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날들의 시작
아무런 연고도 없이 무작정 찾아온 강릉은 처음에는 낯선 이방인에게 쉬이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자영업을 시작한 남편은 힘들어하였다. 이게 흔히들 말하는 텃세인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사업을 시작할 때쯤 코로나19까지 퍼지기 시작하였다. 초조한 날들이 이어졌다. 내가 오자고 해서 온 곳인데, 당장 생계가 막막하니 남편 볼 낯이 없고 걱정만 쌓였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남편은 지역광고를 시작해서 다행히 장사가 되기 시작하였다. 실력으로 승부 하겠다던 남편은 사교적인 성격까지 타고나 강릉에서는 보기 드문 상냥함과 친절함을 지닌 사장님이 되었다. (강릉 사람들은 특유의 무뚝뚝함이 있어 친절하지 않다고 오해를 사기도 한다.)
남편은 강릉에 와서 출퇴근의 여유가 생겼음에 좋다고 한다. 날마다 지옥철에 시달리며 밥벌이를 하러 다녀야 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살아냈는지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 가면서 매일 새벽 별 보고, 밤에 뜨는 별 보며 우리 가족을 위해 밥벌이 했던 가장의 모습. 그때의 모습이 너무도 안쓰러웠기에 나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런 힘든 출퇴근을 하지 않아도 됨에 감사한다. 매일 아침 지옥철의 답답한 공기가 아닌 강릉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며, 더 여유가 있는 날에는 드라이브스루로 마시는 모닝커피의 달콤함까지. 남편은 매일 아침 좋은 컨디션으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한다.
아이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어린이집 가족들 대부분이 현지인이 아닌 우리같이 타지에서 강릉으로 이주해 온 이들이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답게 다 같이 아이를 함께 키우며 나는 그들과 사이가 끈끈해졌다. 각자의 사연은 다 다르지만 타지에서 강릉으로 온 만큼, 아마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일거라 짐작한다.