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작고 느긋한 행복

by 오늘

우리는 많이 소비하기 위해 많이 번다.

많이 벌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에너지를 소진한다.

소중한 시간을 담보하여 직장에 몸과 영혼을 갈아 넣은 채

벌이를 위해 하루하루 살아간다.

우리나라 직장인들 대부분이 ‘번 아웃 증후군’에 감염되어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자주 겪곤 한다. 이것은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이다. 이는 뉴욕의 정신분석가 프로이덴버거(Herbert Freudenberger)가 논문에서 약물 중독자들을 상담하는 전문가들의 무력감을 설명하기 위해 ‘소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했다. ‘불타서 없어지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소중하고 한 번뿐인 인생을 이렇게 일에 메여 에너지를 모두 불태워버려서야 되겠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시급한 일은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 것인가’를 깊이 고민하는 것이다.

이렇게 굳이 뉴욕의 정신분석가 이름까지 들먹여가며 '번아웃 증후군'을 들고 온 이유는 나 역시 이런 상황에서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아닌 남편의 상황이다. 남편과 내가 가장 많이 부딪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하루를 온전히 온 에너지를 다해 일하는 남편은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것이 가족과 행복하게 지내기 위함이라고 한다. 새벽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고 그 외 시간에 꿈을 위해 연습하고 시간을 투자한다. 가족이 원하는 행복이 돈이 많이 필요하고, 그 돈을 누리고 사는 것이라면 많이 버는 것이 그들에게 맞는 방법이겠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그것이 '최선'일까?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행복은 아주 작은 것이다.

추운 겨울이 지나 따뜻한 봄에는 벚꽃이 휘날릴 때 떨어지는 꽃 잎을 얼굴에 맞으며 손잡고 걷는 것

무더운 여름엔 바다 냄새를 느끼고 수평선을 바라보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것

시원하고 아늑한 가을 저녁 함께 노을을 관조하며 산책을 하는 것

집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좋아하는 책을 보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

겨울엔 쌓인 눈을 밟으며 뽀드득 소리를 질리도록 듣고 차가운 눈을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

돈이 많지 않아도 가능한 작고 느긋한 행복이 아닌가.

물건을 사들이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더 많은 물건을 사고 더 많은 음식을 먹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버는데 써야만 한다면, 우리는 물질만능 주의의 허상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비 지상주의가 만연한 가운데 더 소비하도록 하는 광고나 미디어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돌려야 한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인생을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 가족은 함께 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최소한의 음식으로 우리 몸과 마음은 더 행복해질 수 있고, 더 풍요로운 삶을 여행할 수 있다.

‘완벽하지 않아서 행복한 스웨덴 육아’의 홍민정 저자가 책에서 작은 문화센터 미술 수업을 듣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들에게 아주 적은 재료로 그림을 그리게 한다. 처음부터 풍부한 재료를 주지 않는다. 한정된 재료를 가지고 최대한 만들어 보기를 권한다. 물감을 4가지 색을 준다. 네 가지 색 물감을 섞어서 색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준다. 하늘을 그리고 싶은데 파랑이나 흰색이 없다면, 해가 지는 붉은 하늘을 생각할 수도 있고, 먹구름 낀 하늘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물감을 섞으면서 원하는 색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은 제한된 상황에서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사회에서 세뇌 당한 부패한 소비주의로부터 벗어나 광고, 미디어에 현혹되지 않기를 노력한다. 사치품과 보이기 위한 물품, 값비싼 쓰레기 더미가 삶의 필요 요건은 아니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담은 온기 있는 사랑과 인정해 주는 마음, 함께 가치관을 공유하고 시간을 나누는 추억을 만드는 것이다. 햇살 가득 머금은 청명하고 맑은 가을 날씨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은 돈이 많지 않아도 가능하다. 김밥을 싸서 나간 공원에 아이와 아빠가 공놀이를 하고 까르르 웃어 넘어가는 소리를 듣는다. 깨끗하고 파아란 맑은 하늘에 하얗게 수놓은 뭉게구름이 아름답게 흘러가는 것을 바라본다. 이런 순간 나는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다.

keyword
이전 09화커피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