼 나타나는 사랑이나 행복이나 정 같은 것은 아니다. 만질 수 있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던 열쇠다. 바로 정신 다 빠지게 찾던 열쇠다. 열쇠가 나타났다.
“아, 이런....”
이제야 이해가 된다. 요즘 나오는 차는 열쇠를 지니기만 하면 된다. 하루 종일 운전을 해도 주머니에 넣고만 다녀도 시동을 걸 수 있고, 차 문을 잠글 수 있다. 내 차는 차 문을 잠글 때 손잡이에 달린 네모난 쪽을 눌러야 하지만, 아내의 차는 차에서 멀리 떨어지기만 하면 자동으로 잠기고 사이드밀러도 접힌다. 그런데 지금 내가 타고 다니는 회사의 법인 차는 옛날에 만들어진 차라서 열쇠를 꽂아야 문을 열수 있고, 열쇠를 꼽고 돌려야 시동을 걸 수 있다. 하기야 기어도 수동기어다. 1단으로 출발하고, 출발하자마자 2단으로 놓아야 하고, ...., 고속도로에서만 5단을 놓고 달릴 수 있는 수동기어 자동차다.
손은 두 개인데, 온갖 장비를 다 챙겼다가, 내비게이션을 켜서 다시 주소를 입력한다고 차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열쇠를 문에 꼽은 채로 그냥 두고 들어간 것이다. 그 문을 열고 찾았으니, 내가 숨겨두고 찾은 꼴이다. 일단 한숨은 돌렸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모아빌 관리관님에게 우선 전화를 했다.
“관리관님, 나를 기다리지 마세요. 여기 일이 생겨서 점심을 먹고 거기로 갈게요.”
아직 이른 점심이긴 하지만, 천천히 숨을 돌리고, 밥도 배부르게 먹고, 정신도 좀 차려서 가기로 했다.
차를 그대로 세워두고 가까이 보이는 양평해장국집으로 들어갔다. 밥이 나오기 전에 차가운 물을 마시면서 생각을 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이나 포기를 할 걸. 포기하지 않고 나올 때까지 찾는다고 악을 썼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 미처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일이 예상 외로 풀리지 않을 때는 일찌감치 포기해버리는 것도 때로는 해결방법이 될 수도 있겠다.”
뜨끈한 해장국이 속에 들어가니까, 핏발선 눈동자부터 풀리는 것 같다. 힘이 서서히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