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학교를 소개합니다 (3)
“청소년은 자기 삶의 주인이다. 청소년은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와 시민으로서 미래를 열어 갈 권리를 가진다. 청소년은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며 활동하는 삶의 주체로서 자율과 참여의 기회를 누린다. 청소년은 생명의 가치를 존중하며 정의로운 공동체의 성원으로 책임있는 삶을 살아간다.”
- 청소년 헌장 (1998년 10월 25일)
1998년 10월 25일 재정된 청소년 헌장의 첫 문구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울림을 준다. 청소년에게 지율과 참여의 권리를 보장하려는 흐름이 강조되고 있다. 청소년의 참여와 자치를 위해 국가와 지자체, 학교 교육청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청소년과 관련된 다양한 정책들이 펼치고, 과거에 비해 청소년을 위한 복지와 혜택을 늘리고 있다.
청소년 자치와 관련된 개념은 다양하다. 학습자주도성, 학습자 중심 수업, 학생 주도 활동, 청소년 자치 교육, 청소년 참여 활동, 청소년 참여 등.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기관명만 하더라도 ‘청소년자치공간, 청소년센터, 청소년지원센터’ 등 너무나 다양하다. 우후죽순 사용되다 보니 혼란을 겪기도 한다.
청소년 자치학교 은하수의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먼저 청소년 자치와 관련된 용어를 톺아보고 정리하고자 한다. 은하수학교의 지위와 구분을 확인할 때 보다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 자치와 관련된 개념을 주체, 형태, 방법에 따라 아래와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주체에 따라: 학생(학습자), 청소년
형태에 따라: 참여, 주도, 자치
방법에 따라: 학습, 교육, 활동
1) 주체
우선 ‘주체’부터 살펴보자. 학생자치와 청소년 자치는 어떤 점이 다를까?
학교 교육법에 따른 학생은,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는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사람들을 의미한다. 교육법에 따라 학생은 보통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시점부터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칠 때까지의 연령대를 포함한다. 이를 바탕으로 초등학생은 6세에서 12세 사이, 중학생은 13세에서 15세, 고등학생은 16세에서 18세까지 학생으로 정의된다.
반면, 청소년의 연령 구분은 법률상으로 다양하게 해석된다. 청소년기본법과 청소년복지법, 청소년활동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만 9세 이상 만 24세 이하의 사람을 뜻한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르면,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의 사람으로, 게임산업진흥법에는 ‘만 18세’ 미만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렇게 각 법률마다 다르게 적용되는 이유는 성인과 청소년을 구분하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각 영역마다 ‘성숙’이라는 개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학생과 청소년의 용어 차이는 관련 기관에 따라서 구분해 볼 수 있다. 교육청과 교육부, 여성가족부 간 정책/사업명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교육부나 교육청에서는 ‘학습자 중심 교육’ ‘ 학생 ’ 등 ‘학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반면,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에서는 ‘청소년 마음 건강’ ‘청소년 상담 센터’ ‘청소년 문화의 집’ 등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즉, 학생자치와 청소년자치의 용어는 단순히 연령에 따라 구분될 뿐 아니라, 운영하는 기관(교육부, 여성가족부)에 따라 달라진다. 학교나 교육부(청) 기관에서는 ‘학생’을, 여성가족부 산하의 청소년 기관에서는 ‘청소년’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이같은 맥락에서 학생자치와 청소년자치를 비교해 볼 수 있다. 학생자치가 학교 내 자치라면, 청소년자치는 그 밖의 지역사회와 연계한 사회참여적 활동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정건희 외, 2010). 학교 외의 학생자치활동을 포괄하는 의미로 청소년자치활동이라는 의미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시민자치정책센터, 2003)
2) 형태
다음으로 ‘형태’를 살펴보자. 학생 자치 활동, 학생 주도 학습, 청소년 참여 기구, 청소년 주도 활동. ‘참여’하는지, ‘주도’하는지, ‘자치’하는지에 따라 의미와 느낌이 달라진다.
참여, 주도, 자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각각의 의미를 따로 살펴보면, 참여는 어떤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의견을 제시하고,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주도는 활동이나 과정의 방향을 이끌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치는 자기 주도적이고 자율적으로 활동의 전반적인 결정을 내리고 책임지는 것이다.
참여, 주도, 자치의 공통적으로 삼는 기본 가치는 ‘자율성’이다. 중요한 것은 모두 공통적으로 ‘학생과 청소년에게 보다 높은 주권을 제공한다’는 관점이다.
이는 기존 패러다임의 전환으로서 ‘주권’이 옮겨진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청소년과 학생은 소외된 존재였다. 청소년은 성인에 의해, 학생은 교사에 의해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학생들은 교사에 의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학습자로 존재했다. 청소년은 어른에게 보호받아야 하는 미성숙한 대상으로 여겨졌다. 그동안 주권은 학생이 아닌 교사에게, 주민이 아닌 국가에게 맞춰져 있었다. 학생과 청소년에게 자율성을 강조하는 패러다임은 그동안 수혜자(소비자)로 여겨졌던 이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회복시킨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주민참여, 주민자치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수동적으로 행정의 당하던 것과 달리 적극적으로 주민들이 주인이 되는 행정의 일환으로 사용된다. 지역의 자율성을 보장하고자 사용하는 지방자치가 청소년/학생의 자치, 참여, 주도 개념은 유사하다)
한편, 참여-주도-자치의 관계를 위계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아이리스 아른스테인의 ‘주민참여 8단계 모델’은 주민들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이 모델은 참여의 수준을 8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가 얼마나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는지에 따라 차이를 둔다.
조작: 주민들은 단순히 영향을 받기만 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않는다.
장식: 주민들의 의견이 형식적으로만 반영되고, 실제로는 변화가 없다.
정보 제공: 주민들에게 정보만 제공되며, 의사결정에는 참여할 기회가 없다.
상담: 주민들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최종 결정은 여전히 정책 결정자에게 있다.
광범위한 의견 수렴: 주민들의 의견은 일부 반영되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파트너십: 주민들이 정책 결정에 동등하게 참여하고 협력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위원회 참여: 주민들이 실질적인 권한을 가지고 정책을 수행할 수 있다.
시민 권력: 주민들이 정책 결정과 실행을 독립적으로 주도하며, 모든 권한을 가진다.
초기 단계인 '조작', '장식', '정보 제공', '상담'에서는 주민들의 의견이 형식적으로만 반영되거나 실제로 반영되지 않는다. 주민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만, 그 영향력은 제한적인 ‘참여’ 단계따.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파트너십' 단계에서는 주민들이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주민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 보다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주도’ 단계다. '위원회 참여'와 '시민 권력' 단계에서는 주민들이 정책을 주도하며 자율적으로 공동체 문제를 해결한다. 이는 주민들이 독립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자치’ 단계로 볼 수 있다.
3) 방법
마지막으로, ‘방법’을 살펴보자. 교육, 학습, 활동은 모두 공통적으로 ‘배움’에 중심을 둔다. 교육은 ‘가르치는 자’에 초점을 맞춘 반면, 학습은 ‘배우는 자’에 초점을 맞춘 단어다. ‘활동’을 배움으로 보는 경험중심 교육철학에 기반해 있다. 듀이는 경험, 즉 활동에 의해 배울 수 있다고 보았다. 그에 따르면, 학습자는 능동적인 경험과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수업 뿐 아니라 ‘특별활동, 수련활동, 수학여행’ 등 활동을 통한 경험은 배움을 제공한다.
결국 청소년 자치에서 교육, 학습, 활동의 맥락은 청소년 또는 학생에게 배움을 촉진한다는 원리에서 유사하다. 가르치는 사람, 배우는 사람, 경험하는 내용에 초점을 맞출지에 따라 용어가 달라질 뿐이다.
자치를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지향점은 ‘학습자 주도성’ 역량이다. 최근 ‘학습자 주도성’이 화제가 되고 있다. OECD 2030에서는 학습나침반에서 미래사회에 중요한 핵심 역량으로 ‘학습자주도성’을 꼽는다.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우리나라도 2022 개정교육과정에 ‘학습자주도성’을 강조하고 있다.
남미자(2021)의 선행연구에 따르면 학습자 주도성은 ‘사회적 존재인 인간이 자신의 개별성과 독특성을 유지하면서, 서로-함께-존재할 수 있도록 비강제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공적인 것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주도성은 단순히 강하게 이끄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자율에는 책임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세계 속에서 자유를 얻은 존재는 마땅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즉, 주도성은 자율성 뿐 아니라 공공성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자치 활동은 청소년의 주도성을 담는 그릇이다. 자율과 책임, 공공성이 담긴 자치를 위해서는 모두의 참여가 중요하다. 소수가 지배하는 자치는 자치가 아니다. 진정한 자치는 ‘조직의 모든 구성원이 자율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고 주도함으로써 배움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청소년 자치는 어렵다. 청소년자치, 청소년이 주도하는 활동은 청소년의 자율성과 책임감, 주인의식이 최고로 발현된 상태여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청소년들은 자치 활동을 통해 각자의 결에 따른 주도성을 기르고 있다. 자치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청소년들이 주도적으로 성장하는지 살펴보겠다.
청소년/학생과 관련 조직도 다양하다. ‘청소년 활동시설’은 청소년의 활동과 건전한 이용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로, 청소년 수련시설과 청소년 이용시설로 나눌 수 있다. 수련시설에는 청소년운영위원회를 둔다. 이는 청소년참여기구 중 하나로, 이외에도 청소년참여위원회, 청소년운영위원회, 청소년특별회의, 청소년동아리, 참여예산제 등 여성가족부가 주관하는 청소년 참여 조직은 다양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청소년특별회의라는 ‘전국 17개 시도의 청소년 대표 및 청소년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청소년의 시각에서 청소년 정책과제를 발굴하여 정부에 제안하는 청소년 참여기구’를 두기도 했다.
여성가족부에서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쓰는 반면, 교육부와 교육청에서는 ‘학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눈에 뜬다. 시도교육청에서는 학생참여위원회(교육정책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위원회)나 학생자치네트워크 (지역별 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모인 조직)를 둔다.
정건희(2010)는 ‘청소년/학생의 자치조직’을 운영하는 주체가 지역, 국가, 민간인지에 따라 다음과 같이 조직을 구분하기도 했다.
1 학교
1-1) 협의활동 중심 조직: 학급회의와 학생회의 조직 및 운영
2 지역사회
2-1 지역) 청소년단체/수련시설조직 : 청소년동아리, 청소년위원회, 유미래유권자연대 등
2-2 국가) 공적참여조직 : 청소년참여위원회(특별회의)
2-3 민간) 청소년자체 자생조직 : 중고등학생연합, 사이버동아리, 청소년포럼, 젊은 모임 등
청소년자치활동이라 함은 ‘청소년의 자발적 참여를 기반으로 외부의 간섭이나 압력 없이 구성원 자신의 합의와 의사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모든 청소년활동 (Youth Activities)을 말한다.(김민, 2001) 학교 외의 다양한 장면에서 요구되는 모든 자치활동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용어로써 ‘청소년자치활동’이라 이름 짓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본다.(김민, 2005)
지금부터 소개할 은하수학교는 2020년 인천에 설립된 청소년자치학교다. 행정적으로는 교육감 직속기관인 인천광역시교육청학생교육문화회관의 자치학교팀 사업으로 운영된다. 위 분류에 따르면 은하수학교를 지역(2-1) 차원의 청소년자치활동 조직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교육청에서 운영하지만 학교 밖 청소년을 포함하기에 ‘학생’ 보다는 ‘청소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자치학교라는 이름으로 청소년을 모집하고, ‘청소년 주도 프로젝트’와 ‘청소년 자치 조직 운영’을 주요 활동으로 삼는다. 직접적으로 가르치는 ‘교육’ 보다는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프로젝트 중심 활동’이 중심이다. 경험을 통해 청소년은 배움을 만들어 나간다. 궁극적으로 청소년 자치를 통해 개개인의 삶의 주도성을 기르는 것이 핵심이다.
※참고문헌
남미자 외. (2021). 학습자 주도성, 미래교육의 거대한 착각. 학이시습.
Arnstein, S. R. (1969). A ladder of citizen participation. Journal of the American Institute of Planners, 35(4), 216-224.
정건희 외. (2010) 청소년 자치활동의 실태 및 현황 분석. 청소년학연구 제17권 제1호(2010.1), 53-83
김민. (2005) 청소년 자치참여활동 지침서.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