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 꽃처럼

마음의 산책: 수필

by 하태수 시 수필

산안개 꽃처럼



가을 아침, 안개 낀 들판에 서 있으면

문득 마음도 따라 흐려진다.

긴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많은 것을

흘려보냈고 또 가슴에 쌓아왔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서서히 거둬지는

시기다.삶이란 얼마나 많은 계절을

지나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서게 되는 걸까.


젊을 땐 세상을 채우려 애썼다.

경쟁 하고, 이겨야 했고,

인정받아야만 존재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보니 진짜 귀한 것은

서서히 드러난다.

눈에 띄지 않던 마음의 결,

미소로 응축 된 말 없는 위로,

그리고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체온 같은 진심.


나는 오늘도 조용히 하루를 살아낸다.

가슴 속 깊이 뿌리내린 기억들을

광주리에 담듯 하나씩 헤아려본다.


좋았던 날보다,

가만히 견뎌낸 날들이

더 오래 나를 지탱해주었다.


사랑이라 부르지 못했던 마음,

말 대신 흘려보낸 침묵,

그 모든 순간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이제는 말보다 눈빛으로,

움직임보다 기다림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나는 지금 산안개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가장 고요한 자리에서

내 삶의 향기를

천천히 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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